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2) >
“네, 네놈이 여길 어떻게···?”
“이야, 유성이 너, 진짜 몸집만 쓸데없이 커졌지, 아직 꼬맹이와 다를 바 없구나?”
갑작스러운 욕설에 얼굴이 굳어지는 유성. 하지만 나는 그에 상관치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어떻게 이 상황에서까지 이렇게 아가리를 나불나불 놀릴 수가 있지? 진짜 대가리가 텅텅 비었냐?”
[야, 야야. 말투, 말투. 너무 나갔어, 인마.]
너무 나가? 진짜 너무 나간 건 이 새끼들 아니냐?
화순의 만류에도 나는 자제할 생각 따윈 없었다.
두 사람이 돌아온다는 소식에 복건성에서 달려올 때만 해도 혹시나 했다.
아무리 그래도 이놈들도 이젠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화산파에서 3년간 정신수양도 했을 테니, 조금은 사람다워지지 않았을까, 하는 그런 생각.
하지만 방금 그 일로 그런 생각은 싹 사라졌다.
3년 전과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욱 심해졌다.
그때와는 달리 적수공권이었지만, 오히려 지금 손에 아무것도 없는 이때가 더 위험했다.
그리고 더욱 참을 수 없는 건, 이놈도 그걸 알고 주먹을 휘둘렀다는 사실이다.
그냥 무식하게 상대도 없이 무공을 단련했던 전과 달리, 이번에는 제대로 된 스승 아래에서 수련을 받아 무공의 위력을 분명히 알고 있을 텐데도 주먹을 휘둘렀다?
그 사실이 나를 더욱 화나게 했다.
“···말이 너무 심하군. 이만 손을 놓지?”
하지만 내게 손을 잡힌 유성의 반응은 가관이었다.
“네놈이 살아왔다는 건 놀랍지만, 아무래도 네놈은 여전히 3년 전에서 살고 있나 보군. 내가 그 옛날의 유성으로 보이나? 이제 난 네놈보다 강하다!”
“어엉?”
순간 이놈의 말뜻을 이해 못 했다. 지금 이 새끼가 뭐라고 지껄인 거지?
[야, 내가 잘못 들었냐? 이놈이 너보다 강하다고 말한 거야?]
조금 전까지 날 만류하던 화순까지 되물어볼 정도로 기막힌 발언이었다.
아니, 내가 방금 네가 파악할 수도 없는 위치에서 달려와서 바로 앞에 있던 네 주먹을 막은 게 이놈은 보이지도 않았나?
혹시 다른 놈들의 수준도 이놈이랑 비슷한가 싶어 옆을 보니 다른 다섯 사람은 물론, 심지어 무공 하나 모르는 기정이까지 이 인간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하고 생각하는 눈치였다.
그래, 이걸로 알았다.
이 새끼 완전 몸집만 컸지, 여전히 미련한 곰탱이인 건 그대로네.
그러니 저런 망발을 지껄이는 거지.
“그래, 더 강해졌다 이거지?”
피식.
유성의 말에 나는 입가에 아까보다도 더 진한 미소를 지었다.
당연히 기분이 좋아서 웃는 건 아니었다.
그저 옛날에 배운 처세술 중 하나다.
진심으로 화났을 때, 이렇게 웃으면서 참아내곤 했다.
“그럼 어디 한번 네가 빼보던가.”
“이 새끼, 후회나···엇?”
하지만 이번엔 그것도 무리인 것 같다.
놈이 하는 꼬락서니를 보니, 참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져 버렸다.
내 손에서 빠져나가기 위해 놈은 바깥쪽으로 손을 비틀었다.
만약 놈이 뜻하는 대로 내 팔이 움직였다면, 팔꿈치 뼈가 부서질 수도 있는 방향으로.
“익···이익!”
이제야 이상함을 알아챈 놈이 팔을 앞뒤, 좌우로 흔들어 자신의 팔을 빼내려 하지만, 우리 둘의 팔은 거기서 한 치도 움직이지 않았다.
왜냐고?
내가 그러지 않기를 바랬으니까.
“왜? 못 빼내겠냐?”
“네, 네놈, 무슨 사술을···!”
“이야, 사술이라는 말이 입에서 참 쉽게 나오지? 네가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면 다 사술이냐?”
우두둑.
“끄아악!!!”
아까 놈이 비틀려던 방향으로 이번에는 내가 움직였다.
안 그래도 빠져나가기 위해 반대 방향으로 힘을 주고 있던 놈의 팔꿈치는 양방향에서 주어진 힘에 견디지 못하고 그대로 부서졌다.
아까 놈이 내 팔에 하려던 짓이, 그대로 놈의 팔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유성의 팔이 축 늘어졌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힘이 빠진 탓이다.
“아직 안 끝났어. 뭘 벌써 힘을 빼냐?”
우드득.
“끄아아아아악!!!”
아까보다도 더욱 큰 목소리로 울부짖는 유성.
팔꿈치뿐만 아니라 손과 팔꿈치 사이의 뼈도 부러졌으니, 마땅한 반응이겠지만.
“그만하는 것이 어떻겠소?”
한창 더 어떻게 해야 이놈을 아프게 할까, 하고 고민하던 내 손을 누군가가 막아섰다.
“그가 잘못한 건 알고 있으나, 이미 같은 팔을 두 번이나 부러뜨렸잖소. 이만하면 그도 알아듣지 않았겠소?”
알아들었다고? 이 새끼가?
고통으로 인상을 잔뜩 쓴 상태에서도 나를 이렇게 노려보고 있는 놈이?
나는 나를 막아선 사내에게 코웃음을 날리며 대답했다.
“이걸로 알아들었다면 3년 전에 이미 알아들었겠지. 가족 간의 일이나 당신은 신경 쓰지 마시오.”
“허나···.”
“3년 동안 사형이라는 인간이 사제를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으니, 진짜 형이 이렇게라도 동생을 가르쳐야 하지 않겠소?”
사내는 내 말에 인상을 쓰면서도, 한 발 뒤로 물러섰다.
유성의 방금 그 행동이 선을 넘은 것도, 지금 내가 내리는 처벌도 정당한 걸 그도 아는 것이다.
다만 손속이 과한 것이 아닌가 싶어서 왔을 뿐이지.
그런데 어쩌나.
우두둑!
“으억, 으억, 으어어억!”
난 그 정도로 멈출 생각 없는데.
유성의 입에서 비명조차 되지 못한 신음만이 흘러나왔다.
안 그래도 두 번이나 부러진 팔에 남은 팔뚝까지 부러뜨려 버렸으니, 그 통증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터.
이런 반응을 보이는 게 당연했다.
툭.
나는 그제야 유성의 팔을 손에서 놨다. 그의 팔은 그대로 땅바닥으로 떨어졌고, 거기서 놈은 한 번 더 비명을 내질렀다.
안 그래도 커다란 팔이 두 배는 넘게 퉁퉁 부어올랐지만, 그걸 천천히 감상하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다음은 너다.”
아직 내겐 할 일이 남아있었으니까.
동생의 팔이 네 조각이 나고, 고통에 탈진해서 쓰러진 상황에서도 유환은 전혀 당황한 눈치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나를 노려보며 서늘한 안광을 발하고 있었다.
“3년 전 버릇을 고쳐준 줄 알았는데 조금 모자랐던 모양이구나.”
놈의 안광을 당당히 마주하며 천천히 그에게 가까워지지만, 여전히 미동하나 하지 않았다.
3년이 지나도 여전히 미련퉁이 곰 새끼인 동생과는 달리 그래도 지렁이 새끼에서 뱀 새끼는 됐다는 건가?
하지만 네놈이 3년간 뱀이 되었다면.
파앗!
나는 3년간 범이 되었다.
내가 기세를 뿜어내자, 그제야 놈의 표정이 일변했다.
아니, 놈뿐만이 아니다.
저 멀리서 우리 형제를 관망하고 있던 네 사람도 경악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근방을 무겁게 짓누르는 기세에 누구 하나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사이, 나는 천천히 놈에게로 다가갔다.
그제야 유환은 어떻게든 나를 피해 보려고 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내가 기세를 뿜어내기 전이였다면 운신이 자유로웠겠지만, 지금의 놈은 말 그대로 호랑이 앞의 뱀 꼴.
한 걸음 움직이는 것조차 힘든 상태였다.
내가 바로 앞까지 다가간 그때도 여전히 움직이지 못하는 놈에게 비웃음을 날려주며 주먹을 뻗으려던 바로 그때.
“그만하시오.”
우리 사이에 끼어든 한 자루의 검이 놈과 나를 갈라놓았다.
그 손을 타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리자, 아까 유성의 팔을 부러뜨리는 걸 막아선 사내가 보였다.
아까의 난처함 가득하던 표정은 없었다.
그 두 눈에 깃든 건 반드시 나를 막아서겠다는 결의.
나는 그런 그를 날카롭게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말했을 텐데? 형제간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가족 간의 일에 끼어들면 안 된다는 건 알고 있지만···그는 당신의 동생인 동시에 내 사제이기도 하오.”
“그리고 그런 사제를 제대로 가르치지도 못했으면서 나한테 이렇게 검을 뻗고 있지.”
비웃음이 가득 담긴 목소리로 말을 날리자, 그의 얼굴에 미세한 주름이 새겨졌다.
하지만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검을 내리진 않았다.
“그래, 그래도 여전히 날 막아설 생각이라, 이거지?”
그는 내 말에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지금 여기서 나와 생사결을 벌인다 해도, 절대 물러서지 않을 생각이라는 것을.
그렇다면 그 뜻대로 해드려야지.
그런 그의 모습에 나는 입가에 미소를 그리며, 뒤에 있던 기정이를 불렀다.
“기정아!”
“네, 도련님.”
나와 함께 했던 한 달 보름간의 여행 덕분에 간이 꽤 커진 기정이는 이런 상황에서도 전혀 놀라거나 떨지 않고 나에게로 달려왔다.
“내 방에 있는 그걸 가져와라. 한 판 제대로 붙어봐야겠으니까.”
“알겠습니다.”
내 말에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한 기정이는 내 방이 있는 방향으로 전속력으로 뛰어갔다.
“걱정하지마. 기다릴 필요는 없으니까.”
열심히 달려가는 기정이의 뒷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사내에게 말을 걸었다.
“나는 맨손으로도 꽤 쌔거든.”
내 말에 굳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사내.
아니, 이렇게 이름조차 지칭하지 않고, 그저 사내라는 말로 그를 부르는 건 큰 실례겠지.
회귀 전, 10년 내로 화산제일검의 칭호를 자신의 스승, 화산검선(華山劍仙) 천도익(天道益)에게서 물려받게 되리라는 말이 있던 바로 그 남자.
매화검수 제일좌(第一座). 도인현을 직접 볼 기회는 그리 흔치 않으니 말이다.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그가 누군진 알고 있었다.
그보다 한참 급이 낮은 마멸검도 요주의 인물이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매화검수의 수장이자 화산제일검에 가장 가까운 사람의 얼굴도 익히지 못하고 있을 리가 있나.
물론 처음에는 내가 알던 것보다 앳된 모습에 혹시나 했지만, 이제는 확신하고 있었다.
매화검이 아니라 일반 검을 차고 있는 걸 보면 아직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로 불릴 때인가.
그렇지만 그는 지금도 놀라울 정도로 강했다.
3년간 전전했던 전쟁터에서도 그를 능가할만한 고수는 몇 번 본 적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두렵진 않았다.
상상도 해본 적 없는 강함을 얻으며 생긴 자신감인가, 아니면 20대의 육신으로 돌아오면서 생긴 모험심인가.
회귀 전이였다면 눈을 마주치는 것조차 두려워 멀리 피했을 고수였을 텐데, 지금의 나는 그에게 참을 수 없는 호승심을 느끼고 있었다.
일부러 기세를 뿜어내며 유환을 공격하려 했던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기정이를 건드린 건 어디까지나 유성이었고, 유환이 그것을 부추긴 기색은 없었으니까.
아니, 설사 그랬다고 해도 기정이가 다치는 건 막았으니 나중에 천천히 죄를 물으면 될 일이다.
하지만 나는 온몸에서 살기를 뿜어내며 녀석에게 다가갔고, 도인현은 그런 나를 막아섰다.
딱 내가 원하던 대로였다.
우리가 원래 있던 곳이 사람은 잘 찾아오지 않는 공터인지라 굳이 자리를 옮길 필요는 없었다.
퍽!
"컥!"
"저리 꺼져라. 싸움에 방해된다."
내가 복부를 걷어차자, 그제야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된 유환은 맞은 배를 쓰다듬으면서 기절한 유성을 질질 끌고 멀어졌고, 그 모습에 다른 세 사람도 우리 둘의 싸움에 방해되지 않기 위해 멀리 떨어졌다.
오직 우리 두 사람만을 위해 만들어진 10장의 공간.
거기서 먼저 움직인 건.
“하압!”
의외로 도인현이었다.
선수필승(先手必勝).
무공의 기본 순리를 그는 충실히 따랐다.
순식간에 공중에 그려지는 열두 송이의 매화와 코끝을 간지럽히는 매화향.
누구라도 매혹될 수밖에 없는 아름다움. 하지만 그것에 홀려버리면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는 화산의 일절.
이십사수매화검법이 그의 손에서 펼쳐졌다.
허초와 실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면 목숨을 잃을지도 모를 강맹한 공격!
이 열두 송이의 매화중 어느 것이 나의 목을 찌를 가시를 숨기고 있는가.
나는 그것을 고민하지 않았다.
허초니, 실초니.
그저 모두 부숴버릴 뿐.
챙, 챙챙챙!
“흡!”
내가 양손을 마구 흔들자, 공중에 그려져 있던 열두 송이의 꽃이 마치 비가 온 다음 날의 매화처럼 순식간에 사라져갔다.
모든 것을 막을 수 있는 방패는 다른 관점으로 보자면 모든 것을 부술 수 있는 강력한 무기가 되는 법이니.
그것은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의 검도 다르지 않았다.
순식간에 자신이 피워낸 꽃이 사라진 걸 본 도인현의 행동은 빨랐다.
다시 한번 공중을 수놓는 매화. 하지만 조금 전의 그 자그마한 매화와는 다르다.
사람의 몸 전부를 덮을 정도로 커다란 매화.
그 모두가 내 급소만을 노리고 날아왔다.
그가 펼치는 이십사수매화검범이 무서운 점이 바로 이것이었다.
보통 환검이면 환검, 패검이면 패검, 이렇게 정해진 다른 검법들과 달리 이십사수매화검법은 초식마다 다른 일면을 보였다.
물론 그만큼 전부 제대로 익히기는 힘들어, 대부분 자신의 손에 맞는 몇 개의 초식만 익히고 상승무공으로 넘어가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지금 도인현의 검은 달랐다.
매화구변(梅花九變)을 펼칠 땐 환검을, 매향성류(梅香成流)를 펼칠 땐 쾌검을, 매향침골(梅香浸骨)을 펼칠 땐 패검을.
그 모두가 고수라는 소리를 듣기 충분할 만큼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모두가.
쿵!
“크윽!”
절대적인 방패 앞에서는 무용하니.
그가 검을 펼치는 족족, 나는 불파를 일으켜 그것을 막아냈다.
실체를 알 수 없는 꽃송이는 가짜도 모두 부숴버렸고, 끊임없이 몰아치는 꽃향기는 멈출 때까지 막아섰다.
뼈까지 스며드는 매화 향기조차 내 피부에도 스며들지 못했으니.
이것이 바로 불파.
천마의 무공이자, 내가 익힌 무공이었다.
싸움을 시작한 지 일각이나 흘렀지만, 누구의 몸에도 상처는 남지 않았다.
하지만 우리 둘의 모습은 판이하였다.
“헉, 헉, 헉.”
벌써 수십 개의 절초를 펼치느라 체력도, 내공도 모두 소비한 도인현과.
“왜 그러지? 벌써 끝났나?”
그 모두를 오직 불파 하나로만 무너뜨려 아직 힘이 넘치는 나.
누가 봐도 승자가 누군지 확연한 모습이었지만, 도인현의 눈은 아직 죽지 않았다.
그리고 나 역시 아직 이대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그의 한계, 그가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한번 보고 싶었다.
전력을 다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쿵!
그가 크게 발을 구르더니, 지금껏 보여준 적 없던 기세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주변에서 피어오르는 자색의 기운.
“···건원청심법(乾元淸心法).”
그 정체를 파악하지 못하던 나에게 저 뒤에 있던 그의 사제 중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것이 바로 화산의 일반 제자가 익힐 수 있는 심법 중 제일이라던 바로 그 심법인가.
그 말이 허명이 아니라는 건 지금 그에게서 뿜어져 나오는 기운만으로도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이 넘쳐흐르는 힘을 보고 그 누가 그를 지쳤다 말할 수 있겠는가!
나도 조금은 진지하게 상대해줘볼까.
문득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던 그때, 저 멀리서 나를 부르는 기정이의 목소리.
“도련님!”
그리고 그 손에 있는 두 자루의 창까지.
“여기 있습니다!”
기정이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나에게 두 자루의 창을 던졌다.
그 방향도, 힘도 턱없이 모자랐지만, 그건 모두 내가 보충할 수 있었다.
착! 착!
마치 달라붙기라도 하듯 내 양손에 쥐어진 두 자루의 창.
“이제야 좀 더 즐길 수 있겠군.”
내가 창을 쥐는 모습에 나를 상대하고 있던 도인현의 얼굴에 미세한 주름이 새겨졌지만, 그것은 곧 원래대로 돌아왔다.
역시, 보통 무인은 아니다.
누구라도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바로 마음을 가라앉히다니.
그러기에 더더욱 기대되었다.
그의 진심을 담은 일격이!
그가 검을 뽑으려는 그때, 내 옆을 스쳐 지나가는 두 줄기의 바람.
그 바람의 길에 따라, 나는···!
“이게 대체 무슨 상황입니까!”
우뚝!
갑자기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호통에 우리 두 사람이 피어오르던 기세가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이 목소리는 분명히···.
“유성, 유환 도련님이 손님을 모시고 오셨다는 소식을 들은 지 긴 시간이 흘렀는데도 오지 않으시길래 찾아봤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유현 도련님!”
움찔.
가문 내에서 나를 향해 호통을 칠 수 있는 두 사람 중 한 사람. 총관의 말에 나는 몸을 떨었다.
“아, 아뇨, 총관님. 그게 아니라···.”
“아니긴 뭐가 아닙니까! 곧 건물을 세워야 하는 공터를 이리 어지럽히시고, 손님과 싸움까지 벌이시다니!”
아, 안된다. 이렇게 화난 총관은 뭐라 말해도 소용이 없다.
이 상태에선 아버지가 직접 와서 말리지 않는 한, 절대 멈추지 않는다.
“어흠, 죄송합니다, 가문의 손님에게 못난 꼴을 보여드렸군요.”
나를 혼내던 총관은 바로 몸을 돌려 도인현과 다른 일행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상황 변화에 도인현은 깜짝 놀라 손을 흔들며 말했다.
“아, 아뇨, 괜찮습니다. 저도 어느 정도···아니, 오히려 제 잘못이 더 크니 그렇게 혼내실 필요 없습니다.”
“오, 역시 이름 높은 화산파의 도사님다우시군요. 저희 도련님들의 다툼을 본인의 잘못으로 돌리시다니. 마음만이라도 감사합니다.”
도인현의 말을 본인 좋을 대로 해석한 총관은 그와 뒤에 있던 세 사람에게 말했다.
“자, 저를 따라오시지요. 손님들은 제가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도련님 세 분에겐 ···.”
천천히 우리 세 사람을 한 번 둘러본 총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 일을 처리할 시종을 부르겠습니다.”
이거야 원. 나중에 잔소리 확정이네.
그렇게 총관이 네 사람을 데리고 떠난 공터엔 나와 기정이. 그리고 유성과 유환 형제만 남았다.
“야.”
움찔. 내 부름에 유환의 몸이 크게 떨렸다.
너무나 큰 고통에 결국 혼절해버린 유성과 달리, 그는 내 싸움을 끝까지 지켜보고 있었다.
그 때문에 놈은 알고 있었다. 내가 자신은 한참 아래로 볼만큼 엄청난 고수가 되어있었다는 사실을.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으면, 너도 그놈 꼴 날 줄 알아라.”
놈에게서 대답은 없었다. 그저 몸을 더욱 크게 떨었을 뿐.
애초에 대답을 바란 것도 아니었으니, 상관없지만.
“기정아, 창 챙겨라. 이만 돌아가자.”
“네, 알겠습니다.”
유성의 주먹에도 떨지 않던 기정이는 총관의 눈초리에 벌써 눈에 띄게 풀이 죽어 있었다.
녀석도 참.
시무룩한 기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혼난 건 난데 왜 네가 그렇게 시무룩하냐? 정신 차려.”
“죄송합니다. 저 때문에 또···.”
“항상 말하지만, 네 탓이 아니다. 내 탓이지. 사죄는 진짜 네 탓인 일이 생기면 그때 하면 된다. 알겠냐?”
“···네! 알겠습니다!”
그제야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기정이에게 미소를 보내며, 총관을 따라 사라진 도인현이 있던 방향을 바라봤다.
이미 멀어진지라 그의 얼굴은 파악할 수 없었지만, 이것 하나만은 알 수 있었다.
그 역시 지금 나처럼 나를 주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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