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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20화 (20/185)

< 치료비(2) >

“태양적석이요?”

그녀의 말에 나는 창의 날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이 작은 태양이라고 알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열을 뿜어내는 붉은색의 수정 창날.

누가 그리 지었는진 모르겠지만, 참으로 잘 어울리는 이름이었다.

“네. 스스로 열을 낸다는 남만의 보물이지요. 한 번 들어보시겠습니까?”

공주의 말에 나는 바로 창을 향해 손을 뻗었다.

사실 그녀가 말을 하기 전부터 이미 창을 잡고 싶어서 몸이 달아올라 있었다.

처음 그 창을 봤을 때부터 그것이 얼마나 뛰어난 무구인지 한눈에 알아봤기 때문이었다.

쇠로 된 창대에 손을 대자, 가까이 다가가기도 힘들 정도로 강렬하던 열기가 씻은 듯 사라졌다.

“어떠신가요?”

“이건···엄청나군요.”

내게 감상을 묻는 공주에게 내가 할 수 있던 대답은 이게 유일했다.

그리고 그것만큼 이 창을 표현할 수 있는 단어도 없었다.

내가 지금 쓰는 철혼(鐵魂)도 절대 수준 떨어지는 무구는 아니다.

아니, 오히려 3년간 와류를 버텨냈다는 점에서 무척 뛰어나다고 할 수 있었다.

지금껏 내가 사용했던 다른 창들은 모두 와류 한 번에 산산조각이 나버렸으니까.

하지만 지금 내가 들고 있는 창은 그 철혼조차 한 수. 아니, 세 수는 아래에 둘 만큼 엄청난 무구였다.

“이 창대···만년한철(萬年寒鐵)이 섞여 있군요.”

창날에서 느껴지는 열기 때문에 한 번에 알아보진 못했지만, 열기에 적응하자 바로 알 수 있었다.

“네. 많은 양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섞여 있습니다. 태양적석을 감당하려면 그 정도는 돼야 가능하거든요.”

확실히 그만한 열기를 버티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철혼의 재료이자, 보통 철보다 훨씬 단단한 묵철(墨鐵)도 이 열기에는 버틸 수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검 무게에 백분지 일만 섞어 넣어도 명검을 만들 수 있다는 만년한철을 겨우 창대를 만드는 데 쓰다니.

그것만으로도 이 태양적석의 가치를 알 수 있었다.

아니, 사실 공주의 이런 설명조차도 필요 없었다.

[·········.]

자기가 아는 게 나오면 떠드느라 바쁜 화순이 입을 쩍 벌린 채로 태양적석을 바라만 보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창을 꽉 쥔 채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에게 물었다.

“저한테···이걸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본래대로라면 북해빙궁에 선물로 보냈을 물건입니다. 그것을 오히려 충성스러운 병사에게 상으로 줄 수 있으니, 저희 황실에도 큰 이득입니다.”

“감사합니다, 공주 마마!”

그녀에게 큰 목소리로 감사를 표하며 고개를 숙였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짜 감사.

이만큼 귀한 물건을 준 사람에게 당연히 튀어나오는 반응이었다.

“기뻐하신다니 다행이네요. 아, 참. 이 상자도 꼭 챙겨가세요. 가지고 다닐 땐 열기가 느껴지지 않지만, 손에서 놓으면 열기를 뿜어내니까요. 그때 이 상자가 꼭 필요할 겁니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보상은 총사령관님을 통해서 내리도록 조치하였습니다. 제가 병에 걸렸다는 사실도, 그걸 치료했다는 사실도 밝히긴 힘들어 한 조치였으니 이해하여 주시길 바랍니다.”

“다, 다른 보상이요?”

이것 말고도 더 준다고?

나는 영약 세 개에 이 창이면 치료비로 차고 넘친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녀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다.

믿기 힘든 소식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성하 공주를 바라보자, 그녀는 오히려 당연한 일인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아까도 말했지만, 본래 저를 치료해 줄 북해빙궁에 보낼 선물이었습니다. 폭풍단장이 저를 치료해줬으니, 보상을 주는 건 당연한 일이지요.”

그 말인즉, 본래 빙궁에 가져다줄 선물을 나한테 다 준다는 건가?

국가와 국가 간에 주고받는 보물을, 일개 개인인 나에게?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켰다.

“괘, 괜찮겠습니까? 제가 그걸 다 받아도···.”

“만약 폭풍단장이 처음부터 치료비를 요청했다면, 딱 그 정도만 드렸겠지만.”

싱긋.

“치료비 책정을 안 하셨으니 제가 드리고 싶은 만큼 드렸습니다. 그러니 더 거절하지 마시지요.”

“아, 예. 알겠습니다.”

어우, 웃으며 말씀하시는데 왜 이렇게 소름이 돋냐.

그녀의 진지한 눈빛에 나도 더 말을 꺼내지 못하고 그저 고개만 끄덕였다.

[뭐, 어때. 그냥 마음 편하게 받아들여. 공주님이 주고 싶다는 데 그 이상 거절하면 그게 더 예의에서 벗어나는 거야.]

그래, 내가 구한 사람이 누군데. 마음 편하게 먹자.

이건 당연한 보상인 거야.

그렇게 마음을 먹자 터질 듯이 뛰던 심장도 조금은 본래대로 돌아왔다.

···그래도 여전히 미치도록 뛰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말이다.

“이걸로 제가 폭풍단장을 부른 용건은 다 끝났네요. 폭풍단장은 제게 더 하고 싶으신 말씀 있나요?”

더 하고 싶은 말?

건강하세요? 아프지 마세요? 꼭 어의에게 가보세요?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이 보물은 제가 잘 쓰겠습니다?

그녀에게 하고 싶은 여러 가지 말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그중 입에서 튀어나온 건.

“둘과 셋을···조심하십시오.”

전혀 의외의 말이었다.

[야! 너?!]

“둘과···셋이요?”

“아, 음, 저기···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내가 지금 뭔 말을 하는 거야.

이런 말 한다고 그녀가 알아듣고 이황자와 삼황자를 어떻게 막아내기라고 할 것 같냐?

정신 차려라, 유현아!

“황실로 돌아가시면 꼭 어의한테 진맥을 받아보십시오. 제가 치료를 하긴 하였으나, 진맥을 볼 수 있는 건 아닌지라 다른 후유증을 파악하진 못하였을 수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돌아가서 바로 휴식을 취하시는 것도 잊지 마시고요.”

“아···네, 알겠습니다.”

[휴우···인마,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깜짝 놀랐잖아.]

아까 내 말에 살짝 당황했던 성하 공주도 이번에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고, 깜짝 놀랐던 화순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이거면 된 거야.

미래는 이미 충분히 바꿨다.

이제 그녀는 황실로 돌아갈 테고, 일황자의 머리라 불리던 그녀가 있는 이상 이황자와 삼황자도 경거망동하지 않겠지.

그거면 충분히 그녀도 살아갈 수 있고, 일황자도 무사히 황제가 될 수 있다.

어머니의 그 한 마디를 사실로 만든 것.

그거면 내가 할 일은 다 했다.

“그럼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

“네, 살펴 가세요.”

미소로 나를 배웅하는 그녀에게 다시 깊숙이 고개를 숙이고 집무실을 빠져나갔다.

[으휴, 내가 너 때문에 못산다, 못살아. 어떻게 거기서 그런 이야기를 하냐?]

몰라. 나도 모르게 툭 튀어나왔다고.

고개를 흔들며 타박하는 화순에게 변명하듯 대답했다.

사실 나도 그런 말이 왜 튀어나왔는지 정말로 모르겠다.

분명히 그냥 잘 지내세요, 수준의 말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말이지.

정말 왜 그런 말이 입에서 나온 건지. 순간 내 혀가 내 것이 아닌 줄 알았다.

내 말에 정말 못 말리겠다는 듯 고개를 좌우로 흔들던 화순이 입을 열었다.

[바로 말을 바꿔서 그나마 다행이지. 다음에도 이런 일 있으면 그땐 나도 정말 모른다?]

설마 뭔 일 있겠냐. 걱정하지 말라고. 그걸로 알아듣는 게 더 이상하잖아.

[그건 그렇지. 그리고 그걸로 어떻게 알아듣겠냐. 그냥 너가 잠깐 미친 줄 알겠지.]

그래, 그것참 희망적이네.

얘는 맞는 말도 참 기분 나쁘게 하는 재주가 있어.

내가 째려보는 것도 완전히 무시하던 화순은 마치 무언가 생각난 듯 주먹으로 손바닥을 내려치더니 날 바라보며 물었다.

[아, 참. 이번에 받은 보물론 뭐할 거냐?]

글쎄. ···고향으로 돌아가서 뭐 할지 계획이나 짜볼까? 평생 가문에만 있을 것도 아니고, 이 정도면 내가 생각하던 계획도 이룰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흐흐, 그것도 재밌겠네. 나도 도와줄게. 내가 마교를 경영하던 천마를 많이 봐온 거 알지?]

···설마 우리 사업장 방해하는 인간들은 다 때려 부숴라, 이런 거를 경영 방법이라고 말할 건 아니지?

[오호, 역시 너도 마교인이구나. 내 말을 바로 딱 알아듣네.]

휴우···미친놈아.

[어?! 왜?! 이게 진짜 제일 좋은 방법이라니까?]

내 미래 사업 이야기는 네 대가리를 고치면 이야기해보자.

그렇게 나와 화순은 미래에 무엇을 할지 이야기를 나누며 방으로 돌아갔다.

조금 전에 있었던 조그마한 사건 하나는 이미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상태였다.

*****

유현이 떠나간 집무실.

거기서 성하 공주는 방금 유현이 내뱉었던 말을 되뇌고 있었다.

“둘과 셋···이라···.”

“공주님.”

공주의 명령으로 자리를 비웠던 단무혁이 돌아온 것도 그때였다.

“아, 단무혁. 어서 와요. 그건 보내고 왔나요?”

“명령하신 대로 보내고 왔습니다. 오늘 내로 황궁으로 당도할 겁니다.”

“그거 다행이네요. 수고했어요.”

“아닙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산뜻한 미소를 보이는 공주의 모습에 단무혁의 속이 행복함으로 가득 차올랐다.

이토록 밝은 공주님의 미소를 보는 게 얼마 만인가.

그녀를 치료해 준 유현에게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깊은 감사를 표한 단무혁이 다시 본래의 자리인 그녀의 뒤로 향했다.

그렇게 다시 자신의 얼굴을 보는 사람이 아무도 남지 않자, 공주는 아까의 그 심각한 표정으로 다시 고민했다.

‘그는 그걸 알고 말한 것인가.’

자신이 방금 보낸 종이 한 장.

그것이 황실에 도달하는 순간, 황실에는 피바람이 불기 시작한다.

그 이유야 당연히, 이황자와 삼황자 때문이었다.

자신의 아버지, 황제가 나날이 쇠약해져 가는 모습은 그녀에게도 큰 고통이었다.

어쩌면 자신의 지병 때문에 생긴 마음의 병으로 그리 아파하시는 게 아닐까, 하고 죄책감까지 들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곧 그것이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어느 날, 황실의 주방에 있던 관리에게서 보고받은 정체를 알 수 없는 흰색 가루.

처음에는 소금이나 설탕이라 생각했지만, 곧 생각이 바뀌었다.

그것이 오직 아버지의 식사에만 들어간다는 사실에 의심을, 그것이 들어가기 시작한 일시가 아버지가 쇠약해진 시기가 비슷하다는 사실에 확신을 느꼈다.

그리고 그것의 정보를 얻기 위해 여기, 국경지대에 들렸고.

‘총사령관님의 도움 덕분에 특별한 음식과 조합하면 독성을 발휘하는 무색, 무미, 무취의 독이 북해에 있다는 증거는 찾았다.’

여러 가지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것이 이황자와 삼황자의 파벌에 흘러 들어갔다는 증거도.’

처음에는 그녀도 그것을 사실이라 받아들일 수 없었다.

당연한 일이다.

아무리 권력에 미치더라도 어떻게 자신의 가족에게, 그것도 아버지에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다는 건가?

하지만 그녀의 명석한 두뇌와 파면 팔수록 쏟아지는 증거는 그것을 더욱 확고한 사실로 만들어주기만 할 뿐이었다.

그래서 방금 그녀는 지금껏 모아왔던 모든 정보를 자신의 오라버니인 일황자에게 보냈다.

마침 그녀에게는 황실 제일의 전서응(傳書鷹)도 있었다.

본래는 북해빙궁에서 치료가 끝나면 그녀가 완쾌했다는 걸 알리기 위한 용도로 가져왔던 거지만, 지금은 그럴 필요가 없었으니 원하는 대로 마음껏 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전서응이 돌아가는 순간, 이제 이황자와 삼황자는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받게 되겠지.

설사 황제의 자식이라고 해도 감출 수 없는 죄악에 대한, 죽음이라는 벌을.

하지만 공주의 머릿속에 그런 건 벌써 지워져 있었다.

그녀의 머릿속에서 그 일은 이미 끝난 일이었으니까.

지금 그녀의 머릿속을 채운 건 딱 하나.

유현이 떠나기 직전, 그녀에게 했던 말이었다.

둘과 셋.

이황자와 삼황자.

과연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는 무언가를 알고 있는 것일까?

마음 같아선 그를 추궁하여 진실을 캐내고 싶었지만, 그는 자신을 치료해 준 은인이었으며, 심문할 증거도 너무나 부족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녀의 이성이 반대했다.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마음의 다른 한편엔···어쩌면···.

‘아니.’

그녀는 고개를 흔들었다.

왜 이미 불가능하다고 확정된 일에 이토록 매달리는 것인가.

그저 한순간의 착각이자, 우연일 뿐이다. 이런 것에 더는 신경 쓰지 말자.

그녀는 마음속 깊이 그렇게 다짐하며, 다시 머릿속에서 그 생각을 지웠다.

그녀의 머릿속에 남은 건 딱 하나.

곧 황실에 닥쳐올 피의 숙청과, 그것이 끝난 후 자신의 오라버니가 걸어갈 길을 옆에서 보좌하는 일뿐이었다.

< 치료비(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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