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04 회: 조락(凋落)의 계절(유럽)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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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이 지나도 지혜를 낸다는 송익필에게서 답이 없었다.
그래서 이진은 그를 정전으로 불러들였다. 곧 그가 등대했고 그의 인사를 받은 황제 이진이 넌지시 물었다.
“쉽지 않은 모양이오?”
“네, 황상 폐하! 종교 문제에 각국의 사정, 여기에 정치적 역학 관계까지 얽혀 아주 복잡한 유럽의 정세이다 보니........”
“그럴수록 간결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소. 우선 종교문제만 가지고 따져봅시다. 각 국가를 신교 국가와 구교로 대별해 봅시다. 구교 국가는 어느 어느 나라요?”
“신성로마제국과 스페인 그리고 프랑스가 구교 국가에 속하나 프랑스는 속사정이 아주 복잡하옵니다. 황상!”
“프랑스는 나중에 논하고, 그럼, 나머지는 신교를 지원하는 국가란 말이죠?”
“네! 황상!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영국, 튀르크, 보헤미아 등이 반 구교 연합을 결성하고 있으나, 이중 영국이 가장 소극적이옵니다.”
“영국이 그러는 이유가 뭐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가 최초로 제임스1세에 의해 한 사람이 통치하게 되었으나, 양 의회가 사사건건 제 정책에 대해 반대를 하고 있사옵니다. 그래서 그는 양국의 통일에 주력하느라 외정에 손댈 여유가 없다는 것이 소신의 판단이옵니다. 지난번 신대륙으로의 출정은 자국민의 이해가 달린 일이니 어쩔 수 없이 출병했지만, 앞으로는 전면에 나서지 않고 종교분쟁에는 방관할 것으로 사료되어집니다. 황상.”
“좋소! 그렇다면 영국은 크게 신경 쓸 일이 없으니 그대로 방치를 하되, 최소한의 안전장치로 덴마크를 아군 진영으로 끌어들여 그들의 준동 시 대항마로 내정합시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폐하!”
“종전에 프랑스 속사정이 복잡하다고 했는데, 이제 그 이야기 좀 해보오.”
“네, 황상!”
대답을 마친 송익필이 입에 침을 바르고는 전후사정을 고하기 시작했다.
“프랑스의 현 국왕은 루이 13세(Louis XIII)라는 인물인데, 9세의 나이에 즉위하여 현 16세가 되었사옵니다. 문제는 어린 아들을 위해 섭정에 오른 그의 어머니 마리 드 메디시스에게 있사옵니다. 아직도 섭정을 끝날 생각을 않는다는 것이죠. 아들은 이제 자신이 성인이라 생각하고 물러날 것을 바라나, 그렇지 않으니 두 모자간에 다툼이 끝일 날이 없사옵니다. 여기에 남부에는 위그노라 불리는 신교를 믿는 자들의 정치 집단이 있어, 언제 내전이 터질지 모르는 화약고와 같사옵니다. 황상!”
“흐흠.......!”
송익필의 말을 듣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황제 이진이 갑자기 뜬금없는 질문을 했다.
“모후 마리 드 메디시스와 아들 루이13세 중 누가 더 오래 살 것 같소?”
“그야, 당연히 아들이........”“그렇다면 답이 나와 있질 않소? 아들 편을 들어 그가 정권을 잡게 해 우리 편을 만들데, 이후에는 국제역학 관계에 뛰어들지 못하게 위그노들을 이용하는 것이오. 그들의 불만을 촉발시켜 내란을 일으켜 정신없게 만들면 되지 않겠소?”
“황상의 말씀대로라면 우리의 최신 전함이 어차피 그 쪽으로 향하고 있으니, 이를 이용하여 만약 모후가 정권에서 손을 떼지 않으면 대대적인 공격을 하겠다고 협박을 하면 되겠군요.”
“그렇지요. 그런 식으로 하나하나 풀어가 봅시다.”
“다음으로 신성로마제국인데 이곳 또한 속사정이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이옵니다. 황상! 황제는 무늬만 황제라 제후의 임명권은 있으나, 휘하에 병력이 조금 밖에 없사옵니다. 그래서 병력을 동원하려면 제후들의 힘을 빌려야 하는데, 제후들 또한 제각각이옵니다. 제후들 대부분이 구교에 속하지만 일부는 신교를 믿는지라 일체감이 없고, 여기에 영지마다 속사정이 다르니, 만약 신교 측에서 침략이라도 하는 날이면 골치가 아플 것이옵니다. 황상! 그러나 하나 믿을 수 있는 것은 같은 구교 국가인 스페인인데, 이들만은 신구 분쟁 시 신성로마제국을 지원할 것 같사옵니다. 황상!”
“흐흠.......! 신성로마제국이라 하면 대부분이 지금의 독일 영토인데.......”
혼자 중얼거리던 황제 이진이 정색을 하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이렇게 머리를 맞대고 있는 이유는 영국, 프랑스, 네덜란드의 2차 원정을 제지하는 목적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이들 자체의 힘을 약화시켜 우리의 조공국으로 만드는 것이 최종 목적 아니오?”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하면 좀 더 시야를 넓혀 대국적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인데........”
여전히 혼자 중얼거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황제 이진이었다.
그러던 그가 돌연 눈을 빛내며 물었다.
“단일 세력으로는 신성로마제국의 힘이 가장 크지요?”
“하오나 그들은 모래알 집단이라.........”
“무슨 말인지 알겠소. 또 하나 물어봅시다. 음........! 황제가 힘이 없어서 그렇지 힘이 있다면 제국 내의 신교제후들을 밀어내고 싶어 하겠지요?”
“당연하옵니다. 황상! 그는 아마 더 큰 꿈을 꾸고 있을 것이옵니다. 옛 로마황제들처럼 유럽 내의 전 제후들을 호령하고 싶어 할 지도 모르죠.”
“후후후........! 바로 그거요. 만약 내부자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좋고, 아니면 우리 조선군을 파견해서라도 황제의 오른팔이 되어 준다고 하는 것이오.”
“하옵시면 그 힘으로 제국 내 신교들을 탄압하고, 그렇게 되면 신교 국가가 자동 개입할 것이니, 유럽은 자신들의 내전으로 피폐화 된다 이 말씀 아닙니까? 그 후는 우리가 적극 개입하여 각개격파하자는 안이시죠?”
“하하하........! ‘어’하면 ‘아’를 알아듣는군.”
“하하하........!”
황제 이진이 자신이 했던 말을 되돌려주자 송익필도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웃음 끝에 고개를 갸웃하던 송익필이 말했다.
“황상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니 하나 떠오르는 인물이 있사옵니다.”
“그게 누구요?”
“발렌슈타인이라는 자인데, 늙은 미망인과 결혼하여 그녀가 죽자 한 밑천 단단히 잡은 자로, 상당한 거부이기도하지만, 그 전에 대단한 야심가라는 보고가 있었사옵니다. 황상! 이 자를 잘만 이용한다면 무슨 그림이 그려질 것 같사옵니다. 황상!”
“그래요. 그 자에게 뒷배는 우리가 감당할 테니, 일을 꾸며보라고 하시오.”
“그렇게 되면 문제가 한 가지 있사옵니다. 황상!”
“무엇이오?”
“지금 이렇게 되면 우리는 구교를 도와 신교를 대적하는 꼴인데, 프랑스 같은 경우 현 모후는 구교를 후원하고 있으니........”
“무슨 말인지 알겠소. 당분간 우리가 세운 계획을 보류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 아니오?”
“그렇사옵니다. 황상. 그러나 또 하나는 영국의 견제용으로 써먹기로 한 덴마크이옵니다.”
“영국은 내버려두어도 별 문제가 될 것 같다하지 않았소?”
“그렇사옵니다. 황상!”
“그렇다면 덴마크도 내버려두시오. 저희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그렇게 되면 신교의 힘도 막강할 텐데.......”
중간에 황제 이진이 그의 말을 잘랐다.
“짐의 생각으로는 신교 측 역시 모래알이기는 마찬가지 일 것이오. 다 제각각 국내사정이 다르니.......... 하고 만약 저들이 의외로 강력하다면 그때 가서는 최후의 패로 조선군이라도 파견하는 것으로 합시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이 시점에서 급선무는 발렌슈타인이라는 자를 포섭하는 것이니, 그 문제부터 착수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상!”
“좋소! 그렇게 하도록 하오!”
“네, 황상! 소신 이만 물러가옵니다.”
“아, 어쩌다 보니 차 한 잔도 나누지 못했군.”
“아, 아니옵니다. 늘 마시는 것이 차..........”
“하하하........! 그럼 다음에 한 잔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물러가시오.”
“네, 소신 물러가옵니다. 황상 폐하!”
“그러하오.”
이렇게 해서 조선은 신교와 구교 여기에 국제적 정치적 역학 관계까지 얽혀, 30년 전쟁이 터지기 일보 직전의 복잡한 양상을 보이는 유럽에, 본격적으로 개입을 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한 달 후.
송익필이 결과를 가지고 황제 이진을 찾아왔다.
그의 인사를 받은 이진이 풍성한 수염을 쓸며 물었다.
“그래, 결실이 있었는가?”
“네, 황상!”
긍정한 송익필이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발렌슈타인이라는 자가 우리의 제안을 덥석 무는 정도가 아니라 ,자진하여 2만5천 용병을 고용하여 가장 말썽이 많은 보헤미아 지방(현 체코 및 슬로바키아 지역)에 출병하기로 했사옵니다. 뿐만 아니라 황제도 이에 적극 호응하여 그에게 신교 영주들을 물리친 땅에 한 해, 그의 소유권을 인정하겠노라는 과감한 언질을 주었다 하옵니다. 황상!”
“그것 참, 잘 되었군.”
“또 하나. 스페인은 우리의 요구에 의해 지금까지 탄압을 늦추었던 네덜란드에 다시 출병하여 그들의 독립을 용인하지 않겠다했사옵니다. 황상!”
“그것으로 구교 세력에 동조하겠다는 생색을 낼 참이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하면 프랑스는?”
“섭정은 여차즉시 신성로마제국을 후원하겠다는 약조를 해왔사옵니다. 황상!”
“우리 군에게 패한 것보다 신구의 싸움이 더 중요하단 말이지?”
“우리의 싸움이야, 먼 곳의 일이지만. 신구의 싸움은 텃밭의 일인지라, 눈썹이 불붙는 것과 같은 초미의 관심사가 아니겠사옵니까? 황상!”
“하긴 그럴 만도 하네. 이제는 결과만 지켜보면 되는 것인가?”
“네, 황상! 하옵고 첨언하자면 프랑스와 스페인이 우리에게 그런 약속을 해온 이면에는 벌써 그곳에 도착한 우리의 최신전함들이 양국을 오가며 무력시위를 벌인 것이, 큰 효과를 발휘한 듯하옵니다. 황상!”
“하하하........! 그들도 귀가 있으면 들었겠지. 우리의 전력이 어떻다는 것을. 하지만 방심은 금물. 그 쪽의 정세가 어떻게 변할지 모르니 이억기 장군에게 현 상황을 전하는 것은 물론 여차 즉하면 파병할 지상군도 엄선해 놓는 게 좋겠소.”
“명 받자옵니다. 황상! 강홍립 국방대신에게 일러 사전 준비를 철저히 하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상!”
“그러하오. 오늘은 짐이 아예 주안상을 봐오라 했으니 한 잔 들고 가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폐하!”
이렇게 해서 늦은 오후 군신간의 대작이 시작되었다.
* * *
그로부터 또 한 달 후.
이제 겨울도 깊어져 황제 이진은 추위를 피해 새로 완공된 대만의 별궁으로 잠시 정궁을 옮기려 할 즈음이었다. 송익필이 새로운 소식을 갖고 이진이 정무를 보고 있는 건청궁을 찾아들었다.
“무슨 일이오?”
“뜻밖의 일이 벌어졌사옵니다. 황상!”
“그게 무슨 말이오?”
“어리석은 소신의 예측으로는 야심만만한 스웨덴의 왕 구스타프 아돌프가 제일 먼저 참전을 할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라, 덴마크의 왕 크리스티안 4세가 제일 먼저 이 전쟁에 참여를 했다는 급보이옵니다. 황상!”
“망둥어 같은 놈이로군.”
“맞사옵니다. 황상! 덴마크 의회가 결사반대를 하며 예산을 지원해주지도 않았는데도, 미리 타놓은 예산으로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는 현지 세작들의 보고이옵니다. 황상!”
“웃기는 작자인데........ 발렌슈타인은 어떻게 하고 있지?”
“보헤미안 지방을 석권할 정도로 잘 싸우는지라, 크리스티안4세가 뛰어든 것으로 아옵니다. 황상!”
“그들의 대결이 볼만 하겠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그 외 소식은 없는가?”
“기쁜 소식이 한 가지 있사옵니다. 황상!”
이렇게 운을 뗀 송익필의 말이 이어졌다.
“조선군을 파병하기 전에 여차 즉하면 코사크 기병대가 먼저 움직여 주겠노라는 확답을 보내왔사옵니다. 황상!”
“그것 참 반가운 소리로군. 이왕 손을 빌리는 김에 러시아 군대도 움직일 수 있는지, 한 번 손을 써보오.”
“네, 황상!”
“경도 준비를 하도록 하오. 잠시 추위를 피해 고산국으로 갈 것이니 그리 알고.”
“네, 황상!”
이렇게 황제 이진은 남의 손을 빌려 유럽을 약화시키려 기도하고 있었다. 이것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전적으로 세월이 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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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었습니다.
죄송하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