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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35화 (35/185)

< 무림맹(3) >

쿵쿵쿵!

한참을 심상 수련에 빠져있던 도중, 갑자기 밖에서 들려오는 문 두드리는 소리에 상념에서 깨어났다.

저녁 시간인데 나오지 않았다고 도인현이 데리러 왔나? 혹시나 해서 창문을 통해 밖을 봤지만, 아직 해가 떠올라 있었다. 저녁까진 한참 남았다는 소리다.

아니, 애초에 도인현이 찾아왔다면 문을 이렇게 세게 두드릴 리도 없다. 조용히 밖에서 날 부르겠지.

그럼 대체 문을 두드린 사람은···.

하지만 내가 미처 답을 내기도 전에, 문 건너편에서 대답이 나왔다.

“유 소협! 안에 계십니까! 혹시 벌써 주무십니까!”

절대 도인현의 목소리는 아닌, 굵직하고 걸걸한 목소리.

이 목소리의 주인을 나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다만 문제라면.

“···아닙니다, 남궁 소협. 깨어 있습니다.”

만난 지 한 시진도 안 된 사람의 목소리였다는 게 문제지.

“하하하! 깨어 있으셨군요! 다행입니다.”

“그런데 남궁 소협이 갑자기 어쩐 일로 찾아오셨습니까?”

“아, 다름이 아니라, 조금 전 저의 친우들이 무림맹에 도착했는데 간단히 소개 겸 인사나 나누고 싶어서 말입니다.”

남궁무진의 친우라면···확실히 보통 신분은 아니다.

남궁세가의 장남이 다른 사람에게 친우라 소개해줄 만한 사람이라면 최소한 남궁세가에 준하는 가문의 자제들이거나, 문파에서 심혈을 기울여서 키우고 있는 제자들이란 소리니.

다음 대 화산제일검으로 내정된 도인현이나, 10년 내로 창궁무애단의 단주가 될 남궁무진만한 사람은 없을지 몰라도, 어느 정도 이름 날릴만한 사람들일 거란 소리다.

그래, 그건 알겠는데···.

“왜 저까지 부르셨는지···?”

“어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능청스러운 남궁무진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섬서 유가장의 장남께서 안 가신다면 대체 이 자리에 낄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단 말입니까. 만난진 얼마 되지 않지만, 이 남궁무진, 유 소협을 귀중한 친우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역시, 속셈이 있었구나.

괜히 검 옆에 책을 둔다는 말까지 있는 남궁세가의 장남이 아니다.

벌써 이렇게 자신의 영향력을 남에게 보여줄 생각까지 하다니.

만난 지 한 시진이나 겨우 된 사람을 친우라고 말하며 남에게 소개해주겠다는 이유가 뭐겠는가.

내 인맥이 이토록 넓으니, 잘 해보자, 이 소리겠지.

무력도 후기지수 중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 이렇게 벌써 인맥 넓힐 생각이냐.

[뭐, 대단하긴 하네.]

내가 심상 수련을 그만두면서 함께 빠져나온 화순이 문 건너편의 대화를 듣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통성명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사람을 친우라고 하면서 남한테 소개해주려면 보통 대담한 게 아녀야 할 텐데 말이야.]

그런 건 대담하다는 게 아니라, 뻔뻔하다고 하는 거야.

[그래서 뭐, 거절이라도 할 거야? 그건 아니잖아?]

당연히 아니지.

입으로야 마구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이게 나한테도 나쁜 제안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내가 쌍수 들며 반겨야 할 좋은 제안이지.

물론 인맥 관리 면에서도 좋은 제안은 맞다.

앞으로 표국은 물론이거니와, 다른 사업도 꾸준히 벌일 걸 생각하면 지체 높은 가문의 인맥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했으니까.

그뿐만이 아니었다.

[남궁무진의 초대 덕분에 이번 무림맹에 온 목적을 생각보다 빨리 달성할 수도 있잖아.]

화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그들의 임무에서 한 자리 맡고 있던 마멸검도 지금 시대엔 꽤 이름 높은 후기지수였다.

물론 화산신룡 도인현에게 밀려 화산 제일의 기재 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후기지수 중에서도 유명한 거로 순위를 따지면 앞에서 세는 게 빠를 정도로 명성이 작진 않았으니까.

그런데 과연 후기지수 중에서 그 임무를 맡은 인간이 과연 그 혼자뿐이었을까?

물론 지금 만나러 갈 이들 중엔 없을 수도 있다. 오히려 없을 확률이 더 높겠지.

지금부터 문파의 앞날을 책임질 제자들한테 청부 살인을 시킬 린 없으니까.

하지만 그와 가까운 사람들은?

갑자기 오랫동안 연락이 안 되는 사제나, 장기 임무 때문에 가문을 비운 사촌 동생 같은 건?

그들이 전부 범인이라는 건 당연히 아니지만, 최소한 가능성은 있다, 이 말이다.

그리고 그 가능성에서 답을 찾는 게 정보요원이란 놈들이고.

거기까지 계산을 마친 내 입에서 나온 대답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채비를 마치고 나가도록 하죠.”

“하하하! 감사합니다, 유 소협!”

내 수락이 어지간히 기뻤는지, 남궁무진은 큰 목소리로 웃으며 대답했다.

“아, 정말 다행입니다. 거절하시면 어쩌나, 하고 마음 졸이고 있었는데, 이리 흔쾌히 수락해주다니. 다행입니다.”

“아뇨, 오히려 저에게도 좋은 기회니까요.”

“사실 유가장의 장남과 엄청나게 친하고, 꼭 불러올 수 있다고 큰소리 뻥뻥 쳐놨는데, 안 나오신다고 말했으면 저만 무안할 뻔했습니다. 하하하!”

···뭐?

그냥 내가 반드시 나올 거라고 질러놓고 초대한 거라고?

내가 안 나간다고 했으면 웃음거리가 되었을 텐데도?

이 인간 완전···간땡이가 부었네.

정파의 후기지수들 앞에서 거짓말쟁이가 될 수도 있었던 도박을 이렇게 해버리다니.

하하하! 하하하. 하하하···. 점점 멀어져가는 남궁무진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가 아직도 정보요원이었으면 남궁무진의 정보에 한 줄 추가해놨을 텐데.”

[뭐라고?]

“엄청나게 간 큰 인간이라고.”

*****

“하하하! 잘 오셨습니다!”

무림맹에서 조금 떨어진 객잔에 있는 작은 정자.

그곳의 입구에서 남궁무진은 우리 둘을 반갑게 맞이했다.

“죄송합니다, 남궁 소협. 조금 늦었습니다.”

“아뇨, 아닙니다, 도 소협. 갑작스러운 초대도 이리 흔쾌히 받아주셨는데, 어찌 늦었다고 제가 탓하겠습니다. 자, 자. 어서 들어오시죠.”

“네, 감사합니다. 아, 참. 사제들은 다른 약조가 있다 하여 이번에는 못 온다고 하더군요. 다음에 같은 일이 있다면 꼭 불러 달라고요.”

“아···그렇습니까? 아쉽군요. 도 소협의 사제들과도 친밀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말입니다.”

헛소리하고 있네.

나는 옆에서 한껏 아쉬움을 가장하고 있는 남궁무진을 바라보며 마음속으로 콧방귀를 뀌었다.

아마 셋은 초대한 적도 없거나, 하더라도 너희와는 급이 다르다는 기분을 풍기며 오지 못하게 만들었을 게 뻔하다.

세 사람도 여기 오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했겠지만, 지금 와봐야 좋은 인상은커녕, 눈치 없다는 핀잔만 들었겠지.

그래도 우리 없을 때를 대비해서 밥이나 먹고 다니라고 몇 푼 쥐여준 게 다행이다.

안 그랬으면 진짜 방안에서 쫄쫄 굶고 있어야 했을지도 모르니까.

“어이쿠, 손님들을 세워놓고 이게 뭐 하는 짓이람. 자, 자. 얼른 들어오시지요. 모두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남궁무진이 손짓하자, 나와 도인현도 정자 위로 올라섰다.

간단한 연못까지 옆에 만들어 둔 정자 위엔 이미 커다란 상과 함께 열댓 명의 사람이 모여 있었다.

[다 아는 사람이구먼.]

그래, 그러게 말이다.

이미 나와 함께 서책으로 용봉대전에서 이름을 날릴 후기지수들을 봤던 화순인 만큼, 눈앞의 사람들이 누군지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자자! 어서들 인사하라고! 이번 용봉대전에서 손꼽히는 우승 후보인 화산신룡 도인현 소협께서 오셨으니 말이야!”

“아, 아니, 남궁 소협! 그런 말씀은···아, 죄송합니다. 인사가 늦었습니다. 화산파의 도인현이라고 합니다.”

도인현의 자기소개에 몇몇 후기지수의 얼굴이 살짝 일그러졌다가 순식간에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예의주시하지 않았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할 미세한 변화였지만.

[야, 저놈들 방금 표정 봤냐?]

그래, 당연히 봤지.

화순과 나는 한눈에 알아봤다.

후기지수 중에서도 무력이라면 자신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는 세 사람.

쌍절신룡(雙節神龍) 제갈혁

십분쾌룡(十分快龍) 풍천

천변운룡(千變雲龍) 각정

이른바 무림삼룡이라 불리는 후기지수들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던 것을.

뭐, 그 심정이 이해 안 가는 것도 아니다.

이 세 사람은 여기 있는 후기지수 중 가장 먼저 강호행을 나서 명성을 쌓은 이들이었으니까.

강호행도 짧게 나갔다 오고, 그 외의 시간은 거의 화산파에서 수련만 하느라 화산 내부에서만 이름이 알려진 도인현이나, 그 성격 때문에 가문에서 외부로 나가는 걸 거의 금지까지 했던 남궁무진에 비하면 알려진 명성만큼은 오히려 이들이 높다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미래에는 어떻게 되냐고?

뭐···셋 다 어느 정도 자기 문파에서 그럭저럭 괜찮은 자리에 있다, 라고 밖에 말 못 하겠다.

그럴 만도 한 게, 정보가 없거든, 정보가.

도인현처럼 엄청 유명하거나, 아니면 마멸검처럼 잘 싸돌아다니기라도 하면 정보가 쌓이는데, 이 세 사람은 둘 다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후엔 장로나 어느 작은 단의 단주 자리 정도는 차지할 거란 예측이 있긴 했지만, 그 전에 내가 회귀해버렸으니 정확한 건 모른다.

어느 쪽이건, 옆에 이 두 사람과 비교할 수준은 아니란 소리다.

“그리고 이쪽은 섬서의 유가장의 장남 유현 소협이네! 모두 유가장의 이름은 알고 있겠지?”

번뜩!

···이번에는 표정을 숨길 생각들도 없으시네.

마치 좋은 사냥감을 발견한 맹수의 눈빛.

당연한 반응이라면 반응이다.

무림 문파라면 어디든 돈이 부족할 수밖에 없고, 우리 유가장은 섬서는 물론 전 중원에서 이름을 날리고 있는 부유한 가문이니.

나와 친해지면···으음, 이건 틀렸나.

나를 하수인으로 두면. 그래, 이쪽이 좀 더 맞겠다.

그러면 가문에. 하다못해 자신들이 돈 부족할 일은 없겠다, 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간단히 말하자면 물주로 본다, 이 소리다.

“유가장의 유현이라고 합니다. 앞으로 정파 무림을 이끌어갈 후기지수 여러분들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하지만 지금 내겐 상관없는 반응이다.

저놈들이 어떻게 생각하던, 지금은 내 할 일만 하면 되니까.

그저 조용히, 저들의 이야기를 듣다가 살짝살짝 이야깃거리가 떨어졌을 때, 내가 원하는 정보만 캐면···.

“으하하! 듣고 놀라지나 말게, 유 소협은 무려 북방 국경지대에서 3년이나 종군하다 온 분이니 말이야! 오늘 하루 이야깃거리가 떨어질 일은 없을 거야!”

뭣?!

그 순간 갑자기 급변하는 분위기.

휙!

갑작스러운 남궁무진의 말에 목이 부서져라 고개를 돌리자, 나를 바라보며 ‘나 잘했지?’하는 얼굴로 날 바라보는 남궁무진과 ‘아니, 그걸 말하면···.’하고 책망하는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는 도인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인간들, 이제 보니 그때 헤어지고 다시 만나 이야기를 나눴구나!

내가 바라보자 도인현은 바로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래도 자기 잘못은 알고 있다, 이거지?

그에 반해 이 인간은···!

“저도 국경부대에 관한 이야기는 궁금한 게 많은데, 좀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아까 했던 말은 철회다. 이 인간은 그냥 간땡이만 큰 인간이 아니야.

아무리 순진한 도인현이지만, 그에게서 내게 자신이 원하던 정보를 뽑아낼 만한 사람.

나와 비슷한, 정보요원과의 인간이었다.

그제야 나를 끌고 온 이유도 알 수 있었다.

이 인간은 도인현을 숨기고 싶어 했다.

지금 도인현의 무공 수위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을 시기.

기껏 해봐야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라는 이야기밖에 나돌지 않은 때다.

만약 여기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도인현의 무공이 예상보다 높다는 게 밝혀지면?

이들은 용봉대전의 우승을 위해 도인현의 무공의 근원. 즉, 화산파의 무공을 파훼할 방법을 찾겠지.

남궁무진은 그걸 원치 않았다.

두 사람이 어떻게 만났는진 모르겠지만, 아마 실전이든 비무든 서로 검을 나눴던 거겠지.

그리고 그 승자는 도인현이었을 테고.

남궁무진은 그걸 만회하고 싶어 했다.

그것도 다름 아닌 후기지수  중 최고를 뽑은 용봉대전이라는 자리에서!

그럼 차라리 데려오지 않는 게 가장 좋은 것 아니냐, 라고 할 수 있지만 그건 또 아니다.

만약 그랬다가 누군가 도인현과 남궁무진이 아는 사이라는 걸 알아내고, 그걸 알고도 그를 아무에게도 소개해주지 않았다는 걸 수상하게 여겼다간 오히려 경각심만 높여줄 뿐이니까.

그래서 남궁무진은 도인현을 소개하는 동시에, 그보다 더욱 먹음직스러운 미끼도 함께 내놓은 것이다.

바로 나라는 미끼를.

···내게 괜찮은 인맥이 생긴다는 이득만 없었어도 이미 얼굴로 주먹 한 방 날렸다, 진짜.

나는 마음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쉬며, 양손으로 들어오라는 손짓을 했다.

그래, 얼마든지 질문을 한 번 던져봐라.

마음껏 대답해줄 테니까.

*****

후기지수 간의 회합을 마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나는 옆에서 잔뜩 술에 취한 남궁무진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번 일에 대한 건 나중에 한턱 단단히 내셔야 할 겁니다.”

“하하하! 그럼요, 한턱 정도야 얼마든지 내드리지요!”

도인현의 정체가 밝혀지지 않았다는 기쁨에 한 잔, 내 이야기를 즐기며 한 잔, 그렇게 끊임없이 술을 들이켜던 남궁무진은 이미 잔뜩 취한 상태였다.

“한턱이요? 갑자기 왜···?”

“오라버니가 유 소협 이야기를 가장 많이 캐물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남궁명화의 완전히 틀린 추리에 아,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도인현.

너 때문이라고, 너.

어휴, 진짜. 마음 착한 내가 참는다.

[그렇게 말하면서 너도 인맥 짭짤하게 모았잖아?]

···뭐, 그건 그렇지.

사실 말은 그리했지만, 내게 이득이라곤 하나 없이 귀찮은 일만 있었던 것도 아니니까.

아니, 이 중에서 가장 이득을 많이 챙긴 사람이 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도인현이야 어차피 언제든 알게 될 사람들을 좀 더 일찍 알았을 뿐이고, 남궁무진은 결승전에서 도인현과 정정당당하게 싸울 수 있게 되었다면, 나는 미래에 큰 도움이 될 인맥들이 잔뜩 생겼으니까.

지금 운영하는 표국은 물론, 앞으로 벌일 여러 사업에 분명 큰 도움이 될 인맥이 말이다.

물론 그런 이득도 없었으면 이미 창 날렸지.

“그 한턱, 아주 톡톡히 받아낼 겁니다.”

“저희 세가의 기둥뿌리 뽑을 정도만 아니면, 제가 해드릴 수 있는 건 다 해드리겠습니다.”

거기에다가 후일 창궁무애단의 단장이 한턱내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이 정도면 한 시진 반 동안 입 아프게 떠든 값치곤 짭짤하게 받았지.

원하던 범인에 대한 정보는 얻지 못했지만, 이 정도라면 이득···.

오싹!

그 순간, 갑자기 내 몸을 덮치는 오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모든 걸 앗아가 버릴듯한 무시무시한 기운에 온몸을 경직시켰다.

“···유 소협?”

갑자기 몸을 멈춘 나를 세 사람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지금 그에 대꾸해줄 겨를은 없었다.

지금껏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엄청난 기운.

···정말 느껴본 적 없나?

틀렸다.

사실 느껴본 적 있다.

현실이 아닌, 심상 수련 속에서.

“유···소······협·········.”

점점 멀어져가는 도인현의 목소리와는 정반대로 선명해지는 눈앞의 공간.

“어이! 어떻게 된 거야?!”

어느새 실체화된 내 옆에서 화순이 경악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아니, 화순이 실체화된 게 아니다.

내가 강제로 끌려온 것이다.

“왜 갑자기 심상 속으로 들어왔냐고!”

아까보다 더 다급해진 화순의 질문에도 나는 답을 말하지 못했다.

일단 나도 이곳이 어딘지 모르거니와.

쿠웅!

지금 나를 짓누르는 압력을 버텨내는 것만으로도 내 온 힘을 다하고 있었으니까.

으드득.

어금니가 깨질 정도로 이를 악물며 단전의 기를 끌어모았다.

심상 수련 속에서 이만큼 기를 끌어모으며 대적했던 인물은 딱 한 명.

독고삭.

전대 천마이자, 내게 권능을 준 은인.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아는 사람 중 가장 강한 자.

끊임없이 기를 뿜어내며 앞으로 한 걸음, 한 걸음 걸어 나간다.

이걸로 알았다.

지금 나를 여기로 끌고 온 자가 누군진 알 수 없지만, 전성기의 독고삭보단 약하다.

그렇다면, 최소한 최후의 발악 정도는 시도해볼 수 있다.

“···야.”

그리 생각한 순간 내 귀로 꽂혀오는 화순의 목소리.

“아래를 봐봐. 이건···.”

그의 말에 자연스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건, 물컹하고 주름 가득한 무언가.

땅은 아니다. 그럼?

“누군가의 손이다!”

휙!

화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바로 고개를 들어 올려 팔의 주인의 머리가 있는 부분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런 내 눈에 들어온 건 인자한 얼굴로 웃으며 나를 바라보는 누군가.

그 순간 깨달았다.

지금 나를 이곳으로 불러들인 자가 누군지.

“신···!”

석가여래.

마치 자신의 손바닥 위에서 날뛰던 제천대성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에게 온 힘을 다해 소리쳤다.

“···승(神僧)!”

그리고.

와장창!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다.

< 무림맹(3)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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