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형제 (1) >
이미 내 양팔이 누군가의 서책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어느 정도 담담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하지만 이 임무라는 건 완전히 다른 영역의 이야기였다.
갑자기 사람들과 목숨을 걸고 겨루라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에 대한 보상은 완전히 예상외였다.
“일 갑자의 내공을···그냥 준다고?”
평범한 재능을 가진 사람 한 명이 평범한 내공심법으로 60년간 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세 시진 동안 꾸준히 수련에 수련을 거듭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이 일 갑자다.
물론 사람의 재능이나 내공심법의 수준에 따라 그 시간을 단축할 순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최소 10년의 세월을 수련해야 얻을 수 있는 내공이다.
당장 삼류의 재능으로 삼류의 내공심법, 그리고 제대로 된 수련도 하지 못한 내 내공은 기껏해야 5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그만한 내공을 싸우는 것만으로 얻을 수 있다?
만약 그것이 정말로 사실이라면···.
꿀꺽.
나도 모르는 새 고인 침을 삼킨다.
요 이틀 사이 상상치도 못한 경험을 여럿 하긴 했지만, 단언컨대 지금이 가장 충격적이었다.
“이거···설마 거짓은 아니겠지?”
[당연하지. 내가 조금 놀려먹긴 했지만, 거기에 적힌 건 조금의 거짓도 없는 사실이야. 제대로 된 싸움만 벌일 수 있다면, 2년의 내공을 순식간에 얻을 수 있지.]
내가 충격에서 빠져나오길 기다리던 화순은 내 질문이 내심 기뻤는지 묻지 않았던 것까지 착실히 대답했다.
그렇게 대화가 고팠나···좀 잘 대해줘야겠다. 대화도 좀 자주자주 해주고.
“그래, 그렇군···응? 제대로 된 싸움? 그건 또 뭐야? 그냥 일반적인 대련은 안 돼?”
[음, 그게 조금 복잡해. 아니, 오히려 너르다고 해야 하나. 내가 예를 들어 줄게.]
그는 잠깐 고민하더니, 곧이어 여러 가지 상황들을 설명했다.
언젠가 자신과 제대로 대련해달라고 하던 제자와 싸우다 내공을 얻은 천마 이야기부터, 누군가의 의뢰를 받고 찾아온 암살자를 죽여 내공을 얻은 천마. 그리고 어떤 천마가 일 갑자의 내공을 얻고 기뻐 날뛰다 연공장을 박살 낸 이야기까지.
“그만.”
···아까의 말은 취소.
처음에는 상황 설명이던 이야기가 결국 그와 함께한 천마들의 과거 이야기가 되는 걸 더는 참지 못하고 중단시켰다.
갑자기 이야기를 중단한 것에 불만인 듯 입술을 삐죽 내밀고 있는 화순에게 물었다.
“어쨌든, 그 목숨을 건 결투의 범위가 엄청나게 넓다, 이거지?”
[그렇지. 나도 직접 실험 같은 건 해본 적 없지만, 지금까지 날 얻었던 천마들이 어떻게 내공을 얻었는진 봤으니까. 네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기상천외한 전투로 내공을 얻은 경우도 봤으니, 어쩌다가 얻어도 너무 놀라진 마.]
“너무 범위가 넓은데···뭐, 그래도 나한텐 좋은가.”
하지만 그편이 내게는 더 편한 건 사실이다.
쓸데없이 빡빡한 조건 때문에 기껏 싸워도 제대로 된 대결로 성립도 안 되는 것보단, 이렇게 헐렁한 조건이 내겐 훨씬 편하니까.
“좋아. 일단 내공을 얻는 방법은 그렇다 치고, 다른 능력은? 본래 무공이 내공 하나로 완성되는 건 아니잖아?”
[물론이지. 무란 본래 심기체(心氣體) 이 세 가지의 조화가 가장 중요하니까. 이번에는 ‘무공 확인’이라고 한번 말해봐.]
“무공 확인? 호오, 이런 거군.”
미리 대비하고 말하자, 이젠 열기도 그리 고통스럽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젠 없으면 아쉬운 찜질 정도로 느껴진다고 해야 하나.
···익숙해진다는 건 무섭구나.
아냐, 지금 이런 이상한 거나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잖아.
이 열기의 이유를 확인해야지.
왼팔의 글씨는 두 문장밖에 올라오지 않았던 오른팔과 달리 조금 더 많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신양창법(神陽槍法)을 천마창법으로 변형.]
[마령수(魔靈手)를 천마금나수로 변형.]
[사용 가능 무공 :
천마창법 1성
-오의 : 미개방
-극의 : 미개방
천마금나수 1성
-오의 : 미개방
-극의 : 미개방
강화 가능 무공 : 없음]
“천마창법? 천마금나수?”
내가 아무리 말단이라고 해도 한때 마교도였던 사람이다.
천마의 무공이 가진 위력에 대해서는 귀에 딱지가 앉도록 들어왔다.
물론 그런 일화에는 교도들을 광신도로 만들기 위한 선동이 대부분을 차지했지만, 그중 단 1할만 사실이라고 해도 경천동지한 위력인 건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런 천마의 무공 사이에서도 일절이라는 천마창법은 마교뿐만 아니라 전 중원에도 그 명성이 자자할 정도였다.
그런 강력한 무공이 내 손에 들어오다니!
본래의 무공을 잃었다는 아쉬움은 애초에 없었다.
잃은 거라곤 기껏 해봐야 3년간 반강제로 익힌 춤사위 같은 창법과 12년간 겉핥기로만 배운 금나수뿐.
그런 잡스러운 무공을 천마의 신공과 교환했다면 한참은 남는 장사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강화 가능 무공이라는 건 뭐야?”
[내가 준 천마의 무공은 평범한 수련으로는 성취를 높일 수 없어.]
“응?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수련으로 성취를 높일 수 없는 무공이라고? 그런 무공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지?
[천마의 무공은 말 그대로 신공(神功). 원래 평범한 방법으로는 익히는 것도 불가능한 무공이야. 그래서 절세의 천재였던 초대 천마께선 자신이 기껏 만든 무공이 사라지게 될 것을 크게 아쉬워하셨고, 후대가 그걸 쉽게 익히실 방법을 찾으셨지.]
“그리고···네가 만들어진 거고?”
[그렇지. 무공을 좀 더 쉽게 익히고, 좀 더 쉽게 성취를 높일 수 있도록 보좌하기 위함인 거지.]
그제야 왜 독고삭이 이것을 천마의 권능이라 불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먼저 말해준 능력도 대단했지만, 이 권능의 진짜 목적이 바로 천마의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였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그 성취를 높이는 방법은 뭐지?”
[내공과 똑같아. 뛰어난 무공을 가진 상대와 싸워 이겨서 그 무공을 흡수하면 돼.]
“무공을 흡수한다고? ···흡성마공(吸成魔功)을 말하는 거야?”
[아니, 조금 달라. 흡성마공은 내공만 흡수할 뿐, 그 무공 자체를 흡수하는 건 아니니까.]
단번에 이해하기 힘든 개념인 건 그도 알던 모양인지, 정확히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작동하는지 내게 천천히, 그리고 자세히 설명했다.
[만약 네가 누군가와 겨뤄 승리한다면 네 천마의 무공을 강화할 수 있는 무공을 얻게 돼. 물론 상대의 성취가 높을수록 더 높은 무공을 얻을 수 있는 건 당연지사지.]
“그리고 그렇게 얻은 무공으로 나는 내가 가진 천마의 무공을 강화할 수 있는 건가?”
[그렇지. 하지만 또 아무 무공으로 경지를 높일 수 있는 건 아니야.]
“무슨 조건이 있는 거야?”
[그래. 천마의 무공은 오직 같은 성취의 무공으로만 강화할 수 있어. 예를 들어 지금 유현 네가 가진 천마창법을 1성에서 2성으로 높이기 위해선 다른 1성의 무공을 합쳐야만 한다는 거야.]
“그리고 2성의 천마창법을 3성으로 올리려면 2성의 무공을 합성시켜야 하는 거야?”
[바로 그거지! 이해하는 속도가 빠른데?]
“흠, 그렇구만.”
싸우고 다녀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어났군.
···초대 천마란 사람도 참 무시무시하네. 무조건 사람을 죽일 마음으로 싸워야 내공과 무공이 상승하도록 만들어놓다니.
정확히 어느 시대의 사람인진 몰랐지만, 아마 그 시대에서는 그것이 당연한 시대인 듯했다.
“그런데 잠시만. 만약에 두 무공 모두 2성의 경지로 올린다면 그 이후로 얻게 될 1성의 무공들은 어떻게 되는 거지? 쓰지도 못한 채로 그냥 가만히 놔둬야 하나?”
[쯧쯧쯧. 초대 천마님이 그렇게 허술한 사람으로 보이냐? 당연히 대책도 준비하셨지.]
이상하게 초대 천마 이야기만 나오면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변하는 그.
아무래도 자신을 만들어 준 사람이라 그런 건가.
뭐, 이런 대단한 걸 만들었다면 자부심을 가질 만도 하겠지만 말이야.
[만약 결투를 통해 1성의 무공을 두 개 얻으면, 그것을 하나로 합쳐 2성으로 올릴 수 있어. 그 2성의 무공도 두 개를 모으면 3성으로, 4성으로, 5성으로 차례대로 올릴 수 있지. 그러니 무공을 버릴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흐음, 그렇구만. 그런데 그럼 혹시 내가 흡수한 그 무공을 쓸 수 없는 거야?”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도 없지.]
방금까지 웃음기가 다분한 목소리로 설명을 이어나가던 화순이 처음으로 진지한 목소리로 말했다.
[천마의 무공은 최강의 무공. 그런 무공을 두고 다른 무공을 쓸 이유가 있어?]
확신을 넘어 맹신하는 목소리로 대답하는 그에게 딱히 반박은 하지 못했다.
내가 아는 수준에서도 천마의 무공을 뛰어넘는 무공은 없었고, 그런 무공을 가진 상대와 싸울 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대충 네 능력은 알았어. ···확실히 대단한 능력뿐이네.”
[으흐흐, 당연하지. 내가 누군데.]
아까의 진지한 목소리는 꿈이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본래의 웃음기 가득한 목소리로 돌아온 화순.
이 권능의 전대 주인인 독고삭이 그랬던 것처럼, 나도 죽기 직전까지 그와 함께하겠지.
“그리고 앞으로 잘 부탁한다···화순.”
[내가 할 말이지. 덕분에 이렇게 이야기도 할 수 있게 됐으니까 말이야.]
웃으며 말하는 그였지만, 그의 이면에는 숨길 수 없는 씁쓸함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천마와 함께하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건 내가 처음이라고 했나.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유구한 세월 동안 침묵에 잠겨 있을 그를 생각하니, 괜히 입맛이 씁쓸해졌다.
···초대 천마도 이런 애를 넣어둘 거면, 불량인지 아닌진 확인 정도는 해두라고.
[···그럼 단련을 계속할까?]
“응? 아, 음. 그래.”
내 침묵의 이유를 그도 알아챈 걸까. 쾌활한 목소리로 내게 말을 건네는 그에게 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바로 시작하자.”
[좋아. 그럼 다음 운동법은···.]
그렇게 모두가 잠든 야심한 밤.
앞으로 나의 삶을 바꿔줄 일들이 아주 느릿하게, 하지만 확실히 진행되어가고 있었다.
*****
탁! 한창 필기에 열중하고 있던 소년은 책을 덮는 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주름 가득한 얼굴에 가슴께까지 내려오는 기다란 수염을 기른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소년에게 말했다.
“오늘은 이걸로 마치자꾸나.”
“네? 벌써요?”
“허허허. 글에 취해 시간도 잊었느냐? 수업을 시작한 지 벌써 세 시진이나 흘렀거늘.”
노인의 말에 소년은 동그래진 눈으로 창문으로 시선을 옮겼다.
이미 서쪽에 가까워진 태양에 놀란 소년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아! 도련님이 저녁 전에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허어, 도련님과의 약조를 어기면 안 되지. 얼른 정리하고 가보거라.”
“네! 알겠습니다, 스승님!”
자신의 앞에 널브러져 있던 문방사우를 모두 챙긴 소년은 노인에게 고개를 숙여 인사한 뒤 바로 밖으로 뛰쳐나갔다.
“괜찮아! 뛰어가면 늦진 않을 거야!”
다짐이라도 하듯 큰소리로 외친 소년은 부지런히 양다리를 움직였다.
다른 사람들이 저녁을 먹을 시간은 지났지만, 소년의 주인인 도련님은 저녁을 늦게 먹기에 지금이라도 열심히 뛰어가면 늦지 않을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장씨 할아버지!”
“서씨 아줌···누나! 도련님이 아침에 내놨던 나물 맛있대요!”
“아저씨! 이번에 도련님이 대장간 좀 다녀와 달래요!”
그렇게 바쁜 와중에도 소년은 가는 길마다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걸 잊지 않았고, 그런 소년의 인사를 사람들은 모두 웃으며 받아줬다.
소년이 도련님의 전속 시종으로 배정받은 지 아직 2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가장 안의 사람들은 대부분 그를 좋아했다.
성격도 모난 데 없고, 자신이 맡은 일은 확실히 해내며, 무엇보다 전속 시종이 되었음에도 다른 전속 시종들과 달리 사람들을 내려보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소년의 노력이 헛되지는 않았는지, 소년은 생각한 것보다 빨리 도련님의 방 근처에 도달했다.
이제 저 모서리에서 꺾으면···!
벌써 2개월 넘게 하루도 빠지지 않고 오갔던 길이다. 이젠 눈을 감아도 도련님의 방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지리에 훤해졌다.
하지만 소년은 몰랐다.
쿵!
소년을 싫어하는 몇 안 되는 사람이 그를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컥!”
예상치 못한 충격에 소년은 단말마를 내지르며 땅을 굴렀다.
마치 돌벽에 온 힘을 다해 달려든 것만 같은 아찔한 고통.
땅에 널브러진 채로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아픔에 겨우 신음만 흘리던 소년의 위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쯧쯧쯧. 앞도 제대로 안 보고 그렇게 막 뛰어다니면 쓰나. 조심해야지. 이 귀한 비단옷에 흙이 묻었잖아.”
적의가 가득한 말투. 어디선가 들어본 그 목소리에 소년은 엄청난 고통 속에서도 겨우겨우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런 소년의 눈 안에 들어온 건.
“이걸 배상하려면 팔 하나쯤은 필요하겠는데?”
자신을 놀리듯 이죽거리고 있는 셋째 도련님과.
“·········.”
뒤에서 조용히 팔짱을 낀 채 차가운 분노를 담은 눈으로 노려보고 있는 둘째 도련님이었다.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살기 어린 두 사람의 분위기 속에서 소년은 오직 한 가지 생각만 떠올리고 있을 뿐이었다.
얼른 도련님에게 가야 하는데, 하고.
*****
“후우.”
쿵! 마치 지진이라도 난 듯 커다란 진동이 공터를 울린다.
물론 정말로 지진이 일어난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들고 있던 물건을 땅에 떨어뜨렸을 뿐이다.
다만 그 물건이 25관(약 93.75kg)에 달하는 커다란 쇳덩이라는 게 문제지.
“오늘 단련은 이걸로 끝낼까?”
[응, 괜찮을 것 같네. 근육에도 휴식은 필요하니까. 고생했어.]
“화순 너도 수고했다.”
[나야 뭐 한 게 있나. 여기 누워서 너 하는 것만 보고 있었을 뿐인데.]
근처 나무에 걸어놨던 깨끗한 천으로 땀을 닦아내며 그에게 말했다.
말은 그리했지만, 사실 그도 정말로 누워만 있었던 건 아니다.
내가 조금이라도 다른 방식으로 움직이려고 하면, 귀신같이 그걸 파악하고 바로 자세를 교정해줬으니까.
그의 대답에 웃음으로 대신 답해준 뒤, 내 육신을 천천히 살폈다.
넓은 어깨와 단단한 사지. 그리고 왕(王)자가 새겨진 복부까지.
처음 능력을 얻었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확 바뀐 육체를 보던 그때 문뜩 떠올랐다.
“그러고 보니 능력을 얻은 지도 벌써 2개월이나 됐네. 시간 참 빠르구나.”
아니, 시간이 빨랐다기보단 내가 바쁘게 살아왔다는 게 더 맞는 말이겠지.
그렇게 당당히 말할 수 있을 정도로 2개월 동안 정말 한 번도 쉬지 않고 열심히 달려왔다.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다섯 시진 동안 단련에 힘쓰는 건 물론, 밤에도 한숨 자지 않고 국가와 무림의 정세.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끊임없이 공부하며 생각하고 있었으니까.
피곤함은 느껴지지 않았다. 물론 권능도 한몫했지만, 그보다도 내가 그것을 바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젠 더 삼류로, 말단으로 시시한 인생을 살아가지 않아도 된다.
그것을 되뇌는 것만으로도 내 심장은 장작을 넣은 불꽃처럼 뜨겁게 타올랐다.
“기정아, 이 천 좀···어라?”
다 닦은 천을 내 전속 시종, 신기정에게 건네려다가 알아차렸다.
본래 내가 단련하고 있을 때 항상 있던 위치에 그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얘가 아직 안 왔나? 화순, 혹시 기정이 오는 거 봤어?”
[네 아들내미? 몰라, 너 운동하는 동안 안 왔던 것 같은데.]
“아들 아니라니까. 흠, 그나저나 좀 걱정인데. 아무리 공부에 재미를 들렸다지만, 늦을 애는 아닌데···.”
오전과 오후에는 거의 단련에만 힘쓰다 보니, 자연스레 전속 시종인 기정이도 딱히 할 일이 없어졌다.
그래도 내가 필요하다고 데려와서 쓰는데 가만히 내버려 두긴 미안해서 내가 필요 없는 시간에는 서원에 보내 글과 셈 공부를 시켰는데, 그것이 잘 맞았는지 아주 그냥 공부에 푹 빠져버렸다.
그래도 시종인 자신의 본분은 잊지 않고 저녁 시간 전엔 무조건 와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뭔가 이상해.”
12년간 세작으로 살아오면서 발달한 위기 감지 능력이 뭔가 심상치 않은 상황이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땀을 닦아낸 천을 아무렇게나 던져놓고 본래 기정이가 오는 길을 그대로 뒤따라 걸었다.
혹시 최근 너무 고생해서 쓰러진 건 아닌가, 하는 걱정도 잠시.
저 멀리서부터 보이는 기정이의 모습에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아니.
도약했다.
쿵!
단련으로 발달 된 다리 근육은 내공을 쓰는 것과 다를 바 없이 순식간에 쓰러진 아이의 앞으로 날 데려다줬다.
기정의 머리를 밟은 채, 손에 쥐고 있던 목검이 그 아이 위로 떨어지기 전에 말이다.
“난 인내심이 크지 않다. 그러니 두 번 묻게 하지 마라.”
내 손에서 목검을 뽑아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느라 얼굴이 뻘겋게 변한 유가장의 셋째. 유성(幽成)을 노려봤다.
“내 시종에게 무슨 짓이냐.”
< 형제 (1)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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