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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일 후.
상황 이진은 허 황후를 비롯한 제 비빈과 그간 공이 많아 공작이 된 곽재우, 이억기, 송익필은 물론, 후작으로 임명된 원숭환, 최담령 등을 데리고 천지 호 또는 밝달 호로 명명된 바이칼 호수로 향하고 있었다.
여기에는 또 한 명, 일생을 헌신해 지금까지 상황 이진을 모셔온 경호 대장 김명순이 공작으로 임명되어 동행을 하고 있었다. 물론 모두 열차를 타고 가는 길이었다. 이제는 밝달 호까지 선로가 개통되어 다른 교통수단을 빌지 않아도 직통으로 그곳으로 갈 수 있었다.
아무튼 열두 량을 매단 이 기관차가 만주의 이름도 모를 작은 시골 역을 지날 때였다. 돌연 상황 이진이 멀찌감치 임석해 있는 김명순을 큰 소리로 불렀다.
“김 대장, 이리와 보오!”
“네, 상황 폐하!”
백발을 휘날리며 김 명순이 급히 이진 옆에 당도하자 그가 말했다.
“다음 역이 어느 역인지 모르겠으나 잠시 정차하도록 하오.”
“신민(新民) 역이옵니다. 명 받자옵니다. 황상!”
“그러 하오.”
손짓으로 김명순을 물린 상황 이진은 물끄러미 스쳐지나가는 풍경들을 바라보았다.
요하가 멀지 않은 평원으로 채 수확하지 못한 붉은 수수밭이 끝임 없이 펼쳐지고 있었다. 장대한 풍경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인 황제 이진이 돌연 멀찌감치 자리 잡은 비빈 중에 러시아 황녀 출신 루사를 불렀다.
“루사! 가까이 오오!”
“네, 상황 폐하!”
어언 삼십 줄에 접어들어 15세 황자까지 둔 그녀가 상황 이진의 부름에 조신하게 다가와 맞은편에 앉았다.
“조선에 온 이래 지금까지 모국을 한 번도 다녀오지 못했지요?”
“네, 상황 폐하!”
“해서 말인데, 금번 제천의식이 끝나면 러시아에 한 번 다녀와도 좋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상황 폐하!”
너무 감격해 졸지에 눈물범벅이 된 그녀를 바라보며 대소와 함께 이진이 물었다.
“그렇게 좋소?”
“네, 꿈속에서라고 가고팠던 고향이었사옵니다. 상황 폐하!”
“그렇게 말하니, 짐이 너무 미안하군.”
“아, 아니옵니다. 지금이라도 너무 황공하옵나이다.”
“하하하........! 좋소! 한 육 개월 머물다 와도 되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다시 한 번 울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조아리는 그녀를 보낸 이진이 이번에는 광해를 불렀다.
“아우는 이리 오너라!”
“네, 상황 폐하!”
이진의 청에 의해 왜의 귀국을 미루고 금번 행차에도 동행이 된 광해가 급히 다가와 상황 이진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왜도 이제 현 단위까지 소학교가 들어섰지?”
“그 뿐이 아니옵니다. 폐하! 웬만한 소도시에는 조선과 마찬가지로 중등학교도 설립이 되었고, 각 도에는 대학교까지 설립되었사옵니다. 폐하!”
“언어 교육은 어떻게 되고 있는고?”
“지금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왜어를 잊은 지 오래입니다. 폐하! 그들 모두가 조선말을 사용하나 아직도 중장년층은 왜어를 사용하는 자들이 많사옵니다. 이로보아 한 세대만 더 흐르면 왜어는 사장되고, 왜 땅에도 오로지 조선말과 글만이 사용될 것이옵니다. 폐하!”
“그렇게 되도록 수고가 많았군.”
상황의 칭찬에 겸연쩍게 웃은 광해가 말했다.
“뿐만 아니오라, 지금 자라나는 아이들은 모두 조선식의 이름이옵고, 열차 또한 지방까지 모두 개통되어, 더욱 조선의 문물이 빠른 속도로 전파되고 있사옵니다. 상황 폐하!”
“아무튼 수고가 많았다. 어디 손을 내어 보오.”
“네, 상황 페하!”
벌써 광해 또한 반백이 된 머리로 쭈글쭈글한 손을 어렵게 내미는 그였다.
그런 그의 손을 맞잡은 상황 이진이 그의 손등을 두드리며 말했다.
“짐이 진즉부터 일렀듯 이 넓은 세상에 진실한 형제는 우리 단 둘 뿐이니, 죽는 그날까지 우의 변치 말고 백세까지 해로해 봄세!”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광해 역시 금방 눈물 뚝뚝 떨어지는 눈 들어 상황을 바라보며 말했다.
“일찍이 어미 여의고 상황의 그늘에서 아무 근심 없이 이 한 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상황 폐하의 은덕이 아닌가 하옵니다. 이 은의 이생에서는 진정으로 갚을 길 없사오니, 내세에서라도 형님의 종복이 되어서라도 갚겠나이다.”
“뭘, 그렇게 까지야.”
겸양하는 이진이었지만 흐뭇한 낯 색은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렇게 이진이 한동안 광해의 손을 잡고 두드리고 있는 동안, 빠른 속도로 달리던 열차는 어언 다음 역에 도착했는지, 이진의 명대로 정차를 했다.
이에 일단의 경호원을 거느린 김명순이 다가와 물었다.
“어찌 할 요량이시옵니까? 상황 폐하!”
“이곳 백성들의 삶이 어떤지 잠시 형편이나 살피고 가자.”
예정에 없던 일이었으므로 김명순이 경호상의 어려움으로 잠시 난색을 표하자 이진이 말했다.
“천하에 아직도 짐을 해할 자가 있다던 말이냐?”
“하오나 언제나 존체를 모시는 소신의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으니.......”
“됐다. 잠시면 되느니라.”
이렇게 말한 상황 이진이 앞장을 서자, 따르지 않을 수 없는 김명순이었다.
난처하기는 그 뿐이 아니었다. 황후를 비롯한 제 비빈 역시 내려야할지 갈등을 하는데 상황 이진이 그녀들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말했다.
“제 비빈들은 내릴 것 없나니, 잠시 이곳에서 기다리도록 하거라!”
“네, 상황 폐하!”
이렇게 해서 수백 명의 경호원들을 거느린 상황 이진은 앞장서서 한동안을 걷기 시작했다. 그러자 역사 주변의 마을이 끝나고 그야말로 만주 어느 마을에서도 볼 수 있는 흔한 마을 하나가 홀연히 앞에 나타났다.
그 역시 붉은 수수밭에 에워싸여 마치 섬을 방불케 하는 마을이었다. 이런 마을의 입구에 들어서니 가축 분뇨냄새가 진동을 했다. 그 원인을 일행 모두가 곧 한 눈이 확인할 수 있었으니, 공동으로 운영하는 것인지 커다란 목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유럽에서 들여온 젖소의 젖을 짜고 있다가 황급히 달아났다.
쓸쓸한 웃음으로 이를 바라보던 상황 이진은 곧 표정을 수습하고 가장 가까운 어느 집으로 찾아들었다. 이에 화들짝 놀란 남정네가 집 앞을 막아서며 물었다.
“누구시오?”
“황제 폐하시니라! 어서 안으로 모시지 못할까!”
호종한 송익필이 재치있게 황제라 소리를 지르자 놀란 촌부가 황급히 땅 바닥에 엎어지며 말했다.
“소인은 아무 죄도 지은 것이 없나이다. 황제 폐하!”
“그것이 아니라, 짐이 너희들의 사는 모습을 보고 싶어 들렸으니 어서 일어나 안내 하거라.”
“정말이옵지요? 황상!”
“이 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그래, 그래!”
겁박하는 송익필을 만류한 이진은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반쯤 일어나 겁을 먹고 있는 촌부의 손을 잡아 일으키며 말했다.
“어서 앞장서래도 그러는 구나!”
“네, 네! 폐하!”
비로소 넘어질 듯 황망히 촌부가 앞장을 서는 가운데 문이 활짝 열리며 그의 부인인 듯한 여인을 비롯한 올망졸망한 네 자식들이 쏟아져 나와 부복했다.
“여보, 어서 입 다실 것이라도 내오오.”
“네!”
대답은 했으나 차마 일어나지 못하고 겁먹은 눈으로 올려다보는 새까만 촌부를 바라본 이진이 대소와 함께 말했다.
“하하하.........! 없으면 물 한 잔이라도 좋으니 어디 아무 것이나 한 번 가져와 보거라.”
“네, 네!”
이진의 말에 하마터면 자신의 치마에 밟혀 넘어질 뻔하면서도, 부엌으로 달려간 아낙이 이내 좁은 방안에 자리를 잡은 이진에게 무엇을 내왔다.
곧 방금 짠 듯한 신선한 우유와 수수로 빚은 조청, 여기에 수수로 빚은 소주까지 곁들여 있었다. 안주는 미처 장만하지 못했는지 백김치가 다였다. 이를 보고 이진이 물었다.
“이곳은 고춧가루가 없는가?”
“이곳 기후에는 맞지 않아 말만 들었사옵니다. 폐하!”
“허허.........! 그런 일도 있구나! 헌데 젖소도 있던데......?”
“대처에 나갔던 사람이 구해온 것을 몇 년에 걸쳐 변식시킨 것이옵니다. 폐하!”
“흐흠.........! 그렇다 치고, 살기는 어떠하더냐?”
“성상의 은혜로 저희 부족 전체가 이제는 떠돌지 않고도 정책해 살수있게 되었사옵니다. 폐하! 전에는 목초지를 찾아 온 벌판을 헤매었으나, 이제는 이 토양에 맞는 수수가 도입되어 재배하는 것은 물론, 젖소를 비롯한 상당수의 가축도 기르며 정착하여 살게 되었나이다. 폐하!”
“분명 전보다는 살기 좋아졌단 말이지?”
“여부가 있겠사옵니까. 폐하! 지금 제법 사는 집은 귀찮게 수수대도 때지 않사옵니다. 폐하! 무순인가 어딘가에서 나는 탄을 조개 만하게 뭉쳐 때니, 난방 걱정할 필요도 없고, 가축들의 똥오줌도 거름으로 이용하고 있사옵니다. 폐하! 이 모든 것이 위대하신 황상의 은혜가 아닌가 하옵니다. 폐하!”
“너도 아첨을 할 줄 아느냐?”
“아첨이 아니오라 불초들이 느끼고 생활하는 모습 그대로를 말씀드린 것뿐이옵니다. 폐하!”
“하하하........! 그렇다면 다행이고. 어디 술 한 잔 맛볼까?”
“소신이 따라 올리겠나이다. 폐하!”
“그래, 그럼!”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주인이 치는 술잔을 받아든 황제 이진은 아주 흡족한 낯으로 기꺼이 적지 않은 양의 소주를 단숨에 들이켰다.
* * *
대해처럼 끝없이 펼쳐진 푸르른 호수를 바라보던 상황 이진은 새삼 옷매무새를 dual고 경건한 마음으로 ‘삼성사(三聖司)’라는 편액인 걸린 화려한 금빛 누각 안으로 들어갔다.
삼성사(三聖司) 즉 천제(天帝)인 환인(桓因), 그의 아들 환웅(桓雄) 또 그의 아들인 단군천왕(壇君天王)을 배향한 사당이라는 뜻의 누각 안에 들어선 이진은, 정면에 자리 잡은 커다란 세 분의 초상화에 일단 가볍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리고 그는 곧 고색창연한 청동향로에 세 대의 향을 살라 피웠다. 그리고 그는 이미 제상에 차려진 온갖 과일과 풍성한 제 기물들을 한 번 둘러보고는, 송익필 따라 올리는 술 한 잔을 받아들었다.
그리고 그는 서서히 향연이 피어오르는 향로에 세 번을 돌린 다음 손수 제상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는 몇 발 물러나 옷깃을 여미더니 아주 경건한 자세로 세 번의 절을 올렸다. 이어 그는 다시 가볍게 고개를 조아렸다. 그러자 송익필이 미리 준비한 축문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세 분 성조께서 보우하사 오늘날 조선이 사해를 아우르는 대 조선제국을 건설할 수 있었나이다. 이는 음으로 양으로 세 분 성조께서 보살펴주신 은덕인 바, 못난 후손 이를 잘 알고 있사옵니다. 앞으로도 우리 대 조선제국이 해해연년 끊이지 않고 무궁히 발전할 수 있도록 세 분 성조께서는 여전히 보살필 것을 믿사오며, 오늘 세 분의 은덕 기려 소찬박주일망정 마련해와 정성을 다 하오니, 음향 하옵시고 .........]
송익필이 여전히 낭랑한 목소리로 축문을 읽어가는 동안 상황 이진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중얼거렸다.
“한결같이 외길 달려오길 어언 사십오 개 성상. 그간 남모르는 고통과 희열 많았지만, 세 분 성조를 찾아뵙는 오늘을 기점으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쉬려하옵니다. 하여도 세 분 성조의 보살핌 영원할 것을 믿사오며, 못 난 후손 이만 짐 벗으려니와, 대 조선제국이 영원함과 함께 영원하시옵소서!”
다시 한 번 더 고개를 조아린 상황 이진이 자리를 물러나자 읽기를 마친 송익필도 뒤를 따랐다. 사당을 벗어난 상황 이진은 갑자기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에 눈이 부시어, 손 가리개를 만들어 새삼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푸르른 대해를 감싼 주변 산야는 벌써 때 이른 단풍이 들어 온통 노랗고 붉었다. 또 지천인 키 작은 야생화들은 종족 번식을 위해 모두 시꺼먼 가슴(씨방)을 활짝 열고, 바람에 새하얀 홀씨들을 주변에 흩뿌리고 있었다.
하물며 한갓 미물도 이럴 진데 대저 사람이랴!
대 조선제국의 백성과 나라여, 영원히 번성(繁盛)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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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지금까지 함께 해주셔서 너무 너무 감사합니다!^^
다음 작품으로 찾아 뵈올 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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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작 연재 안내(꿈의 구장)
지난 번에 야구소설 야생야사를 한 번 쓴 적이 있습니다만, 역량이 못 미치는 관계로 조금 일찍 접은 기억이 있습니다. 이번 작품 역시 야구소설이지만, 지난번 작품보다는 조금 나아졌다고 자평하고 있습니다. 첫 날이지만 10회 연재해 놓았습니다!^^
졸렬한 작품이지만 함께 해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