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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능으로 무림최강-19화 (19/185)

< 치료비(1) >

‘공주님은 좀 어때?’

내공으로 막힌 혈맥이 없는 걸 다시 한번 확인하며 묻자, 그녀의 안색을 살피던 화순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딱히 문제는 없어 보여. 아까 두 번째로 기와 혈맥이 부딪혔을 때 기절한 것 같은데, 지금은 숨이 고른 걸 보니 잠에 빠져 있나 봐.]

‘다른 후유증은 없어?’

[일단 내가 보기엔 없어. 물론 제대로 된 의원에게 가서 맥을 짚어봐야겠지만 말이야.]

‘그건 황실 어의님이 어련히 잘해주시겠지.’

거기서부턴 진짜 의원이 할 일이다.

내가 할 일은 이제 다시 혈맥이 막히지 않도록 혈도를 제대로 청소하는 것만 남았다.

혈맥을 막고 있던 탁기의 대부분이 와류에 쓸려나간 덕분에 할 일은 많지 않았지만, 전신세맥을 꼼꼼히 살피느라 조금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그사이에도 공주는 깨어날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아무래도 생각보다 깊게 잠이 든 모양이다.

그러고 보니 막힌 혈중 하나가 수면에 중요한 태충혈(太衝穴)이었나.

구음절맥이 보통 태어날 때부터 가지는 지병임을 생각하면, 아마 이렇게 편안히 잠드는 건 지금이 처음이겠지.

좋은 숙면은 회복에도 중요하니, 지금은 깨우지 않는 편이 낫겠다.

“치료는···다 끝난 건가?”

나와 공주의 안색이 좋아진 걸 확인한 걸까.

떨리는 목소리로 묻는 총사령관에게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네. 다 끝났습니다.”

“그럼, 공주님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총사령관의 뒤에서 단무혁이 조심스레 질문을 던졌다.

이미 안색에서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지만, 그녀를 치료하던 내게 확답을 받고 싶은 모양새였다.

“이제 괜찮습니다. 막힌 혈맥은 모두 뚫었고, 거기에 있던 탁기도 모두 지워냈습니다.”

“그, 그 말은?!”

“네. 이제 더 이상 공주마마는 구음절맥으로 고통받을 일은 없습니다.”

“오, 오오오!”

내 대답에 무릎을 꿇고선 기쁨의 눈물을 쏟아내는 단무혁과, 그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함께 기쁨을 공유하는 총사령관.

그리고 그런 그들의 앞에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나까지.

그래도 정말 다행이다.

만약 이 백옥같은 피부를 가진 공주님을 해하기라도 했다간, 황실 모독죄를 묻기 이전에 두 사람에게 무슨 해코지를···.

···잠깐만.

백옥같은 피부?!

번뜩!

이제야 알아차렸다.

내가 손을 대고 있던 등 부분의 삼베옷이 모두 날아갔다는 사실을.

아니,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사람의 육신은 물론, 강철조차도 갈아버리는 게 와류다.

그런 와류가 아무리 작은 규모라지만 9개나 휘몰아쳤는데, 그 얇은 삼베옷이 버틸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다.

즉, 지금 내 손바닥은 직접 공주의 등에···.

그것을 자각하고 손을 떼려다가, 바로 다시 붙였다.

지금 이 광경을 둘에게 보여줬다간 어떻게 될까?

···어떻게 되긴 뭘 어떻게 돼.

당연히 잡혀서 광장 가운데서 참수당하겠지.

공주마마의 맨몸을 본 것도 대죄인데, 거기에 손을 대다니.

황실 모독죄가 문제가 아니다. 이걸 들키기라도 했다간 진짜 대역죄인 되는 거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직접 내공이 닿은 부분만 헤집어진 모양인지, 두 사람이 보고 있는 앞부분은 그대로라는 정도였다.

이 상태로 완전범죄를 위해선···.

두 사람에게 공주의 등이 보이지 않도록 조심스레 그녀를 눕히고, 어느 정도 감정을 진정시킨 두 사람에게 말을 건넸다.

“지금 공주님에겐 조용한 상황에서의 휴식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저희는 자리를 비우고, 공주님이 기침(起枕)하실 때를 대비하여 시녀를 몇 데리고 오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아, 그래, 그리하지.”

총사령관과 단무혁은 내 말에 별다른 의심 없이 고개를 끄덕이곤 몸을 일으켰다.

내가 휴식을 취해야 한다고 해서 그런지, 가까이 와서 공주의 안색을 살피는 일은 하지 않았다.

이제 여기서 완전범죄로 넘어가기 위해선···.

“총사령관님.”

“음?”

방 밖으로 빠져나온 나는 안도하고 있던 총사령관에게 말했다.

“곧 공주님의 몸에서 탁기가 섞인 땀이 나올 겁니다.”

“탁기가 섞인···아, 알겠네. 내 전속 시녀면 되겠나?”

내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직접 무공을 익히진 않았지만, 무림에 관심이 많았던 총사령관이기에 탁기가 섞인 땀은 냄새가 고약하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공주. 아니, 그 이전에 여성에게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는 건 알려져 봐야 좋을 게 없는 일이다.

그래서 그걸 남에게 밝히지 않을 사람에게 그 뒤처리를 시키려고 하는 거고.

“네. 그 아이라면 조용히 처리해 줄 겁니다.”

“좋아. 그럼 지금 바로 불러오도록 하지.”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바로 내가 원하던 것이기도 하지.

그녀라면 공주의 옷이 뚫려 있었다는 사실 역시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완전범죄를 꿈꾸며 음흉한 미소를 짓고 있던 내 뒤로 갑자기 들려오는 단무혁의 목소리.

“유 대협.”

···뭐?

방금 이 인간이 뭐라고 한 거야?

지금까지 들어본 적 없던 칭호가, 전혀 예상외의 인물에게서 튀어나왔다.

휙!

몸을 돌려 단무혁을 마주하자, 그가 무언가를 참으려는 듯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있는 게 보였다.

그는 내와 시선이 마주치자 바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일순간 유 대협을 의심했던 저를 용서해주십시오.”

또 그 호칭.

회귀 전후 통틀어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대협이라는 호칭에 내가 반응을 못 하는 사이, 단무혁의 옆에서 둥둥 떠다니던 화순이 입가에 장난스러운 미소를 걸친 채로 말했다.

[너보고 대협이란다, 대협. 캬! 유현이 많이 컸네! 공주의 호위님한테 대협 소리도 듣고!]

야 이, 안 그래도 심란한데 놀려먹냐?

마음속으로 있는 욕, 없는 욕 모두 화순에게 날리던 도중, 앞에서 들려오는 훌쩍이는 소리.

그 소리에 깜짝 놀라 우리 두 사람은 단무혁을 향해 시선을 집중했다.

“유 대협께서 없으셨다면, 공주님은···.”

떨궈진 고개 아래에서 계속해서 떨어지는 물방울과 점점 흐려지는 말끝.

그 두 가지 상황만으로도 지금 그가 어떤 심정인지 절절히 느껴졌다.

[야, 이 인간···충심 하나는 정말 제대로네.]

화순까지 감탄하게 할 정도의 충심.

그가 공주를 생각하는 마음 하나만은 진심이었다.

“그저 제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 어리석은 단 모를 또 부끄럽게 만드시는군요.”

내 말에 다시 고개를 든 단무혁은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물론 눈과 볼에는 숨길 수 없는 눈물 자국이 길게 그려져 있었지만, 그는 그걸 숨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말했다.

“공주님도 치료되셨으니, 저희는 곧 황궁으로 돌아가겠지요.”

확실히, 이런 혼란스러운 정국에 황실 밖에 나왔다는 것 자체가 무리인 일이다.

일이 다 해결된 만큼, 최대한 빨리 황궁으로 돌아가야겠지.

“만약 북경에 오실 일이 생기면 이 단무혁을 꼭 찾아주십시오. 이번에 있었던 실수를 바로잡고 싶습니다.”

호오, 금군의 젊은 기재의 초대라?

거기에다가 눈앞의 그는 보통 금군도 아니다.

다름 아닌 공주의 호위로 임명될 만한 사람이다.

황제의 금지옥엽 옆에 있는 걸 허락받은 만큼 대단한 가문의 자제일 확률이 높다.

그만한 사람의 초대라면 내게 손해될 일은 없겠지.

나는 바로 고개를 숙이며 그에게 대답했다.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꼭 한 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전 이제 복귀 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음? 괜찮겠습니까?”

항상 공주 옆에 붙어있던 사람이 웬일로?

내 질문에 그는 부드럽게 미소지으며 대답했다.

“지금 누구보다도 믿을만한 분이 옆에 있는 데 걱정할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말한 단무혁은 잘 부탁한다며 고개를 숙이고선 총사령관이 떠난 방향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믿을만한 분, 인가.

[그러시다는데, 어떤 느낌이냐?]

그가 자리를 뜨는 걸 보고 있던 화순이 나를 돌아보며 물었다.

어떤 기분이냐니. 그야 당연히···.

“나쁜 기분은 아니네.”

그래, 그렇겠지. 그런 느낌이 드는 웃음을 지으며, 화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총사령관이 시녀를 데리고 오는 그때까지, 공주가 잠들어있는 방 앞을 지켰다.

*****

성하 공주는 그날 하루 내내 잠에 빠진 채로 보냈다.

혈맥을 타통 하는 건 그녀에게도 큰 피로를 불러일으키는 일이었거니와, 고통이나 걱정 없이 잠드는 것도 오랜만이었을 테니 당연한 일이겠지만.

그리고 다행스럽게도 그녀에 관해 이상한 소문이 나돌지도 않았다.

땀 냄새가 심하다던가, 옷에서 등 부분이 없어진 상태이었다거나···뭐, 그런 소문 말이다.

[최소한 네 목이 날아갈 일은 없어졌다는 거지.]

그래, 참으로 천만다행이지.

하루를 잠으로 꼬박 보낸 그녀는 다음 날 나를 총사령관의 집무실로 불렀다.

“아, 어서 오세요, 폭풍단장.”

책상 앞에 앉아 나를 맞이하는 성하 공주의 안색은 어제보다도 훨씬 밝아 보였다.

“몸은 좀 어떠십니까?”

“괜찮아요. 어제 하루 동안 푹 자고 일어나서 그런지, 어느 때보다도 상쾌한 기분이에요.”

마치 꽃처럼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의 얼굴에는 한점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다행스럽게도 어제 와류가 혈맥을 뚫고 지나간 것에 대한 후유증은 없어 보였다.

“그러시다니 다행이군요. 하지만 북경으로 돌아가시면 바로 어의에게 진맥을 한 번 받아보십시오. 저도 찾지 못한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네, 꼭 그러도록 하지요.”

그렇게 대답한 그녀는 자신이 방금까지 보고 있던 종이에 무언가를 적더니, 뒤에 있던 단무혁에게 내밀며 말했다.

“단무혁. 이걸 지급 전서로 황실로 보내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그걸 조심스레 받아든 단무혁은 바로 고개를 깊이 숙이더니, 빠르게 집무실 밖을 나섰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내게 눈으로나마 인사를 보내는 건 잊지 않았다.

공주 한 사람 치료한 거로 이렇게 사람을 대하는 게 바뀌다니.

정말 공주 지상주의인 사람이구나. 누가 저 사람을 공주의 호위로 두기로 정했는진 모르지만, 정말 제대로 정했다.

“참으로 의외지요?”

“네?”

단무혁이 열고 떠난 문을 가만히 바라보던 내게 공주가 넌지시 말을 건넸다.

“그가 저와 다른 사람 둘만 남도록 하다니. 얼마 전.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믿기 힘든 일이었지요.”

“하, 하하. 그가 보내주는 믿음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싱긋.

아무 말 없이 그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하는 그녀.

“그러하다니 다행이네요. 아, 그리고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의 초대를 받았다면서요?”

“아, 네. 어제 치료를 끝내고, 잠깐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 그런 이야기를 나왔습니다.”

“그는 황실에 오랫동안 충성을 바친 명문 무가, 단씨세가의 장자예요. 그의 초대가 당신에게 손해가 될 일은 없을 거예요.”

[···높은 사람인 줄은 알았는데, 이거 상상을 초월했는데.]

나도 의외다.

어느 정도 명성 있는 가문의 아들이라곤 생각했지만, 설마 대장군까지 여러 번 배출한 적 있는 명문가, 단씨세가의 장자일 줄이야.

이거, 북경을 가볼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는데?

“그리고.”

하지만 그것에 정신이 팔려있을 겨를은 없었다.

뒤이어 들려오는 공주의 목소리에 다시 그녀에게 정신을 집중했다.

“저를 치료해 준 것에 대한 대가를 드리고 싶은데요.”

이거다! 공주의 말에 나는 마음속으로는 환호를 지르면서도, 겉으로는 최대한 평정을 가정하며 입을 열었다.

“괜찮습니다, 공주마마. 작게는 황제 폐하의 병사요, 넓게는 명의 백성으로서, 황실을 수호한다는 당연한 일을 하였을 뿐인데 어찌 개인의 이득과 영달을 바라겠습니까.”

“말이라도 그리 해주니 고맙네요. 하지만 죄를 지은 자에게 벌을 내리듯, 공을 세운 자에겐 상을 내리는 건 당연한 순리. 제가 주려는 상을 거절하려 하지 마세요.”

“공주마마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그저 가문의 무궁한 영광으로 알고 겸허히 상을 받아들이겠습니다.”

내가 그리 말하며 고개를 숙이자, 옆에서 화순이 감탄한 목소리로 말했다.

[캬아! 연기력 봐라! 넌 역시 군부대보단 극단에 들어가야 했던 것 같다. 이 정도면 황실 극단에도 한자리할 수 있었을 텐데!]

···원래 뛰어난 정보요원은 연기력도 좋아야 하는 법이야.

[뛰어나긴 무슨. 삼류 말단 정보요원이.]

어허! 정보 모으는 건 일류 단장 부럽지 않았다고!

마음속으로 화순과 투덕거리던 그때, 위에서 공주의 맑고 고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드세요, 폭풍단장.”

그녀의 말에 지체하지 않고 고개를 들자, 지금껏 비어있던 책상 위에 기다란 상자가 하나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이것은···?”

“한 번 열어보세요.”

“아, 네. ···읏!”

그녀의 말에 지체하지 않고 상자를 여는 그 순간, 나를 덮쳐오는 강력한 열기!

처음 권능을 각성했을 때와 비견될만한 뜨거움에 바로 손을 들어 얼굴을 가렸다.

“이, 이건?!”

“저의 병을 늦춰줄 수 있는 유일한 물건이자, 북해에 선물로 가져가려 했던 물건 중 제일 귀한 것이지요.”

어느 정도 열기에 익숙해지자, 그제야 나는 팔을 내리고 상자 안에 담긴 물건을 볼 수 있었다.

“이건···창?”

“네, 맞아요.”

싱긋 웃으며 내 말을 받은 그녀가 설명했다.

“오직 남만(南蠻)에서만 구할 수 있다는 태양적석(太陽赤石)으로 날을 만든 창입니다.”

< 치료비(1)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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