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별 >
아버지는 먼저 식당에 와서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가장 상석에 앉아서 자그마한 잔으로 술을 마시고 있던 아버지는 나와 총관이 들어왔음에도 눈길 하나 주시지 않았다.
“저 왔습니다, 아버지.”
힐끔. 아버지에게 인사하며 식탁 위의 음식을 확인한다. 모두 식거나 오랜 시간이 지나도 먹을 수 있는 음식뿐이었다.
지금 내가 꺼낼 이야기가 오래 걸린다는 걸 아버지도 짐작하고 계신 것이다.
“늦었구나.”
“총관님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고 오느라 늦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랬느냐. 다음에는 주의하도록 하거라.”
“···네.”
아버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대답이 조금 늦게 나왔다.
다음이라···지금 내게 과연 다음이 있을까.
쓸데없는 잡념을 지우고 아버지의 맞은편에 앉았다.
웬만하면 내 옆에 붙어있는 화순도 내가 아버지와 식사할 때면 자리를 피했다.
아버지와 둘만 있는 시간을 방해하고 싶지 않다나.
평상시에도 그의 배려가 고마웠지만, 지금은 더욱 그러했다.
오늘 내가 당신에게 꺼낼 말을 생각하면 더더욱.
내가 도착했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젓가락을 드시지 않았다.
당신은 그저 끊임없이 술잔에 술을 부어 들이켜시기만 할 뿐이고, 나도 마찬가지로 가만히 앉아만 있다.
식사 시중을 위해 대기 중인 시종들의 안색이 시시각각 변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우리의 식탁에는 침묵만이 감돈다.
그리고 그 침묵이 깨지는 건, 아버지가 세 병째 술을 모두 비우셨을 때였다.
“동생들과 싸웠다 들었다.”
한 방울의 술도 남기지 않고 모두 비워낸 잔을 내려놓으며 아버지께서 입을 여셨다.
“자그마한 다툼이 있었을 뿐입니다.”
“어찌 된 일인지 들을 수 있겠느냐?”
“···제가 말입니까?”
이미 전후 사정을 다 파악하고 있으실 아버지의 질문에 역으로 질문하자, 아버지는 불쾌한 기색 없이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사자에게 듣지도 않고 어찌 안다고 왈가왈부하겠느냐.”
거짓은 없다. 본능적으로 알아차렸다. 아버지는 진심으로 세 사람 간에 일어난 일을 내게서 직접 듣고 싶어 하셨다.
그렇게 시작한 이야기는 그리 길지 않았다. 반 각. 아니, 그보다 더 짧았을 세 사람 간의 다툼은 말로 하자 더욱 짧아졌다.
이야기가 끝나고, 아버지는 잠깐 눈을 감고 침묵한 채로 무언가를 생각하시더니, 눈을 뜨며 말씀하셨다.
“어제 들었던 이야기와는 사뭇 다르구나.”
“두 동생과도 이야기를 나누셨습니까?”
“손을 치료하자마자 직접 달려와서 말하더구나. 큰 형님이 시종 하나 때문에 자신들을 해하려 들었다고.”
“···그렇습니까.”
“반박은 하지 않는 것이냐?”
“반박할 것이 무어가 있겠습니까. 시종 하나 때문에 그 사달이 일어난 것도 맞고, 그 두 사람에게 상처를 입힌 것도 맞습니다. 결과가 이러할진대 제가 여기서 반박만 해봐야 거짓부렁이에 지나지 않을 뿐이죠.”
내 대답에 아버지는 그저 느릿하게 고개만 끄덕이셨다.
긍정인가, 부정인가. 생각을 읽어보려 했지만, 오늘의 아버지는 취기 때문인지 몰라도 그 의중을 파악하기 힘들었다.
내가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에 집중하던 그때, 당신의 입이 느릿하게 열리더니 청천벽력과 같은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두 동생은 이제 한 달 뒤, 집을 나갈 것이다.”
“···집을, 나간다고요?”
“그래. 자신들의 약함을 통감했다며, 화산파로 무공을 배우러 간다더구나.”
화산파. 그 말에 나는 대충 어찌 된 상황인지 이해할 수 있었다.
“······민 씨의 생각이었습니까?”
“·········.”
당신께선 더 길게 말하지 않으셨지만, 그 짧은 침묵에는 말보다도 많은 것이 담겨 있었다.
전생에 내 목숨을 거둬갔던 마멸검의 문파가 화산파였음을 떠올렸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했겠죠. 어린 동생들도 가문 밖에 나가 배움을 구하는데, 어찌 형이란 자가 가문의 안에서만 있으려 하냐, 라고요.”
“·········.”
다시 짙게 깔리는 침묵.
그걸로 충분했다. 어제의 일이 왜 권능에게 인정받아 내공을 얻게 되었는지 알 수 있었다.
살의는 두 놈이 가지고 있던 게 아니었다. 둘의 위에 있는 사람. 즉, 계모 민 씨가 가지고 있던 것이다.
원래의 역사대로라면 나는 진작에 신창양가로 쫓겨나야 했지만, 갑자기 바뀐 내 모습 덕에 한 달이나 그것이 늦춰지고 있었다.
민 씨는 그것을 더는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이다.
그리하여 내게 시비를 걸 생각으로 둘을 내 방 주위에 미리 대기시켜놓은 것이고.
그 뒤론 내가 크게 다치든, 두 놈이 크게 다치든 상관없었을 것이다.
물론 가능하면 내가 다치는 편을 선호했겠지만, 어느 쪽이든 나를 내쫓을 당위성을 가지는 게 중요했으니까.
만약 내가 다쳤다면, 형이 된 자가 동생에게 다쳐서 어찌 위엄이 살겠냐며 쫓아내고, 이번 같은 상황이면 둘을 화산파로 보내고 날 쫓아내면 되니까.
가문 내에서 나는 절대적인 안전을 보장받는다. 아무리 민 씨라고 해도 아버지의 눈이 닿는 곳에선 나를 어찌할 수 없다.
하지만 밖에선 아니다. 돈도, 인맥도 없는 내게 밖은 고립무원.
나간다면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수렁과 다를 바 없다.
민 씨도 그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기에 나를 밖으로 내보내기 위해 이런 수를 쓴 것이다.
“네가 계모를 좋아하지 않는다는 건 알고 있다.”
“그리고 민 씨도 절 싫어하죠.”
“허나 이번 일은 네게도 나쁜 일만은 아니다. 듣자 하니 네가 혼자서 수련하고 있다고 들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네가 혼자 하는 것보단, 스승을 구해 다른 누군가와 함께 배워나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언뜻 들으면 정론처럼 보인다. 그래서 아버지도 민 씨의 의견을 내게 말한 것이겠지.
하지만 나는 그 이면에 있는 어두운 속셈을 알고 있다. 아니, 당해봤다.
그리고 이젠 다신 그런 것에 당하지 않겠다 다짐했다.
“제 생각은 다릅니다.”
그렇기에 이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이미 무공을 익히고 있던 둘을 혼자만의 힘으로 제압했습니다. 제 수련 방법이 잘못됐다고 생각되진 않습니다.”
“그럼 지금처럼 쭉 혼자서 수련할 생각이냐?”
“아뇨, 그건 아닙니다. 저 자신도 제 수련법에 한계를 이미 절감하고 있었습니다.”
사실 육체는 지금도 아직 성장할 가능성이 충분히 있었다.
단련의 강도를 높이거나, 무게를 높이면 충분히 가능하니까.
지금 내가 절감하고 있는 건 바로 내공의 부족함이었다.
만약 어제의 일이 있었다면 그런 건 신경도 쓰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내가 알던 내공은 그저 사람을 좀 덜 지치게 해주는 보조 기능 같은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어제 그 사건 이후 4년의 내공을 얻고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지금 단전에 자리 잡은 이 기운은 전생에 가졌던 그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전생의 내공이 마치 구정물 통에서 건져 올린 더러운 물 같았다면, 지금의 내공은 마치 강에서 갓 떠올린 듯한 청정수. 아니, 그보다도 훨씬 깨끗하고 맑았다.
그제야 알았다. 진정한 내공이란 건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내가 앞으로 해야 할 일까지도.
“그렇다면 어찌하겠다는 것이냐?”
“소자, 만약 아버지께서 허락만 해주신다면 군무에 나가고 싶습니다.”
“군무라면···설마 무과에 나가보겠다는 소리냐?”
“아뇨. 지금 제가 무과에 도전함은 어불성설이지요. 제가 말하는 군무는···북방 국경선입니다.”
“뭐라?! 북방 국경선?!”
아버지의 외침에 동조하듯 주위에 있는 시종들이 부산을 떨기 시작했다.
본래라면 그들을 막아야 할 총관도 내 말에 놀란 듯 눈을 크게 뜨고 그저 날 바라보기만 한다.
당연한 반응이요, 기대했던 반응이기도 했다.
미래의 내가 가지고 있던 기억과 현재 상황이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곳이 북해와의 전쟁이 매일 일어나고 있는 곳임은 알고 있는 것이냐?”
“네. 그리고 한 번 들어가면 1년은 나오지 못하는 곳인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 잘 알면서 어찌하여 그런 지옥에 스스로 가겠다 말하는 것이냐!”
쾅!
아버지가 탁자를 강하게 내려치자, 지금껏 누구 하나 건드린 적 없던 음식들이 공중으로 올랐다가 떨어졌다.
본래라면 그걸 치워야 할 시종들은 서슬 퍼런 아버지의 모습에 감히 가까이 다가오지 못했다.
“그렇기에 가려 하는 것입니다. 만약 제가 그곳으로 간다면···최소한 제 목숨이 보이지 않는 칼에 의해 거두어지는 건 막을 수 있을 테니까요.”
내 말을 들은 아버지의 눈에서 여러 감정이 스쳐 지나간다.
격정, 회한, 불신. 그리고 슬픔.
한순간에 몇 년은 늙어버린 아버지가 힘이 빠진 듯 자리에 털썩 주저앉자, 깜짝 놀란 총관이 당신에게 달려갔다.
“괘, 괜찮으십니까?”
“괜찮네. 난 괜찮아.”
약해진 아버지의 모습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알고 있었다. 내가 직접 이렇게 말을 꺼내면 아버지가 슬퍼하고, 또 힘들어할 거라는 사실을.
하지만 이것 역시 알고 있었다. 내가 이 말을 꺼내지 않았다면, 아버지가 절대 북방행을 허락하시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그렇기에 꺼낼 수밖에 없었고, 그렇기에 후회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힘없이 천장을 잠깐 응시하더니, 다시 날 바라봤다.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는 힘 빠진 아버지의 모습에 후회하면서도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총관.”
“네.”
“지금은 나와 유현이만 이야기를 나누고 싶네. 시종들을 데리고 나가주겠나?”
“···알겠습니다.”
총관이 시종들을 데리고 나가자 그제야 아버지는 느릿하게 입을 여셨다.
“그게 네 진심이냐?”
“그렇습니다.”
“···네 계모가 진심으로 널 해하고 싶어 한다고 믿는 것이냐?”
“어쩌면 그 이상의 짓을 할지도 모르는 여인입니다.”
“·········.”
아버지는 눈을 감고 턱을 괸 채 침묵에 빠졌다.
아버지에게도 충격적일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내가 망나니 짓을 할때만 해도 나를 향한 민씨의 태도는 철저한 무관심에 가까웠으니까.
아버지가 새장가를 들고 내가 신창양가를 갈때까지 내가 민씨의 얼굴을 본 건 세 번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설사 그녀가 두 자식에게 아버지의 재산을 모두 물려주고 싶다 해도, 나를 쫓아내는 것 이상의 일은 벌이지 않을 것이다.
아마 아버지는 그리 생각하고 계셨겠지.
무리도 아니다. 당장 나도 신창양가에 갈때만 해도 내가 죽으러 간다는 걸 나조차도 몰랐으니까.
그래서 그녀가 날 죽일지도 모른다는 발언에 이토록 충격을 받으신 걸테고.
하지만 그녀는 생각보다 독한 여자였다.
이미 망가질대로 망가진 내게 최후의 일격까지 꽂아넣을 정도로 말이다.
고심 속에서 빠져나온 아버지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네 그 생각이 그저 한순간의 망상이길 바란다.”
“저도 그렇습니다. 그저 어미를 일찍 여읜 소년의 공포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만일이라는 것을 배제하고 싶진 않습니다. 지금껏 한 번 나타나지도 않은 동생들이 제 방 근처에 갑자기 나타난 것도, 그것 때문에 화산파로 가는 것도 수상하게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살기 위해서 북방 국경선에 가겠다는 말이냐? 정신 차려라! 네가 가려는 길은 지옥이다!”
“그저 한낱 어린아이의 치기 어린 헛소리가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냐!”
여기다. 여기서 아버지에게 내 진심을 보여야 한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 높아지기 전에 내 앞에 있던 접시를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것을 찢는다.
양손에 힘을 주고 가르는 것도 아니고, 아래로 내려쳐서 부수는 것도 아니다.
오직 엄지와 검지, 이 두 손가락만으로 그것을 양분시킨다.
평범한 근육의 힘만으론 도저히 불가능한 기행을 본 아버지의 눈이 찢어지라 커지더니, 믿을 수 없다는 듯 벌벌 떨리는 손으로 나를 가리켰다.
“너, 너, 너 설마!”
“그렇습니다. 소자, 내공을 익히고 있었습니다.”
쿠궁! 청천벽력같은 내 말에 아버지는 비틀거리며 탁자를 부여잡으시더니,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
“대, 대체 어떻게?!”
“사실···.”
떨리는 아버지의 목소리에 짧은 한숨을 내쉬며 회귀한 날에 있었던 일에 관해 간략히 설명했다.
물론 전생과 천마, 그리고 권능에 대해선 완전히 배제한 채였다.
“···그리하여 고인(高人)에게 무공을 사사하여 이렇게 무를 익힐 수 있었던 겁니다.”
“허어···그래서 네가 그 둘을 손쉽게 제압하였던 거구나. 무공을 익혔던 둘을···.”
“네, 그렇습니다.”
“그럼 어찌하여 그것을 일찍 밝히지 않았느냐? 미리 밝혔다면 이런 사달도 없었을 거를.”
“고인께옵선 당신께 원수가 많아 같은 무공을 쓰는 것만 봐도 해하려 드는 사람이 많으니 가능한 숨기라 하셨습니다. 허나 아버지에게도 숨겨온 건 이 소자의 우행(愚行)이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 괜찮다. 내 무림에 대해선 잘 모르나, 본래 가능한 자신을 숨기는 것이라 들었다. 네 행동에 잘못됨은 없으니 고개를 들 거라.”
아까보다 훨씬 차분해진 아버지의 목소리에 조심스레 고개를 들어 올리자, 당신께선 웃는 얼굴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다면 네 생각도 이해가 가는구나. 그···고인의 무공은 그런 곳에서 익혀야 더 잘 익힐 수 있는 건가 보지?”
“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가능한 실전을 많이 경험해보라 하셨습니다.”
“그래, 그런 게 가능한 곳은 그곳 말곤 없지.”
그제야 아버지는 내가 왜 그런 곳을 가는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스스로 죽을 길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오히려 살길을 찾아간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럼 제 군무 행을 허락하여 주시는 겁니까?”
“네가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을 보였으니 내가 무어라 더 말할까. 하고 싶은 걸 하여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허락에 머릿속으론 환호성을 내지르면서도 겉으론 최대한 침착을 보였다.
이걸로 내가 가문에서 나가는 걸 주저했던 유일한 이유가 사라졌다.
“총관. 게 아직 있는가?”
마음의 안정을 되찾은 아버지는 목소리를 높여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 총관을 불렀다.
“예, 가주님.”
“식사를 마저 하고 싶구나. 식어버린 음식은 내놓고 새로 한 음식을 들여보내라.”
“네, 알겠습니다.”
안의 상황이 궁금해할 만하건만, 총관은 아무런 의문 없이 그저 내려진 명령만을 충실히 실행했다.
잠시 뒤, 아까의 식사는 물론 지금껏 먹었던 저녁과도 비교되지 않는 음식들이 줄줄이 시종의 손에 들려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언제 떠날 생각이냐.”
총관이 직접 꺼내 온 술을 내 잔에 따라주시며 아버지께서 질문을 던졌다.
“가능한 한 일찍 떠날 생각입니다. 안에서의 시간이 길어질수록···더 나가고 싶지 않을 테니까요.”
사실 지금도 그런 생각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고 있었다.
얼마 만에 보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의 미소와 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주는 총관. 그리고 나를 믿고 따라주는 기정이까지.
집을 떠나지 않고 강해질 방법은 없는 건가, 하고 아직도 머릿속을 팽팽 회전시키고 있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결국 답은 똑같다.
아무리 괴롭고, 힘들고, 고통스러워도 밖으로 나가야만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나를 노리는 계모와 이복동생과 지금 날 열심히 찾고 있을 마교의 주구들.
호시탐탐 내 목숨을 노리고 있을 그들에게서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나는 최대한 빨리 성장해야만 했다.
“그래, 그렇구나.”
내 대답에 아버지는 실망도, 우려도 표하지 않았다.
그저 느릿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내 앞접시에 내가 제일 좋아하던 돼지갈비를 슬며시 올려줄 뿐이었다.
“그럼 언제 또 이렇게 식사를 같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
아버지의 말씀이 맞았다. 언제 또 이렇게 대면하여 식사를 할 수 있을 진 아무도 몰랐다.
아니, 어쩌면, 최악의 경우엔···.
“허나 그 길을 후회하진 말아라.”
상념에 빠지려 하던 그때, 아버지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당신을 바라본다.
“네가 가기로 정한 길이다. 나는 네 능력을 보고 할 수 있다 생각하여 그 길을 허락하였으니, 너도 최선을 다해 그 길을 돌파해라.”
“···네, 아버지.”
쭈욱. 아버지가 손수 따라준 술을 한입에 털어 넘겼다.
쓴맛과 강한 향. 그리고 목구멍을 태울 듯 뜨거운 기운이 입에서 바로 위로 쏟아내렸다.
그렇게 우리는 부자간의 마지막 식사를 천천히 시작했다.
*****
아직 해도 뜨지 않은 이른 새벽 시간. 유가장의 뒤편엔 네 명의 인영이 모여 있었다.
“준비는 다 끝났느냐.”
“네, 아버지.”
나는 저번에 천마를 만나러 갈 때 내가 타고 갔던 말의 갈기를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말먹이도 충분히 먹였고, 노자로 쓸 돈도 두둑이 챙겼습니다.”
“그렇다니 다행이구나.”
“잘 다녀오십시오, 큰 도련님.”
“고맙습니다, 총관님. 그리고···.”
힐끔, 총관의 옆에서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 있는 기정이에게 눈길을 주며 총관을 다시 바라보자, 그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두 도련님이 해코지하지 못하도록 제가 기정이를 옆에 붙여두고 다닐 테니까요.”
“똘똘한 아이니 피곤한 일은 없을 겁니다.”
“허허, 그거 기대되는군요. 잘하면 제대로 교육해서 머리 쓰는 일을 한 번 맡겨보겠습니다.”
너털웃음을 짓는 총관에게 따라 웃어주며, 이번에는 기정이에게로 눈길을 돌린다.
눈가에 그렁그렁 눈물을 맺힌 채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녀석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 지었다.
“이 녀석, 사내라는 녀석이 눈물이 그리 많아서 쓰겠느냐.”
“죄, 죄송합니다.”
“내가 다시 돌아올 때까진 그 버릇 꼭 고치도록 하여라. 내 다시 돌아와서까지 눈물을 보이면 경을 칠 테니까.”
“네! 알겠습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다시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울상을 짓는 녀석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세 사람의 눈을 찬찬히 마주친다.
모두가 한마음 한뜻으로 날 바라보고 있었다.
언제였던가. 전생에도 이런 순간이 있었다.
내가 신창양가로 떠나던 그 날. 가문의 시종 모두와 계모. 그리고 그 두 자식까지 모두 나와 나를 배웅해줬다.
하지만 그 자리와 이 자리는 많은 점이 달랐다.
사람의 숫자도, 그 두 눈에 깃든 감정도, 그리고···
···그 자리에 없던 사람이, 여기엔 있다는 것도.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잠깐.”
말을 올라타려던 나는 아버지의 말에 바로 고개를 돌렸다.
언제 준비한 것일까. 아버지는 하얀색 천에 둘러싸인 기다란 무언가를 내게 내밀었다.
“이걸 챙겨가거라.”
“이것은···?”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창이다.”
“창이요?!”
경악이 반쯤 섞인 목소리로 아버지의 말을 되새기며 천을 풀자, 전체가 묵색 철로 이루어진 창 한 자루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아무런 문양도, 조각도 없었지만, 실용성이란 면 하나에서만큼은 가히 타의 추종을 불허할 그 모습에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 이건 대체···?”
“우리 가문에도 무에 미쳐있던 분이 한 분 계셨다."
아버지는 가문의 비사 아닌 비사를 담담한 목소리로 설명했다.
"다만 미쳐도 너무 미쳐서, 한 가지의 무로는 만족하지 못하시고 십팔반병기(十八般兵器)에 관한 무공을 모두 익혀 무엇 하나 대성은 하지 못하셨지. 결국 후대는 그에 관련된 무구나 무공을 대부분 팔아넘겼다. 이것 하나만 제외하고 말이다.”
“아···우리 가문에 그런 비사가···.”
“비사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원래 긴 시간 이어진 가문에는 그런 분도 한, 두 분 나오는 법이거늘. ···내가 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이다. 가져가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순간 튀어나오려던 ‘가고 싶지 않다’라는 말을 억지로 씹어 삼키며 고개를 숙였다.
만약 정말로 내뱉었다간, 굳어버린 두 다리가 움직이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이만 가거라. 몸 성히 오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그것은 불가능한 걸 바라는 것이니. 그저···반드시 집으로 돌아오기라도 하거라. 알겠느냐?”
“네, 아버지.”
그 말을 끝으로 나는 모두에게 한 번씩 고개를 숙여 인사하고선 말에 올라탔다.
이랴! 말에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달려나간다. 뒤는 돌아보지 않았다. 이제 내가 다시 저 세 사람의 얼굴을 볼 땐, 내가 수련을 마치고 돌아올 그때뿐이니까.
그렇게 나는 계속해서 말의 옆구리를 박찼다.
세 사람도, 저택도, 내 후회도 보이지 않을 때까지 쭉.
< 이별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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