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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락(凋落)의 계절(유럽)
1
북경 자금성으로 귀환해 정무를 보고 있는 황제 이진에게 장계가 한 통 올라왔다. 찰스턴 해전을 승리로 이끈 이억기로부터 올라온 장계였다. 그 내용 중 중요한 것을 추리면 적전함 81척을 나포했고, 적병 8,350명을 포로로 잡았으니, 이에 대한 비답을 바란다는 내용이었다.
또 최신전함의 운용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문의도 있었다. 그리고 말미에 적기를 아군의 피해는 경미하다 했다. 이를 읽고 물끄러미 문면을 바라보던 이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명했다.
“정보부장 송익필을 들라 해라!”
“네, 황상!”
대전내관 장가가 신속히 달려 나가고 황제 이진은 의미 없는 시선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어느덧 조락의 계절을 맞아 나무들은 색색의 옷으로 갈아입고 풀들은 누렇게 시들어가고 있었다. 순환하는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그 속에서 인간은 생로병사의 고민을 안고 속절없이 늙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감상적인 생각이 들자 황제 이진은 고개를 내젓고 문을 닫도록 했다. 그리고 차를 두 잔 내오도록 했다. 곧 송익필이 올 것이니 그의 것까지 주문을 한 것이다. 이렇게 이진이 잠시 방심한 상태로 무료하게 앉아 있는데 제조상궁 개똥이 다가와 아뢰었다.
“부제조상궁 금란이 태기가 있는 것 같사옵니다. 황상!”
“뭐라고?”
자신도 모르게 놀란 음을 토해내고 내전을 자세히 살펴보니 오늘따라 정말 금란이 안 보였다.
“그 아이 나이가 몇 인데........”
“방년 48세이옵니다. 황상!”
“방년은 무슨 얼어 죽을 방년.”
“호호호.......! 너무 놀라시는 것 같아, 신첩이 감히 농담을 입에 올렸나이다.”
“신첩.......?”
“그럼 아니옵니까? 밤마다 즐기실 때는 언제고, 머리도 안 올려주시고 너무 하시옵니다. 황상!”
황제 이진과 이렇게 가볍지만 농도 건네고 대들(?) 수 있는 사람은 여인 중 그녀가 유일할 것이다.
“험험........!”
“천녀도 이제 나이가 나이인지라, 정무에서 물러날 때가 머지않았는데........”
“알았다. 네가 그 자리를 물러나는 날 승은을 입은 것으로 해서 직첩을 내릴 터이니 너무 근심 말거라!”
“정말이시옵니까? 황상!”
“짐이 언제 허언하는 것 보았느냐?”
“하긴 그렇사옵니다. 황상! 그러나 저러나 금란의 문제는 어떻게 처리할 요량이시옵니까? 황상!”
“흐흠........! 참으로 난처한 일이로다. 그 아이의 나이가 있기에 무심코 실기한 것이 이런 결과를 초래할 줄은........”
“금란으로 보면 얼마나 다행한 일이옵니까? 황상! 그 아이도 이제 저 시들어가는 뜰의 풀잎과 다름없을 지언데, 노년에 황자라도 하나 얻어 기른다면, 그 낙이 아마 억만금을 줘도 안 바꾸려 할 것이옵니다. 일생을 황상께 헌신한 그 아이를 생각한다면 황상은 그저 모른 척 하옵소서. 황상!”
“그것 참........!”
황제 이진이 입맛을 쩍쩍 다시고 있는데 송익필이 들어와 고했다.
“불러계시옵니까? 황상!”
“그래요. 거 앉읍시다.”“망극하옵니다. 황상!”
이때 마침 차까지 나왔으므로 황제 이진은 송익필에게 차를 권하며 입을 떼었다.
“보스턴 해전에서 포로를 8,350명이나 잡았다하오. 해서 목하 이억기 장군이 이의 처리문제를 놓고 고심 중인 모양인데, 어떤 비답을 내렸으면 좋겠소?”
“흐흠.......! 그것 참, 고민이네요.”
잠시 이마를 찌푸리고 고심하던 송익필이 답을 내놓았다.
“소신의 짧은 소견으로는 이들을 국적별로 세분하여 그들 나라에 통지하는 것이옵니다. 하여 두 당 금 열 냥씩 내고 찾아가라 하는 것이옵니다. 아니면 평생 노예로 부리는 것이지요. 하지만 저들 나라에는 안 찾아가는 자들은 모두 참형에 처한다고 통보하시는 게 좋겠사옵니다.”
“흐흠........! 그렇게 한다 치고, 저들이 2차 도발을 하지 않을까?”
“그 문제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닌가 합니다. 황상!”
“무슨 말이 그러 하오?”
“소신의 우둔한 생각으로는 바이킹의 후예가 많이 몰려 사는 스웨덴의 바다 사나이들을 이용하는 것이옵니다.”
“그들에게 해적질을 시키자는 것이오?”
“역시 영명하십니다. 황상! 척 하면 착이니.......”
“입에 발린 소리 그만하고 좀 더 구체적인 계획을 말해보오.”
“황상께서도 아시는 바와 같이, 스웨덴과 코사크 기병 그리고 러시아의 삼국 연합에 의해 폴란드가 패퇴한 이래 스웨덴 왕이 폴란드까지 영유하고 있질 않습니까? 물론 그들이 잘 싸웠지만 그들 단독만으로는 폴란드를 수중에 넣기는 힘들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기책(러시와 코사크기병의 지원)이 빛을 발한 바, 저들도 우리의 제의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이 모든 것을 떠나 나라가 공인하는 해적이라니....... 상선이나 군선 어느 것을 털어도 저들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니, 우리의 제의를 거절하지는 않을 것이옵니다. 황상!”
“요는 저들에게 공공연한 해적질을 유도하라는 말이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아니면 이제 폴란드의 압박에서 벗어나 더 이상은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는 코사크 인들과 러시아 여기에 스웨덴까지 또 다시 한 묵음으로 묶어 영국이나 프랑스 어느 한 나라를 상대하라 하고, 우리는 해군 전력으로 한 나라를 박살내는 것이지요. 네덜란드야 아직 스페인과의 독립전쟁이 완전히 끝난 것이 아니니, 스페인을 부추켜 네덜란드에 대한 공세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면 될 것이고요.”
“스페인에게는 무슨 당근을 제시하지?”
“남미를 당분간 우리가 칠 계획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저들은 전전긍긍에서 벗어나 좀 더 많은 약탈을 자행하지 않을까요?”
“하긴 세계 어느 나라보도 우리의 해군전력을 잘 아는 그들이고 보니.........”
“맞사옵니다. 황상!”
“두 계책을 병행하는 것은 어떨까?”
“삼국 연합이 영국을 상대 한다고 볼 때, 우리가 프랑스와 또 전쟁을 벌이는 것은 결코 바람직한 방향은 아닙니다. 이를 테면 그런 안도 있다는 것이고, 일단은 그들에게 그런 제의를 해, 한 국가를 항복받고, 그 힘을 다시 프랑스 쪽으로 투사하는 방법도 있고, 이는 황상께서도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재정문제와 직결되는 것이니........”
“신대륙에서 많은 금이 유입되어 재정이 많이 좋아진 것도 사실이지만 가능한 재정을 아껴라 그 소리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주변의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모두 이용하고도 정 안 될 때, 최후의 패를 쓰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가 합니다. 황상!”
“흐흠........! 일리 있어. 일리 있는 안이야!”
송익필의 안에 크게 고개를 주억거린 황제 이진이 흡족한 용안으로 입을 열었다.
“영국과 프랑스의 재침에 대해서는 그렇게 대항하기로 한다지만, 최신 전함의 운용은 어떻게 하는 게 좋겠는가?”
“그들과 꼭 전쟁을 벌이지는 않더라도 무력시위만으로도 그들 나라에 상당한 공포심을 유발할 것인즉 그렇게 행하시는 게 어떻겠사옵니까? 황상!”
“인도를 점령 중인 누루하치로부터 양이의 해상 세력을 퇴치해달라는 주문을 받았는데, 그렇게 되면 이의 처리는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
“것 참, 세계를 경영하다보니 여러 모로 복잡한 문제가 출몰하는 군요. 그 문제는 미처 생각을 못했는데, 소신 잠시 시간을 주시옵소서. 황상!”
“우리의 지낭도 어렵다니 짐은 어떻겠는가?”
“하하하........! 별 말씀을.......!”
겸양한 송익필이 비로소 다 식은 차를 들며 생각에 잠겼다. 그가 생각에 잠기자 이진 또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전각 내를 서성였다.
그렇게 일다경이 흐른 후였다.
“황상!”
송익필이 황제 이진을 불렀다.
“그래, 무슨 묘안이라도 떠올랐소?”
“아무리 생각해도 그의 청을 들어주어서는 안 될 것 같사옵니다.”
“흐흠........! 그의 세력이 커지는 것이 불편하다는 말이지?”
“역시 황상 폐하십니다. ‘어’ 하면 ‘아’하고 알아들으시니.”
“경은 잘나가다 가끔 삼천포로 빠지는군.”
“네?”“그런 말이 있어.”
“하하하........! 어찌 됐든 그들에 대한 답은 시종 막연한 태도를 취하시는 것이옵니다. 황상!”
“나와 고륜동과공주 사이에 태어난 황자를 자신의 후계로 세우겠다는데?”
“고육책이겠죠.”
“물론 그야 그렇지. 그가 영리하다는 것도 잘 알아. 하지만 우리의 국력이 그들을 압도하지 않는가?”
“황상 폐하의 말씀이 틀림없사옵니다만, 아직은 시기상조입니다. 만약에 그들이 뜻을 이루고 반기를 든다면 제압 못할 것도 없지만, 소모되는 국력으로 인해 세계 경영에 큰 차질을 빚을 것이옵니다. 황상!”
“가급적 그 시기를 늦추자는 말이군.”
“그렇사옵니다. 황상!”
“그래, 결정됐네. 다시 한 번 삼국연합을 결성하는 것은 물론 해적질을 강요해 영국을 압박하고, 프랑스 쪽은 우리의 최신 전함을 파견해 무력시위를 벌일 것. 그리고 네덜란드는 스페인을 통해 압력을 가하는 것으로 정리하지. 누루하치에 대한 지원은 최대한 늦추도록 하고 말이야. 됐나?”
“역시 영명하십니다. 폐하!”
“다 경의 머릿속에서 나온 지혜인데 그렇게 나를 추어주면 어쩌자는 것인가? 안 그래도 철밥통 지위인 자네의 자리는 오래 지속될 것이니, 너무 그러지 않아도 되네.”
“하하하........! 감사하옵니다. 황상 폐하!”
송익필과는 오랜 세월 그와 함께 하다 보니, 때로는 군신관계를 벗어나 사사로운 농담 정도는 건넬 수 있는 처지가 된 둘의 관계였다. 아무튼 곧 그를 내보낸 황제 이진은 방금 결정된 사항을 내각에 통보해 그대로 시행토록 조치를 취했다.
* * *
황제 이진으로부터 명을 받은 이영남과 송희립은 각각 자신 예하의 최신전함 18척의 선수를 북유럽 쪽으로 틀지 않을 수 없었다. 대서양을 횡단해 긴 여정에 오른 이들은 점점 추워지는 날씨 속에서 가급적 빠른 항해를 위해 속도를 높여가고 있었다.
이때 궁중에서는 어이없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다. 즉 스웨덴의 22세 젊은 국왕 구스타프 아돌프(Gustav Adolf)가 한마디로 반기를 든 것이다. 내용인즉슨 같은 신교 국가인 영국과는 싸울 수는 없고, 원혐이 있는 이웃 국가인 덴마크와 차라리 전쟁을 벌이겠다고 고집을 세우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그도 일말의 양심은 있는지 자신들에게도 하등 해가 될 것 같지 않는 해적질은 하겠노라고 공언해 왔다.
이 소식을 그대로 내각에 전하자, 세계 제1의 강국으로 자존심이 이제 하늘을 찌를 듯한 제 각료들이 분기를 누르지 못해 일대 소요를 일으키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여전히 충성심을 보이는 코사크 기병대가 있다는 것이다.
‘폐하의 명이시라면 어느 전장에라도 서겠다!’는 다짐을 해온 것이다. 아무튼 황제 이진 또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기는 마찬가지라, 제 각료들에 동조해 유럽에 육상 군을 파견할 움직임을 보이자, 이를 강력히 제지하는 신하가 있었다.
바로 정보부장 송익필이었다. 그의 적극적인 반대로 지상군 파견이 보류된 가운데, 황제 이진은 그의 요청으로 그와 독대를 하게 되었다.
“그대가 병력 파견을 반대하다니 알다가도 모를 일이군. 그래, 짐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이 무엇인가? 서슴없이 해보게.”
황제 이진은 여전히 불쾌한 용안으로 반말을 서슴지 않았다. 그래도 낯색 하나 변하지 않은 송익필이 여유로운 음성으로 입을 떼었다.
“황상 폐하! 진노를 거두시고 잠시만 고정하시옵소서! 하옵시면 아둔한 소신이지만 적은 노력으로 큰 수확을 거둘 수 있도록 하겠나이다.”
“무슨 유용한 정보라도 있는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폐하! 지금 유럽은 신교, 구교 간의 대립으로 일촉즉발의 시기이옵니다. 한 걸음 삐끗 잘못 내디디면 쓸데없는 전쟁에, 우리 조선이 휘말릴 가능성이 대단히 크옵니다. 영명하신 황상 폐하께서 평소 누누이 지적하신 대로, 한 때의 분함을 참지 못해 천추의 한을 남기는 것보다는, 잠시 지상병력의 파병을 보류하시고 계시면 소신이 보다 좋은 안을 마련하겠나이다.”
“언제까지?”
“조만간 그 비책을 올리겠나이다.”
“좋소! 짐이 경의 말을 믿고 잠시 기다리도록 하지.”
“어리석은 신을 믿어주시는 그 은혜 뼈에 사무치옵니다. 꼭 황상의 은혜에 보답하는 대책을 진상해 올리겠나이다.”
“알겠소. 잠시 기다리도록 할 테니, 좋을 대책을 마련해 보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폐하!”
“이렇게 되어 잠시 지상군 파병이 보류된 가운데 순환하는 계절의 수레바퀴는 차츰 초겨울로 진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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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