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권능으로 무림최강-4화 (4/185)

< 천마 독고삭(2) >

“내가 너에게 준 것은 권능이다.”

동굴을 부술 듯 휘몰아치던 기의 폭풍도 어느새 사그라든 동굴 안.

고요에 빠진 그곳에서 독고삭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궈, 권능?”

“이제는 모두에게 잊혀 버린 초대 천마님 때부터 내려온 위대한 힘이지.”

쿨럭, 쿨럭, 쿨럭.

내 질문에 답하던 그의 입에서 젖은기침과 함께 걸쭉한 피가 흘러내린다.

아까와는 확연히 다르다.

절대 무너지지 않는 거대한 산맥과도 같던 모습은 사라지고, 남은 건 치료받을 수 없는 상처를 입은 약한 인간뿐.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으로 훔친 그가 말을 이어갔다.

“옥천이 노리던 것도 바로 이것이다. 천마의 권능은 곧 천마의 힘을 뜻하지. 놈은 이것만 얻는다면 자신이 절대 고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거다. ···물론 멍청한 착각이겠지만.”

그의 말에 틀린 것은 없었다.

전생에도 옥천은 분명 천마로 인정은 받고 있었지만, 그 강함은 역대 천마 중에서 아래에서 세는 편이 빠를 거라는 게 무림의 평가였으니까.

물론 마교 안에선 입도 뻥긋할 수 없는 이야기였지만 말이다.

“그런 힘을 왜 내게 준거요?”

“나도 처음엔 생각도 하지 않았다. 이 힘은 내가 주고 싶다고 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니까. 오직 천마의 혈족만이 권능을 얻을 수 있지.”

“그 말은···내가 천마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말이오?”

“내 몸에서 더 이상 권능이 느껴지지 않는 걸 보면, 그렇다는 말이 되겠지. 마교의 역사는 길고, 그중에선 사라진 것도, 잊힌 것도 여럿 있지. 본교 외부에서 천마의 핏줄이 튀어나온다고 해도 놀랄 일은 아니다.”

내가 천마의 핏줄이라니.

전생에 마교에서 12년간 살면서도 몰랐는데, 그걸 설마 이런 자리에서 알게 될 줄이야.

천마의 권능을 이어받게 된 것도 충격이었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게 충격적이었다.

“내게 바라는 것이 무엇이오? 이런 힘을, 이런 권능을 준 이유가 있을 것 아니오?”

“운명과 변덕. 그뿐이다.”

거기까지만 말한 독고삭은 잠시 가쁜 숨을 몰아 내쉬었다.

아까는 있는지도 몰랐던 상처들에서 끊임없이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연히 짐승 굴을 찾아온 사내가 천마의 핏줄이라는 사실에 운명을 느꼈고, 거기에 내가 조금의 변덕을 부렸을 뿐이지.”

“그럼 내게 무언가 바라는 건 없는 것이오?”

“흐흐, 억지로 떠넘긴 물건에 대가를 바라는 건 사기꾼뿐이지. 하지만···.”

“하지만?”

“만약 네가 마교에 가게 되면 성화녀(聖火女)에게 이 말 한마디만 전해다오.”

“성화녀?”

“내 외동딸이지. 무림의 사람이라면 이름 정도는 한 번 들어 봤을 테지만, 자네는 모르겠지.”

모를 리가 있나. 당연히 알고 있다.

당대 무림오화(武林五花) 중 하나로 꼽히는 독고화(獨孤花)의 이름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름다운 미모와 함께 아버지 독고삭에게 물려받은 재능으로 초절정의 경지에 이른 고수.

그리고 천마 옥천의 처로 유명했던 여인.

덕분에 혼인할 땐 ‘아내의 무공이 남편보다 낫다’라는 우스갯소리도 중원에 자자했지.

“가능할진 모르겠지만, 된다면 꼭 말해주겠소.”

“고맙군.”

그는 잠깐 말을 멈추고, 동굴의 천장을 응시했다.

텅 빈 천장을 응시하는 그의 눈엔 흙벽이 아닌, 아련한 추억이 감돌고 있었다.

“서란(曙蘭)의 일은 미안했다, 라고 말해주게나.”

“서란···?”

“내 아내이자···그 아이의 어머니지. 그 아이는 몇 번 본 적 없지만 말이다.”

“···알겠소. 꼭 전해주도록 하지요.”

“무리할 필요는 없네. 자기 목숨부터 생각해야지.”

전생에도 두 사람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나도 몰랐다.

마교의 정보요원으로 살아왔지만, 천마의 가족사 같은 건 알 수 없었다.

내가 부탁을 받아들이자, 그는 마음이 놓인 듯 눈을 감았다.

아직 생명의 끈을 놓은 건 아니지만, 그것도 시간문제일 뿐.

그는 내게 권능을 주고 난 이후로 멈춘 시간이 흐르듯 시시각각 죽어가고 있었다.

“이만 가보게나. 놈이 오기 전에 가야지.”

“복수···는 바라지 않으십니까?”

“기껏 준 걸 그렇게 쉽게 버리려 하지 말게나.”

피식 웃으며 답하는 그에게 더 이상 다른 말을 꺼내진 않았다.

나도 혹시나 해서 해본 말이었으니까.

결국 역사대로 옥천은 독고삭의 시체를 찾을 테고, 천마의 권능은 얻지 못했더라도 결국 천마가 되는 건 마찬가지일 터.

그런 상황에서 그에게 독고삭의 복수를 하겠다고 달려드는 건 마교 전체를 적으로 돌리는 꼴밖에 안될 테니까.

하지만.

“부탁한 건, 꼭 해내도록 하겠소.”

“·········.”

한 남성이 최후에 한 부탁까지 매몰차게 무시할 정도로 냉혈한은 아니다.

그는 더 말할 힘도 없는지 내 말에 대답하지 않았다.

가빴던 숨이 고요해지고,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을 생각도 하지 않는다.

모든 것이 멈춘 듯 고요한 잠에 빠진 그를 향해 말했다.

“고맙소.”

인생 최후의 숙면에 빠진 그를 방해하고 싶진 않았다.

조용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남긴 뒤, 묵례를 취하고 동굴을 빠져나왔다.

마치 내가 처음 찾아왔을 때처럼, 동굴은 다시 침묵에 잠겼다.

*****

유현이 동굴을 빠져나가고 하루가 지난 다음 날.

동굴의 입구엔 유려한 미남자가 서 있었다.

입구를 가만히 쳐다보던 남자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향해 말했다.

“여긴가? 독고삭이 숨은 곳이.”

“그렇습니다, 소교주님.”

대답과 함께 허공에서 검은 그림자가 일렁이더니, 곧 사람의 형태를 띤다.

온몸을 검은색 천으로 칭칭 감은 사내에게서 볼 수 있는 부분은 오직 두 개의 눈동자밖에 없었다.

“위치 파악이 늦었군.”

“그는 절대 고수입니다. 그에게 들키지 않고 그를 찾기 위해선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죠.”

“흥.”

미남자, 옥천은 더 남자를 탓하지 않았다.

만약 자신이 천마의 자리에 올랐고, 그가 부하였다면 감히 자신에게 그따위로 말한 죄로 혀를 잘랐겠지만, 아쉽게도 두 가지 모두 아니었다.

자신은 아직 천마가 아니었고, 눈앞의 남자도 어디까지나 거래 상대일 뿐, 부하는 아니다.

“하지만 여기 있다는 건 확실하겠지?”

“소교주님 덕분에 독고삭에게 만리향을 한 근은 먹였지요. 그 정도라면 만 리가 아니라, 백만 리 밖에서도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겁니다.”

“얼굴도 보고 싶지 않은 인간과 같이 식사한 보람이 있군.”

그렇게 말하는 옥천의 입가엔 비릿한 미소가 그려져 있었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는 스승의 등에 칼을 박아넣은 그때와 똑같은 미소였다.

“그런데 그런 상처를 입고도 여기까지 오다니, 괴물은 괴물이군요.”

“아니, 그는 인간이다.”

모두가 천지를 위명할 힘을 가진 독고삭을 괴물로 부르길 주저하지 않았지만, 옥천은 잘 알고 있었다.

결국 그도 누군가의 앞에선 한없이 약해지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다만 권능을 가지고 있을 뿐. 그리고 그 권능을 얻게 되면, 그땐 내가 괴물로 불리겠지.”

그리고 옥천은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토록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 말도 안 되는 권능을 가지고 있으면서 한낱 인간으로 살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그가 너무나 싫었다.

“약속은 아직 기억하고 계시겠죠? 그때가 되면···.”

“알고 있다. 정파와의 전쟁을 위한 준비를 시작할 것.”

스승에 대한 증오가 유난히 들끓던 어느 날, 자신을 찾아온 정체불명의 집단.

그들은 옥천에게 말했다. 당신을 천마로 만들어줄 테니, 정파와 거대한 전쟁을 일으키라고.

고민은 길지 않았다. 그들의 강대한 힘도 선택에 한몫했지만, 그보다 큰 건 스승에 대한 혐오와 분노였다.

그가 만든 걸 모조리 부수고 싶다.

거기엔 그가 키워낸 마교와, 유화책을 통해 만들어낸 정파와의 평화도 포함되어 있었다.

“오히려 내가 바라는 바지.”

“감사합니다. 자, 그럼 이제 들어가시죠.”

검은 천의 사내가 손을 흔들자 동굴의 입구가 순식간에 커졌다.

허리를 숙이지 않고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구멍이 커지자, 그제야 두 사람은 발걸음을 옮겼다.

유현과 다르게 옥천이 동굴 끝에 도착하는 데에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좁은 굴을 기어갔던 유현과 달리, 옥천은 허리를 빳빳이 세운 채 걸어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끝에 도착한 두 사람이 본 광경도 전혀 달랐다.

동굴의 벽에 기댄 독고삭에게서 생명의 기운은 느껴지지 않았다.

땅에 채 흡수되지 않아 고인 피와 축 처진 채 땅에 널브러져 있는 팔다리.

그리고 지금껏 단 한 번도 보여주지 않은 고개 숙인 모습까지.

“···이게 뭐지?”

그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옥천이 입을 열었다.

누구에게 질문하는 걸까.

옆에 선 사내에게? 아니면 자기 자신에게?

그것도 아니라면 이미 죽어버린 스승에게?

그 광경을 믿을 수 없는 건 옆에 선 사내도 마찬가지였다.

처음으로 당혹이란 감정을 눈으로 나타낸 사내가 침음성을 흘렸다.

“이런···.”

“이게 뭐냔 말이다!”

옥천의 분노에 가득 찬 외침과 함께 강한 기파가 주위로 퍼져나갔다.

잠깐 자욱한 흙먼지가 피어올랐지만, 독고삭의 것과 달리 금방 가라앉았다.

“오히려 제가 묻고 싶군요.”

순식간에 거리를 벌린 검은 천의 사내가 그에게 말했다.

“제가 듣기론 그···권능인가 뭔가가 있으면 그것을 물려주기 전까진 죽지 않는다고 들었는데요. 그래서 마음 놓고 그의 배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버린 거고요. 하지만 지금의 그는···흐음, 이렇게 말해도 될진 모르겠지만···제대로 가 버린 것 같은데요.”

어느새 눈에서 당혹을 지운 그는 이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자신들의 계획에 가장 큰 장애물이 이렇게 사라졌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본래 계획과 조금 다른 방식이긴 했지만, 그들에겐 상관없었다.

“어찌 됐든 당신이 천마가 될 수 있다는 건 마찬가지니까요. 그렇지 않습니까?”

“·········.”

옥천은 아무 말도 꺼내지 않았다.

스승의 죽음이 충격적이기도 했지만, 사내의 말에도 일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천마의 권능이 없다 해도 자신은 천마의 제자이며, 독고화의 배필이다.

마교에서, 아니, 전 중원에서도 자신 외에 천마가 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하지만.

“누군가 권능을 훔쳐 갔다.”

안심할 수만은 없었다.

마교의 늙은이들은 권능이 없는 천마는 인정하지 않으려 들 테고, 반발하려는 자들을 힘으로 누른다 해도 권능 없는 무공만으론 힘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아닌 누군가가 권능을 얻게 된다는 사실을 참을 수 없었다.

“그 권능이 뭔진 모르겠지만, 훔칠 수도 있는 건가 보군요?”

“내 상식에선 불가능한 이야기지만, 이 인간은 항상 내 상식을 뛰어넘었지. 무슨 짓을 한진 모르겠지만, 어떤 놈한테 권능을 물려준 게 분명해.”

독고삭은 옥천에게 권능에 대한 것을 많이 알려주진 않았다.

그것을 통해 어떻게 힘을 얻을 수 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등의 실질적으로 중요한 건 거의 알려주지 않았다.

하지만 그 외의 정보는 어느 정도 들을 수 있었다.

권능을 얻으면 쉽게 죽지 않는다는 것도, 원한다면 누군가에게 물려줄 수 있다는 것도 그때 알았다.

그 조건과 방법은 여전히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이 근처를 항상 감시하고 있었겠지?”

“독고삭이 느낄 수 없는 위치에서요. 저 인간이 어디 보통 인간입니까? 최대한 멀리 떨어져서 볼 수밖에 없었죠.”

“이 근처를 지나가던 인간은?”

“그가 동굴에 숨은 날부터 오늘까지 관도 주위로 5만이 넘는 인간이 지나갔습니다. 근처에서 멈춘 인간은 그중 3할은 되죠. 그 권능을 주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진 모르겠지만, 만약 순식간에 줄 수 있다면 5만을 전부 확인하셔야 할 겁니다.”

“···3할이라면 만 오천이 조금 넘는 건가?”

“그렇습니다.”

“돈도, 사람도 얼마든지 쓰게 해주지.”

콰직!

옥천은 축 처진 독고삭의 손을 발로 밟으며 말했다.

“찾아라. 그 모두를 찾아. 남자인지 여자인지, 젊은이인지 노인인지, 부자인지 거지인지. 모두 찾아내라. 지나간 인간의 모든 신상정보를 찾아서 내게 가져와.”

“흠···하루 이틀론 턱도 없습니다.”

“상관없다. 평생이 걸리더라도 상관없어. 권능을 훔쳐 간 놈을 내 앞에 무릎 꿇릴 수 있다면, 영원히라도 기다려주지.”

“알겠습니다. 대신···.”

“걱정하지 마라. 약속은 지킨다. 전쟁 준비는 착실히 이행하지.”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꾸벅, 고개를 숙인 검은 천의 사내는 나타났을 때처럼 허공으로 사라졌고, 독고삭의 시체와 둘만 남게 된 옥천은 그를 가만히 바라봤다.

스승의 죽음.

독고삭의 죽음.

절대 고수의 죽음.

살면서 평생 볼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했던 그 광경이 자신의 눈앞에 현실로 펼쳐져 있었다.

자신이 아직 그의 손을 밟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옥천이 빠르게 거기서 발을 치웠다.

그가 살아있을 땐 상상도 못 했던 일이다.

그의 그림자라도 밟는 순간 순식간에 목숨을 잃을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옥천이 발을 들었다.

아까 밟았던 팔을 넘어 다리까지. 그리고 배, 그리고 가슴. 그리고···.

까드득.

살아있을 땐 감히 쳐다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던 독고삭의 머리에 지금은 자신의 발을 들이댄다.

황홀하다.

너무나 황홀하다.

세상이 자신의 발아래에 있다.

옥천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 확신했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강한 자다.

“천마.”

독고삭이었던, 그리고 이제는 자신이 될 이름을 부른다.

그 자리에 오르는 그때, 최강이란 말은 이때의 이야기만이 아니게 될 것이다.

“천마.”

그 이름을 중얼거리는 옥천의 눈이 광기에 가까운 욕망으로 번들거렸다.

그것을 얻을 수 있다면 무엇이라도 할 수 있었다.

자신이 증오하며, 사랑하는 스승을 죽이는 것도.

“천마.”

살아있는 것이라곤 자신밖에 없는 동굴 안에서 옥천은 몇 번이고 그 이름을 되뇌었다.

이젠 다시 놓지 않을 거라는 듯, 강렬한 탐욕과 집착을 담은 채로.

< 천마 독고삭(2) > 끝

ⓒ 거믄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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