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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45화 (45/185)

< 호위(2) >

결국 나는 공주의 의뢰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내가 의뢰를 거절한다면 혼자서라도 북해로 가겠다는 굳은 의지를 그녀의 두 눈에서 똑똑히 보았기 때문이다.

“전서응을 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뇨, 긴 여행을 떠나는데 가족한테는 알려야죠.”

공주의 배려로 의뢰를 받았다는 걸 알리기는 쉬웠다.

물론 자세한 내용을 적었다간 우리를 노리려 드는 정체불명의 집단에게 들킬 위험이 있었기에, 아까 내가 멱살을 잡았던 음암대의 부대장에게 검수를 받아 공주나 북해에 관련된 내용은 전부 지워야 했지만, 그래도 의미는 전부 제대로 전달할 수 있었다.

···이야기해보니까 생각보다 좋은 사람이더라. 멱살 잡은 것도 그냥 가볍게 넘어가 주는 걸 보면.

“대장군님에게 듣던 성격 그대로더군요.”

이 말만 없었으면 좋았겠지만.

아버지와 기정이, 그리고 총관에게 보낼 세 장의 전서를 부대장에게 건네자, 그는 순식간에 기척을 지우고 사라졌다.

음암대의 명성에 어울리는 훌륭한 잠행술이었다.

“그럼 공주마마.”

나는 다시 몸을 돌려 공주를 바라봤다.

호로록.

내가 의뢰를 받아들이겠다고 말하자마자 바로 낯빛을 싹 바꾸고 마음 편히 차를 마시는 그녀가 내 부름에 나를 향해 시선을 옮겼다.

“다른 한 분은 언제 오십니까?”

“다른 한 분이라뇨?”

내 질문에 진심으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리는 공주의 모습에 짧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의뢰서에 두 분이라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다른 한 분은 공주마마의 비밀 호위입니까? 그분과 앞으로의 여정에 관해 이야기해봐야겠습니다만.”

“다른 일행은 없는데요?”

“네? 그럼 의뢰서에 두 명은···?”

“그야 당연히 저와.”

공주는 기다랗고 매끄러운 손가락을 들어 자신을 한 번.

“폭풍단장이죠.”

그리고 내 쪽을 향해 한 번 가리켰다.

“···네?”

“저와 함께 갈 수 있는 비밀 호위가 있으면 제가 아니라 오라버니에게 붙여야지요.”

마시던 찻잔을 내려놓은 공주는 위엄 넘치는 황실의 일원으로서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기억하세요. 우리가 상대하는 적은 아바마마조차 암살하려 들었던 자들이라는 걸. 지금 그들의 위협에 제일 크게 노출된 건 제가 아니라 오라버니예요. 제일 위험한 사람한테 호위를 붙이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요?”

맞는 말이다. 맞는 말이긴 한데···.

“그럼 공주마마를 지킬 사람이 오직 저 하나뿐이라는 말씀이 됩니다만···?”

“그런 말이 되겠죠.”

···그런 말이 되겠죠, 가 아니죠! 그걸 끝나면 안 되잖아!

당장이라도 입에서 튀어나올 것 같은 말을 지금껏 길러온 인내심으로 겨우 눌러내고, 조심스레 그녀를 향해 입을 열었다.

“공주마마. 북해는 삼 년간 그곳에서 싸워온 저조차도 버거운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공주마마를 지키며 정체불명의 적과 싸우기란···.”

“알아요. 무척 힘들고, 가망 없으며,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라는 건요.”

···어렵다고만 말하려고 했는데, 더 살벌한 단어를 붙이시네.

“하지만 그것은 이번 일의 중요도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내가 질려 하든 말든 공주는 신경도 쓰지 않고 하던 말을 이어나갔다.

“지금보다 더 절망적이고, 끔찍한 상황이라 해도 저는 북해행을 포기하지 않을 거예요. 작게는 저의 오라버니를 위함이고, 크게는 두 나라 간의 평화를 위해서요.”

“···알겠습니다.”

내가 뭐라고 설득해도 우리 두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을 데리고 갈 기색을 보이지 않으니, 결국 내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항복하듯 고개를 숙이자, 그제야 그녀는 위엄 넘치는 표정을 풀고 다시 편안한 모습으로 찻잔을 들었다.

“그럼 부대장이 돌아오면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네? 바로···라면?”

갑자기 공주의 입에서 튀어나온 충격적인 발언에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묻자, 그녀는 전혀 흔들리지 않고 입을 열었다.

“마차는 이미 밖에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여행 준비도 충분히 되어 있고요. 말은···저희 측에서 가져온 말 한 마리와 폭풍단장이 타고 온 말. 이렇게 두 마리면 되겠네요.”

“마차 한 대라면 제 말 한 마리로도 가능하지만···아니, 그것보다 지금 바로 출발하시겠다는 겁니까?”

“지금 저희는 한시가 급해요. 언제 제 칩거가 거짓임이 밝혀질지 모르니까요. 그 전에 북해빙궁의 영역 내에 들어가야 그들의 암습을 피할 수 있지 않겠어요?”

안된다. 이미 이번 일에 목숨까지 건 사람이라 그런지 대화가 안 통해.

하물며 반박할 점도 없는 정론밖에 말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질이 안 좋다.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지.

지금은 일단 상식적인 대처가 아니라, 그녀가 만들어낸 흐름에 탈 수밖에 없다.

거기서 그녀가 넘어지지 않도록 뒤를 받치는 것.

그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제가 마부석에 자리하고 있을 테니, 공주마마는 마차 안에 타고 계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한 가지만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뭔가요?”

그래도 미안한 마음이 있는지, 무엇이든 대답해주겠다는 태도로 나를 바라보는 공주에게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제 말이랑 같이 마차를 끌고 갈 말, 암컷입니까, 수컷입니까?”

내 말에 바로 아미(蛾眉)를 찌푸리는 공주.

···첫 출발부터 이런 질문을 해야 하는 내 마음도 편치 않지만, 반드시 물어봐야 할 질문이었다.

왜냐하면.

*****

“그럼 이 녀석은 근처에 있는 객잔에 맡겨놓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기가 찬다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는 공주에게 고개를 숙이고 마차의 문을 닫았다.

하아, 하고 짧은 한숨을 내쉬며 옆을 바라보자, 자신은 아무런 상관없다는 듯 딴청을 피우고 있는 놈의 얼굴이 보였다.

크기는 노새만 하면서 힘은 열 마리의 말을 합친 것보다도 강하고, 체력은 그보다 더 센 녀석.

녀석을 얻은 지 삼 년이 지난 지금도 이름 하나 지어주고 있지 않았지만, 그래도 이 년간 전장을 함께 달려온 믿음직스러운 전우이자 전용 탈것으로써 믿고 있었다.

딱 한 가지만 빼면 말이다.

“···넌 대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만에 암말 하나를 임신시키냐?”

이히힝~

내 질문에도 여전히 딴청을 피우며 듣는 이 모두를 맥빠지게 만드는 기괴한 울음을 내는 녀석을 보며 마차에 걸어놓은 창을 빼고 싶다는 욕망을 겨우 잠재웠다.

북경부터 명과 북해의 경계에 있는 이 도시까지 오는 한 달 남짓한 시간.

그 사이에 이 녀석은 자신의 옆에서 함께 마차를 끌고 오던 암말을 임신시켜 버린 것이다.

“부대나 가문에 있을 땐 그래도 다른 말이랑 떼어놓기라도 했는데···.”

이번 여행에는 그것이 힘들어서 같이 좀 붙여놨더니만, 아니나 다를까 그새를 놓치지 않고 임신을 시켜버리다니.

거기다 하필이면 마방도 없는 자그마한 도시에서 임신 사실을 알아챈 덕분에 다른 말을 구할 수도 없었다.

꼼짝없이 이놈 혼자서 끌고 다니는 마차를 타게 생겼다, 이 소리였다.

물론 이 녀석 혼자서 마차를 끌고 가는 데는 별문제가 없었다.

짐이 가득하고, 사람까지 열 명을 넘게 실은 수레도 이 녀석은 거뜬히 끌고 다녔으니까.

진짜 문제는 이 녀석 혼자만 마차를 끌고 다니는 건 너무 눈에 띈다는 거지.

대장군이 보내온 서찰에 따르면, 이미 황실 내 많은 이들이 공주의 칩거가 거짓이라는 사실이 공공연히 나돈다고 한다.

그 말인즉 정체불명의 집단이 곧 우리를 습격해 올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런 상황에서 노새 한 마리가 이끄는 마차는 너무 눈에 띄는 상황이었다.

결국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방도는 두 가지.

뒤로 돌아가 마방이 있는 도시에서 말을 사서 다시 북해로 향하거나, 아니면 계속해서 앞으로 나아가거나.

“유현.”

“네, 아가씨.”

마부석에 오르자, 뒤에 있던 작은 창에서 공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참고로 서로를 부르는 호칭은 북경에 있던 객잔에서 나오자마자 바꿨다.

정체를 들킬 수 있는 요소는 하나라도 남기지 않는다, 라는 그녀의 결정에 의해서였다.

“바로 출발해요.”

“알겠습니다.”

그녀의 선택은 당연히 후자였다.

뒤로 돌아간다는 선택지는 애초에 그녀의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역설적인 이야기지만, 우리 마차는 오히려 두 마리가 이끌 때보다 한 마리가 이끌 때 더욱 빨라졌다.

옆에 있던 말과 발을 맞추던 전번과 달리, 이번에는 녀석 혼자서 원하는 만큼 마음껏 달릴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시 찾아온 고독의 시간.

들킬 위협을 최소화하기 위해 뒤에 있는 공주와 대화를 나누는 건 정말 필요한 일이 아닌 한 금하고 있을뿐더러, 지금 그녀는 북해의 말을 익히고 있었기에 대화를 나눌 시간 따윈 없었다.

결국 나는 이 마부석에 홀로 앉아···

[그래서 대충 얼마쯤 남은 것 같냐?]

···화순과 이야기를 나눌 수밖에 없었다.

아마 우리가 온 만큼 또 가야겠지. 그래도 이젠 이 녀석 혼자 이끄니까 속도는 전보다 빠를 거야.

[그랬으면 좋겠네. 계속 바깥 광경만 보는 건 지루하거든.]

반복되는 풍경 말곤 볼 것 없는 이 여행이 화순은 영 불만족스러웠던 모양이다.

[심상 수련이라도 할 수 있으면 지루함이 좀 가실 텐데, 지금은 그것도 할 수 없고.]

어쩔 수 없잖아. 심상 수련 중엔 외부 상황에 반응이 늦으니까.

무수히 많은 장점이 있는 심상 수련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무결한 건 아니었다.

그중 가장 큰 단점이 바로 심상 내 싸움에 온 신경을 다하느라 외부의 공격에는 무력해지는 것이다.

[뭐, 그건 그렇지.]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화순이었기에 그 이상으로 불평하진 않았다.

다시 찾아온 침묵의 시간. 잠깐 옆의 풍경을 바라보고 있던 화순이 다시 내게 고개를 돌리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너 천마창법이랑 천마금나수는 각각 몇 성이었지?]

응? 잊어먹었어?

[근 일 년 넘게 무공을 성장시킬 기회가 거의 없었잖아. 부대에 있을 때도 평화 협상 이후론 무공을 못 얻었고, 전역한 뒤엔 그냥 다 평범한 비무였지, 제대로 된 싸움은 못 했으니까.]

그 정도는 싸움 취급도 못 쳐준다는 거냐···너도 참.

여기서 화순이 말하는 싸움이라는 건 정말로 서로를 죽이겠다는 일념을 담아 싸우는 걸 말했다.

뭐···화순의 말에 틀린 점은 없었다.

평화협상이 진행된 이후로 제대로 무공을 얻을 수 있을 만한 수준의 무인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전역 뒤엔 비무밖에 하지 못했으니까.

나 자신은 강해졌을지 몰라도, 무공만 놓고 따져보면 일 년 전과 다른 점이 없었다.

화순의 말에 나는 왼팔을 바라봤다. 다른 사람이 보면 아무것도 없는 사람 피부로밖에 보이지 않겠지만, 내 눈에는 달랐다.

[사용 가능 무공 :

천마창법 7성

-오의 : 와류(渦流) 개방

-극의 : 미개방

천마금나수 5성

-오의 : 불파(不破) 개방

-극의 : 미개방

강화 가능 무공 : 혈빙도법 2성, 한음장 1성.]

마치 문신처럼 내 팔 위에 붉은색으로 적힌 글자들.

내 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천마의 무공이었다.

[혈빙도법 저거 그때 그거지? 공주 왔을 때 얻었던 거.]

그래. 분명히···쿠···쿠 뭐시기랑 싸울 때 얻었던 무공이지.

잠깐 생각해봤지만 떠오르지 않는 북해 고수의 이름을 대충 뭉뚱그려 대답하자, 화순이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싸우는 꼴을 봤을 때 영 아니다 싶긴 했지만, 그래도 명색이 절정 고수인데 2성밖에 안 되는 거 보곤 엄청나게 놀랐다니까.]

그랬으니까 북해빙궁에서 쫓겨났겠지.

다른 북해의 절정 고수가 3성의 무공을 줬던 걸 생각하면, 절반 정도의 성취밖에 이루지 못했다는 소리다.

물론 여기서 우리 두 사람이 말하는 무공이 그 쿠···아니, 그냥 그놈이라고 부르자.

그놈의 무공 경지가 겨우 2성밖에 안 된다는 소리는 당연히 아니다.

아마 최소 7성 이상. 어쩌면 10성의 경지에 이르렀을지도 모르지.

내가 말하는 그놈의 무공은 ‘권능이 인정해주는 경지’를 말하는 거다.

[권능이 처음 만들어졌을 땐 무공이란 심기체(心氣體). 이 세 가지 모두를 단련하는 거였으니까.]

심. 그릇된 마음을 품지 않고 정갈한 마음으로.

기. 올바른 방도로 쌓은 내공을.

체. 제대로 단련한 육체로 사용한다.

그것이 권능이, 정확히는 권능이 만들어질 당시의 무공이었다.

···이 깐깐하기 그지없는 조건 때문에 지금껏 내가 쓰러뜨린 무공의 고수가 기백을 넘음에도 불구하고 천마창법과 천마금나수가 각각 7성과 5성에 머물러 있는 것이었다.

[기는 넘치면서 심과 체는 단련이 약하고, 불균형이 컸으니 절정임에도 불구하고 겨우 2성 무공밖에 못 얻은 거지.]

그놈의 평가를 한 마디로 일축한 화순.

확실히 딱 이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 느낌이었지.

무공은 이 정도 확인하면 됐고···.

오른손 하나만으로 잡고 있던 고삐를 이번엔 왼손으로 옮기고 오른손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엔 왼손과 마찬가지로 붉은 인주로 적힌 글자가 거기 적혀있었다.

[생사결 30회(60년) ? 달성.

절정 고수와의 생사결(30년) - 달성.

영약 흡수(30년) - 달성.]

이제는 자세한 내용도 없이 내가 얻은 내공만 달랑 적힌 달성 임무와.

[임무 조건 : 총 6명의 초절정의 고수와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일 것임무 보상 : 한 명당 10년 내공. 임무 달성 시 총 60년 내공 획득.]

얻은 지 이 년은 됐음에도 아직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임무가 거기에 있었다.

초절정고수.

절정 고수의 ‘숫자’가 문파의 실질적인 힘이라면, 초절정고수는 ‘존재’만으로도 문파의 이름을 높여준다.

정파 무림의 근간이라는 구파일방과 오대세가에서조차 초절정고수는 장문인이나 가주. 혹은 장로나 당주로 인정받는데, 하물며 중소문파에서야 말할 것이 무어가 있을까.

어느 중소문파에서 초절정고수가 나왔다, 라는 것만으로도 대표 자리를 꿰찰 수 있을 정도니 그 가치야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당장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북해만 해도 초절정고수가 주위 부족을 아우르는 대부족의 부족장이나, 북해빙궁의 네 장군 정도나 돼야 겨우 오를 수 있는 경지였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인간들은 자신이 소속된 곳이 무너져내릴 위험이 닥친 경우가 아니면, 절대로 싸움에 나서지 않았다.

그게 바로 내가 지금껏 이 임무를 하나도 해결하지 못한 이유였다.

[그래도 이번에 북해빙궁에 가면 네 장군이 너한테 싸움을 걸지도 모르잖아? 그걸로 임무 해결 한 번 해버려!]

···그리고 나는 평화협상 하러 와서 장군과 싸우는 또라이 되고. 응? 그림 참 좋겠다?

그것도 재밌잖아? 하고 낄낄 웃는 화순은 깔끔하게 무시한 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도대체 독고삭 그 인간은 어떻게 오 갑자나 되는 내공을 얻은 걸까?

그 많은 천마의 무공을 전부 5성까지 올리고, 심지어 하나는 10성까지 올려 극의를 얻은 걸 보면 대충 짐작이 가지만.

나도 언젠가는 그와 같은 경지에 이를 수 있을까.

[가능할걸. 아니, 더 높은 경지도 가능할 거야.]

진짜?

[당연하지.]

옆에서 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던 화순이 씩 웃더니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

[내가 옆에 있잖아. 독고삭에게는 없던 최고의 도우미가 말이야.]

···하, 그래, 맞는 말이네.

당당한 화순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래, 주먹구구식으로 익혀나갔던 독고삭도 그런 경지에 올랐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가 있겠냐.

네 말대로 더 높은 경지에 오를 수도.

두근!

화순의 말에 대답하려던 찰나, 갑자기 내 심장을 옥죄여오는 듯한 살기에 바로 고개를 들었다.

내가 고개를 들자 살기는 순식간에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해서 마음을 놓는 멍청한 실수는 하지 않았다.

명나라와 북해를 나누는 거대한 산을 넘어가는 길.

이곳만큼 그들이 우리를 덮치기 좋은 곳은 또 없었다.

“아가씨.”

“···네, 유현.”

여행하면서 처음으로 마차를 멈추지 않고 공주를 부르자, 그녀도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는 걸 알았는지 평상시보다 훨씬 천천히,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 습격이 올 겁니다. 대비하십시오.”

“·········.”

대답 대신 들려오는 미약한 심호흡 소리.

아무리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이겨내리라 마음먹었다 하더라도 그 순간이 닥치면 두려울 수밖에 없다.

지금 그녀의 대답이 늦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리라.

하지만 다른 이에 비하면 낫다.

“잘 부탁해요.”

그 어려움을 헤쳐나갈 유일한 방법이 무엇인지는 알고 있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대답을 꺼냄과 동시에.

“쳐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 옷을 뒤집어쓴 흑의인 십 수명이 마차를 덮쳤다.

< 호위(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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