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 국경부대(2) >
총사령관이 회의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당 만 명의 병사를 총괄하는 장군 다섯 명과 그들을 보좌하는 참모. 그리고 사실상 병사를 관리하는 천인장 대표 다섯까지.
그들의 경례를 받으며 가장 상석에 앉은 총사령관은 자신의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참모장에게 물었다.
“이번 적의 규모는 얼마 정도 되지?”
“현재 정찰병의 보고에 따르면 최소 8천 이상, 많게는 1만에 가까운 병력이 집결해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1만이라···한여름치곤 많군.”
총사령관의 침음성 섞인 말에 다른 장군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일 년의 대부분을 전쟁으로만 보내는 이곳 북방 국경지대에서 유일하게 전투가 뜸한 달이 바로 이런 한여름이었다.
북해의 전사 대부분은 배운 무공 때문에 움직이기 힘들었고, 평상시 높은 지구력과 힘을 가진 북해의 말들도 더위에는 크게 약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달은 몰라도 더위가 가장 심해지는 한 달 동안은 휴전에 가까운 상태로 지내곤 했다.
그래서 이번 적의 공격에는 많은 이들이 큰 충격에 휩싸여 있었다.
“적의 구성은 어떻게 되어있지?”
“음···그것이···.”
“무슨 문제라도 있나?”
평상시 질문하면 바로 답을 꺼내던 참모장답지 않게 말을 끌자, 총사령관은 그를 바라보았다.
“그것이···지금 적의 구성이 너무 중구난방으로 섞여 있어서 그렇습니다.”
“섞여 있다고?”
“네. 현재 적의 전열(前列)을 지키고 있는 건 방패를 들고 있는 순병(盾兵)입니다. 그런데 흔히 전열을 순병으로 두면 중열(中列)이나 후열(後列)을 궁병(弓兵)으로 두기 마련인데, 기이하게도 이번 적들은 검병(檢兵)을 주력으로 두고 있습니다.”
“흠···검병이라···.”
“더욱 기이한 건 최후열(最後列)에 대기하고 있는 기마병(騎馬兵)입니다. 보통 북해의 전법에선 기동성이 안 좋은 순병을 함께 쓰지 않는데, 이번 적은 정반대의 구성을 띄고 있습니다.”
“확실히 기이하군···그럼 적의 부대장은 누구지? 부족기(部族旗)의 형태는 어떠한가?”
“현재 자신을 적의 부대장이라 부르는 자가 전면에 있지만, 지금껏 한 번도 등장한 적이 없는 자입니다. 그리고 부족기도 현재 없는 거로 보입니다.”
“본 적 없는 자에, 깃발도 없다? 거기에다가 보통 전투를 치르지 않는 한여름에 나타나다니···도대체···.”
참모장의 이야기에 인상을 쓰고 있던 장군 중 하나가 조용히 중얼거렸다.
다른 이들도 말로 꺼내지만 않았을 뿐, 그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중이었다.
그런 그들의 모습에 총사령관은 이마를 찌푸렸다.
마음 같아선 호통을 지르며 기운을 북돋아 주고 싶었지만, 지금은 그러기도 힘들었다.
매일 치열한 전투를 겪는 북해 국경부대에서 여름은 중요한 휴식 시간이다.
이 한 달로 다른 11개월을 버틸 힘을 보충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그런 중요한 시간에 정체를 알 수 없는 대규모의 적을 만났으니, 사기가 높을 리 없었다.
차라리 한창 싸움을 벌이고 있을 겨울이었다면 피로도는 높을지라도 모두가 최선을 다해 싸웠을 텐데.
총사령관은 마음속으로 한숨을 내쉬며 좌중을 둘러봤다.
대부분 사기가 떨어진 상태. 만약 지금 이런 상태로 전투에 나가려면 같은 만 명으로는 부족했다.
안 그래도 병사 한 명, 한 명의 수준이 높은 북해의 전사다.
그런 상황에서 이렇게 사기도 떨어진다면, 두 배의 병력 차로도 그 간격을 줄일 수 없을지 모른다.
하지만 그보다 더 많은 인원을 전투에 참여시켰다가 큰 피해를 보면 이번 여름은 휴식도 제대로 취하지 못한 채 보내버릴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다음 겨울의 전쟁은···.
펄럭! 모두가 절망에 빠져 있던 그때, 회의장이 문이 큰 소리를 내며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했다.
상체나 겨우 가릴 푸른색 갑주와 등 뒤에 두 자루의 창을 메고 있는 사내.
그의 등장에 조금 전만 해도 어두웠던 회의장의 분위기가 거짓말처럼 순식간 쇄신됐다.
마치 그가 지금 모든 일을 완벽히 해결시켜주기라도 할 것처럼 말이다.
“유 단장!”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습니다.”
출입구에서 가장 가까이 있던 천인장의 부름에 유현은 고개를 숙여 사과하곤 제일 말석에 있는 자신의 자리를 찾아갔다.
그는 자신이 늦었다는 것에 사과했지만, 거기서 그를 탓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늦기를 바라기라도 했던 것처럼 눈을 반짝이면서 그를 바라봤다.
“상황은 이미 알고 있겠지?”
그리고 그건 총사령관이라고 마냥 다르지 않았다.
믿음과 기대, 두 감정이 절절히 섞인 목소리로 총사령관이 유현에게 질문을 던지자,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탁자 위에 있던 물병을 향해 손을 뻗었다.
“네. 부하 몇과 성벽 위에서 잠시 적의 상황을 파악하고 왔습니다.”
“알아낸 건 있나?”
“적들의 병력은 우수리를 빼고 9300명 정도 됩니다. 2천의 순병이 후방을 제외한 삼면을 막고 있고, 그 안에 7천의 검병이 대기하고 있죠. 3백의 기마병은 최후열에서 사태를 관망하고 있지요.”
물로 적당히 입을 축인 유현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그중 순병은 서쪽 지방에서, 검병은 동쪽 지방에서 온 것으로 보입니다.”
“서쪽 지방과 동쪽 지방? 그 말은 서로 다른 두 부족이 연합하여 쳐들어왔다는 것인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참모장의 질문에 유현은 고개를 흔들었다.
“보통 순병을 운용하는 부족의 경우 자신의 소속을 알리기 위해 방패에 부족 징표를 그려놓는데, 이번에 나타난 적은 그런 게 없이 깔끔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갓 만든 방패를 급하게 가져왔다기엔 이미 몇 번이고 전투를 치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럼 그들의 정체가 뭔가?”
“아마 멸족한 부족의 일원 자신의 문장을 지우고 방황하다, 검병이 주력인 부족에 합류한 것이겠지요.”
“허어, 그랬군. 그래서 잘 어울리지 않는 순병과 검병이 함께 있는 것이었어.”
“그럼 새로 합류한 부족의 징표를 그리면 될 텐데, 왜 그 징표도 아직 그리지 않은 건가?”
참모장이 고개를 끄덕이는 사이, 중간에 있던 삼 장군이 유현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아직 그들에게 징표가 없기 때문이지요.”
“징표가 없다고?”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자신을 부족장이라 칭하여 나타난 자에 대해선 모두 보고를 들으셨을 겁니다.”
유현의 말에 회의장 안의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몇 해가 넘게 북해와 싸우고 있는 만큼,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부족의 부족장 정도는 북방 국경부대에서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등장한 자는 그런 그들의 정보에도 없던 완전히 새로운 자였다.
무려 만 명에 가까운 병력을 부리는데도 정체를 파악할 수 없는 기이한 적.
“그가 이끄는 기마병의 수준으로 보아, 놈은 북해빙궁(北海氷宮)의 사람으로 보입니다.”
유현은 그런 적조차 이미 파악하고 돌아온 것이었다.
“북해빙궁?”
“그들이 참전했다고?”
북해빙궁이란 소리에 장군과 참모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북해에 대해 무지한 무림에선 북해빙궁을 북해에서 제일 큰 문파 정도로 폄하 했지만, 북해를 어느 정도 아는 명나라의 군대, 특히 그들과 마주하고 있는 국경부대에선 많은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북해의 대표이자, 모든 부족의 위에 있는 부족.
명나라에 비유하자면 황실에 가까운 위치에 존재하는 게 바로 그들이었다.
그런 그들이 직접 참전했다는 이야기에 그들이 동요하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북해빙궁? 그들이 직접 전쟁에 나왔다는 소리인가?”
“아뇨,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잠깐의 걱정 섞인 술렁거림조차 유현의 다음 말에 바로 다시 가라앉았다.
“만약 정말로 그들이었다면, 최소한 기마병을 저토록 적게 준비해 왔을 리는 없으니까요. 아마 누군가와의 불화나 세력 다툼에서 버려진 패로 북해빙궁에서 나온 것이겠지요.”
“그럼, 그런 자가 왜 저만한 병력을 끌고 쳐들어온 것이지?”
“아마 새로운 부족으로 인정을 받고 싶어서 그렇겠지요.”
“새로운 부족이라고?”
“그렇습니다. 제 부하 중 눈이 좋은 자에게 검병이 팔에 달고 있는 갑주에 부족의 문양이 있는지 확인해보라 했더니, 모두 하나같이 무언가를 지운 흔적만 보인다고 하더군요.”
“그 말은, 모두 원래 부족을 버렸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유현의 긍정에 그제야 다른 이들도 왜 그들의 병력이 여러 가지로 섞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본래 북해에서 새로운 부족의 장으로 인정받으려며 그만한 업적을 이루어 내야 하지요. 아마 저자는 그걸 우리에게 대승을 거둠으로써 보여주고 싶은 듯합니다.”
“저 역시 참모장님의 말씀과 같은 의견입니다.”
참모장의 의견과 유현의 동의.
그 두 가지만으로도 회의는 시작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분위기로 흘러갔다.
“그 말대로라면 저들은 아직 한 번도 손발을 제대로 맞춰 본 적이 없다는 말이 되겠군.”
“그렇습니다. 만약 이미 첫 전투를 치렀다면 당당히 자신들의 깃발을 들고 왔겠죠.”
“그리고 북해빙궁의 전사라면 그 무공은 두려울 만하나 직접 병력을 지휘해 본 적은 드물 터.”
“제대로 된 전법만 갖추고 나간다면, 어려울 적은 아닙니다!”
회의실에 감돌던 어두운 분위기는 온데간데없어지고, 역전의 용사들은 희망찬 목소리로 서로의 사기를 북돋우듯 각자가 자신들의 유리한 점을 내뱉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결정타를 먹인 건 홀연히 튀어나온 유현의 한 마디였다.
“총사령관님.”
“그래, 유현 단장. 말해보게.”
“이번 전투에 우리 폭풍단이 선두에 나설 수 있게 해주십시오.”
흡! 그의 말에 대화를 나누고 있던 둘을 제외한 모두가 숨을 들이켰다.
“···괜찮겠나? 여름의 출전은 가능한 자제 하고 있을 텐데?”
“북해 순병의 방패는 쉬이 뚫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또한 저들의 대장은 최소 절정 이상의 고수로 보입니다.”
유현은 굳건한 기세를 담은 눈으로 총사령관을 직시하며 말했다.
“폭풍단이 선두에 나선다면 그 모든 문제점이 해결되는 건 물론, 피해도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부디 허하여 주시옵소서.”
“스스로 전장에 나서고 싶어 하는 병사를 어찌 상급자로서 막겠는가. 원하는 대로 하게.”
“감사합니다.”
총사령관의 참전 허락이 내려지자, 모두의 얼굴이 붉게 물들었다. 폭풍단 전원이 나서는 전투를 볼 수 있다는 흥분 때문이었다.
“일 장군.”
“네! 사령관님!”
“자네가 만 명의 병사를 이끌고 폭풍단과 함께 적들을 소탕하도록 하게나.”
“명을 받듭니다!”
쿵! 그 대답으로 모든 게 정해졌다.
누가 이번에 참전할지, 누가 그들을 이끌지. 그리고 누가 승리할지도.
“장일!”
“예, 단장님!”
가장 먼저 회의실을 나온 유현이 큰 목소리로 외치자, 대기하고 있던 장정 하나가 그에 지지 않는 큰 목소리로 대답했다.
유현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장정은 숨길 수 없는 존경심을 눈에 담은 채로 유현을 바라보고 있었다.
“출전 허락이 떨어졌다! 폭풍단을 집결시켜라!”
“충!”
쿵! 크게 발을 구르며 고개를 숙인 그는 바로 몸을 돌려 도약했다.
커다란 몸집에는 어울리지 않는 유려한 동작으로 날아오른 그는 바로 연병장으로 향했다.
회의실로 들어오기 전부터 유현은 이미 연병장에 부하들을 모두 대기시켜 놨다.
그가 연병장으로 향하는 걸 본 유현도 바로 몸을 돌려 마구간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국경부대의 회의가 끝난 그 시각.
북해 측 진지에서도 병력을 이끄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다만 그들과 다른 점이라면.
“으하하! 미친 듯이 먹고 마셔라! 오늘은 우리 부족이 만천하에 이름을 날리는 날이 될 테니!”
전장 앞이라고는 믿기 힘든 주지육림이 펼쳐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놈들은 아직 병사 하나 성벽 밖으로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저런 겁쟁이 놈들에게 우리가 패배할 일은 없을 터! 모두 승리의 축배를 들자! 으하하하!!!”
가장 상석에 있는 커다란 사내의 목소리에 모두가 마유주가 가득 담긴 술잔을 들어 올렸다.
주연이 시작된 지 꽤 시간이 흘렀는지, 잔을 들고 있는 이들의 얼굴은 이미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우리 부족에 북해빙궁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위대한 고수! 쿠팔라님이 오셨던 그때부터 이미 우리 부족이 탄탄대로로 흘러가는 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저들의 사기가 저토록 떨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하하하!”
쿠팔라라 불린 사내의 바로 아랫자리에 있던 사내가 큰소리로 외쳤다.
안 그래도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왜소하던 사내는 커다란 쿠팔라의 옆에 있으니 더욱 작아만 보였다.
“그에 반해 전대 부족장은 아주 시시한 사내였습니다. 평화의 시대라니, 우리 북해의 사람들에게 그런 말이 가당키나 합니까?”
“옳소!”
“맞습니다!”
“우리는 전투 속에서 태어나고, 전투 속에서 살아가는 북해의 전사! 우리에게 평화란 죽음 이후에나 찾아올 일이지요!”
으하하하! 사내의 말에 모두가 큰 소리로 웃기 시작했다.
딱 한 사람. 쿠팔라를 제외하곤.
“크흠, 어, 뭐, 그렇지.”
시큰둥한 쿠팔라의 반응에 조금 전까지 일장 연설을 하던 사내의 얼굴에 식은땀이 흘렀다.
쿠팔라를 알고 지낸 지 얼마 되진 않았지만, 이미 그는 쿠팔라가 얼마나 자신을 뽐내기 좋아하고, 또 주목받기 좋아하는지 알고 있었다.
특히 이런 주연에선 조금의 시선조차 놓치기 싫어한다는 것도.
“···라고, 쿠팔라님이 아까 제게 말씀해주셨지요. 저는 그걸 기억하고 다시 말한 것뿐입니다.”
“오, 역시 쿠팔라님이시군요!”
“북해빙궁 제일 고수답게 말솜씨 역시 일품입니다!”
“크흠. 뭐, 그 정도야.”
주위의 칭찬에 바로 얼굴이 풀어지는 쿠팔라. 그런 그를 보며 사내는 남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 살짜리 애새끼 다루기보다도 더 어렵구나. 어휴, 빙궁에서 쫓겨난 이유를 알겠어.’
사내는 그 무력은 일천할지 몰라도, 인맥만큼은 다른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만큼 넓었다.
당연히 빙궁에도 어느 정도 인맥이 있었고, 그렇기에 쿠팔라가 어쩌다가 여기까지 흘러왔는지도 알고 있었다.
‘술에 취해서 일궁주가 가장 아끼는 말의 목을 베다니. 죽지 않고 쫓겨난 게 그저 기적이다, 기적!’
보통이라면 목이 베일 중죄지만, 그의 무력을 아깝게 여겼던 일궁주는 직위 해임 정도로 처벌을 줄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 쿠팔라는 바로 북해빙궁을 나왔다.
자신 같은 고수를 벌했다는 불만도 있었지만, 그보다도 지금껏 자신이 괴롭혀왔던 하급자들의 복수가 두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래도 그 무력과 부하들은 진짜니까.’
그래도 내일은 없다는 듯 펑펑 돈을 뿌리며 살아서 그런지 의외로 그를 따르는 사람은 많았다.
지금 부대의 최후미에 있는 300의 기마병이 바로 그들이었다.
그렇게 300의 기마병과 함께 북해빙궁을 나온 쿠팔라는 당시 부족이 멸망해 방황하고 있던 순병을 이끌고 여기로 찾아왔다.
그리고 그를 환대한 부족장을 쳐 죽이고, 자신이 그 자리에 올랐다.
무력이 약한 겁쟁이는 그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다는 이유였다.
꿀꺽. 사내는 머리가 날아간 전 부족장을 생각하며 침을 삼켰다. 자신의 목이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이봐, 마유주 잔이 비었군.”
“네? 아! 연회가 너무 즐거워서 술이 없는 것도 잊고 있었군요. 죄송합니다.”
“하하하!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어이, 거기! 얼른 여기 마유주를 가득 부어줘!”
“네, 네!”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여종 하나가 쿠팔라의 말에 바로 후다닥 달려와 사내의 잔을 가득 채웠다.
공포로 파랗게 질린 여종의 얼굴을 보며 사내는 생각했다.
‘최대한 빨리 여기서 도망쳐야겠어.’
사내는 진심으로 빌었다.
부디 이 위협을 없애 줄 거대한 폭풍이 불어오기를.
펄럭!
그때 천막의 입구가 열리고, 가쁜 숨을 몰아 내쉬는 병사가 하나 들어왔다.
“급보입니다, 급보!”
“뭐냐!”
“성벽의 문이 열렸습니다! 부대 규모는 약 일만! 그리고 그중 백 명은···!”
딱딱딱. 말을 멈춘 사내의 이빨이 끊임없이 부딪혔다.
추위 때문이 아니다.
공포다.
참을 수 없는 공포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폭풍단! 폭풍단이 직접 참전했습니다!”
사내의 바람대로, 진짜 폭풍이 찾아왔다.
< 북방 국경부대(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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