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200화 (200/210)

< -- 200 회: 모피 전쟁 -- >

3

적의 본영으로 끌려와 급조된 통나무 우리에 갇히게 된 조지 포프햄은 고래 고래 소리를 지르며 자신의 존재를 주변에 각인시키고 있었다.

“이 무식한 자식들아! 빨리 나를 방면하란 말이다. 내가 누구인 줄 알고........”

그의 외침대로 그는 방귀깨나 뀌는 영국 귀족  출신이었다. 애초에 이곳에 탐험대를 보낸 숙부 존 포프햄과 지역의 유력인사 페르디난도 고르헤스는 부유할뿐더러 지역 명명가로서, 영국 정가에도 다소 입김을 불어넣을 수 있는 자들이었다.

그런 자들의 추천으로 이곳에 정착촌을 건설하게 된 조지 포프햄은 자신을 개돼지 취급하는데 격분해 소리 소리 지르지만 그를 상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혼자만 목이 쉬어가자 지칠 대로 지친 그는 이제 걱정이 앞섰다.

‘이 자들이 나를 살려줄까?’

‘끌려가다 놓친 귀중한 패물이 든 보따리는?’

‘인디언 아내는 지금쯤 어찌 되었을까?’

이런 고뇌로 머리를 쥐어뜯는데 군사 하나가 다가오더니 소리쳤다.

“나와!”

“방면이냐?”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하면 입에 재갈을 물린다.”

서로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자신의 언어로 지껄이는 둘이었다. 그러나 조지 포프햄은 엄중한 군사의 표정으로 재빨리 상황을 파악하고 굳게 입을 다물었다. 아무튼 그의 말과 함께 이중으로 가로질렀던 빗장이 풀렸다.

이에 그는 고개를 숙인 채 엉금엉금 기다시피해서 통나무 우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그가 끌려간 곳은 본영 막사였다. 막사래야 절대 훌륭한 것은 못되고 통나무를 얼기설기 얽은 겨우 비바람이나 가릴 수 있는 임시 통나무집이었다.

그곳에는 괴상한 머리 형태의 한 인물이 앉아 끌려오는 자신을 담담히 바라보고 있었다. 뭐랄까? 올 백으로 빗어 올린 머리를 위로 한군데로 모아 묶은(상투) 모양새의 머리를 한 인물이 갑자기 질문을 했다.

“네가 이 정착촌의 우두머리냐?”

‘뭐라고 씨부리는 게냐?’

속으로 궁시렁거리고 있는데 이를 통역하는 자가 있었다.

우람한 그의 덩치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았으나 자신도 아는 자였다. 이곳에 애초부터 살던 인디오로 그동안 자신의 부족은 물론 조선 정착민 그리고 자신의 진영까지 쥐방울마냥 드나들며 잇속을 챙겨온 약삭빠른 자였다.

어설픈 통역이었지만 대충 그의 말귀를 알아들은 조지 포프햄이 대답을 했다.

“그렇다. 나야 말로 고귀하신 대영제국의 제임스1세 국왕폐하의 명을 받아 이곳을 탐험하러 명하신 존 포프햄 재판장님의 조카로서.........”

이때 김충선이 손을 저으며 말했다.

“말이 많다. 한 가지만 묻겠다. 우리말을 배워 통역이 될 생각이 없느냐?”

“........”

어처구니가 없어 입만 멍하니 벌리고 있는 조지 포프햄이었다.

그런 그에게 퉁명스러운 한 마디가 들려왔다. 아니 더 정확히는 통역을 하는 자 역시 경극 배우라도 되는지 말투와 표정을 그대로 옮겼다.

“아니면 노예로 살던지.”

이 말에 화들짝 놀란 그가 답했다.

“당당한 영국 귀족을 너희 미개인들은 이 따위로 대하느냐?”

격한 그의 항의에도 빙긋이 웃기만 하던 김충선이 말했다.

“저 자가 아직 뜨거운 맛을 덜 본 모양이다. 고문을 가할 필요도 없다. 일단 오일만 굶겨라.”

“자, 잠깐!”

“왜? 마음이 바뀌었느냐?”

“인디언 아내만 돌려주면 하겠다.”

“아직 정신 못 차렸군. 끌고 가!”

“잠, 잠깐! 하...하겠다.”

일단은 살고 볼 일이었다. 다시는 짐승의 우리에 갇히어 5일 동안 굶고 싶지 않았다.

“잘 생각했다. 그래도 너는 선택받은 놈이다. 다른 놈들은 노예로 아마도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이렇게 되어 졸지에 조선인 통역으로 둔갑을 하게 된 조지 포프햄이었다. 물론 인디언 처도 돌려주었다.

* * *

신대륙의 이 모든 일이 3년여에 걸쳐 일어난 일이었다.

해가 바뀐 1616년 음력 8월 13일.

황제 이진의 탄신일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황제 이진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드는 성절사(聖節使) 사신들을 맞느라 하루 종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저녁나절이 되자 파김치가 되어 침궁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정보부장 송익필이 찾아들었다.

“무슨 일이오?”

황제의 표정이나 말투에서 피곤함이 역력히 묻어났지만 자신의 직책을 생각하면 보고하지도 않을 수 없어 입을 여는 송익필이었다.

“프랑스와 영국 네덜란드의 3개국 연합함대가 신대륙으로 향하고 있다는 유럽에 파견된 세작들의 보고입니다. 황상!”

“그 녀석들이 우리에게 깨진 게 언제인데, 이제야 움직인다는 거야?”

“거리상의 보고체계도 있겠지만 3개국이 연합 함대 구성을 조율하느라 늦지 않았나 하는 생각되어집니다. 황상!”

“적의 전력은?”

“대소 전함 250척으로 구성된 것으로 보고되었사옵니다. 황상!”

“하하하.........! 우리의 전력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군. 차제에 기 건조한 증기전함 36척을 모두 그곳으로 파견해 일거해 섬멸하는 것은 어떻겠소? 아니래도 승부는 이미 결정 난 일이지만.”

“그렇게 되면 우리 해역이 비게 되어........”

“지금 우리를 건드릴 겁 없는 놈들이 누구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그보다도 북경 한양 간 철도개통은 차질 없이 준비되고 있는 거죠?”

“그렇사옵니다. 황상!”

송익필의 대답 그대로였다.

그간 이진은 증기선이 발명되자 기관차까지 발명하도록 수시로 독려를 했다. 그리고 기관차의 발명을 전제로 그는 대모험을 감행했다. 보다 쉬운 철로를 곳곳에서 생산케 하여 바로 철도부터 북경과 한양 사이에 먼저 깔게 했던 것이다.

이의 시행에는 조선은 물론 조선 치하의 거상들의 협조가 있었다. 전 구간을 20개 구간으로 나누어 동시에 착공하되, 이 구간 하나 하나를 일 개 거상이 맡아 책임지고 완공하고, 그 건설비는 개통 후 10년 동안 운임으로 보전해 주기로 약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이들이 어디 가서 하소연 할 수 없는 것이, 이들이 거상이 되기까지는 음으로 양으로 이진의 덕을 많이 보았기 때문에 눈물을 머금고라도 시행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어 철로가 완공된 것과 비슷한 시기에 기관차마저 발명이 되어 거듭 시험운행을 하게 되었다.

한 달 여의 시험운행에도 아무런 문제가 없자 비로소 황제의 탄신일을 맞아 정식으로 개통식을 갖게 된 것이다.

다음 날 자금성 오문 앞 광장.

수많은 인파가 집결한 가운데 삼엄한 경비가 펼쳐지고 있었다. 곧 멀리서 일산이 보이고 수많은 휘장이 바람에 나부끼는 가운데 수천 금군에 에워싸인 황제 이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측근에는 각 부 대신은 물론 황태후 및 황후를 비롯한 각 귀비, 각 나라를 대표하는 사절, 여기에 조선에 항복해 자금성에 거주하고 있던 왜왕 고유우제이와 왕비 그리고 전의 정 귀비인 망아와 그의 아들 주상순, 왜에서 특별히 달려온 광해 등의 모습도 보였다.

사전에 기획이 되어 있었던지 정 중앙의 열차에 황제 및 고위 황족이 오르자, 다음 양 칸에는 경호 병력이, 또 다음의 양 칸에는 각부 대신과 각국의 사절이 차례로 객차에 올랐다. 그리고 나머지는 전부 경호 병력이 분승한 가운데 12량의 객차를 매단 기차가, 검은 연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뚜우.........!

이어 화통에서 경적이 울리자 놀란 시민들이 일제히 귀를 틀어막는데 기차는 서서히 오문 앞 광장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그러자 똑 같은 구성을 한 기관차 하나가 연달아 출발을 했다. 시민들은 몰랐지만 경호 상 필요에 의해 똑 같은 기차 하나가 이미 반각 전에 선행 역에서 출발한 상태였다.

칙칙폭폭!

칙칙폭폭!

덜컹덜컹!

몸이 조금씩 흔들리는 가운데 황제 이진은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연신 밖을 내다보다가 맞은편의 황태후 박 씨를 바라보고 물었다.

“어마마마! 어떻사옵니까?”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아직도 이 어미는 정신이 혼미하다오. 황상! 시커먼 놈이 이 수많은 사람을 이끌고 달린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렇게 빠르게 달린다니 더욱 믿기지가 않소. 참으로 사람은 오래 살고 볼 일이오. 내 생전에 이런 기물을 볼 수 있다니, 과히 이 년의 복이 어디까지 일지 걱정이 될 정도요.”

“하하하.......! 걱정도 팔자십니다. 어마마마!”

“나만 그런 지, 다른 사람도 그런 지, 한 번 황상이 물어보오?”

갓 환갑을 지난 황태후의 말에 이진이 옆자리에 앉은 황후 허 씨를 보고 물었다.

“황후도 그렇소?”

“솔직히 상상치 못할 일을 당하면 겁이 앞서는 법입니다. 신첩의 마음 역시 어마마마와 한 치도 다르지 않사옵니다. 황상!”

“하하하........! 참으로 걱정도 팔자로군. 못 말릴 일이야!”

거듭 호탕한 웃음을 띠운 황제 이진이 큰 소리로 광해를 불렀다.

“아우는 게 있느냐?”

“네, 황상!”

좀 멀리 떨어져 앉아 있던 왜왕 광해가 벌떡 일어나 대답을 했다.

“이리 오너라!”

“네, 황상!”

대답을 하고 급히 다가와 황제 맞은편 빈자리에 앉는 광해였다.

“대충 왜국의 사정을 듣고는 있다만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게냐?”

“그간 소소한 반란이야 끊임없이 이어져 왔지만 잡히는 족족 죄질이 중한 자는 처형을 하고, 경한 자는 가족 단위로 멀리 혹한의 곳으로 유배를 보내다 보니, 지금은 많이 안정을 찾았사옵니다. 황상!”

“짐이 듣는 것과 별반 다를 바가 없구나!”

“사실 그대로를 보고 올렸으니, 특별히 다를 것이 없을 것이옵니다. 황상!”

“아이들에 대한 조선어 교육은 진척이 있는 게냐?”

“공문서부터가 한글과 왜어로 작성되니 한글과 조선어가 많이 보급된 데다, 아직 재정 열악하여 경도(京都)와 큰 도시만 한글과 조선어를 가르치는 소학교가 있사오나, 장차는 말단 현까지 보급코자 애를 쓰고 있사옵니다. 황상!”

“그래, 급하게 먹는 밥에 체하는 법이니 너무 서둘지 않도록 하고........ 그러나 저러나 진실한 형제라야 우리 둘 뿐인데, 조석으로 네가 그리우니, 이 어찌 된 일이냐? 짐이 나이를 먹는 것인가?”

“황상! 벌써 그러실 연치는 아닌가 하옵니다. 황상의 춘추 이제 마흔다섯으로 소신 알고 있사옵니다. 다만 소신이 어려서부터 각별히 저를 챙겨주셨으니, 애틋한 형제애 때문이 아닌가 하옵니다. 황상! 소신 아직도 역병에 걸려 아무도 소신의 병상 찾아주지 않을 때에도, 죽음을 무릅쓰고 황상만은 소신의 곁을 지켜주셨나이다. 그 날의 감격 아직도 생생해와 문득 문득 소신 게을러지기라도 할라치면, 이를 떠올리고 소신 스스로 채찍질하고 다잡사옵니다. 황상!”

“그래, 아직도 왜의 병탄 완전히 마무리 되어 지지 않았으니 갈 길이 멀다. 때로 우리 형제 보고 싶어도 참아야 하느니, 높이 오른 자의 숙명이 아닌가 하노라!”

“명심하겠사옵니다. 황상!”

“항상, 네 건강부터 챙기고 다른 일을 하거라. 멀리 있으니 우형이 일일이 챙기지도 못하거니와, 죽음의 강은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함께 건널 수 없는 것이니, 명심 하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기어이 눈물을 뿌리는 광해의 손을 잡고 토닥이는 황제 이진이었다.

------------------------

============================ 작품 후기 ============================

고향을 찾아 차례를 지내고 오려합니다.

따라서 3일간 휴재를 하오니 너른 마음으로 양해 바라옵니다!^^

즐거운 명절 되시고 항상 건강하세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