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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37화 (37/185)

< 용봉대전(1) >

어제 얻은 정보의 정리가 끝난 건 이른 저녁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조금 일찍 저녁을 때울까, 하고 고민하던 그때.

“깨어 있으십니까?”

“아, 도 소협, 남궁 소협. 어서 오십시오.”

두 사람을 필두로 여섯 명의 남녀가 내 방으로 들어왔다.

도인현을 포함한 화산파 일원 네 사람과 남궁 남매였다.

“몸은 좀 괜찮으십니까?”

“네, 걱정해주신 덕분에 많이 좋아졌습니다.”

도인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자, 난처하다는 표정의 남궁무진이 말을 이었다.

“그리 술에 약하신 줄 알았다면 조금 천천히 권해드렸을 텐데, 미리 파악하지 못한 제 잘못입니다. 죄송합니다.”

남궁무진의 사죄에 나는 남들 모르게 콧바람을 뿜었다.

한때의 섬서 제일의 술꾼이자, 국경부대에 있을 땐 매일 말술을 들이켰던 내가 술에 취해 쓰러졌을 리 있나.

자존심은 상했지만, 그걸 입 밖으로 꺼내진 않았다.

“아뇨, 너무 오랜만에 마셔서 제 주량을 파악 못 한 제 잘못이죠.”

신승에게 공격을 당해서 쓰러졌습니다, 라고 하는 것보단 내가 술이 약해서 쓰러졌다는 게 좀 더 말이 됐으니까.

“그럼 오늘 식사는 가능한 술을 자제토록 하지요. 남궁 소협도 어제 술을 말술로 들이켜지 않았습니까?”

“아, 저는 괜찮···.”

“네, 그게 좋겠어요. 이제 용봉대전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계속 술에 취해서 살 순 없잖아요?”

“뭣?! 아니, 그게 무슨···.”

“괜찮죠? 오라버니?”

대답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강요하는 남궁명화의 말에 불퉁하게 인상을 쓰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는 남궁무진.

이야, 이 아가씨가 저 인간을 이길 때도 있네.

역시 용봉대전이 보통 일은 아니구나.

“쳇, 어쩔 수 없지. 오늘은 술은 안 팔아도 음식이 맛있는 객잔으로 갑시다.”

“허어, 그 입맛 까다로운 남궁 소협께서 맛있다고 자신하는 곳이라니, 무척 기대됩니다.”

어차피 술은 입에도 안 대는 도인현은 그의 말을 기쁘게 받아들였지만, 뒤에 있는 사제들은 전혀 다른 표정이었다.

하긴, 속가제자 세 사람은 여기 오는 동안에도 도인현의 눈치가 보여서 술을 입에도 못 댔으니까.

그 회포를 이번 식사에서 풀 생각이었던 모양인데, 그것도 불가능하게 되었으니 저럴 만도 하지.

마음 같아선 내가 나서서 한 잔 주고 싶었지만, 사실 술을 금지당한 것도 내 잘못이나 마찬가지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용봉대전 끝나면 한 잔 사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라.

남궁무진이 우리를 데리고 간 식당은 그가 자신 있게 공언할 만큼 좋은 식당이었다.

건물 자체도 고급스러움이 물씬 풍겨오고, 층수도 5층이나 돼서 자리가 부족할 일도 없었다.

다만 한층 올라갈 때마다 자릿값이 추가됨은 물론, 음식값도 점점 높아지는 단점이 있었지만.

“어제 두 분이 제 생떼를 들어주셨으니, 이번 식사는 제가 대접해 드리죠.”

그것도 남이 사준다면 오히려 단점이 아니라 장점이 되었다.

“설마 이게 그 한턱은 아니겠죠?”

“하하하! 저도 양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제가 먼저 내겠다고 나선 걸 어찌 한턱으로 취급하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고 마음껏 드시지요.”

조금 쪼잔하다 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건 확실한 게 좋았다.

나중에 가서 이미 값을 치렀는데 왜 그러느냐, 말을 듣는 것보단 잠깐 얼굴 팔리는 게 더 낫다.

제일 높은 층인 5층은 북적거리는 아래와 달리 자리가 텅텅 비어 있었고, 군데군데 채워진 자리에도 모두 좋은 신색을 한 이들밖에 없었다.

자리에 앉자마자 나도 들어본 적 없던 이름의 음식을 여러 개 주문한 남궁무진이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래서, 어제의 회합은 즐거우셨습니까?”

“네, 앞으로 함께 정파 무림을 이끌어갈 동도들을 만날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도인현은 웃으며 어디 예법 책에서나 나올 법한 말투로 대답했다.

이야, 어떻게 이렇게 미리 준비라도 한 것처럼 모범 답안을 말할 수 있지.

이것도 재능이라면 재능인가?

나만 그리 생각한 건 아닌지, 도인현을 제외한 다섯 사람도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예상했던 것보다 더한 그의 반응에 남궁무진은 헛기침하더니 나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흠, 그러셨군요. ···유 소협은 어떠셨습니까? 너무 관심이 쏠려서 피곤하셨을 텐데요.”

“아뇨, 저도 좋았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었고···얻은 것도 적지 않았으니까요.”

미래에 이름은 크게 알려지진 않지만, 그래도 각 문파의 핵심 인물이다.

여기서 친해진 인맥은 어쩌다가 한 번이라도 쓰이긴 하겠지.

그것도 없었으면 이미 판 엎었어, 이 사람아.

내 눈빛에 담긴 뜻을 읽어낸 남궁무진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두 분 다 즐거우셨다니 다행이군요. 그러시다니 이 남궁모의 마음도 좀 놓입니다.”

이후 식사가 나올 때까지 우리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 세 사람은 어제 이미 할 이야기를 다 꺼냈던 터라, 주로 대화를 이끌어가는 건 다른 네 사람이었다.

식사가 나온 후에도 이야기의 흐름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유 소협은 이번 용봉대전에 나가지 않으십니까?”

화산파 제자 중 한 사람의 이 질문만 없었더라도 말이다.

“유 소협도 무공을 익히셨습니까?”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나를 향해 묻는 남궁무진.

당연한 반응이다. 나는 겉으로 무공을 익힌 티도 안 나고, 더군다나 태양혈까지 밋밋해서 내공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았으니까.

“아, 네. 딱히 대단한 수준은 아니고, 그저 간단한 가전 무공만···.”

“무슨 말씀입니까! 저희 대사형과 막상막하로 싸우는 그 모습! 유 소협이라면 우승도 꿈같은 이야기만은 아닐 겁니다.”

열정적인 그의 목소리에 좌우에 있던 다른 화산의 제자들도 응응, 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옆에서 아쉬움이 담긴 쓴웃음을 지으며 나를 바라보는 도인현과.

“·········.”

저 찢어질 수 없을 만큼 눈을 크게 뜨며 나를 바라보는 남궁무진.

조금 전 내가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에 놀란 것이 ‘의외’라면, 이번 감정은 ‘경악’.

내가 자신의 유일한 적수라 생각하고 있던 도인현과 막상막하라는 사실에 더없이 놀란 모습이었다.

···사실 막상막하가 아니라 완전히 압도했다는 걸 말하면 기절이라도 하겠네.

물론 그걸 밝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군에 있을 때 배운 잔재주 덕에 그리 보인 겁니다. 정직하게 공격하는 도 소협에게 그것이 잘 먹힌 것뿐이지요.”

내 말에 그제야 남궁무진도 조금은 수긍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거라면···확실히 가능성 있군요. 도 소협의 무공은 더할 나위 없으나, 임기응변에는 조금 약한 감이 있으니까요.”

“그렇지요. 그게 아니었더라면 저야 십초지적도 되지 않았을 겁니다.”

그 말에 인상이 밝아진 남궁무진과는 반대로, 도인현의 표정은 어두워졌다.

정말 그런가? 그런 가봐?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사제들과 달리, 나를 직접 맞상대한 도인현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어제 일도 있고 하니, 내가 밝히길 원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입을 열지 않을 뿐.

“유 소협께선 이번 용봉대전에 출전하지 않으실 생각인가 보군요.”

“네, 한낱 장사꾼인 제가 무림인의 축제에 끼어들 부분은 없을 테니까요.”

내 말에 진심으로 아쉽다는 표정을 짓는 도인현.

저런 표정을 짓는 걸 보니, 나와 용봉대전의 비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붙어보고 싶었나 보다.

그의 심정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유가장에서의 대결 때 서로 최후의 일격을 날리려는 순간, 갑자기 나타난 총관 때문에 흐지부지 넘어가고 말았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겐 용봉대전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열심히 운영하던 표국도 기정이한테 맡겨놓고 와야 할 정도로 중요한 일이.

용봉대전에 출전해서 정보를 입수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모를까, 지금은 언제 찾아올지 모를 신승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 대신이라 말하긴 뭐하지만, 두 분 응원만큼은 남부럽지 않게 해드리죠.”

“하하하! 좋습니다. 유 소협의 응원,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우렁찬 남궁무진의 웃음소리와 함께 식사가 끝났다.

술이 있었다면 조금 더 이야기가 길어질 수 있었지만, 자기 오라비가 술을 주문하려는 낌새를 보이기만 해도 바로 그를 막아선 남궁명화 덕분에 술은 입에도 댈 수 없었다.

아쉬움 가득한 얼굴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남궁무진과 그런 오라비를 질질 끌고 들어가라며 손을 흔드는 남궁명화를 배웅한 후, 숙소로 돌아가는 길.

“아쉽군요.”

남궁 남매와 함께 앉아서 밥을 먹었다는 사실에 흥분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사제들 뒤에서 도인현이 입을 열었다.

“네?”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아주 자그마한 깨달음이었지만, 어느 정도 성취가 있었죠.”

“그렇습니까? 축하드립니다.”

“모두 유 소협 덕분입니다.”

꾸욱.

그가 양손을 꽉 쥐었다.

“이렇게 얻은 성취를 유 소협한테 직접 선보이고 싶었는데, 그건 힘들 듯하군요.”

안 그래도 우승이 예정된 사람이 깨달음까지 얻었다고?

그를 상대할 사람들이 불쌍하게 됐네.

[다 네 덕분이라고. 가슴을 당당하게 펴고 자랑해!]

···헛소리하지마, 이 자식아.

“그런 경지에서 깨달음까지 얻으셨다니, 분명 좋은 소식이 있으실 겁니다.”

“···네, 응원 감사합니다.”

내 말에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 그는 앞으로 향해 자신의 사제들과 발걸음을 맞췄다.

괜히 찝찝하네. 뭔가 내가 잘못한 것 같잖아. 그냥 용봉대전 한 번 나가 볼까?

옆에서 내 말을 듣고 있던 화순은 흥!하고 코웃음을 내뱉더니 팔짝을 낀 채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거 좋지. 아주 그냥 하던 일 싹 다 멈추고 우승까지 노려보지 그러냐?]

···거, 참. 아주 제대로 비꼬네.

[내 말은 일의 경중을 파악하라는 거야. 나야 네가 싸운다고 하면 당연히 좋지. 하지만 네가 무림맹에 찾아온 이유는 그게 아니잖아.]

쳇, 화순 이 녀석이 오늘따라 왜 이렇게 정론만 말하냐.

화순이 한번 나가보라고 말하면 어쩔 수 없네, 하고 말하면서 나가려는 속셈을 파악했나?

사실 용봉대전에 나가고 싶은 마음이 아주 없는 건 아니었다.

회귀 전엔 가까이 가기는 커녕 시선조차 닿지 못했던 정파의 고수들.

그런 고수들을 상대하며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 내가 얼마나 강해졌는지를 확인해볼 수 있는 건 전장에서의 혈투와는 또 다른 의미로 나를 성장시켜줬으니까.

때문에 이렇게 용봉대전에 미련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차라리 무림맹에 정보를 얻으러 온 게 아니라, 당당히 용봉대전에 참여하러 왔다면 얼마나 좋을까.

아쉬움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역시 나와 마찬가지로 아쉬움이 가득한 발걸음으로 앞서 나가는 도인현의 뒤를 따랐다.

*****

그리고 그 대화를 나눈지도 열흘이란 시간이 흘렀다.

하지만 그 사이에도 여전히 신승에게서 연락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나대로 무림맹에서 어떻게든 정보를 얻어보려 했지만, 그것도 쉽진 않았다.

자주 마주칠 수 있는 시녀나 서기, 문지기들은 내가 만족할만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았고, 그나마 그 정도 정보를 가지고 있을 법한 후기지수는 만나면 거의 술에 취해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도 힘들었다.

그나마 몇 가지 입수는 했지만, 대부분 이번 용봉대전의 개최자와는 크게 상관 없는 문파간의 이야기 뿐.

나쁜 정보는 아니지만, 지금 내게 도움이 될 정보는 없었다.

결국 쓸만한 정보를 얻지도 못한 채, 용봉대전의 예선 첫날이 찾아왔다.

“유 소협! 이쪽입니다, 이쪽!”

“떨어지면 다시 못 찾을지도 몰라요! 어서 오세요!”

수많은 인파가 몰려 있는 상황에서도 화산파 제자들의 목소리는 똑똑히 들려왔다.

귀에 쏙쏙 들어오는 흥분한 목소리라 그런 걸까, 아니면 까딱 잘못했다간 이 녀석들을 미아로 만들어 버릴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일까.

어느 쪽이진 모르겠지만, 덕분에 이만한 인파 속에서도 저 녀석들을 잃어버릴 일은 없어서 다행이네.

···원래라면 내가 아니라, 도인현이 할 일이었지만 지금은 내가 감당하고 있었다.

“이야, 이렇게나 많은 인파가 몰리다니. 용봉대전이라는 것이 이제야 좀 실감이 가네.”

“그러게 말이야. 칠주야 간 무림맹 안에만 있느라 진짜 용봉대전이 열리는 게 맞는지 긴가민가했는데 말이지.”

“누가 아니래? 하하하!”

남궁 남매와의 식사 이후, 용봉대전이 가까워질수록 하북성에는 점점 많은 인파가 모였다.

처음에는 여러 문파와 교류할 수 있다고 좋아했지만 그것도 잠시.

화산파의 이름에 빌붙으려는 문파가 하나둘 나타났고, 그로 인해 좋지 않은 소문이 퍼질 것을 우려한 도인현은 결국 특단의 조치를 취했다.

바로 식사 시간을 제외한 남은 시간을 숙소와 수련장에만 있도록 한 것이다.

물론 그런 결정에 불만이 많은 세 사람이었지만, 어쩌겠는가.

대사형이 제일 앞장서서 그것을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는데.

하다못해 그를 부르는 사람이라도 없으면 모를까, 지금 무림맹 내에서도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니, 유력한 우승 후보니 하는 명성 때문에 그를 모시고자 하는 사람들이 물밀 듯 몰려오는 상황에서도 그것을 전부 만류하고 자리를 지키는데 어느 간 큰 제자가 그걸 어기고 밖을 싸돌아다니겠나.

그 때문에 일행 중 유일하게 밖을 다닐 수 있었던 나는 식사 때마다 세 사람의 부담되는 눈빛을 모두 감당해야 했다.

그냥 나도 같이 근신할까, 하고 잠깐 고민할 정도로 무시무시한 안광이었다.

“대사형도 우리랑 같이 보셨으면 좋았을 텐데, 아쉽네요.”

“어쩔 수 없지. 대사형은 지금 본선 예정자들과 모임을 하고 있으시니까.”

그들의 말대로 지금 이 자리엔 도인현은 없었다.

본선 예정자···정확히 말하자면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문파의 대표 같은 유수 가문의 자제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느라 바쁘다는 게 맞는 말이겠지.

“대사형도 우리랑 같이 다니셨다면 좋았을 텐데.”

도인현을 특히 잘 따르던 여도사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른 두 명도 말만 꺼내지 않았을 뿐, 표정을 보아하니 똑같은 심정인 듯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우리와 함께할 수 없었다.

“도 소협이 정말 우승을 원한다면 우리랑 같이 다니는 것보단 본선 예정자들과 함께 있는 게 좋을 테니까. 그가 우승하길 바란다면 그냥 참도록 해라.”

“네···.”

아쉬움 가득한 목소리로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세 사람.

지금 도인현은 자신이 상대하게 될 후기지수들을 관찰하면서 그들에 대한 대처법을 구상하고 있겠지.

확실한 건 지금 그에게 예선전을 구경하고 있는 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강북 몽가장의 차남, 몽억이오! 누가 내 상대가 되겠소!”

나무로 이루어진 비무장 위에 있던 사내가 큰 목소리로 외치자, 아래에 있던 사람 중 하나가 그 위로 올라 소리쳤다.

“나는 호남 섬미파의 제자, 홍성이라 하오! 내가 그대의 상대가 되겠소!”

와아아! 그러자 주위의 관객들이 크게 환호하기 시작했다.

그런 광경은 지금 이곳에서만 벌어지고 있는 게 아니었다.

여기와 똑같이 나무로 만들어진 아홉 개의 비무장 위에서 누군가가 열심히 비무를 치르고 있었다.

용봉대전의 예선전 방식은 간단했다.

누군가가 비무대에 올라 자신의 사문과 이름을 외치면, 아래에 있던 사람이 올라와 똑같이 사문과 이름을 말하고 겨룬다.

그렇게 승패가 나뉘면, 승자는 비무대를 지키고, 패자는 비무대를 내려간다.

그렇게 한 사람이 총 세 번 연속으로 비무에서 승리하면 본선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런 방식을 쓰지 않고 그냥 지금 본선 비무처럼 한 사람씩 싸워 승자가 올라가는 방식을 채택했지만, 용봉대전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출전하려는 무림인의 수도 많아짐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리 바뀌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렇게 예선전을 치르는 건 오직 무림에 널리고 널린 중소문파 뿐.

무림맹의 근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구파일방과 오대세가. 그리고 중소문파 중에서도 50년에 한 번씩 대표로 선정되는 다섯 문파의 경우에는 한 사람씩 본선 예정자로 올릴 수 있었다.

그렇게 모인 108명의 예선 통과자와 20명의 본선 예정자. 총 128명이 우승자를 겨루는 것.

그것이 바로 용봉대전의 꽃이자 진신 용봉대전이라 할 수 있는 용봉대전 본선이었다.

“모두 참 열심히도 싸우는군. 그런데 세 사람 중에선 비무장에 올라가 볼 생각이 있는 사람은 없나?”

“에이, 저희가 뭐라고 저기 올라갑니까. 이름만 화산파지, 사실상 이류에나 겨우 걸칠 수준인걸요.”

내 질문에 바로 손을 흔들며 부정하는 세 사람.

하긴, 이 세 사람은 처음부터 무림인이라기보단 관중들에 가까운 위치긴 했다.

오오오!

근처에서 들려오는 환호 소리에 그곳으로 고개를 돌리자,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땅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떨어진 것의 정체는 다름 아닌 사람.

비무의 승패가 결정 난 것이다.

“승자! 하남 위가장의 위석천!”

“와아아아!”

“위석천! 위석천! 위석천!”

아래에서 대기하고 있던 심판이 올라와 큰 목소리로 승자를 알리자, 주위에 있던 모두가 그의 이름을 연호하기 시작했다.

장외로 떨어진 패자는 아쉬움 가득한 표정을 지으며 일어서더니, 흙먼지를 털어내며 인파 속으로 사라졌다.

낮지 않은 위치였지만, 어차피 떨어진 사람도 일류에 근접한 무림인.

겨우 그 정도 높이에서 떨어졌다고 다치진 않았다.

“이렇게 총 칠 주야간 108명을 뽑으려면 참 열심히 비무를 겨뤄야겠군.”

“네, 그렇지요···잠깐, 108명이라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109명을 뽑아야지요.”

응? 이건 또 뭔 소리야?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대답한 제자를 바라봤지만, 오히려 그를 포함한 세 사람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가 틀린 게 아니라, 내가 틀렸다는 의미였다.

“본선 예정자가 열아홉 명이니 당연히 예선전에서 109명이 올라와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게 무슨 말인가?”

“···유 소협도 용봉대전을 그리 자세히 아는 건 아니었군요?”

“어차피 출전할 일도 없으니, 별 신경을 안 썼지.”

마교에서 뭐하러 용봉대전의 진행 방식까지 하나하나 기록해 둘 필요가 있겠는가.

어차피 저잣거리에 나가서 길 가던 사람을 잡고 물어봐도 금방 튀어나올 정보인데.

우리에게 필요한 정보라 해봐야 결국 정파의 유망한 후기지수밖에 없었고, 그래서 마교 정보부에선 해봐야 16강. 수준이 높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32강 정도의 인원만 파악하는 게 전부였다.

“그게 왜냐하면···.”

와아아!!!

내 질문에 제자 중 한 사람이 대답하려는 찰나, 갑자기 저 멀리서부터 수많은 사람의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조금 전 있었던 두 번의 비무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엄청난 환호 소리!

그 소리에 내게 대답하려던 제자는 미소를 지으며 내 팔을 잡고 그곳으로 이끌었다.

“···제가 대답할 필요도 없이 저기 답이 있군요.”

그가 나를 이끌고 간 곳은 아홉 개의 비무대 중에서도 정 가운데에 있는 곳이었다.

다른 비무대 주위에도 사람이 많았지만, 이곳은 그 궤를 달리했다.

언뜻 봐도 다른 비무대의 세 배는 넘게 몰려든 인파에 나는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곳은 다른 곳보다도 사람이 더욱 많군?”

“그야 당연한 일이지요. 자, 저길 보십시오.”

그가 가리킨 곳은 다름 아닌 비무대 위였다.

저 위에 그렇게 유명한 사람이 있나, 하고 그곳으로 시선을 향한 그때.

쿵!

마치 누군가 뒤통수를 후려치기라도 한 듯 얼얼한 충격이 나를 덮쳤다.

그 위에 있는 자는 다름 아닌.

“승자! 소림사의 고설(苦說)!”

회색의 가사를 차려입은 소림사의 무승이었다.

와아아아아!!!!

“왜 구파일방의 일원인 소림사의 무승이 예선을 치르는 거지?”

“용봉대전의 전통입니다. 명성을 탐하는 것은 소림사의 법도에 어긋난다는 옛 고승의 뜻을 기려, 소림사는 용봉대전에 참가하지 않는 것이지요.”

엄청난 환호 소리에 대화가 쉽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내가 원하던 답은 얻을 수 있었다.

“대신 혈기 넘치는 제자들을 위하여 하루 한 번. 한 명의 무승이 다섯 번의 승부를 겨루는 것은 허락하였기에 지금 비무대 위에서 싸울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다른 비무장과 비교해도 이토록 많은 인파가 몰린 것이었군.”

그제야 왜 여기에 이렇게 많은 인파가 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쉽게 볼 수 없는 소림사의 무공을 바로 앞에서 볼 기회를 놓칠 무림인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지금 내 머릿속엔 소림사의 무공을 견식해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지금 이 기회를 잘만 이용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뿐.

“소림사의 무승이 패배한 적은 있는가?”

“제가 알기론 몇 번 없습니다. 지금껏 백 년 넘게 이어진 용봉대전이지만, 소림사의 무승이 패배한 건 손에 꼽힐 정도지요.”

그래, 그렇단 말이지?

“그렇다면 저자와 싸워 이기면 확실히 주목을 받을 순 있겠군.”

그것도 소림사와 아주 밀접한 연관을 가진 사람.

예를 들면···신승 같은 사람한테 말이야.

“네, 그렇긴 하지만 누가 소림사의 무승과 비무를 겨뤄 승리를···엇!”

그는 하던 말을 다 끝마치지 못하고 단말마의 비명을 내질렀다.

당연한 반응이다.

그의 바로 옆에 있던 내가, 단번에 비무대 위로 올라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니까.

쿵!

한달음에 비무대 위로 올라간 나는 위에 있던 무승을 바라보았다.

그저 가만히 서 있을 뿐인데도 느껴지는 중후한 내공.

분명 다른 무인이라면 위축되거나, 두려워해야 할 터인데.

씨익.

왜 나는 오히려 웃음이 나고 있는 걸까.

“나는 섬서 유가장의 장남, 유현.”

챙!

등에 메고 있던 철혼을 양손에 꼬나쥔 채 눈앞의 무승에게 말했다.

“소림사의 고설에게 비무를 요청하는 바이오.”

< 용봉대전(1)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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