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북방 국경부대(1) >
정철은 계단 위를 바라보며 자신의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걸 느꼈다.
저 위에 바로 그분이 있다. 그 사실을 되새기는 것만으로도 몸이 잘게 떨렸다.
한 달간의 신병훈련 동안 그에 관한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던가!
항상 최고의 성적으로 훈련을 통과한 그는 이미 그것만으로도 교관들에게 전설이라 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겨우 신병훈련소만의 전설로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여기 북방 국경 전선에서 수많은 일화를, 전설을, 이름을 남겼다.
단 오백의 병사로 삼천의 북해 전사들을 막아냈던 일화를.
험난한 겨울의 북해에서 포로로 잡혔던 장군을 칠 주야 동안 숨어있다가 탈출시킨 전설을.
국경부대의 희망, 북해의 절망이라 불리는 이름을.
삐걱.
최대한 조심스레 발을 올렸음에도 바로 비명을 내지르는 객잔의 낡은 계단에 인상을 쓰면서도 정철은 계속해서 발을 움직였다.
이걸로 그를 깨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두렵긴 했지만, 자신에겐 그보다도 중요한 일이 있었다.
‘조회가 시작하기 전까지 일각도 남지 않았어. 일어난 후 준비하실 것까지 생각하면, 지금 당장 깨워야 해.’
선임에게 받은 중요한 임무를 다시 한번 마음속으로 되새기며 계단을 올랐다.
이미 조회 때문에 방을 비운 터라 숙소의 문은 대부분 열려있었다.
딱 하나.
제일 안쪽에 있는 문이자, 자신이 열고 들어가야 할 그 문을 제외하곤.
삐걱.
계단과 똑같은 비명을 내지르는 복도를 가로질러 문 앞에 선다.
심호흡을 한 번, 두 번, 그리고 세 번.
시간이 모자란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심장이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꿀꺽.
마른침을 삼키며 손잡이를 돌리자, 제대로 된 잠금장치조차 해놓지 않은 문이 마치 그에게 들어오라는 것처럼 스르르 열렸다.
거기에 그가 있었다.
수많은 일화, 전설, 이름을 남긴 끝에, 오직 하나로만 불리게 된 그.
전신(戰神) 유현이, 바로 그곳에 있었다.
“···이분이?”
읍.
정철은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깜짝 놀라 입을 막았다.
한 달 하고도 칠 주야.
그간 그와 관련된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고, 그러는 사이 정철의 머릿속엔 그의 모습이 조금씩 그려져 가고 있었다.
동기 중 누군가는 분명 삼두육비의 괴물일 거라고 상상하며 두려움에 몸서리쳤지만, 정철은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기껏 해봐야 십 척(尺. 약 3m) 장신에 팔이 무릎까지 닿고, 마치 톱날 같은 날카로운 이빨에 모든 걸 녹여버릴 듯한 불타는 안광 정도만 있을 거라고 예상했다.
···물론 지금 그 실물을 본 상황에선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지만, 조금 전까지는 정말로 그리 생각했다.
그에 반해 눈앞의 그는 어떠한가.
대(大)자로 침상 위에 누운 채로 코를 골며 숙면에 빠진 6척의 사내는 정철이 머릿속으로 그려왔던 전신으론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것과는 상관없이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눈앞의 이 사내를 깨워 조회 전까지 끌고 가는 것.
그렇기에 정철은 자신이 알고 있는 최고의 기상 방법을 사용했다.
“단장님···.”
최대한 조용히 다가가, 가져온 물건을 조심스레 들어 올렸다.
“기상하실 시간입니다, 단장님···.”
아무리 깊은 잠에 빠져도 단숨에 깨어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전설의 도구.
최대한 밝게 피운 호롱불을 바로 눈앞까지 내밀었다.
“지금 곧 조회가···.”
“에라이, 씨!”
“어P!”
최고의 수단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바로 잠에서 깨어나 상체를 일으키는 유현.
그런 유현의 모습에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 정철은 그 상태 그대로 모든 움직임을 멈췄다.
방금 일어난 사람의 눈이라곤 믿기 힘든 사나운 시선.
그 매서운 눈초리에 정철은 전신의 근육이 바짝 긴장하는 걸 느꼈다.
“저···.”
“대체 누가 자는 사람 얼굴에 호롱불을···어, 뭐야. 너 신병이냐?”
온 힘을 다해 어떻게든 입을 열려던 순간, 갑자기 부드러워진 유현의 목소리에 마치 움직여도 된다고 허락이라도 받은 듯 순식간에 몸의 긴장이 풀렸다.
그런 그의 머릿속에 남은 건 오직 ‘그의 말에 복종해야 한다!’라는 사명감뿐.
“네! 그렇습니다! 이번에 북부 국경부대에 새로 전입한 정철! 이라고 합니다!”
“그래, 목소리 우렁차서 좋네. 그런데 날 왜 찾아왔냐? 누구 선임이 괴롭히기라도 하냐?”
“아닙니다! 그, 저, 오, 오늘의 조회가···.”
“조회?”
턱을 쓰다듬으며 무언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유현과 기립한 상태 그대로 그의 말을 기다리는 정철.
“흠, 누가 나한테 보냈냐?”
“복삼님이 보내셨습니다?”
“복삼이 그놈이 그랬다고? 나중에 한 소리 해야 겠구만.”
“네, 네? 제가 무슨 잘못이라도···?”
혹시 자신의 잘못에 선임이 혼나는 건 아닐까?
불길한 생각이 정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현실은 그에게 훨씬 가혹했다.
“본래 여기서 단장급 이상은 조회를 면제받거든. 어차피 조회가 하룻밤 사이에 여기서 튄 놈 없는지 보는 것뿐이고, 단장 정도 되면 튈 생각 하는 놈은 없으니까.”
쿵! 유현의 설명에 정철은 뒤통수를 세게 맞은 듯한 얼얼한 충격에 휩싸였다.
그러니까, 지금, 내, 행동은, 설마.
“죄, 죄죄죄죄 죄송!”
선임에게 속았다는 사실보다, 눈앞의 전설의 단잠을 방해했다는 것에 더 큰 충격을 받은 정철은 바로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전하려 했지만.
“어허. 누가 함부로 고개를 숙이랬나.”
그보다 더 빨리 자리에서 일어난 유현이 그를 막아섰다.
‘어?’
“병사는 함부로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니다. 오직 위의 명령을 받을 때만 고개를 숙이는 법이야. 사과하는 대신 네 능력을 보여라. 그게 병사가 할 일이다. 알겠나?”
“네, 넵!”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침대에 반쯤 누워있던 그가 자신을 막아섰다는 사실에 경악한 정철은 그의 말에 힘차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좋아. 목소리 하나는 우렁찬 게 마음에 드네. 보자, 아침은 아직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럼 같이 아침이나 먹자. 여기 객잔이 숙소는 더러워도 음식은 일품이거든.”
“저, 그, 그럼 조회는···?”
“상관없어. 어차피 인원수 확인하는 것뿐이라고 했잖아. 내가 네 옆에 있는데 이것보다 더 제대로 된 확인이 뭐가 있겠냐.”
“아, 네, 그렇군요. 그, 그럼 감사히···.”
어라? 왜 단장님을 깨우러 와서 아침을 얻어먹고 있는 거지···?
문뜩 정철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의문에 답을 내보려 했지만, 그런 상황에도 자신의 발은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텅 빈 식당의 가운데에 자리를 잡은 유현은 바로 음식을 주문했다.
고기만두 3인분, 계란탕 2인분, 채소볶음 2인분. 거기에 오리구이 한 마리까지.
아무리 두 사람이라지만 믿기지 않는 음식량에 놀라는 정철의 귀에 앞의 주문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주문이 들려왔다.
“그리고 백주(白酒)도 다섯 병 같이 내와.”
“네?! 아, 아침부터 술을 드시겠다고요?!”
“괜찮아, 괜찮아. 어차피 취기는 내공으로 지울 수 있으니까. 너도 마찬가지 아냐?”
“그, 그렇긴 하지만···어라? 근데 어떻게 제가 무공을 익혔다는 사실을···?”
“그렇게 불룩한 태양혈을 보고도 모르면 그게 바보지. 자, 왔다. 얼른 먹기나 하자.”
미리 쪄놓은 고기만두와 꺼내오기만 하면 되는 술은 금방 나왔다.
따끈따끈한 만두와 병에 이슬이 송골송골 맺힌 백주를 보며 정철은 꿀꺽 침을 삼켰다.
아무리 물자가 풍부한 북방 국경부대라지만 질 좋은 식료가 신병까지 내려갈 일은 많지 않았고, 결국 입에 들어오는 건 죽에 가까운 멀건 밥과 고기가 살짝 담겼다 나온 국물 정도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이런 진수성찬을 봤는데 어찌 입맛을 다시지 않을 수 있을까.
쪼르륵. 귀에 익은 소리와 함께 오랜만에 코를 찌르는 달큰한 주향에 정철은 바로 그곳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정철이 고기만두에 눈길을 집중한 사이, 유현이 두 개의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 놓은 것이다.
거기에 멈추지 않고 자신에게 그 중 한잔을 내밀기까지!
떨리는 손으로 잔을 받은 정철에게 유현은 웃으며 말했다.
“자, 한잔해.”
“괘, 괜찮습니까?”
“어차피 다 먹고 하자는 건데. 자, 쭉 들이켜.”
과연 괜찮을까, 하는 작은 걱정과 그에 반비례하듯 커진 단장님 명령인데 어기면 안 되지! 하는 자기 합리.
결국 정철은 입에 그 잔을 가져다 댔고, 캬! 하는 감탄과 함께 잔을 내려놨다.
“이렇게 시원한 술은 처음 마셔봅니다!”
“북방 국경부대의 특권 중 하나지. 여름에도 시원한 술을 마실 수 있거든. 자자, 안주도 먹어. 빈속에 술만 먹으면 속 버려.”
“네! 감사합니다!”
한 잔의 술에 이미 정철의 머릿속에서 참아야 한다는 마음은 씻은 듯 사라졌다.
바로 만두를 향해 손을 뻗은 정철은 누가 말릴세라 바로 그것을 입에 쑤셔 박았다.
시원한 술과 따끈한 만두를 먹은 지금의 정철을 막을 수 있는 건 누구도 없었다.
마치 마부 없는 팔륜마차. 주인 없는 정육점에 들어간 배고픈 짐승과 같았다.
그리고 그런 그가 두 번째 만두로 손을 뻗은 순간.
“여기 있었군, 폭풍단장.”
“아, 총사령관님. 어서 오십쇼.”
주인이 돌아왔다.
그것도 날뛰는 마차의 말 한 마리는 말끔히 해체해버릴 괴물 같은 주인이.
끼기기긱. 마치 망가진 물레처럼 정철의 고개가 뒤를 향했다.
부디 자신이 들었던 그 말이 한순간이 착각이길 빌며, 아직 남아있던 실낱같은 희망을 담아 만두 위에 그대로 손을 올린 채로.
그리고 그런 희망은 보통.
“그는 신병인가?”
“네, 이번에 새로 들어온 녀석 중 하나입니다.”
산산이 조각나기 마련이다.
온갖 훈장과 문양이 가득한 갑옷을 전신에 걸쳐 입고, 맹수의 발톱이 생각나는 매서운 눈초리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남자.
신병 수료식에서 딱 한 번 봤던 북부 국경부대 총사령관이 거기에 서 있었다.
“초, 초초초, 총사령관님! 충! 성!”
“음, 조회가 벌써 끝날 시간인가?”
“아직 조회가 끝날 시간은 아니지만, 제가 조회에 참여하는 줄 알고 깨우러 왔답니다. 그래서 어차피 늦었겠다, 그냥 아침이나 먹이고 있었습니다.”
“그래, 그랬군.”
혹시 이대로 넘어가는 건가? 아직 완전히 산산조각이 나지 않은 희망을 담은 정철의 눈이 반짝였다.
“···자네 술 마셨나?”
그리고 순식간에 죽었다.
“아, 저기, 그···.”
“제가 한 잔 먹였습니다. 축하 기념으로요.”
“흠, 그런가?”
이제 두 사람의 대화는 정철의 귀에는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저 산산이 부서진 자신의 미래와 거기에 따른 절망만을 상상하고 있을 뿐.
그렇기에 그는 보지 못했다.
총사령관의 눈에 담긴 감정이 분노나 실망이 아니라, 흥미에 가까웠다는 사실을.
하지만 그건 아주 잠깐일 뿐.
곧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온 총사령관은 유현의 맞은편에 앉으며 정철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지금 단장이랑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자리를 좀 비켜줄 수 있겠나? 나중에 내 방으로 오게. 자네에 관해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군.”
“···네···알겠습니다···.”
정철에겐 더이상 무어라 할 기운도, 조금 전까지만 해도 끓어 넘치던 식욕도 남지 않았다.
그저 휘청휘청, 넘어지지 않고 객잔을 나서는 것만이 그의 최선이었다.
*****
“아, 아. 그러시면 어떻게 합니까.”
터덜, 터덜.
힘없이 객잔을 빠져나가는 신병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내 앞에 앉아 젓가락을 향해 손을 뻗는 총사령관을 탓했다.
이분은 대체 왜 또 아침 식사를 여기서 하시려는 거야.
“내가 뭐 잘못했나?”
“금방 전입해 온 신병에게 총사령관님이 처음 꺼낸 말이 ‘자네 술 취했나’면 신병은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겠습니까?”
“음···허어, 그렇군.”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듯, 탄식을 내뱉는 총사령관.
“나중에 사람을 보내서 오지 말라고 말해놓겠네.”
“그놈 심장마비 걸리는 꼴 보기 싫으시면 그러진 마십쇼.”
깨닫기는 개뿔.
하나만 생각하고 둘은 생각 못 하시는 거구나.
[총사령관은 병사의 마음을 모른다, 라는 거지.]
···쓸데없는 말 하지 마. 웃을 뻔했잖아.
“제가 부하 중 하나를 보내서 이야기해놓겠습니다. 총사령관님의 말이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요.”
“부탁하지. 내가 끼어들면 쓸데없이 사달만 일어나는 것 같으니 말일세.”
총사령관의 부탁에 고개를 끄덕이며 새로 나온 소면에 젓가락을 가져갔다.
“그것보다 술을 줬다는 건 저 친구는 합격이란 건가?”
“예, 일단은 그렇습니다. 부단장도 인정했고, 제가 봐도 흠은 없으니까요.”
“그럼 이제 폭풍단의 단원도 딱 100명이 됐군.”
“네, 2년 만의 쾌거죠.”
정말 감회가 새롭다. 설마 2년 전에 나 혼자 버티긴 힘들어서 만든 부대가 이렇게까지 성장하다니.
당시 장군이던 총사령관에게 처음 말을 꺼냈을 때만 해도 여기까지 오리라곤 정말 상상도 못 했는데.
“저 친구는 누구한테 맡길 생각인가?”
“일단은 장팔이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장팔? 옆구리에 찬 무기를 보면 도를 쓰는 것 같던데, 좀 더 경지가 높은 군청이 낫지 않겠나?”
“군청이가 경지는 더 높을지 몰라도, 패도를 다루기에 저 친구와는 맞지 않습니다. 장팔이가 그 친구처럼 환도를 다루니, 옆에서 붙어서 가르쳐주기 좋을 겁니다.”
“호오, 같은 도에도 그런 차이가 있었나? 자네는 그걸 용케 한눈에 알아봤군?”
“성장시킨 근육이나 손에 박힌 굳은살을 보면 그 정돈 읽을 수 있지요.”
정확히 말하자면 내 목숨에 관련된 일이라 죽도록 익힌 거지만 말이다.
상대의 무공을 알면 생존 확률이 3할은 높아지고, 그 경지까지 알 수 있으면 거기에 2할이 추가된다.
그 정도 공부로 살 확률이 5할이나 올라간다면, 어떻게든 배워야지.
[거기에다가 그걸 하나하나 자세히 가르쳐 줄 좋은 스승도 바로 옆에 있었으니까.]
그래. 화순, 네 덕분에 쉽게 배웠지.
밤낮 할 것 없이 머릿속에서 염불 외듯이 외워줬으니까.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그때의 기억을 머리를 흔들어 지워내고선, 총사령관이 나타났을 때부터 궁금했던 질문을 던진다.
“그런데 여긴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신병이 온 것도 모르시던 걸 봐선 축하하러 와주신 건 아닌 것 같습니다만.”
“음, 물론 그건 아닐세.”
내 질문에 총사령관은 방금 나온 채소볶음에 젓가락을 옮기며 입을 열었다.
“사실 이번에 중앙에서 어떤 분이 내려오셨다네.”
“중앙이라면 황궁 말입니까? 거기서 누가 내려오신 겁니까?”
“음, 그게 누구냐면···.”
땡···.
총사령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방금 나온 오리구이에 젓가락을 가져다 대려는 찰나, 저 멀리서 들려오는 종소리에 손을 멈췄다.
“공···음? 자네 갑자기 왜 그러나?”
“종소리입니다.”
“종소리? 설마, 지금은 한여름···.”
땡···.
총사령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다시 울려 퍼지는 종소리.
무공을 배우지 못한 그라도 이 정도의 소리는 들을 수 있었는지, 바로 말을 멈추고 얼굴을 굳혔다.
“···정말이군. 설마 한여름에 싸우러 오는 놈이 있을 줄이야. 소규모는 아니겠지?”
“타종 소리가 길게 늘어지는 걸 보면 아쉽게도 그건 아닌 모양입니다. 정확히 얼만진 알 수 없지만, 최소 5천 이상의 대군인 듯합니다.”
“으음···설마 이 시국에 쳐들어올 줄이야···.”
침음성을 흘리며 이마에 깊은 주름을 만들던 총사령관은 깊은 한숨을 내쉬고선 자리에서 일어섰다.
일천 이하의 잡군이라면 장군에게 맡겨도 될 일이지만, 이만한 수라면 총사령관이 직접 나와 혼란스러워할 장군과 참모들을 진정시켜야 했다.
“나는 먼저 가 있지. 자네는?”
“저는 갑주랑 무기만 갖추고 바로 출발하겠습니다. 곧 뵙지요.”
“알겠네.”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난 그는 밖에서 미리 대기하고 있던 참모들과 함께 회의장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은 나는···.
“소(小) 점소이!”
“네, 단장님!”
“오리구이 안 건드렸으니까 다른 사람이랑 같이 먹어. 어차피 다녀오면 다 식어있을 테니까.”
“감사합니다, 단장님!”
이미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인 만큼, 키가 작은 점소이는 자연스럽게 내가 준 선물을 감사히 받아들였다.
“감사 인사는 필요 없으니까 그냥 행운이나 빌어줘.”
“오히려 단장님한텐 그게 더 필요 없는 것 아닙니까?”
어느새 내 방에서 갑주와 창을 가져온 키 큰 점소이가 미소를 띠며 내게 말했다.
“어차피 다 이겨내고 다시 돌아오실 거잖아요.”
그래, 그럴 생각이지.
녀석이 건넨 상체 갑주를 입고, 등에 두 자루의 창을 메고선 객잔 밖을 나섰다.
북방 국경부대로 온 지 3년이 지난 오늘.
나는 여전히 싸우고, 또 성장하고 있었다.
< 북방 국경부대(1)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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