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1) >
강호에서 가장 유명한 문파는 어디인가?
이 질문을 꺼내면 보통 사람들은 소림의 이름을 제일 먼저 꺼낸다.
천하공부출소림(天下工夫出少林)!
천하 무학(天下武學)의 태산북두(泰山北斗)!
중원에 널리 퍼진 이 두 문장의 말만으로도 소림의 위상을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말도, 지역에 따라선 조금씩 달라지는 경우가 있다.
예를 들어 무당산 근처의 마을에선 무당파가 제일의 문파라 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안휘성에선 남궁의 이름이 가장 널리 퍼졌다 하며, 요녕성에선 모용세가야 말로 최고의 문파라 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이곳, 섬서성에서 그런 질문을 듣는다면 대부분 사람이 내놓는 답은···.
“어이쿠! 화산파의 도사님들 아닙니까! 어서 오십시오!”
손님 없는 객잔 안에서 가만히 허공을 바라보며 시간 때우기에 여념 없던 주인장은 문을 열고 들어온 여섯 남녀를 보고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옅은 자색의 도사복을 입은 그들은 주인장의 환대에 미소로 화답한 후, 가장 가까운 곳에 있던 자리에 앉았다.
“저희 객잔에 잘 오셨습니다! 휴식입니까, 아니면 식사입니까? 말씀하시는 건 뭐든지 내오겠습니다!”
“아직 식사는 필요 없으니, 제일 저렴한 차만 부탁드립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내오도록 하겠습니다!”
객잔에선 제일 꺼린다 해도 과언이 아닌 손님 중 하나인 쉬고만 간다는 손님이었지만, 주인장의 얼굴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
“성구야! 빨리 갓 우려낸 따끈따끈한 차로 6잔, 얼른 내오거라!”
“네! 어르신!”
안에서 들려오는 활기찬 점소이의 목소리.
미리 뽑아놓은 차가 아니라 새로 우려내서 들고 오는 건 점소이도 귀찮은 일이었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그런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신의 귀찮음도, 돈이 덜 벌리는 것도 감수한 채 최대한 그들의 편의를 생각하는 것.
누군가 그리 생각한 것도 아닌데 스스로 그렇게 행한다.
그것이야말로 섬서성에서 화산의 이름이 가진 무게의 발로였고, 자연스레 나오는 존중의 표현이었다.
잠깐의 기다림은 필요하겠지만, 새롭게 꺼낸 찻잎에서 우려낸 향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다는 생각에 모두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일행 중 가장 몸집이 큰 사내와 눈 끝이 마치 치켜뜬 것처럼 매섭게 올라간 사내. 이 둘을 제외하고 말이다.
“조금만 더 가면 좋은 곳에서 휴식을 취하실 수 있는데 어째서 이런 싸구려 객잔에 오신 겁니까?”
둘 중에서도 티가 나게 얼굴을 찡그리고 있던 큰 체구의 사내 말에 일행의 중심으로 보이는 남자가 미소를 띠며 말했다.
“화산을 내려와 여기까지 강행군을 하지 않았느냐. 내가 강호행을 그리 많이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이 잠깐의 휴식이 무엇보다 중요한 건 알겠더구나. 더군다나 우리는 중요한 임무를 맡고 나온 것이니, 항시 최고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우리가 할 일이란다.”
“하지만 대사형···.”
스윽.
큰 체구의 사내가 대사형을 향해 무어라 더 불평을 꺼내기 전에, 그 옆에 있던 치켜뜬 눈의 사내가 손을 들어 그를 막았다.
“유성아. 우리보다 경험 많은 대사형의 말씀이다. 네 생각이 어떻든, 그 말씀을 따르는 것이 우리가 사제로써 할 일이다.”
“하지만 유환이 형···.”
유환의 말에도 무어라 입을 더 놀리려던 유성은 자신을 노려보는 유환의 모습에 결국 입을 다물었다.
물론 그 상황에서도 입술을 빼죽 내미는 건 참지 않았지만 말이다.
동생의 입이 멈추자, 유환은 그제야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와 대사형에게 입을 열었다.
“죄송합니다, 대사형. 동생이 조금이라도 사형과 사저를 좋은 곳에 모시고자 하는 마음에 이리 말한 것이니, 너무 신경 쓰실 필요 없습니다.”
“아니, 괜찮네. 그 마음을 어찌 모르겠나. 본디 높으신 분에게 조금이라도 좋은 걸 드리고자 하는 마음은 누구라도 가지고 있는 것이 말일세.”
“대사형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그렇다면···.”
유환의 치켜뜬 눈이 순간 빛을 발했다.
“식사만큼은 저희 쪽에서 부담할 수 있도록 해주시지요. 여기서 저희 본가가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고, 마침 곧 점심을 해결해야 할 시간이기도 하니 말입니다.”
“하하하! 그것까지 거절하면 이 사형이 매정한 것이겠지. 알겠네. 그리하도록 하지.”
대사형의 허락에 남은 일행의 얼굴이 환해졌다.
아무리 도사라 하지만, 이들은 아직 모두 젊었다.
도사들의 청렴함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엔 마냥 어리기만 했다.
더군다나 대사형을 제외한 다섯 명은 속가제자의 신분이었으니, 그런 것도 당연했다.
순식간에 대사형과 식사 약속을 잡은 자신의 형을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던 유성은 언제 얼굴을 찡그렸냐는 듯 바로 표정을 풀고 실없는 웃음을 흘렸다.
이야기가 이렇게 진행되다 보니, 자연스레 여섯 사람의 대화는 유성과 유환, 두 사람의 집안 이야기로 흘러갔다.
“그러고 보니 유사제의 본가가 유가장이라고 했지?”
“네, 사저.”
긴 머리를 하나로 묶은 사저의 질문에 유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자부심이 진하게 서려 있었다.
“두 사람을 처음 봤을 때부터 범상치 않은 가문의 자제들이란 건 알았지만, 설마 유가장의 사람들일 줄이야.”
“나는 첫 만남부터 알았지. 이 두 사람이라면 분명 큰일을 해낼 사람이라고 말이야!”
“호호, 정사형도 참. 그런 거야 모두가 알고 있었다고요.”
일행들의 대화가 이어질수록 두 사람의 콧대도 점점 높아졌다.
물론 이 두 사람이 아닌 가문을 향한 대한 칭찬이었지만, 두 사람의 머릿속에선 그 차이를 나누지 않았다.
그들의 머릿속에선 가문은 곧 자신이요, 자신이 곧 가문이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그렇게 다섯 명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던 그때, 대사형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형제는 두 사람뿐인가? 내가 문파 밖의 일은 잘 모르나, 유가장에 한 사람이 더 있다고 들었는데?”
멈칫.
대사형의 질문에 분위기가 순간 얼어붙었다.
마치 처음 안 것처럼 대화를 나누고 있었지만, 사실 다른 세 사람은 두 사람의 가문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화산파에 속가제자로 들어간 이유부터가 두 사람과 친분을 쌓기 위함이었으니 말이다.
그렇기에 그들은 절대 두 사람과 대화할 때 절대 꺼내면 안 되는 금구도 전부 파악하고 있었었다.
그리고 그런 금구중 가장 꺼내면 안 되는 말이 바로 또 다른 형제에 관한 이야기였다.
대사형의 말에 유성은 바로 얼굴을 일그러뜨렸지만, 자신의 감정을 숨길 줄 아는 유환은 달랐다.
물론 그도 조금 얼굴을 찡그리는 건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크게 티가 나진 않았다.
“하하하. 예에, 형···님이 한 분 있긴 하죠. 아니, 있었다는 게 좀 더 옳은 말이겠지만요.”
“허어···내가 하면 안 될 말을 꺼냈나 보군.”
유환의 말에 대사형은 바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태도에 그 형이라는 사람이 죽음 내지는 다른 끔찍한 일을 당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유환은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입을 열었다.
“아뇨, 대사형이 생각하시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아니, 어쩌면 맞을지도 모르겠군요.”
“그게 무슨 말인가?”
“그 사람은 저희가 화산으로 오기 한 달 전에 행방불명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소식 하나 들려오지 않고 있죠. 이리 말하는 건 가슴 아프지만, 저희는 이미···.”
“아, 됐네. 더 말할 필요 없네. 내가 너무 부주의하게 이야기를 꺼냈군. 사죄하겠네.”
진심으로 낭패한 얼굴을 보이는 사형에게 유환은 누가 봐도 억지로 짓는 웃음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습니다. 저희도 이젠 괜찮아졌으니까요.”
당연히 괜찮았다. 아니, 오히려 행복했다.
유현이 사라지고, 거기에다가 소식 하나 없다는 사실은 두 사람에게 좋다면 좋지, 나쁠 건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유환은 일부러 슬픔을 연기했다.
물론 다른 세 사람에게 좋은 인상을 보이기 위함도 어느 정도는 있었지만, 진짜 목적은 바로 눈앞의 대사형.
화산파 제일의 후기지수이자, 다음 매화검수(梅花劍手)로 가장 유력한 인물.
언젠가 화산파의 장문인 자리까지 노려봄 직하다는 평가를 받는 화산신룡(華山神龍) 도인현(道仁賢)에게 잘 보이고자 그런 연극을 한 것이었다.
“허어, 사형된 자로서 사제에게 좋은 말은 못 할망정, 가슴 아픈 일만 억지로 꺼냈구나. 이 사형이 사죄할 방법이 있다면 무엇이든 말하거라. 내 일처럼 도울 터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대사형.”
도인현의 말에 유환은 씁쓸함을 감출 수 없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그 아래에선 지금 입이 찢어지라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말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도인현의 말이다.
곧 매화검수에 임명될 것이 가장 유력한 제자의 말!
매화검수가 된다는 건 곧 최소 장로요, 최대 장문인까지 오를 수 있다는 뜻이니 지금 그가 약속한 한 번의 부탁은 곧 장로나 장문인에게 하는 부탁과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 약속을 받아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이제 휴식도 적당히 취했으니, 그만 일어나자꾸나.”
어색한 분위기가 길게 이어질 것을 직감한 것일까.
도인현은 아직 반 이상 남은 차를 한입에 들이켜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다른 이들의 잔에는 아직 어느 정도 차가 남아있었지만, 그것을 아깝게 여기는 사람은 없었다.
그들 모두가 화산파에 기부를 하고 올 만큼 이름있는 가문의 자제들인 만큼, 이런 싸구려 객잔에서 나오는 차는 그들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은 한껏 기대하고 있었다.
섬서제일가라는 유가장의 모습과 두 사람이 호언장담했던 접대를 말이다.
그렇게 화산파의 제자들이 떠나고, 주인장은 얼른 장사를 시작할 준비를 했다.
곧 화산파의 도사님들이 왔던 객잔이라면서 몰려올 손님들을 생각하면서.
*****
두 사람의 말대로 그들이 휴식을 취했던 객잔과 유가장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물론 여섯 사람 모두 무공을 익힌 덕에 보통의 사람보다도 빠르다는 이유도 한몫했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도착한 유가장의 앞에서 유성과 유환, 둘을 제외한 일행은 모두 입을 쩍 벌린 채 입구를 바라봤다.
“허어···.”
“흐음···.”
“참···크군···.”
정문의 크기는 곧 그 가문이 가진 힘의 크기와 다를 바 없다.
여기엔 그 건물 자체가 크다는 의미와 동시에 그만큼 커야 할 정도로 오고 가는 사람이나 물건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유가장의 정문 크기는 네 사람 모두 지금껏 본 적 없는 크기였다.
오직 황실의 직계만 드나들 수 있다고 하는 자금성의 정문이 여기에 비할까.
물론 그보다는 작아야 하겠지만, 그런 착각이 일 정도로 그들은 압도적인 크기 앞에서 경악하고 있었다.
“둘째 도련님과 셋째 도련님이 돌아오셨다!”
“돌아오셨다!!!”
쿠구구구궁!
하물며 그것이 움직이는 건 어떠한가!
무시무시한 굉음을 울리며 열리는 유가장의 대문은 마치 하늘이 갈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청난 위용을 자랑했다.
문 앞에서 수십의 장정들이 그것을 밀어내는 한편, 문 뒤에서는 그보다도 많은 장정이 문에 연결된 끈을 잡아당겼다.
누구라도 압도될 수밖에 없는 어마어마한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곳은 섬서성에서도 손꼽히는 유력가의 자제들도,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인 도인현에게도 똑같이 적용되는 말이었다.
“자, 들어가시죠.”
하지만 유환과 유성은 마치 그것을 당연한 양 다른 네 사람을 안으로 들였다.
유성과 유환. 두 사람에게도 이 광경이 익숙지 않은 건 마찬가지다.
본인들도 딱 한 번. 가문을 떠나 화산파에 들어갈 때 말곤 정문을 오간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두 사람은 최대한 감정을 절제했다.
이들 앞에서 놀라는 것도 멋없거니와, 곧 이 건물. 아니, 집안의 주인이 될 자들로서 겨우 정문 여닫는 것에 놀라는 건 어리석다 생각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계획이 맞아떨어졌는지, 도인현을 포함한 네 사람은 둘을 경외의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이 순간 정해졌다.
조금 전 그 광경이 그들의 머릿속에서 사라지기 전까진 이 두 사람의 위엄에, 정확히 말하자면 유가장의 위엄이겠지만, 눌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
물론 더 충격적인 사건이 생겨난다면 이야기는 다르겠지만.
“엇, 형님.”
희희낙락하며 가문 안을 구경시켜주던 유성이 유환을 불렀다.
“음? 왜 그러느냐?”
“저기, 저놈 말입니다.”
유성이 가리킨 방향으로 시선을 돌린 유환은 곧 한 명의 사내를 발견했다.
화산파에서도 손꼽힐 정도로 덩치가 큰 유성과 키는 비슷하지만, 몸집은 훨씬 호리호리한 사내.
하지만 두 사람이 그에게 시선을 집중한 건 그런 보기 드문 키 때문이 아니었다.
아직 앳된 기가 남아있는 그의 얼굴에서, 기억조차 하기 싫은 불쾌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불쾌감의 정체를 알아챈 건, 의외로 유성이었다.
“저 새끼···그놈의 전속 시종입니다.”
뒤의 네 사람에겐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한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하는 유성.
그랬다. 그들이 보고 있던 사내는 다름 아닌 유현의 전속 시종. 신기정이었다.
기억력이 딱히 좋지 않은 유성이 먼저 알아본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그를 괴롭히다가 유현에게 걸려 손이 찢어진 본인이니 말이다.
“으음, 그랬군. 아직도 우리 가문에 일하고 있었나?”
“제깟 놈이 어딜 가겠습니까? 여기라도 붙어있지 않으면 그놈처럼 객사나 당할 텐데요.”
“큭큭, 그 말이 맞긴 하지.”
유성의 말에 기분 나쁜 웃음을 짓던 유환은 좋은 생각이 난 듯 기정이를 바라보며 말했다.
“아, 그래. 마침 잘됐군. 저놈한테 길 안내나 시키지. 이젠 주인이라는 놈도 죽어버렸으니, 다른 시종들처럼 일해야지.”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형님. 어이! 거기!”
유환의 제안을 받아들인 유성은 바로 큰 목소리로 기정을 향해 외쳤다.
“···네? 저 말입니까?”
“여기 너 말고 누가 있단 말이냐! 얼른 오지 못할까!”
갑자기 자신을 부르는 유성에게 인상을 쓰면서도, 기정이는 그에게 다가갔다.
물론 기정이도 그에게 좋은 감정은 없었고, 다가가고 싶지도 않았지만, 혹시 방금 가문으로 돌아온 자신의 주인에게 해가 될까 그 말에 따른 것이다.
“어허! 너는 우리가 왔는데 제대로 인사조차 하지 못하느냐!”
“···어서 오십시오, 둘째 도련님, 셋째 도련님.”
유성의 호통에 입술을 깨문 채 고개를 숙이는 기정. 그의 뒤통수를 바라보던 유성이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지금 귀한 손님을 모시고 왔는데, 우리가 너무 오랜만에 가문으로 돌아와 새로운 것이 많이 생겨 헷갈리는 것이 많다. 그러니 네가 안내를 좀 하도록 하여라.”
유성의 이 말에는 기정이도 더 참을 수 없었다.
혹시 유현에게 누가 될까 싶어 인사까지는 하였지만, 그는 어디까지나 유현의 전속 시종.
그의 명령을 따를 이유는 하나도 없었다.
“죄송하지만 명령에는 따르지 못하겠습니다.”
“뭐얏?!”
그렇게 되자 난처해진 건 유성이었다.
정문 앞에서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만들어진 위엄이 깨져버릴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네놈이 감히 내 말을 듣지 않는 것이냐? 네 주인인 내 말을?!”
“제 주인님은 오직 한 분, 유현 도련님뿐입니다. 유성 도련님께선 제 주인이 아닙니다!”
“이미 3년 전에 행방불명돼서 죽은 사람이 어찌 주인이 될 수 있단 말이냐! 네가 날 놀리는 것이냐?”
“주인님은 행방불명되지도, 죽지도 않았습니다. 말씀을 삼가시지요.”
기정의 말에 뒤에 있던 도인현이 감탄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저토록 주인에 대한 충정이 가득하다니. 3년 전에 주인을 잃었음에도 충직함은 잊지를 않았구나.”
유성은 그의 말을 놓치지 않았다. 기정이 자신의 명령을 거절한 순간부터 도인현의 말에 모든 신경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더 위엄이 무너지면 안 된다. 그렇게 되면 도인현은 물론, 다른 세 사람에게도 우습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유성에겐 위엄을 살릴 계획을 짤 머리는 없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유환의 일이었고, 자신은 그걸 그저 따를 뿐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유성은 자신이 제일 자신 있는 행동을 했다.
“주인의 말을 듣지 않는 시종은 이 유가장에 필요 없다!”
폭력.
참을성 없는 유성이 화산파에 가기 전부터 제일 잘하던 행동이었다.
화산파에서 수련을 쌓으면서 그 폭력적인 성정이 조금은 가라앉은 듯 했지만, 과거에 원한이 있는 시종을 보자 그런 수련도 무색하게 바로 주먹을 휘둘렀다.
그 말과 함께 유성의 권이 기정에게로 쇄도했다.
만약 속가제자가 아니라 정식제자였다면 매화권사의 자리도 노려볼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 유성의 권이다.
무공 한 줄 익히지 못한 기정은 막기는커녕, 피할 수도 없는 공격.
갑작스러운 유성의 돌발행동에 놀란 건 기정뿐만이 아니었다.
형인 유환은 물론, 뒤의 세 사람. 그리고 도인현까지 경악했다.
아무리 시종이 말을 듣지 않았다고 하지만, 설마 무림인이 일반인에게 주먹을 휘두를 줄이야!
어떻게든 유성의 공격을 막아보려 했지만, 그 거리가 너무나도 멀었다.
검을 뽑으면 어떻게든 가능할 거리였지만, 그리했다간 시종을 지키다가 유성을 해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잠깐의 주저 사이, 유성의 주먹은 기정의 눈앞까지 다가갔다.
그리고 그 주먹은 기정의 머리를 깨부수···.
턱.
···지 못했다.
돌조차 부술 기세로 날아가던 유성의 주먹은 기정의 머리 근처에도 다가가지 못했다.
그 둘 사이에 끼어든 누군가의 손.
그것이 유성의 손을 꼭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3년 만에 봤는데도 어찌 너는 하는 짓이 이리도 달라진 게 없느냐?”
그리고 그 손의 주인을 본 세 사람의 반응은 다양했다.
그를 보며 감탄하는 기정.
그를 보며 경악하는 유성.
그를 보며 분노하는 유환.
하지만 세 사람의 입에서 나온 대상은 모두 같았다.
“유현!”
"도련님!"
“오랜만이다.”
씩.
유현이 두 사람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돌아왔다.”
< 화산 제일의 후기지수(1)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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