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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26화 (26/185)

< 현정표국(1) >

“저, 저랑 일이요?”

“그래. 3년간 국경지대에서 종군하는 동안 많이 생각했거든. 가문으로 돌아오면 뭘 해야 할까, 하고 말이야.”

가문으로 다시 돌아오긴 했지만, 그렇다고 예전처럼 얹혀살 생각은 없었다.

옛날이야 가진 게 없고, 내 능력도 미천해서 어쩔 수 없었다지만, 이젠 달라졌다.

돈도 충분히 모았고, 구멍이 많던 계획도 이젠 완벽하게 보강했다.

“나도 이젠 나만의 사업을 하나 시작해보려고.”

“네 사업을 말이냐?”

내 말을 옆에서 가만히 듣고 계시던 아버지께서 놀란 목소리로 묻자, 나는 몸을 돌려 아버지에게 대답했다.

“네. 옆에서 아버지의 모습을 지켜보고 자라왔던지라, 그쪽으로 흥미가 가는 건 어쩔 수 없더군요.”

“허어, 그러느냐.”

아버지의 대답은 간단했지만, 당신의 짧은 수염을 계속해서 쓰다듬는 모습에서 지금 심정이 어떠신지 대충이나마 알 수 있었다.

내 성장을 대견해 하시는 동시에, 과연 내가 사업을 잘 이끌어 갈 수 있을지 무척 걱정하고 계신다는 걸.

유가장은 옛날부터 어디 한 업종에만 국한되지 않고 여러 사업을 벌였지만, 할아버지 전까진 동네 갑부 이상은 되지 못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우리 가문의 사업체를 물려받으시며 이야기가 달라졌다.

천재적인 사업 감각을 가지고 계시던 할아버지는 주루와 객잔 두 개만 운영하고 있던 유가장의 사업을 크게 키웠고, 동시에 다른 사업으로 확장까지 시켰다.

덕분에 아버지는 수십 개의 가게와 천하를 상대로 거래하는 대상단을 물려받게 되었다.

그리고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에게 철저한 상업 교육을 받은 아버지께선 그 사업을 잘 이끌어가는 건 물론, 거기서 더 크게 키우셨다.

덕분에 우리 유가장은 섬서제일가라 불리게 되었다.

“그래서, 무엇을 할 생각이냐?”

“저도 할아버지나 아버지처럼 여러 사업을 벌일 생각이지만, 지금 생각하고 있는 건···표국(驃局)입니다.”

내 말에 아버지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뜨시더니, 나를 향해 물었다.

“표국, 표국이라···이유를 알 수 있겠느냐?”

“앞으로 여러 사업을 벌이기 위해선, 역시 전국의 상황을 아는 게 제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가장 잘 알 수 있는 건 천하 각지를 떠도는 표국이고요.”

거기에 다른 속셈도 있긴 하지만, 그걸 아버지에게 말씀드릴 순 없었다.

내 말을 들은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이시면서도, 걱정이라는 듯 이마에 주름을 새기며 입을 열었다.

“괜찮겠느냐? 다른 모든 사업이 힘들기는 매한가지지만, 표국은 특히 처음이 힘들다.”

“네, 알고 있습니다.”

표국은 다른 어떤 업종보다도 초임자가 발을 들이밀기 어려운 곳이다.

갓 일을 시작한 초보한테 귀중한 화물을 맡기려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그 화물을 싣고 나를 쟁자수나 표사도 구하기 힘들다.

어디 그뿐인가.

다른 표국이 몇 푼 내고 지나갈 산적과도 맞상대해야 할 것이고, 마을에 도착해도 먹고 잘 숙소를 찾기 위해 땀내 나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괜히 신생 표국이 제대로 크지 못하고 사라지는 게 아니다.

이만한 일을 모두 처리할 수 없는 표국은 결국 도태해 버리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하지만 그 모든 게 내게는 해당 사항이 없었다.

“일신상의 무력도 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거니와, 위험을 회피할 수 있는 자금도 두둑합니다.”

“으음···그 두 가지가 무엇보다 중요하긴 하지.”

“그리고 어떤 사업을 하던, 결국 어려움은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제일 어렵고 힘든 일을 가장 먼저 해결하고 싶습니다.”

싱긋. 나는 아버지에게 자신감이 담긴 미소를 보여주며 대답했다.

“시작하기도 전부터 목표를 낮췄다간, 결국 죽도 밥도 안 될 테니까요.”

“허어, 네가 그리 생각한다면···알겠다. 네 생각이 그리 확고하니, 내가 반대할 이유는 없구나.”

“감사합니다, 아버지.”

팡팡!

아버지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내 등을 힘차게 두드려주셨다.

마치 내게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듯한 당신의 행동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숙이고, 옆을 돌아봤다.

“그래, 기정아. 네 생각은···.”

“네! 네네네네! 무조건, 무조건하고 싶어요!”

내가 말을 다 끝내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고 눈을 반짝이며 대답하는 기정이.

“방금 아버지의 말씀을 들었으니 알고 있겠지만,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그만한 각오는 되어있느냐?”

“3년 전 도련님이 저를 전속 시종으로 받아주셨을 때부터 앞으로 도련님을 보좌하면서 살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 정도 위험에 도련님의 제안을 포기한다면 제가 어찌 사내대장부라 불리겠습니까?”

쿵!

자신의 가슴을 강하게 두드린 기정이는 나를 바라보며 외쳤다.

“설사 죽더라도 도련님 옆에서 죽는 게 제가 원하는 겁니다! 부디 함께 갈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래, 알겠다. 네 각오는 충분히 들었다.”

녀석. 3년 동안 꽤 남자다워졌는데?

[그러게. 이 정도면 믿고 맡길 만하겠어.]

이미 내 계획을 알고 있던 화순이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기정이의 대답을 들은 나는 지금까지 기정이를 맡아 준 총관을 향해 물었다.

“총관님. 제가 기정이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습니까?”

“허허, 여쭤보실 필요가 뭐가 있겠습니까. 원래 도련님의 전속 시종이었던 아이고, 본인도 이리 원하는데요. 제가 3년간 잘 가르쳐놨으니, 도련님이 하시는 일에 방해되진 않을 겁니다.”

“감사합니다, 총관님.”

역시 떠날 때 총관에게 맡긴 게 좋은 선택이었다.

그 울보 꼬맹이가, 이렇게 어엿한 남자가 되다니.

“그럼 표국 일은 언제부터 할 생각이냐? 표국으로 쓸 건물은 구해뒀느냐?”

기정이를 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띠고 있던 내게 아버지께서 질문을 던졌다.

물론 아버지의 질문에 대한 답변도 모두 미리 생각해뒀다.

“오면서 표국으로 쓸만한 건물을 몇 개 봐둔 것이 있습니다. 그중 비어있는 건물을 사들여서 임시로 표국으로 쓰고, 땅을 사들여서 건물을 지을 생각입니다. 쓰던 건물은 창고로 쓰고요.”

“허허, 오기 전부터 계획을 다 세워둔 것이냐?”

“네. 미리 계획을 짜놓지 않으면, 본래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위험도 생기는 법이니까요.”

아버지는 내 대답에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매사에 미리 계획을 전부 짜 두시고 움직이시는 분인 만큼, 내 대답이 곧 아버지의 생각이나 마찬가지였겠지.

“그렇다면 네 첫 고객은 이 아비가 되어도 되겠느냐?”

“네? 아버지께서요?”

“본래 첫 표행을 받기가 제일 어려운 법이니 말이다. 이 정도면 선물의 대가로 충분치 않겠느냐?”

아니, 오히려 차고 넘친다.

수십 개의 사업체를 거느린 만큼, 우리 가문에서 오가는 물건의 양은 말 그대로 어마어마하다.

하지만 그 대부분은 이미 가문에서 운영하는 표국을 통해 운송하는 게 대부분이다.

이미 다른 일을 하느라 일손이 부족하거나, 신강이나 세외같이 표국의 지부를 두기 힘든 곳에 무언가를 보내거나 할 때만 다른 표국을 이용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선 그 일거리 중 일부분을 내게 맡기시겠다고 말씀하신 거다.

첫 표행은 표국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일.

그 일을 사기당할 위험 따윈 전혀 없는 고객에게 받을 수 있다는 건 다른 표국에서는 감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커다란 행운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아버지의 제안에 바로 고개를 숙이고 감사를 표했다.

“아버지의 선물, 거절하지 않겠습니다.”

“허허, 다행이구나. 이것까지 거절하면, 네가 돌아온 기념으로 내가 무엇을 줘야 할지 더 고민했어야 했을 테니 말이다.”

웃으며 내게 대답한 아버지는 바로 총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총관.”

“예, 가주님.”

“유현이가 표국을 개업하고 나면 의뢰를 맡기도록 하게. 가능한 이 아이가 원하는 성으로 하는 게 좋겠군.”

“예. 준비해놓겠습니다.”

아버지의 명에 총관은 고개를 깊이 숙이며 대답했다.

이걸로 첫 표행을 안전한 고객에게 받을 수 있는 건 물론, 내가 원하는 장소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전혀 상상치도 못한 이득이었다.

“그럼 슬슬 들어가서 쉬어라. 돌아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 피곤할 텐데, 내가 너무 오래 잡아두었구나.”

“아닙니다. 3년간의 회포를 풀 수 있어서 피곤한 줄도 몰랐습니다. 그럼, 소자는 먼저 일어나보겠습니다.”

아버지에게 인사를 올리곤 조용히 방을 빠져나왔다.

긴 여행으로 몸은 피로했지만, 마음은 오히려 편안하기 그지없었다.

이래서 고향이고, 자기 집이라 하는 건가.

전장에서는 단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던 편안함이었다.

···종종 나와 마주친 시종들의, 귀신을 보는 듯한 시선만 없다면 더 좋았겠지만 말이야.

[푸하하하! 손이라도 한 번 흔들어 주는 건 어때? 지금 시종들 시선만 보면 대경실색하며 도망쳐 버릴 것 같은데?]

···진짜로 그럴 것 같으니까 닥쳐.

[그래도 다행이네, 네 아버지가 기뻐해 줘서.]

화순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다행이지. 뭔지 몰라서 선물로 드리는 게 과연 좋을까 좀 고민했는데, 그렇게 귀한 보석이라니···.

[아니아니, 그거 말고.]

화순은 중간에 손을 흔들며 내 말을 끊더니, 웃으며 말했다.

[네가 돌아온 것에 진심으로 기뻐해 줘서 말이야.]

···그러게.

아버지의 태도가 너무 당연해 보여서 느끼지 못했다.

옛날에 그토록 갈구하던 것이, 이젠 이토록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다니.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사이 어느새 도착한 내 방.

문을 열고 들어서자, 3년간 아무도 사용하지 않았다곤 믿기 힘들 만큼 깔끔한 실내가 날 반겼다.

탁자 위에 내가 가져온 짐이 있는 걸 봐선, 금방 청소를 끝낸 듯했다.

겉옷을 벗어 던지고 침상으로 몸을 던졌다.

군대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푹신한 침상이 내 몸을 부드럽게 감쌌다.

겨우 집으로 돌아왔지만 내가 할 일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기 전에 짜고, 군대에서 보완까지 한 계획의 첫 발걸음은 지금부터였으니까.

하지만 지금은···조금의 휴식 정도는 괜찮겠지.

눈을 감고 쏟아지는 잠에 온몸을 맡기자, 곧 졸음이 찾아왔다.

마치 앞으로 있을 힘든 일을 위로하듯, 부드럽고, 또 따스하게.

*****

집으로 돌아온 지도 어언 2주가 흘렀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오면서 봤던 건물 중 비어있는 곳이 있었고, 그곳을 구매하는 것도 일사천리로 끝냈다.

물론 건물을 수리하고, 또 표국으로 쓰기 편하게 바꾸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했지만, 어차피 그동안은 아버지에게 받은 표행을 진행하면 되니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표국 앞. 나는 표행을 준비하고 있는 기정이에게 물었다.

“준비는 다 끝냈냐, 기정아?”

짐을 나르는 사람은 나와 기정이 밖에 없었다.

어차피 짐도 그리 많지 않아서 다른 사람은 추가로 고용하지 않고 기정이와 나만 다녀오기로 했기 때문이다.

물론 짐의 양이나 가는 동안 할 일을 생각했을 때 나만 다녀오는 게 제일 편하긴 하지만, 나중에 일을 맡길 때를 대비해서 기정이를 같이 데리고 갈 생각이었다.

단 한 번이라도 표행을 경험해봤느냐와 아니냐의 차이는 클테니 말이다.

“네! 짐도 마차에 다 실었고, 여행에 필요한 것들도 전부 챙겼습니다!”

“그래, 고생했다.”

씩씩하게 대답하는 기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내 앞에 선 커다란 마차와 수레를 바라봤다.

장정 여덟 사람은 누울 수 있을 만한 커다란 수레와 그 위에 잔뜩 쌓인 짐.

그리고.

피히힝~

힘 빠지는 울음소리를 내는 노새만 한 말 한 마리까지.

이것이 우리의 첫 표행에 가져갈 짐의 전부였다.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우리가 들고 갈 짐을 보고 있던 기정이의 시선이 수레를 끌 말로 향하더니, 이마를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정말 이 녀석으로 괜찮을까요? 그냥 주인 어르신의 말씀대로 말을 빌리시는 게 좋지 않을까요?”

“표행을 의뢰해주신 것만으로도 적지 않은데 어찌 말까지 빌릴까. 그럼 내 표행이 아니라, 아버지의 표행과 다를 게 없다.”

“그건 그렇지만···.”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마라.”

툭툭.

나는 말의 옆구리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 녀석보다 힘센 말은 어디에도 없을 테니 말이다.”

이 말은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었다.

3년간 군에 종군하며 수많은 군마와 북해의 명마들을 봐왔던 나도, 이보다 힘 좋고 튼튼한 말을 본 적이 없었으니까.

당장 내가 여길 떠날 때 타고 갔던 말이 와류 세 번을 버티지 못할 때, 이 녀석은 2년이나 내 와류를 버텨왔으니까.

중원 제일이라고 딱 잘라 말은 못 하겠지만, 최소한 세 손가락 안에는 들어간다고 자부하고 있었다.

물론 만약을 대비해서 중간에 말을 살 대금은 두둑이 들고 갈 생각이지만.

그리고 뭣하면 내가 짐을 들고 뛰어가도 되지.

절대 없어지지 않는 2갑자짜리 내공 두고 뭘 하겠어?

이것도 써줘야지.

[얌마. 권능이 그런 짓 하라고 있는 게 아니거든?]

불퉁한 얼굴로 불평하는 화순을 무시한 채 나는 수레에 올랐다.

“자! 현정표국(賢正?局)의 표행이다!”

“표행이다!”

내 옆에서 웃는 얼굴로 내 말을 따라 하는 기정이.

언젠가 이렇게 외치는 표국 사람들이 수백은 되길 바라며, 고삐를 꽉 잡았다.

그렇게 우리의 첫 표행이 시작되었다.

< 현정표국(1)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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