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207화 (207/210)

< -- 207 회: 조락(凋落)의 계절(유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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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 한 달이 흐르기 전, 곳곳에서 여전히 암스테르담에 머물고 있는 사령부로 희소식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제일 처음 속국을 자처한 나라는 의외로 스웨덴이었다. 전장에서는 그렇게 뛰어난 전술과 용맹을 발휘한 전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였지만, 그는 후계 하나 제대로 남겨놓지 않아, 그의 사후 스웨덴은 큰 혼란에 빠져있었다.

이에 공석인 국왕을 대신하여 의회가 조선의 속국이 되기를 결의하니 훌륭한 선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들로서는 이미 기 전쟁에 휘말려 나라를 지켜줄 군대도 사라졌고, 이제 주변의 국가로부터 침략을 걱정할 지경에 이르렀으니, 조선에 의지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어 이번 전쟁에 참전했던 튀르크가 속국을 자처했고, 네덜란드 역시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령관인 마우리츠가 생포된 데다 그의 군대 역시 궤멸적인 타격을 입어 더 대항할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었다.

이에 조선은 그의 정적 올덴바르네벨트를 사면해 종전과 같이 마우리츠는 군을, 올덴바르네벨트는 내정과 외교를 맡는 조건으로 그들의 속국을 승인하였다. 여기에 괜히 개전 초기 참여했다 군대만 잃었지 아무런 소득이 없었던 덴마크마저 속국을 자처하고, 이제 유럽의 주요 구가로는 네 국가만이 남았다.

즉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스페인과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이중에서도 영국이 제일 먼저 조선의 속국을 자처했다. 그들은 지금 한창 내전 중이라 힘을 한곳으로 집중할 수 없어 더욱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곧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한 왕 밑에 있었지만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급기야는 곧 주먹질을 하는 경우에까지 이르렀으니, 더 이상 조선의 군대를 감당할 힘이 없다는 판단 하에, 왕의 독단으로 내려진 결정을 양 의회에서 추인한 결과였다.

다음으로 스페인만은 상당한 진통을 거듭했다. 그들이 조선에 굴종하기 싫어서라기보다는 조선의 요구조건이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는 조선이 남아메리카에서 손을 떼라는 요구를 한 것이다.

그들로서는 막대한 이권이 달린 문제라 의견이 분분했는데, 여기에 조선이 당근을 제시하니 네덜란드를 그들로부터 독립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조건 하에 그들은 결국 굴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미 그들 또한 쇠퇴한 국력으로 해를 거듭할수록 강력해지는 조선의 힘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자처한 포르투갈 문제에도 조선이 관여하지 않겠다고 한 조항이 이들의 완전 항복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

그러나 단 한 나라 프랑스만은 자존심을 걸고 조선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가 남았으니, 지금까지 우군이었던 신성로마제국이었다. 이들에게는 지금까지 조선 사령부는 아무런 요구를 하지 않았다.

단지 승리에 기여한 발렌슈타인을 휘하 그의 군과 함께 이들의 수도인 빈으로 귀국시켰을 뿐이었다. 여기에 조선 사령부가 파놓은 함정이 있었다. 표면적으로는 군대를 내어 함께 승리를 이룰 수 있었음에, 조선 황제로부터의 칭찬이 담긴 서한을 품고 있다지만 실제적으로는 그게 아니었다.

그들 역시 조선제국에 항복하여 속국이 되라는 조선 황제의 구두 메시지를 담고 그는 조선의 칼이 되어 달려가고 있는 것이다. 이와 때를 같이 하여 지금까지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조선 사령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휘하 병력과 함께 항구로 철수하여 대기 중인 전함에 속속 승선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곧 며칠의 항해 끝에 1차, 2차에 걸쳐 유명한 노르망디에 상륙작전을 감행하였다.

이 군세에는 러시아 및 코사크 기병대 역시 함께 하고 있었다. 설마 하고 있다가 이들의 상륙에 화들짝 놀란 루이13세였다. 확실히 성격 장애가 있는 자다운 결단과 행동이었다. 누가 보아도 객관적으로 보면 조선과 절대 적수가 되지 않는 프랑스였다.

그런 것을 자존심 하나로 버티다가 막상 조선군이 파리에서 직선거리로 가장 가까운 노르망디에 상륙하자,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의 소유자가 내린 결정이라 볼 수 없었다.

이렇게 그가 비이성적인 판단을 내린 데는 그의 성장과정이 한몫했다 할 것이다. 채 성장하지도 못한 9세에 갑자기 아버지를 잃은 그였다. 소심하고 감수성이 예민한데다, 약간 말을 더듬었던 어린 루이에게, 존경하는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대단히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이 젊은 국왕은 매우 피상적인 교육을 받았다. 맞춤법이 틀리거나 서투른 문장력에도 별로 개의치 않는 아버지에 의해 음악과 사냥에만 정열을 불태웠다. 동시대인들의 기록에 따르면, 이 젊은 국왕은 독실한 신앙에 폐쇄적이고 과묵한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었다.

왕국의 위대성에 대한 자의식이 강했던 반면, 이른바 복합 장애(complex disorder)라고 불리는 만성적인 크론(Crohn) 병의 증세를 보였다. 여기에 섭정을 맡은 모후는 얼마 전 대패를 당한 색광으로 잘 알려진 콘치니만을 중용 총애하였다.

이러니 어린 그로서는 어머니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강박 관념과 콘치니에 대한 증오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 할 것이다. 이런 어릴 때의 성장과정이 그를 이런 비인성적인 판단으로 내몰았을 것이라는 것은 범인도 유추해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아무튼 그는 조선의 상륙군을 맞아 그가 가장 신임하는 뤼인느 경과 긴급 상의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역시 자질이 부족한 행정가요, 정치가이기는 마찬가지였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한판 붙어보자’는 그의 비이성적인 주장을 가로막는 이가 있으니, 아직도 궁중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모후의 강력 추천으로, 궁정에 머물고 있는 리슐리외라는 자였다.

이 자는 어린 국왕이 아직 안목이 없어 그렇지 상당한 재능이 있는 수완가였다. 어찌 되었든 그가 뤼인느의 주장에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누가 봐도 어른 대 아이의 손목 비틀기의 싸움에, 어찌 우리의 위대한 백성을 한갓 총알받이로 내몬다는 말입니까? 7만 대군이 힘 한 번 써보지 못하고 패배를 당한 것이, 기억도 생생한 엇 그제의 일인데, 벌써 그 교훈을 잊으셨다는 말씀입니까? 절대 조선과의 싸움은 안 됩니다. 속히 항복하시어 그나마 나라를 온전히 보전하는 현명한 선택을 하시기 바랍니다.”

이에 화를 벌컥 내며 입에 게거품을 무는 어린 국왕의 총신 뤼인느였다.

“도대체 당신은 어느 나라 재상인데 그 따위 망발을 일삼는 것이오. 아직도 마리 드 메디치 때의 섭정이 그리워지기라도 한 것이오. 아니 그들에게 잘 보여 우리의 정권을 탈취하려는 기도가 아닌가 말이오?”

“허허.........! 이렇게 식견이 모자란 자가 어찌 일국의 재상일 수가 있겠는가!”

탄식을 금치 못한 리슐리외의 말을 받아 또 다시 막말을 퍼붓는 뤼인느였다.

“아직도 꿈속을 헤매고 있는 모양인데, 당장 꺼지시오!”

“허허허........! 꿈속을 헤매고 있는 것은 당신이오. 저들을 만만히 보는 모양인데, 벌써 저들은 주도면밀하게 손을 써, 저 남쪽의 위그노들의 불씨를 다시 지피고 있음은 물론, 반항한다면 프랑스라는 나라 자체를 이 땅에서 지우려 할지도 모르오.”

“설마........!”

리슐리외의 발언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어린 국왕이 망연한 표정을 짓는 가운데, 장내에 난데없는 한 인물이 등장하고 있었다. 궁의 한 모퉁이에 유폐되어 있어야 마땅한 어린 국왕의 모후 마리 드 메디치였다.

“어마마마! 어찌........”

놀란 아들이 채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에 여유 만만한 웃음을 지은 늙은 여우가 말했다.

“어찌 이 어미가 이곳에 등장할 수 있는 지가 의문이오?”

“그렇습니다.”

“호호호........! 조선군이 암스테르담에 머물러 움직이지 않는 것이, 설마 우리가 두려워서라고 생각한 것은 아니겠지요? 오늘과 같은 날을 대비하여 우리만이 아니라 각국에 벌써 손을 써두었을 것이오. 그 결과 오늘날 주변의 국가가 다 어찌 되었소? 모두 조선의 속국이 되길 자청하지 않았소? 이런 배경에는 그들의 국력도 국력이지만, 벌써 수십 년 전부터 우리의 내부에 간자들을 심어 우리의 정보를 빼내 감은 물론, 수시로 정적을 제거하는 등 저들의 입맛에 맞게 요리를 해왔기 때문에, 고위직에 있는 자들치고 저들의 손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오. 하니 우리 어린 아들은 어미젖이나 더 먹고 당분간 이선에 물러나 계시오.”

“무슨 말도 안 되는.........”

“말이 되는지 안 되는지 볼까요? 우리 어린 국왕님! 여봐라!”

모후의 호령에 갑자기 등장해 급히 허리를 굽히는 자가 있었다.

“네이, 여왕 폐하!”

“너, 너는......... 근위대장 제르넬 백작이 아니더냐?”

“맞사옵니다. 폐하!”

“내 곁을 지켜야할 네가 어찌.........”

“더 이상 위대한 조국이 망가지는 것을 볼 수가 없어서이옵니다. 폐하!”

“지랄, 무슨 개 풀 뜯어먹는 소리냐? 벌써 조선 놈의 공작에 넘어갔노라고 이실직고 하지 못하고.........”

뤼인느의 막말에도 실실 웃기만 하던 제르넬 근위대장이 말했다.

“그 말도 아주 일리 없는 말은 아닙니다. 조선군이 네덜란드 땅에 상륙하기도 전 우리나라에 근무하고 있던 조선대사관의 무관 하나가 나를 찾아와 말합디다. 오늘 같은 일을 예견했는지, 장차 프랑스가 선택의 기로에 서는 날이 올 것이오. 그때가 되면 그대가 프랑스를 구원하시오. 이어진 그의 말인즉슨 만약 끝까지 저항한다면 프랑스라는 나라가 이 땅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는 협박이었소. 아니면 국왕을 살해하여 나라를 살리던지 현명한 선택을 바란다는 말을 하고 유유히 사라진 적이 있소. 해서 소신은 눈물을 머금고 차선책으로 모후님을 다시 궁정에 모시는 카드를 꺼내게 된 것이오. 답이 되었소?”

“저 저런 개 같은..........”

뤼인느의 욕설을 손을 저어 만류한 어린 국왕이 의외로 침착한 거동을 보이며 제르넬 백작에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지금 모후 편에 서서, 이 나라를 그냥 적에게 넘겨주겠단 말이냐?”

“이 순간, 궁내의 제 병력이 제 손아귀에 있다는 것만 기억하시면 됩니다. 폐하!”

“저, 저런 말도 안 되는........ 매국노 같은 놈이 어디서 폐하를 겁박하고........”

“잠시 입을 닫으시오!”

어린 국왕의 난데없는 질책에 조개입이 되어 두 눈만 끔벅끔벅하는 뤼인느였다. 잠시 실내를 서성이던 국왕이 그에게 물었다.

“달리 길이 없겠느냐?”

“잠시 폐하께서 이선으로 물러나시는 길만이 이 나라가 두 개로 쪼개지지 않고, 아니 이 지구상에서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존속하는 길이기에 달리 길이 없는 것 같사옵니다. 폐하!”

“요망한 주둥이가, 그래도 끝끝내 폐하 소리는 하는구나!”

자꾸 나서는 뤼인느 때문에 크게 역정이 난 어린 국왕이 눈을 부릅뜨자 찔끔하여 아예 한 구석으로 물러나는 뤼인느였다.

그러고도 잠시 더 망설이는 어린 아들을 향해 천천히 그에게 다가서며 모후가 말했다.

“우리 아들! 이래도 아직도 더 시간이 필요한 게요?”

“어마마마! 그럼 한 가지만 약속해주세요. 제가 성인이 되는 날, 온전히 제 자리를 돌려주겠노라고.”

“이 어미도 마냥 젊지 만은 않다오. 답이 되었소?”

“네, 어마마마! 오늘부터 이 자리는 어마마마의 것이옵니다.”

“옳게 판단하셨소.”

안쓰러운 얼굴로 어린 아들을 잠시 주시하던 모후 마리 드 메디치가 갑자기 날카로운 눈이 되어 물었다.

“국왕의 인장은 어디 있느냐?”

“시종장이 가지고 있사옵니다.”

어린 왕의 말이 끝나자마자 커튼 뒤에 숨어 있던 늙은 시종장 하나가 어보가 든 보함을 가지고 나왔다. 그리고 선선히 마리 드 메디치에게 받쳤다. 이를 받아든 모후 아니 여제나 다름없는 마리 드 메디치가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리슐리외 경은 곧 항복문서를 닦아 조선 측에 전달하고 오도록 하오!”

“네, 여왕마마!”

이렇게 되어 프랑스도 무력행사 없이 아국의 속국으로 편입하게 된 대 조선제국이었다.

* * *

한편 빈에 도착한 발렌슈타인은 그 길로 곧장 황제가 머무는 궁성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황제와의 독대를 요청했다. 이에 머지않아 기꺼운 웃음을 머금고 이를 맞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였다.

“허허, 어서 오시오! 전쟁에 승리했다니 여간 기쁜 일이 아니오!”

“감사하옵니다. 황제 폐하시여! 하오나 소신은 오늘 폐하게 불경한 언사를 아뢰지 않을 수 없사옵니다.”

“거 무슨 말이오. 거두절미하고 말해보오. 몸에 이로운 약은 입에 쓴 법이니........”

전쟁의 승리로 기분이 좋은지 제법 의젓하게 나오는 페르디난트 2세였다.

“다름이 아니오라, 소신 한 가지 권고를 하고자하옵니다.”

“뭔 서설이 그리 기오. 무슨 내용이던 단도직입적으로 말하시오. 오늘 짐의 기분이 그 어느 때보다 좋아, 짐 보고 황위에서 내려오라는 말 외에는, 다 줄어줄 모양이니까? 하하하........! 설마 그 말은 아니겠지? 하하하........!”

무슨 예감이 들었던지 기분 좋게 농담을 하는 그에게, 어지간한 발렌슈타인으로서도 차마 떨어지지 않는 입을 놀려야 했다.

“그 설마가 신이 뱉고자 한 말이었습니다. 폐하!”

“무엇이라고!”

갑자기 분노로 두 눈이 커지며 입을 씰룩이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페르디난트 2세였다.

“자네 몇 번 승전에 취하더니 이제 돌았나?”

“폐하의 말씀대로 소신 이제 돌았는지도 모르지요. 아니면 조선의 속국이 되시던 지요?”

“네 놈이 감히........!”

분노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몸만 와들와들 떠는 페르디난트 2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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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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