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음절맥(2) >
유현을 찾아갔던 그 날 밤.
성하 공주는 숙소의 옥상에 올라와 있었다.
한여름임에도 후덥지근한 느낌은 없었다.
오히려 선선한 바람이 북측에서 끊임없이 불어오고 있었다.
괜히 북해에 제일 가까운 곳이 아니구나.
북경의 황성에서도 경험해보지 못한 독특한 경험에 그녀는 입가에 미소를 그렸다.
“공주마마.”
한창 선선한 바람을 즐기던 그녀의 뒤에서 사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걱정이 가득 담긴 목소리.
그것만으로도 그녀는 그가 누군지 바로 알 수 있었다.
“총사령관님.”
“벌써 밤이 늦었습니다. 슬슬 잠자리에 드시지요.”
“어머,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나요? 하늘 구경에 빠져서 시간이 흐르는 것도 몰랐네요.”
“허허, 이해합니다. 저도 벌써 여기에 10년을 넘게 있었지만, 북해의 밤하늘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지요. 저도 잠이 오지 않는 날엔 밤하늘을 종종 지켜보곤 합니다.”
“네, 정말 아름답네요.”
그녀의 말에 거짓은 없었다.
매일 등불을 켜놓는 북경과 달리, 북해에선 밤에 불을 켜지 않아 별이 무척 잘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잠자리에 들지 않는 이유가 꼭 그것만은 아니었다.
“···역시 걱정이 크신가 보군요.”
그리고 그녀를 오랫동안 모셔왔던 총사령관은 그걸 한눈에 알아차렸다.
“당연한 일이지요. 저는 그에게 많은 걸 맡겼습니다.”
“소환단 수준의 영약 세 가지라···허허, 만약 그 친구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이런 부탁을 했다면, 애초에 다 알고 부탁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겁니다.”
성하 공주의 치료를 위해 황실은 북해빙궁에 줄 여러 공물을 그녀와 함께 보냈다.
그리고 우연하게도, 그중에서 영약이라 불릴 만한 건 딱 세 가지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늘 유현이 부탁한 것 역시 영약 세 개.
정말로 알고 부탁한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묘한 우연이었다.
단무혁은 유현이 자신들을 속이려는 게 분명하다고 길길이 날뛰었지만 말이다.
“···총사령관님이 다 알려주신 건 아니고요?”
“허어, 이 충신을 믿지 못하시는 겁니까?”
총사령관의 섭섭하다는 듯한 말투에 그녀는 피식, 웃음을 내뱉었다.
장난스러운 말투. 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진짜였다.
사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절대로 그가 그럴 리가 없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꺼낸 이유가 있었다.
“그럼 왜 그의 말을 믿었나요?”
유현의 말에 단무혁이 불신을 표했다면, 총사령관은 그와 반대로 무한한 신뢰를 보였다.
“이미 황실 어의도 자신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라 하였고, 중원의 신의들도 절세의 영약이 없다면 힘들다 하였습니다. 지금 저희가 가려던 북해도 이제는 전설로 내려오는 이야기라 성공할 수 있을지 자신들도 모른다고 하였고요. 하지만, 한 단의 단장. 아니, 일반 병사가 자신은 가능하다 한 걸 총사령관님은 진심으로 믿으시더군요.”
그녀가 선뜻 그에게 영약을 내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만약 총사령관까지 그의 말에 난색을 보였다면, 그녀는 바로 제안을 거절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총사령관은 그러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정말로 그것을 가능케 할 수 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하기까지 했다.
“그때 보여준 총사령관님의 표정을 생각하면 그가 그런 능력이 있다는 걸 미리 아는 것 같진 않았습니다.”
“네, 맞습니다. 저도 처음 알았지요. 뛰어난 친구인진 알았지만, 그렇게나 다재다능할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왜 그를 믿은 거죠?”
처음 그를 신뢰할 땐 그 이유가 이해됐다.
전장에서 그는 정말 전신이라는 말이 부끄럽지 않을 정도로 미쳐 날뛰었으니까.
북해에 데리고 갈 호위로 그를 추천했을 때도 이해했다.
북해의 말에 능통한 사람은 희귀하고, 그중 무예가 출중한 자는 더더욱 드물다. 그보다도 지금 그녀에게 필요한 사람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어떻게 지금 이 순간에도 그에게 그토록 무한한 신뢰를 줄 수 있는 거죠?”
그녀는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총사령관으로서 누구나 받아들이는 넒은 아량을 가졌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선이 있었다.
그 선을 넘으면 누구보다도 아껴 주지만, 그 안에 들어간 사람은 극소수였다.
성하 공주가 아는 사람이라고 해봐야 겨우 셋.
자신과 자신의 오라버니인 일황자. 그리고 그의 최측근인 일장군 정도였다.
그런데 겨우 만난 지 3년밖에 안 된 일반 병사를 그 경계 안에 넣었다?
아니, 그걸 넘어서서 자신이 모시는 사람을 맡길 정도로 깊게 신뢰한다고?
그것이 그녀에겐 믿기 힘들었다.
하지만 총사령관은 마치 동쪽에서 해가 뜬다는 것처럼, 너무나 당연한 걸 이야기하듯 말했다.
“그가 기적을 보여줬으니까요.”
“기적···이요?”
“절대로 이길 수 없는 전투에서 승리하고,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는 사선에서 돌아오며, 절대로 구할 수 없는 사람을 구해오지요. 그 친구는 그런 친구입니다. 항상 기적을 불러오는 친구죠.”
총사령관은 처음 유현을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갑자기 쳐들어온 북해의 5만 대군을 상대하기 위해 국경부대 전원이 나서서 싸웠던 그때를.
전투는 치열했다. 아니, 처절했다.
병사와 장군의 경계 따윈 없었다.
오직 적과 아군만 있을 뿐.
칼을 들고, 창을 쥐고 적을 찌른다.
방패를 들어, 시체를 들어 그것을 막는다.
그것만을 끝없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북해에 너무나 깊숙이 들어와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탈출을 시도해보려 했지만 때는 이미 너무 늦었다.
북해에서 자신은 이미 현상금까지 걸릴 정도로 유명인사였고, 북해의 언어도 할 줄 몰랐으며, 현재 위치도 몰랐다.
자신이 여기서 살아 돌아갈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 그때.
“괜찮으십니까, 장군님?”
“자, 자네는···?”
“국경지대의 병사. 유현이라고 합니다.”
그가 나타났다.
그리고 일 개월 뒤.
두 사람은 국경지대의 성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말 그대로 기적이라고밖에 말할 수 없는 생환이었다.
그리고 그 뒤로도 그는 꾸준히 기적을 만들어냈다.
그렇기에 총사령관은 믿고 있었다.
“그라면 이번에도 기적을 보여줄 거라고 말입니다.”
“그렇···군요.”
그의 말에 성하 공주는 말끝을 흐렸다.
기적, 기적이라.
“그가 정말로 기적을 불러주는 사람이라면 좋겠군요.”
“그럴 겁니다.”
총사령관은 그녀의 말에 대답하며 푸근한 미소를 지었다.
“제게 그랬던 것처럼, 공주님에게도 기적을 일으켜 줄 겁니다.”
“후후, 고마워요.”
그에 마주 웃어준 성하 공주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슬슬 몸이 차게 식어가고 있었다.
한여름의 찬바람이 반가워 너무 오랫동안 맞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았다.
“그럼 슬슬 들어갈까요?”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먼저 숙소로 들어가자, 총사령관이 그녀를 호위하듯 뒤를 따랐다.
그렇게 보는 사람이 모두 떠나갔음에도, 북해의 밤하늘은 여전히 반짝이고 있었다.
*****
공주에게 치료를 제안한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에서 일어난 나는 침상 끝에 가부좌를 튼 채 심호흡을 하고 있었다.
운기조식은 아니다.
권능은 저절로 내공을 회복시켜 줬기에 운기조식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저 마음의 안정을 찾기 위한 행동일 뿐이었다.
“흐읍, 후우.”
[긴장되냐?]
“그럼 당연히 긴장되지. 안 되겠냐?”
심호흡하던 도중 화순이 던진 말에 발끈해서 대답했다.
얘는 무슨 당연한 얘기를 하냐.
“실패하면 황실 모독죄로 내 목이 날아갈지 모르는데, 긴장이 안 될 리가 있냐?”
[그럼 애초에 말을 꺼내지 말던가. 아무리 권능이 대단해도 실패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건 아니라고 했잖아.]
“그래서 그 실패할 가능성을 줄이려고 영약을 받은 거 아냐.”
권능은 기본적으로 임무를 수행해야지만 나에게 내공을 준다.
그런 임무의 대부분은 누군가와 싸우는 것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권능을 처음 얻었을 때 누군가와 결투를 치러야 한다거나, 아니면 그걸 해결하고 나온 절정 고수와의 대결 같은 것 말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임무가 전혀 없는 건 아니다.
지금 내가 영약을 부탁한 이유도 바로 그런 임무 때문이었다.
영약 하나당 내공 10년. 단, 내공을 얻을 수 있는 건 세 번까지만.
이 임무 덕분에 나는 세 가지의 전혀 다른 성질을 가진 영약을 무사히 섭취하고, 총 30년의 내공을 얻을 수 있었다.
“영약을 먹는 임무가 있어서 진짜 천만다행이지. 아니면 다른 거로 30년 내공을 보충해야 했을 테니까”
[공주님이 딱 세 개를 가지고 있던 것도 그렇지. 아니었으면 내공이 부족했을테니까 말이야.]
“그렇지. 그런데 왜 딱 세 개밖에 안 해주는 거야? 좀 더 해줘도 되지 않냐?”
[어허! 이건 어디까지나, 싸움으로 내공을 얻기 힘든 후대 천마들을 위한 초대 천마님의 배려야, 배려! 그걸 막 쓰려고 하면 안 되지!]
왠지 초대 천마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열변을 토하는 화순의 말을 뒤로한 채 다시 정신 통일에 들어갔다.
자기 말을 더 듣지 않는 걸 깨달은 화순은 하던 말을 멈추고 쳇, 혀를 한 번 차고 입을 열었다.
[그래도 여전히 위험하다는 건 잊지 마. 그걸로도 모자랄지 모르니까.]
그답지 않은 걱정 가득한 말투.
그의 말대로였다.
2갑자는 어디까지나 치료를 위한 최소 조건일 뿐.
만약 그녀의 몸 상태가 나나 화순이 예상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면 그보다도 내공이 더 필요했다.
하지만 내겐 확신이 있었다.
“그 정도로 심각했다면 빙궁에서도 치료할 엄두를 못 냈겠지.”
하지만 그녀는 치료에 성공했고, 북해의 왕비로 나타나 명나라를 정복해나갔다.
완벽하게 치료에 성공하지 못했더라면 불가능할 일이었다.
그것을 믿고 나는 이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에 도전하는 것이다.
누군가가 성공했다면, 나 역시 성공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그래, 그 말이 사실로 이루어지길 비마. 네가 없어지면, 나도 다시 영원한 침묵에 빠져야 할 테니까.]
“걱정하지 마.”
삐걱.
숙소의 문을 열고 나가며 화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네가 더 말할 것도 없다 싶을 때까지 떠들게 해줄 테니까.”
공주의 숙소는 총사령관의 숙소 옆에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서자, 성하 공주와 함께 단무혁과 총사령관의 모습이 보였다.
“오셨군요.”
“네. 잠은 푹 주무셨습니까?”
“조금 잠을 설치긴 했지만, 피곤하진 않아요.”
“그거 다행이군요. 피곤하면 혈도가 막혀 있어서 치료가 힘들 수도 있거든요.”
웃는 얼굴로 나를 반갑게 맞이해준 공주와 일상적인 대화를 나눴다.
아무런 이유 없는 대화, 는 아니다.
오히려 꼭 필요한 대화라 할 수 있었다.
[긴장이 풀리면 혈도도 이완되지. 단 일 푼이라도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선 그런 것도 잊지 말고 챙겨야 해.]
화순은 내 행동에 고개를 끄덕이며 엄지를 들었다.
내가 제대로 행동했다는 뜻이다.
“그럼 침상 위에 앉아주시겠습니까?”
“네, 알겠어요.”
그녀는 내 말에 따라 순순히 침상 위로 올라가 앉았다.
이미 여러 번 다른 의원에게 치료를 받았기 때문일까.
공주라는 직위에 어울리지 않게 그녀는 내 말에 잘 따라줬다.
이 역시 좋은 징조다.
내 말을 따라 준다는 건, 나를 믿는다는 거니까.
하지만 긴장의 끈을 놓아선 안 된다.
구음절맥의 치료는 절대로 한순간에 끝낼 수 없다.
마치 천칭 위에 있는 얇은 무게추를 하나, 하나 들어 반대편에 옮기듯 천천히 움직여야만 했다.
균형이 치료 쪽으로 기울긴 했지만, 여전히 반대편에도 상당한 무게가 남아있다.
“그럼 치료를 시작하겠습니다. 치료는 반 시진 정도 걸릴 겁니다.”
“그렇게 오래 걸리오? 더 짧게 할 순 없소?”
단무혁의 날 선 질문에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대답했다.
“그것도 짧게 잡은 겁니다. 북해빙궁의 치료법대로 치료를 했다면, 열흘은 꼬박 걸릴 정도니까요.”
“크흠,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군.”
열흘이 걸린다는 말에 그도 더 따지지 못하고 물러났다.
그의 심정이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니다. 그녀의 선택에 따라 치료를 진행하고 있지만, 호위인 그로선 외부인이 그녀와 접촉하는 건 최대한 피하고 싶어 할 테니까.
하지만.
“치료가 시작되면 그때부터는 제 말을 끊거나, 방해하지 말아 주십시오. 한 번의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참사를 낼 수 있으니까요.”
“아, 알겠소. 조심하도록 하지.”
지금은 그걸 이해해주고 있을 겨를은 없었다.
나는 목숨까지 걸고 이 일을 벌이고 있었으니까.
얇은 마의(麻衣)로 가려진 그녀의 등 뒤에 양 손바닥을 붙였다.
맨살에 직접 손을 대고 치료하는 게 좀 더 효율적이긴 했지만, 여인의, 그것도 공주의 맨몸에 손을 댈 순 없었기에 부득이하게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
“치료 중에 조금 고통스러울 순 있지만, 가능한 입을 여는 건 삼가십시오.”
“네, 그리하겠습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우웅.
눈을 감고 기를 끌어모아 그녀의 육신으로 보냈다.
그녀의 몸으로 넘어간 기는 혈도를 따라 그녀의 전신세맥(全身細脈)으로 흩어졌고, 그를 통해 나는 그녀의 몸 전부를 관조(觀照)할 수 있었다.
그러자 막힌 혈맥이 하나둘 눈에 띄기 시작했다.
[확인된 혈도부터 네 내공을 보내. 하지만 명심해. 절대 먼저 혈맥을 뚫으려 해선 안 돼. 모두 모이면 그때 시작해야 한다.]
나와 똑같은 걸 보고 있던 화순이 한 말에 나는 남들 모르게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북해빙궁의 방법과 내 방법의 차이점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빙궁의 치료법은 2갑자 이상의 내공을 가진 고수가 막힌 혈맥을 하나 뚫고, 빙궁의 보물인 빙정(氷精)으로 혈도를 굳혀 막히지 않도록 만든다.
그것을 구 일간 반복하여 하나씩 혈맥을 뚫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빙정으로 혈도를 완전히 굳혀서 더 이상 맥이 막히지 않도록 한다.
그렇기에 북해의 치료법은 총 열흘이란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 수중엔 빙정은 없고, 구할 방도도 없다.
하지만 내겐 아무리 써도 넘쳐나는 내공이 있다.
[기억해. 혈맥 앞의 혈도에 2갑자의 내공이 모두 쌓이고 나서 시도해야 해. 실패했다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할 거야. 그것도 훨씬 단단해진 혈맥을 상대로 말이야.]
화순의 경고에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꾸준히 혈도로 내공을 보냈다.
내공은 쓰는 그 순간 다시 보충되고, 그걸 또 혈도로 보낸다.
그것을 여러 번 반복하자, 내가 원하는 만큼의 내공이 아홉 개의 혈맥 앞에 모였다.
이제 제일 중요한 순간이다.
[한 치의 오차도 있어선 안 돼. 한 번 막힌 혈맥과 네 기가 부딪히는 순간, 순식간에 다른 혈맥이 수축해서 네 내공을 막아설 테니까.]
가장 최악의 상황이 바로 그것이었다.
지금 내겐 치료를 위한 최소한의 내공밖에 없었다.
만약 여기서 혈맥을 막는 힘이 더욱 강해진다면, 내게 뚫을 방법은 없었다.
[하나, 둘···.]
그의 말에 맞춰 살짝 뒤로 밀어낸 내공을.
[···셋!]
한 번에 몰아넣는다!
쾅!
부딪히는 순간 느껴지는 강렬한 충격과 그녀의 몸속에서 흩어지는 내공.
그리고 그 순간 깨달았다.
[이, 이런!]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안 뚫렸다!]
화순의 다급한 목소리에 피가 날 정도로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뭐가 문제냐? 어디가 잘못됐지? 무엇 때문에 실패했냐?
답은 금방 나왔다.
한순간의 주저.
그것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다.
더 뒤로 밀어내서, 더 강하게 밀어붙여야 했다. 그랬다면 뚫을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녀의 몸을 너무 아꼈다. 후유증이 남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주저해버렸다.
그런 안일한 생각이 사태를 키웠다.
쿵!
순식간에 다시 들어찬 내공으로 다시 한번 혈맥을 두드렸다.
아까보다 더 뒤에서, 가속도까지 받아 더욱 강하게.
하지만.
컥!
“공주님!”
“공주마마!”
두 사람의 비명에 나는 바로 앞에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화순을 불렀다.
화순! 어떻게 된 거야?
[공주가 피를 토했어! 색깔을 보아 혈맥에 고여있던 죽은 피 같긴 하지만, 또 비슷한 충격을 받으면 그땐···.]
그는 거기서 말을 멈췄지만, 뒤이어 나올 말은 쉬이 예상할 수 있었다.
으득.
이빨이 으스러지라 꽉 물며, 다시 내공에 집중했다.
하지만 상황은 시시각각 최악으로 향해가고 있었다.
[안 돼! 더 막힌다!]
이미 두 번이나 공격당한 혈맥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더욱 단단해졌고, 그로 인해 원래 조금씩이라도 흘러가야 할 그녀의 기도 정체되기 시작했다.
이젠 그녀가 낫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죽느냐 사느냐를 걱정해야 할 최악의 상황.
이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은 딱 하나밖에 없었다.
[너, 무슨?!]
화순이 경악하는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마구 울렸지만, 무어라 말할 겨를 따윈 없었다.
와류.
그것도 총 9개의 와류를 조종하느라 온 정신을 다 하고 있었으니까.
만약 내 예상보다 공주의 혈맥이 더 심하게 막혀 있다면 사용할 수단이었는데, 설마 이렇게 사용해버릴 줄이야.
하지만 지금은 앞뒤 가릴 상황이 아니었다.
[···넌 정말 여러모로 미친놈이구나.]
지금 내가 하려는 행동에 한 마디를 덧붙이는 화순.
거기에 담긴 웃음기를 그는 숨기지 못했다.
[어디 한번 하고 싶은 대로 해봐, 이 또라이야!]
콰아아앙!!!
화순의 말과 동시에 막힌 혈맥을 향해 파고드는 9개의 초소형 와류!
더없이 단단해진 혈맥은 일순간 폭풍조차 견뎌내는 듯 보였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한순간의 착각일 뿐.
아무리 단단해졌다고 해도 인간의 힘으론 폭풍을 막을 순 없었다.
언제 자신이 내 기를 막았냐는 듯 순식간에 뚫려버린 혈맥은 다시 막힐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전신혈맥에 기를 한 번 돌려보고, 전부 말끔하게 뚫려있는 걸 확인한 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마지막 도박수가 제대로 먹혔들었다. 오히려 내 예상보다도 그녀의 치료는 완벽했다. 막혀있던 9개의 혈맥은 물론, 나머지 혈맥에 쌓여있던 탁기도 모두 없애버렸으니 말이다.
앞에서 공주의 안색을 살피던 화순이 만면에 미소를 띄운 채 말했다.
[정말로 치료해버렸구나.]
감탄한 목소리로 내 성공을 축하하는 화순.
내 능력에 대한 감탄이냐? 아니면 내 미친 짓에 대한 감탄이냐?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냐? 이 미친놈아!]
쳇, 후자구나.
여기선 칭찬 한마디 해주면 어디가 덧나냐.
내 질문에 화순은 입가가 찢어져라 함박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칭찬이야, 이 미친놈아.]
< 구음절맥(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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