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2) >
“익! 이익!”
유성은 어떻게든 목검을 빼내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목검은 마치 돌에라도 박힌 듯 꼼짝하지 않았다.
“대답은?”
사실, 이것이 내게도 쉬운 일은 아니다. 아무리 권능이 있고, 2개월간 쉬지 않고 단련을 해왔다지만 내공이란 그런 상식조차 뛰어넘는 힘이다.
만약 유성이 내 십 분의 일만 단련을 했더라면, 눈앞의 결과가 반대로 일어났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보라.
지금까지 비싼 돈 내고 쳐먹은 것이 어디로 갔는지 모를 앙상한 팔다리와 무엇 하나 받쳐줄 수 없는 썩은 기둥 같은 허리를.
이런 빈약한 육신으론 설사 10갑자의 내공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 손에서 목검을 빼앗아 갈 수 있을 리 없었다.
“이, 개, 새끼가···!”
···그리고 태어나서 지금까지 무엇이든 할 수 있었던 꼬맹이가 갑자기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면 이렇게 된다는 것도 당연히 알고 있었다.
욕하고, 얼굴이 붉어져라 떼쓰고, 아둥바둥 떼를 쓰겠지. 딱 애들이 할 짓이다.
[혈압이 급격하게 상승했어. 가능한 한 빨리 해소하는 게 좋아. ···바로 눈앞의 것에게 말이지.]
물론 그렇다고 그걸 순순히 용서해준다는 건 절대로 아니지만 말이야.
퍽!
남은 왼손으로 놈의 명치를 후려쳤다.
“컥!”
[잘했어.]
내공 한 점 실리지 않은 공격이었지만, 유성은 단말마의 비명을 내지르며 뒷걸음질 쳤다.
제대로 단련한 팔에 천마금나수의 묘리가 섞인 일격.
손에서 검을 놓지 않은 것으로도 칭찬할 일이었다.
“파지법은 제대로 배웠을지언정, 인성 교육은 받지 못했나 보군.”
물론 그럴 칭찬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말이다.
파지법만 잘나서 무얼하겠는가.
무림에 나가면 길가에서 객사해도 손에서 검은 놓지 않는 게 유일한 장점이지.
“한 대 맞았으니 특별히 한 번 더 대답할 기회를 주마. 내 시종에게 무슨 짓이냐.”
“형님.”
스윽. 내 말에 지금까지 뒤에서 가만히 바라만 보던 유가장의 둘째, 유환(幽煥)이 움직였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풀지 않던 팔짱까지 푼 채, 싱글싱글 웃으며 내게 다가오는 유환.
그런 그를 바라보며 내 옆에 서 있던 화순이 이마를 찌푸리며 내게 물었다.
[이 새끼는 뭐냐?]
기분 나쁜 새끼지.
이런 놈이라면 전생에도 몇 번이나 만나봤다.
수풀 속에서 숨은 채 사냥감을 향해 다가오는 독사처럼 자신은 괜찮다, 안전하다, 이리 말하며 다가오는 인간.
세작에게 있어선 누구보다도 조심해야 할 인간이었다.
“딱히 큰일은 아닙니다. 그저 시종에게 가르침을 내리고 있었던 것뿐이죠.”
“가르침?”
“네. 제대로 앞도 보지 못해 주인의 옷을 더럽힌 멍청한 시종에게 말이지요.”
그렇게 말하며 유환은 자신의 옷 앞부분을 슬쩍 내밀었다.
하루에 세 번을 갈아입는다는 소문대로 먼지 한 점 없는 비단옷에서 눈에 띄는 자그마한 흙먼지 자국.
“그러니까 지금 네 말은.”
여전히 손에서 목검은 놓지 않은 채 놈을 노려봤다.
“겨우 그 자그마한 흙먼지 자국 하나 때문에 이 사달을 일으켰다, 이 말인가?”
내공이 실린 목검은 단련하지 않은 일반 성인에게도 위험한 무기다.
하물며 단련은커녕, 기본적인 식사조차 제대로 하기 힘든 어린 시종이야 말해 무얼 할까.
스쳐도 평생을 안고 가야 할 중상을 남기고, 제대로 맞으면 목숨까지 앗아갈 수 있었다.
“네, 그렇습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리고 그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이 어린 뱀 새끼는 웃으며 오히려 역으로 내게 물었다.
그래, 윗사람으로서 질문받은 건 제대로 답을 해줘야지.
“너희 두 사람은 크게 두 가지를 잘못했다.”
우드득. 나와 유성이 잡고 있던 목검에서 기이한 소리가 새어 나왔다.
부서지는 게 아니다. 휘어진다.
가공하여 기름까지 먹인 목검이 마치 다 쓴 걸레 마냥 뒤틀린다.
“하나는 아랫사람이라고 하여 사람을 함부로 대한 것.”
“익, 익!”
얼굴에서 표정이 사라진 유환과 대조적으로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양손으로 목검을 꽉 잡는 유성.
“그리고 다른 하나는.”
팡! 양쪽에서 가해지는 힘을 더 버티지 못한 목검이 여러 가닥의 나뭇조각으로 변했다.
“아아악!”
“유성아!”
검이 부서지자 거기에 가해지던 힘은 검을 잡고 있던 두 사람. 즉, 나와 유성에게 전해졌다.
하지만 권능과 단련한 근육이 보호해주는 나와 달리 손에 굳은살도 박이지 않은 유성의 손은 심하게 찢겨나갔고, 동생이 피를 흘리는 모습에 유환은 깜짝 놀라 그에게 달려갔다.
“너희 두 사람이 괴롭힌 시종은 너희 아랫사람이 아니다.”
뚝뚝 피가 흐르는 손을 잡은 채 두려움 가득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두 사람에게 고한다.
“이 아이는 내 시종이다. 이 아이를 함부로 대한다는 건 곧 나를 함부로 대한다는 것이란 말이다.”
저벅, 내가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자 두 사람은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를 준비는 됐나?”
“으, 으아아악!”
“혀, 형님!”
먼저 도망치는 유환과 깜짝 놀라 그 뒤를 이어 도망치는 유성.
[어이구, 도망은 잘 치네. 아, 저기 넘어졌다.]
“흥. 새끼 뱀과 둔한 곰 새끼가.”
만약 15년 정도 더 살았으면 나도 위험할 뻔했지만, 지금은 겨우 15살 꼬맹이에 불과했다.
지금의 두 사람 정도야 조금 겁주는 정도로도 간단히 쫓아낼 수 있었다.
[야, 그것보다 네 아들내미 챙겨라. 어디 다친 데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잘 살펴봐야지.]
그래, 지금 저놈들 망발이나 구경하고 있을 때가 아니지.
몸을 돌려 기정이가 쓰러져 있던 곳을 보자, 그 아이는 나도 모르는 새 일어나 싸움이 벌어지던 곳에서 떨어져 있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흙먼지를 뒤집어쓴 기정이의 머리를 털어주며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막았던 그 공격이 첫 공격이었던 모양인지, 몸에 멍이나 상처는 보이지 않았다.
“괜찮으냐? 어디 다친 곳은 없고?”
“도련님···.”
혹시 내가 못 본 상처가 있나 싶어 기정이에게 묻자, 울상을 지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날 불렀다.
“겨, 겨우 저 때문에 다른 도련님과···싸움을···.”
“걱정하지 마라.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니.”
“하지만···.”
“어차피 저놈들은 네가 아니었더라도 언제든 내게 시비를 걸 놈들이다. 네 잘못이 아니니 신경 쓸 필요 없다.”
내 설득에도 안심이 되지 않는지 코를 훌쩍이며 울려 드는 녀석의 양 볼을 꽉 잡고 늘렸다.
“드, 드른님?”
“울면 더 세게 당겨 버린다?”
“아, 아우게요.”
“또 운다고?”
“아우게다그요!”
“그래, 진작에 그래야지.”
확답을 받고 나서야 잡고 있던 볼을 풀어줬다.
살짝 발갛게 물든 볼을 쓰다듬는 기정이의 눈에는 더 이상 눈물은 보이지 않았다.
“몸이 많이 더러워 졌구나. 저녁은 씻고 먹자꾸나. 괜찮지?”
“네, 알겠습니다.”
내 말에 마음이 놓였는지 언제나처럼 쾌활한 목소리로 대답하는 기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야, 유현아.]
응?
갑자기 왜 불러?
[지금 임무 한번 확인해봐.]
뭐? 갑자기 왜?
[일단 봐봐. 뭔가 달라진 것 같으니까.]
밑도 끝도 없이 임무를 확인해보라는 화순의 말에 의문을 품으면서도 임무 확인을 되뇌었다.
2개월간 단 한 번도 쓸모없는 건 시키지 않은 그를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이제는 정신을 집중하지 않으면 느끼기도 힘든 미약한 열기와 함께, 나와 화순만 볼 수 있는 붉은색 인주가 글자를 이루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금껏 한 번도 본 적 없던 문장들을.
[임무 달성!]
[살의를 가진 두 명의 상대와 겨루셨습니다.]
[보상으로 4년의 내공이 지급되었습니다.]
흡!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비명을 겨우 참아냈다.
겨우 진정한 아이 앞에서 갑자기 비명을 내질렀다간 어떻게 될지 알고 있었으니까.
힐끔.
내 옆에서 걷고 있는 기정이가 혹시 내 변화를 눈치챘는지 확인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런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이다, 하고 안심하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감출 수 없는 어둠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물론 내공을 얻었다는 사실 자체는 기쁘다.
지금 몸 안에서 느껴지는 내공은 지금까지 내가 느껴본 적 없던 종류의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난 그것을 순수하게 기뻐할 수 없었다.
살의를 가지고 있는 상대, 라는 그 한 줄의 문장 때문에 말이다.
확실히 우리 세 사람이 그다지 친밀한 사이는 아니다.
내게 두 형제는 날 괴롭히는 계모의 아들들이었고, 놈들은 날 가문의 재산을 물려받는 걸 방해할 장애물 중 하나로밖에 보지 않았으니까.
하물며 나는 전생에서 15년간 두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지냈다.
안 그래도 희미하던 형제의 정 같은 건 신창양가에 입문한 지 사흘째에 깔끔히 지워졌다.
그래도 설마 방금 우리 세 사람 모두 서로에게 살의를 지니고 있었을 줄이야.
살의의 범위가 널찍해도 너무 널찍했던 걸까. 아니면, 혹시, 정말로···.
더 깊고 어두워지는 생각을 억지로 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문다. 아릿한 통증 속에서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
아버지를 만날 때가 됐다.
“기정아.”
“네, 도련님.”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 가주님께 저녁에 뵙자고 기별을 보내주렴.”
“예, 알겠습니다.”
내 명령에 기정이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 2달간 아버지와 매주 한 번씩 저녁을 함께했으니, 이번에도 그와 비슷한 일이라고 생각한 것이겠지.
내일 할 일을 몇 번씩 되뇌며 외우는 기정이의 머리를 다시 한번 쓰다듬었다.
드디어 계획했던 일을 진행해야 할 시간이 온 것이다.
*****
아버지와의 저녁 약속은 순식간에 성사되었다.
다른 게 아니라 아버지에게 기별을 넣으러 갔던 기정이가 총관과 함께 왔을 정도였으니까.
“저녁엔 제가 함께 가겠습니다. 기정이라고 했나? 너는 방에서 대기하고 있도록 해라.”
“네, 알겠습니다.”
평상시와 미묘하게 다른 총관의 말투에서 이미 알 수 있었다.
어제 우리 세 사람 사이에 있었던 일이 총관은 물론이거니와 아버지께서도 파악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저녁.
회귀한 그 날 아버지와 저녁 식사를 함께했던 식당으로 가는 길.
앞에서 평상시보다 훨씬 느린 발걸음으로 걷던 총관이 입을 열었다.
“도련님.”
“네, 총관.”
“어제 있었던 일은 들었습니다.”
“···역시 아셨군요.”
“가문의 담 안에서 일어난 일도 몰라서야 어찌 총관이란 직함을 달고 있겠습니까.”
“그렇군요.”
“왜 그러셨습니까?”
가던 길도 멈춘 총관이 물었다.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
언제나 강직하고 올곧던 총관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연약한 목소리로 그가 나를 탓하듯 말했다.
“영특한 도련님이라면 알고 계시겠죠. 지금 도련님의 위치가 무척 위태롭다는 사실을요. 그런데 왜 두 분의 시비를 받아주고, 거기에 되받아치기까지 하신 겁니까?”
“···그것까진 듣지 못하셨나 보군요.”
그러고 보니 한창 우리 세 사람 사이에서 싸움이 벌어질 때, 대화를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가까웠던 건 기정이 하나뿐이다.
그 외에 다른 시종들은 그저 멀찍이 떨어져서 우리가 싸우는 모습을 지켜보기만 했고, 그런 그들에게서 이야기를 들었을 총관이 마지막 대화를 못 들었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는 이 대답을 들으면 과연 실망할까, 아니면 슬퍼할까.
“내가 스스로 선택하여 거둔 아이입니다.”
그의 반응에 대한 답을 생각하기도 전에 저절로 입이 열렸다.
“내가 받아준 사람이, 내 담 안에 들어온 사람이 아파하는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전생과 현생을 통틀어, 나는 단 한 번도 위에 있던 적이 없었다.
무공만을 한정 지어서 말한 게 아니다. 맡은 직책도, 얻은 계급도 모두 제일 아래에 있었다.
삼류와 말단. 마치 떨어지면 죽어버리는 심장과 뇌처럼 그 두 가지 단어는 평생을 내게 달라붙어 있었다.
평생을 누군가 밑에 기면서 살아왔다. 평생을 누군가에게 고개 숙이며 살아왔다. 평생을 무언가를 누군가에게 바치며 살아왔다.
그때도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고개를 숙였다면 별 소란 없이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다.
어려운 일은 아니다. 이미 전생에서 몇 번이고, 몇십 번이고, 몇백 번이고 그렇게 살아왔으니까.
하지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할 수 없었다.
내 아래에 있는 사람이 다칠 뻔했다.
처음엔 갑자기 변해버린 내 모습을 숨기고 싶은 마음에 억지로 받아낸 시종이었을지 몰라도, 지금은 분명한 내 품 안에 들어온 사람이었다.
그런 아이가 괴롭힘당하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나는 내 배다른 형제에게 살의까지 내뿜으며 그 둘을 막아섰다.
“후회는 없습니다. 만약 지금 식당으로 가서 아버지께서 가문을 나가라 하시더라도, 내 선택은 여전히 같을 겁니다.”
회귀한 그 순간. 나는 더 이상 삼류로, 말단으로 살아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그런데 한순간의 위험을 회피하기 위해 내 아래 사람을 고통스럽게 만든 자들에게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되는 순간 나는 나 스스로 다짐했던 것을 내 손으로 부수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렇기에 둘을 막아선 겁니다.”
“·········.”
총관은 내 대답에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멈춘 자리에서 가만히 하늘에 떠오른 달을 응시할 뿐, 다른 행동은 보이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알겠습니다.”
달이 구름에 가려져 내리쬐던 달빛이 살짝 숨겨진 그때, 총관이 몸을 돌리더니 날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생각, 잘 들었습니다. 이제 가시지요.”
“네.”
다시 몸을 돌려 식당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총관의 뒤를 따른다.
아주 짧은 순간 나와 마주했던 그의 얼굴을 볼 순 없었다.
달빛 한점 없는 어둠을 꿰뚫어 보기엔 4년의 내공은 너무나 부족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똑 닮으셨군요.”
그가 아련히 내뱉은 한마디는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 형제(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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