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용봉대전(2) >
소림사의 일대제자이자, 후에 십팔나한 중 한자리를 맡을 거라는 평가를 받는 고설은 비무장 주변의 관객들을 바라보며 짧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게 무슨 짓인지 모르겠군···.’
평상시 소림사의 무승으로서 자신이 익힌 무공이 작게는 소림을, 크게는 정파무림을 지킬 수 있다는 자긍심을 가진 그에게 지금 이런 상황은 고되기만 했다.
마치 길거리의 약팔이 차력사와 다를 바 없는 꼴.
차라리 무인들의 수준이라도 높으면 모를까, 본선 수준의 강자들은 세 번의 비무에서 승리를 거두고 본선에 진출하기 위하여 다른 비무대에서 열심히 싸우고 있었다.
결국 지금 그가 맞닥뜨리는 상대라 해봐야 이류나 겨우 될법한 하수들이란 소리다.
그런 상황이니 안 그래도 없는 의욕은 더욱 떨어지고 있었다.
물론 지금 이 행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잘 알고 있다.
수많은 인파가 몰린 곳에서 소림사의 강함을 보여줌으로써, 태산북두 소림사의 이름이 아직 굳건함을 알리는 한편, 많은 정파 무림인을 안도시키기 위한 일이라는 걸 그는 누구보다도 잘 이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쿵!
진각을 밟으며 쫙 펴진 오른팔을 곧게 뻗자, 회피도, 방어도 하지 못하고 날아가는 무인.
좀 더.
파바박!
손가락을 마치 용의 발톱(龍爪)처럼 세워, 눈앞으로 들이밀자 바로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는 무인.
좀 더!
퍽!
허점이 가득한 명치를 발끝으로 찌르자, 바로 무릎을 꿇고 패배했다고 소리치는 무인.
좀 더 강한 자와 싸우고 싶다!
불자에겐 어울리지 않지만, 무림인이라면 자연스레 일어날 수밖에 없는 호승심.
조금 전 올라온 네 번째 무인까지 힘들이지 않고 간단하게 쓰러뜨리며 끓어 넘치기 직전까지 올라온 그 감정은.
“비무를 요청하는 바이오.”
눈앞의 상대를 보자 스스로 버티지 못할 정도로 크게 폭발했다.
강하다.
왜 이런 생각을 했지?
고설은 자기 자신에게 되물었다.
내공이 높은가? 아니다, 밋밋한 태양혈을 보아 내공은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외공이 뛰어난가? 제대로 단련된 근육이지만, 외공을 익혔다고 보기엔 많이 모자라다.
아니면 독이나 암기라도 숨기고 있는가? 독이나 암기를 다룰 때 필수적인 피독수(避毒手)도 없거니와, 창을 들고 있는 거로 보아 그런 건 아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고설은 입술을 꽉 물며 가슴을 손으로 부여잡았다.
어찌하여, 이토록 가슴이 뛰는가.
마치 자신에게 어울리는 호적수를 만난듯한 기분.
그런 기분이 드는 이유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지만, 찾는 방법은 알고 있었다.
포권을 취한 유현에게 고설도 똑같은 모습으로 대답했다.
“비무를 받아들이겠습니다.”
몸으로 부딪쳐 보면 안다.
가장 단순한 방법이자, 가장 확실한 방법.
고설의 대답을 들은 유현은 예상했던 대답을 들은 듯 기분 좋은 웃음을 그렸다.
두 사람에게서 흐르는 심상치 않은 기류에 4번의 대결이 진행되는 내내 밑에서 구경만 하고 있던 심판까지 올라오고야 말았다.
“헉, 헉. 휴우. 두 사람 모두 준비됐습니까?”
급하게 비무대 위로 올라오느라 가쁜 숨을 허덕이는 심판의 질문에도 두 사람은 입 한 번 뻥긋하지 않았다.
대답도 필요 없다.
무인에게 싸울 준비는 항상 되어있는 것이 당연했으니까.
그것을 머리론 알지 못해도 느낄 수 있었던 심판은 최대한 바깥 부분으로 물러선 다음, 지금까지 참았던 목청을 해제하기라도 하듯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그럼 지금부터 소림사의 고설과 유가장의 유현의 비무를!”
그리고 그와 동시에.
“시작하겠소이다!”
쿵!
심판의 말이 끝난 그 순간, 두 사람이 사라졌다.
두 사람이 있던 흔적이라곤 딱 하나, 무언가 폭발하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이 있던 자리에 부서진 나무 조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다시 두 사람이 나타난 건 비무대의 정중앙!
서로를 한순간도 놓친 적 없던 두 사람은 각자가 준비한 무기를 크게 휘둘렀다.
이십 년 넘게 단련한 주먹과 묵철로 이루어진 창.
콰앙!
주먹과 창의 만남이 이런 소리를 내다니!
주위의 관객은 그 모습에 경악에 찬 얼굴로 비무대 중앙을 바라봤지만, 싸우고 있는 두 사람은 오히려 그것이 당연한 마냥 계속해서 무기를 뻗었다.
몸을 베어버릴 기세로 우상에서 좌하로 휘두르다가, 막힌다.
검지와 중지를 세운 금강지(金剛指)로 명치를 찌르다가, 막힌다.
창 뒷부분으로 머리를 후려치려다가, 막힌다.
발뒤꿈치로 무릎을 내려찍으려다가, 막힌다.
공격하면 막고, 막으면 뒤이어 공격하며, 그러면 다시 막고, 또 공격한다.
일진일퇴, 서로 한 치의 물러섬 없는 공방전.
두 사람의 비무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던 관객들은 환호도 지르지 못하고 그저 입만 벌린 채 비무를 바라봤다.
그들이 지금껏 봐왔던 ‘무공 시연’과 달리, 이것은 진짜 비무.
그 차이를 체감한 관객들은 입을 꾹 다문 채 두 사람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봤다.
그들 중 무공이 낮은 자는 두 사람의 모습도 보기 힘들었고, 그나마 무공을 배웠다 할 수 있는 자들도 두 사람의 몸만 보일 뿐, 얼굴이나 무기는 보이지도 않았다.
그리고 모인 이들 중 최고수.
두 사람의 싸움을 제대로 관측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일류들은 한시라도 눈을 떼고 싶지 않다는 심정으로 두 사람의 싸움을 가만히 지켜봤다.
하지만 그런 그들도 알 수 없는 것이 있었다.
누가 우세하고, 누가 열세한가.
이런 싸움에서 우열을 나눔이 어리석다는 건 그들 자신도 느끼고 있었으나, 어쩔 수 없었다.
본래 비무라는 건, 싸움이란 건 승자와 패자가 나뉠 수밖에 없는 일이니.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건 이미 반파된 비무대 위에 있는 두 사람.
고설과 유현이었다.
머리 위에서 떨어지는 창대를 옆으로 피한 고설은 장저(掌低; 손바닥 밑 두툼한 부분.)로 유현의 턱을 노리며 생각했다.
‘곧 싸움의 끝이 찾아온다!’
마음 같아선 이 싸움을 영원히 이어나가고 싶었지만, 그것이 불가능함은 알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끝이 찾아올 싸움이라면, 가능한 그 승자는.
‘내가 되고 싶다!’
불자로서 품어선 안 될 욕심을 오늘 두 번이나 품었지만, 고설은 그걸 후회하지 않았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후회할 겨를도 없었다.
마치 거울에 자신의 모습이 비치듯, 유현의 생각 역시 자신과 마찬가지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후회란 불순물.
필요한 것은 오직 승리를 향한 집념밖에 없다.
일촉즉발의 상황.
승부의 갈림길에 선 두 사람.
그 시발점은 고설이었다.
팡!
손등으로 창대와 창날의 연결 부분을 후려친 고설은.
쾅!
그대로 강한 진각을 밟았다.
진각의 위력은 곧 무공의 위력.
그리고 지금 그가 밟은 진각의 위력은.
“흐읍!”
그걸 행한 자신조차 놀랄 정도로 사상 최강!
양 손바닥을 자신의 가슴께까지 올린 고설은 조금 전 자신의 방어로 인해 흐트러진 유현의 자세를 보고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지금 이때 가장 알맞은 공격은 딱 하나.
자신이 아는 장법 중 가장 강맹하며, 위력적인 장법.
복호장(伏虎掌).
호랑이조차 굴복시킨다는 일격이 고설의 손에서 발해졌다.
공간을 밀어내는 걸 넘어, 마치 산산조각내듯 유현의 신체로 향하는 장법!
그 순간 고설은 느꼈다.
자신의 손바닥 옆에서 흐르는 한줄기의 바람을.
아주 미약한 산들바람.
평상시라면 바람이 불었나?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할 만큼 미약한 바람이었는데, 어찌하여 그것을 알아챈 것일까?
그 순간, 깨달았다.
딱 반 치. 아니, 그 반의반보다도 작은 차이.
그 미약한 차이가 유현과 이어진 직선의 공격로를 살짝 뒤틀었으며.
그것이 곧.
‘아아아···.’
자신이 곧 맛보게 될 패배의 발로임을.
푹!
“크윽!”
창날이 어깻죽지를 크게 할퀴고 지나가자, 고설은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흘렸다.
마치 날카로운 칼바람이 어깨를 관통한듯한 통증.
그제야 자신의 옆에 잠깐 불었던 바람이 우연이 아닌, 유현이 불어온 것임을 알았다.
‘완벽한···.’
여전히 자신을 향해 창을 겨누고 있었지만, 그가 더 싸울 생각이 없다는 건 느껴졌다.
‘···패배로군.’
이미 유현이 승자임을 두 사람 다 알고 있었으니까.
“소림사의 고설이.”
욱신거리는 어깨의 통증에도 고설은 느리게나마 포권을 취했다.
원하던 싸움을 할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한 감사이자, 자신에게서 승리를 얻어낸 고수를 위한 최소한의 예의였다.
“패배를 인정하오.”
“좋은 대결, 감사합니다.”
비무 전 먼저 포권을 취한 것은 유현이었으나, 비무 후 먼저 포권을 취한 것은 고설이었다.
이 비무대의 주인이 더 이상 고설이 아님을 보여준 것이다.
피가 흐르는 오른쪽 어깨를 왼손으로 감싸 쥔 채 고설은 천천히 비무대를 내려갔다.
관객들의 시선이 그에게로 집중했지만, 고설은 아무런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저 후련한 듯,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천천히 비무대에서 멀어졌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
“무명의 무인이 소림사의 무승을 이겼다!”
“50년 만의 쾌거다!”
수많은 사람이 무림맹이 떠나가라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물론 딱 하나.
“신성의 등장이다!!!”
용봉대전에 불어올 새로운 바람에 대한 기쁨이었다.
*****
모두가 유현의 승리에 환호하고 있을 무렵, 비무대에서 멀리 떨어진 어느 전각.
뾰족한 꼭대기 위에 있는 한 노승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미소짓고 있었다.
‘저놈이다!’
그가 있는 곳부터 비무대까지는 300장(丈; 1장은 약 3m) 이상 떨어져 있었지만, 그에게는 유현의 모습이 마치 바로 앞에 있는 듯 선명했다.
정파 무림을 넘어 중원 전체에서도 그와 맞붙을 상대가 없다는 절대 고수. 신승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기예였다.
지금 그가 기뻐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정파 무림을 수호할 새로운 후기지수의 등장?
아니면 지금 비무대에서 내려간 사손뻘 무승. 소림사의 기대를 한몸에 받고 있는 고설에게 찾아올 깨달음과 그에 따른 성장?
물론 둘 다 신승에겐 바라 마지않는 것이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기뻐하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그때 그놈이야!’
자신이 조심스레(신승 본인이 생각하기엔) 흘려보낸 내공을 맞받아치는 건 물론, 거기에 투기까지 뿜어낸 당돌한 후기지수.
얼마 안 되는 인맥으로 찾아보려다가, 결국 포기해버렸던 그가 저기 비무대 위에 당당히 서 있는 사내라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흐흐, 지금까지 어디 숨어 있었는진 몰라도, 이젠 어림도 없다.’
번쩍!
주름 사이에 숨겨져 있던 그의 눈이 마치 사냥감을 노리는 맹수의 그것처럼 날카로운 안광을 뿜어냈다.
‘전 중원의 안녕과 흐트러진 천기를 바로잡기 위해 네가 힘을 좀 써줘야겠다.’
자신의 말을 듣고 감격할 유현의 표정을 상상하는 신승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가질 않았다.
*****
나와 고설의 비무 때문에 반파된 비무대 위에서 심판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반 시진이 흐르는 동안 도전자가 나오지 않았으므로, 유현 소협은 본선으로 올라갈 자격을 얻게 되었소이다.”
그렇게 주변의 관객들에게 선언한 그의 손에는 모래가 전부 떨어진 사루계(沙漏計; 모래시계)가 있었다.
누고도 그의 말에 반박하지 않자, 그제야 심판은 내게 가까이 다가와 말했다.
“축하하오, 유 소협. 가문과 성함을 다시 한번 말씀해주시겠소?”
“섬서 유가장의 유현이오.”
“···좋아, 이제 기록되었소. 혹시 숙소가 무림맹 외부에 있소이까?”
“아니, 무림맹 내부에 있소.”
“그럼 새로 숙소를 배분할 필요는 없겠구려.”
그는 귀찮은 일 하나를 덜었다는 듯,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본선 진출자는 새로이 무림맹 내 숙소에 자리를 잡아줘야 하는데, 그것이 꽤 귀찮은 일이라서 말이오.”
“그거 다행이로군.”
그러게나 말이오.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본선 진출 축하하오. 내 평생 소림사의 무승을 이겨서 본선에 오르는 사람은 볼 일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는 자신이 이 대결의 심판을 맡았다는 걸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좋은 비무를 보여줘서 고맙소.”
“별말씀을.”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나는 비무대 아래로 내려왔다.
비무가 끝난 지 반 시진이 넘게 지났음에도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인파는 내가 내려오자 마치 갈라지듯 좌우로 흩어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사람의 길 사이에는 나와 일행인 화산파의 도사 세 사람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대단한 비무였습니다!”
화산파 제자 중 한 명이 눈을 반짝이며 말하자, 옆에 있던 다른 화산파 제자들도 맞아, 정말로, 하고 고개를 끄덕이며 서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대단한 비무라···전혀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완벽히 맞는 말은 또 아니다.
고설이란 무승도 강하긴 했지만, 도인현과 비교하면 어느 정도 손색이 있었다.
아무리 소림사와 화산파가 어느 정도 수준 차가 있다곤 하지만, 그래도 내가 이름도 들어보지 못한 무승과 제일의 기재가 가지는 차이는 컸으니까.
상황 면에서도 그렇다.
처음부터 창을 들고 싸우러 나온 이번과는 달리, 저번에는 적수공권으로 싸웠으니까.
물론 도인현과 싸움에선 불파를 쓰긴 했지만, 공격보다 방어에 치중된 불파론 공격 기회를 잡기도 힘들었다.
오히려 지금 싸움은 그럴 걱정도 없이 마음껏 공격할 수 있었으니, 오히려 편한 건 이쪽이었다.
대신 이번엔 오의는 전혀 쓰지 않았지만, 오의가 없는 천마창법이라도 다른 무공을 압도하는 위력이 있었다.
그건 그렇고.
[이 정도면 신승도 알아차렸겠지?]
그랬으면 좋겠다만···.
화순의 말에 나는 아까 비무대에서처럼 주변을 다시 한번 훑어봤다.
주변 인파 중에선 신승과 비슷한 신색을 한 사람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아주 먼 거리에서 보고 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으니, 그가 보지 않았다고 확신할 순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일부러 신승과 같은 소림사의 무승과 싸워서 이겼으니 눈에 띄긴 했겠지.]
일부러 소림사의 무승과 싸웠던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신승의 사문도 소림사이니, 같은 소림사의 무승과 싸워 이기면 그의 눈에 띄지 않을까, 싶어서다.
그와 심상 속에서 겨루고 난 후 열흘이 넘는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는 단 한 번도 내게 다시 접촉하지 않았다.
혹시 내가 그의 시험에서 떨어진 것인가? 싶었지만, 그것은 아니라 생각했다.
그 압도적인 기운 앞에서 투기를 뿜어냈다는 건 그래도 보통 일은 아닐 테니까.
그렇다면 왜 그는 내 앞에 나타나지 않은 것일까.
거기서 나는 한 가지 가정을 세웠다.
그가 나를 못 알아본 것이 아닐까, 하고.
물론 내가 시험에서 탈락했다는 것이 더 신빙성이 있을 만큼 말도 안 되는 가정이지만, 그래도 나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소림사 무승과 비무를 겨뤘고, 당당히 승리했다.
만약 내가 시험에 통과했음에도 찾아오지 못한 거라면 그가 날 알아차리길.
혹시나, 만약에라도 내가 그가 내린 시험에 떨어졌다면, 이번 싸움으로 부디 다시 한번 기회를 얻기를.
그리 바라면서 말이다.
···본선에 진출하게 된 건 상정 외이지만 말이다.
설마 내가 소림사 무승과 싸워서 이겼다고 지레 겁먹고 싸우려고 하지도 않을 줄이야.
어느 정도 실력이 있으면 고설과의 싸움에서 입은 내상 때문에 버티기 힘들다, 하고 기권한 뒤 조용히 신승의 연락을 기다릴 생각이었는데 말이지.
이걸 운이 좋다고 봐야 하는 거야, 아니면 나쁘다고 봐야 하는 거야?
[뭐 어때. 오히려 잘 된 걸지도 모르잖아?]
마치 아기새처럼 내 옆에서 조잘조잘 떠드는 화산파 제자들을 구경하고 있던 화순이 내게 날아와 말했다.
너 어제랑 이야기가 다르다? 여기 온 목적에 충실하라 했잖아.
[어차피 용봉대전에 진출하지 않고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수단은 전부 써봤으니까. 이제 남은 유일한 방법을 써보겠다고 하는데 그걸 말릴 이유는 없잖아?]
그가 공중에서 반 바퀴 돌아 뒤집힌 상태로 내 눈을 바라보며 말했다.
[그리고 어제도 말했지만, 난 네가 많이 싸우는 방식이라면 뭐라도 좋아. 특히 지금처럼 다른 수단이 없을 땐 더더욱.]
···결국 너도 내가 싸우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이거잖아.
말투는 그리 좋지 않지만, 나도 사양만 할 일은 아니었다.
천마창법과 천마금나수는 오의를 알아보는 사람이 거의 없을 정도로 쓰던 천마가 없다는 건 화순에게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가능한 내 진짜 무력은 숨길 생각이었다.
용봉대전이라는 사건으로 자신의 비리를 덮어놓긴 했지만, 지금 그 놈들이 가장 찾고 싶어하는 인물은 나일테니까.
지금은 알려지지 않은 기술이라지만, 내가 계속해서 오의 사용하다보면 언젠간 위선타파가 사용하는 기술이라고 다른 이들에게 알려질 수 있는 법.
그들이 나를 한 사람으로 특정지을 수 없도록 하기 위해선 최소한 무림맹의 영역 내에선 내 흔적을 남기지 않는 방식으로 싸워야했다.
오의를 사용하지 않는 전투법을 완벽하게 익히기에 용봉대전만큼 어울리는 곳은 없었으니까.
···뭐, 말만 이렇게 번지르르하게 하는 거지, 본심은 회귀 전엔 다가갈 수도 없었던 정파의 고수들을 쓰러뜨린다, 라는 게 기분 좋을 뿐이지만.
하지만 뭐 어떤가.
이미 정보를 얻을 수단은 다 써봤고, 남은 건 내 신호를 받은 신승이 찾아오길 기다리는 것뿐이니까.
그동안 조금 더 싸운다고 뭐라 할 사람은 없겠지.
서로 재잘재잘 떠드는 화산파 제자들 뒤에서 눈을 반짝이며 조용히 읊조렸다.
"언제든 찾아오시오, 신승. 기다리고 있을 테니."
< 용봉대전(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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