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89화 (189/210)

< -- 189 회: 기물(奇物)의 출현 -- >

1

아이들의 머리를 올려주고 나니 과제 하나를 해결한 것 같아 마음이 시원섭섭한 가운데 기쁜 일이 하나 더 생겼다. 그 일은 한양으로부터 날아들었다. 유재시거(唯才是擧:오직 재주만 보고 인재를 추천하라)라는 당호(堂號) 아래 모아둔 조선과학기술 연구소 산하 인재들이 급기야 일을 낸 것이다.

천민이고 상민이건 간에 오직 그 재주 하나만을 보고 뽑은 조선의 기술자들이 마침내 일을 낸 것이다. 그것은 벌써 몇 년 전인지 기억에도 없는 증기기관의 원리를 발명한 이래, 그 동안 이들은 증기기관의 구축에 주력해 왔다.

그 결과 오늘날 그 기술이 발전되어 증기선에 확대 적용하기에 이른 것이다. 즉 석탄을 원료로 하는 증기기관을 채용한 배가 제작되어, 시험운행에 성공했다는 낭보가 이튿날 아침 긴급 파발로 전해져 온 것이다.

나는 이 소식에 세상을 다 얻은 양 홍소를 터트리며 크게 기뻐해 마지않았다. 나는 이어 긴급 조회를 열어 당장이라도 조선으로 가 그 배를 구경하겠다는 말을 했다. 그러자 제 신하들이 들고 일어났다.

한마디로 이 엄동설한에 어딜 가느냐는 읍소였다. 기분에 취해 발언한 말이었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니 황제가 한 번 움직인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 하나가 여행을 떠나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였다.

호위 병력까지 수 만 명이 움직여야 하는 문제였으므로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신하들의 말이 이성적으로는 옳은 말이었으나 황제의 권위라는 것도 있는 것이다. 예전에는 내 판단이 틀렸다고 생각되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시인하거나 시정했겠지만, 땅이 넓어지고 다스리는 인민이 많아지자, 황제 이진은 어느새 조금은 교만해져 있었다.

그래서 그는 칼을 뽑은 이상 무라도 베겠다는 심정으로 그 증기선을 천진 앞바다까지 항해해 오도록 했다. 물론 실제 이 배가 천진 앞바다에 나타난다면 천진까지는 아무리 겨울이라도 친히 나아가 그 배를 한 번 살펴볼 생각인 이진이었다.

제 신하들도 그랬다. 엄동설한이라고 황제의 순행(巡行)을 만류했지만 배를 옮기는 것까지는 만류할 수 없어, 제 신하들이 입만 벙긋벙긋 하다가 조회가 파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황제가 뱉은 말은 곧 칙유가 되어 이행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어 보름이 지나자 증기선 한 척이 천진 앞바다에 그 모습을 드러내기에 이르렀다. 이는 결코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크게 보면 동양의 문명이 이제는 결코 서양의 문물에 역전 당하지 않는다는 것을 시사(示唆)하는 것이기도 했다.

제비 한 마리가 나타났다 해서 봄이 온 것은 아니지만, 그만큼 기후가 따뜻해졌으니 한 마리의 제비라도 날아온 것이다. 즉 제비 한 마리가 찾아온 것이 머지않아 본격적인 봄이 찾아올 것을 예시하는 것과 같이, 증기선 한 척의 출현은 증기기관의 발명으로 촉발된 서양의 기계 문명이 전 세계를 뒤덮기 전, 조선에서 이를 먼저 발명했다는 것은 결코 이들의 역전을 결코 허용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굉장히 큰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 당시 유럽은 어딘가에 존재할 그리스도교의 이상향 즉 사제 왕 요한이 통치하는 ‘젖과 꿀이 흐르는 이상향’이자 강대한 그리스도 국가인 인도 제국(현 인도와는 다른 낙원을 의미)과 손을 잡고, 전 세계의 그리스도교 화를 실현하기 움직이다 보니, 아시아 동쪽은 물론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

하지만 농경 사회를 기반으로 하는 아시아의 생산량과 문명은 아직 이들을 압도하고 있었다. 즉 수출품에서도 이를 반증하고 있는데, 아시아에서는 저들 나라에서는 전혀 생산이 안 되는 천금의 값어치가 있는 후추를 비롯하여 보석류, 중국이나 조선의 비단 및 도자기 또 인도의 고급 면직물 등을 수입해갔지만, 저들은 아시아에 제대로 팔 물건이 없었다. 목재가 있었지만 원거리 항해로 인한 부피 문제 때문에 아직은 부적합 물건이었다.

아무튼 이런 속에서 저들은 멕시코와 볼리비아 일대 즉 포토시에서 생산된 대량의 은을 주축으로 이들을 사들이는 동시에 유럽에서 폭발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하는 설탕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대규모 농장 플랜테이션을 개발해 사탕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에 재미를 들인 이들은 현 중남미 국가를 중심으로 이 농장을 확대하는 것은 물론 품목도 사탕수수에만 머무르지 않고, 커피, 쪽, 목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물을 대량으로 재배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규모 노동력이 필요한 것은 필연. 이를 공급하기 위해 저들은 이미 채무를 지고 자유를 구속당한 현지인 채무노동자 즉 페온이나 아프리카에서 팔려온 노예들을 또 대량으로 투입하기 시작했다.

이들이 아프리카 노예를 사들이는 과정에서는 자신들의 우수한 무기 및 생필품은 물론 사탕수수의 찌꺼기인 당밀로 제조되는 럼주를 이용했다. 그리고 이들은 이 거대한 삼각무역 및 생산시스템을 중남미뿐만 아니라 북아메리카 동해안 즉 뉴욕이나 퀘벡 등에도 적용시키기 위해, 영국과 프랑스가 기존 네덜란드 상인들과 각축을 벌이고 있는 시점이었다.

이 시점에서 과히 물류혁명을 일으킬 수 있는 증기기관의 실용화는 곧 모든 것을 뒤바꿔 놓을 수 있는 쾌거였다. 보다 빠르고 거대한 상선의 출현은 아직도 계절풍에 의존해 일 년에 두 번밖에 교역할 수 없는 아메리카 신대륙과 아시의 교역 패턴을 먼저 해상에서부터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곧 증기기관차라도 출현한다면 육상의 물류혁명마저 이어져 조선제국은 철로를 따라 유럽으로도 물산을 옮기는 것은 물론 사람의 교류도 더 빈번히 많이 움직이게 될 것이다.

이는 그만큼 세계가 좁아진다는 의미이니 우리의 통치력이 더 넓은 범위까지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런 절호의 기회를 맞았으나 조선제국은 10여 년간 계속된 전쟁으로 재정이 많이 악화되어 대규모 전쟁을 치룰 수 없는 것이 현재의 큰 흠이었다.

이 모든 흐름을 한 눈에 꿰뚫어 본 황제 이진은 기 발명된 증기기관의 실용화를 더욱 앞당기는 한편, 아국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지는데 당분간 총력을 기울이기로 했다. 물론 러시아 이동의 정복전쟁과 같은 소규모 전쟁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었다.

모피 생산 판매 등으로 큰돈이 들지 않기 때문에도 계속할 수 있었고, 우리의 영역을 넓히는 행위를 하루라도 멈추고 싶지 않은 것이 황제 이진의 솔직한 속내였기 때문이었다. 이런 상태에서 황제 이진은 증기선의 천진 출현은 만사를 제쳐두고라도 꼭 보고 싶고, 치하하고 싶었던 일이었기에, 당장 순행을 명하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조회를 통보했다.

제 신하들이 황제 이진의 부름에 상투도 제대로 틀지 못하고, 모두 조회에 참석해 황제 이진의 거동만 사시 눈으로 흘끔거리고 있는 즈음, 침묵을 유지하던 그가 묵직한 음성을 토해냈다.

“지난번 짐이 명한 증기선이 천진 앞바다에 도착했다 하오. 해서 짐은 이를 직접 눈으로 보고 관련기술자들을 치하하기 위해 순행을 하려 함이니, 제 대신들 또한 함께 가보기로 합시다.”

“며칠 있으면 새해도 밝아올 것이고 너무 추운 계절이오니 명년 봄을 기약하는 것이 어떠시옵니까? 황상!”

교체 대신 유희분의 말에 황제 이진이 엄숙한 어투로 말했다.

“경들은 아직 증기선의 출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확실히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 같소. 이는 아국이 왜나 명나라를 정복한 만큼이나 큰 쾌거인바, 경들은 짐의 원행을 만류 마오.”

“조금 늦추신다고 해서 그 배가 어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오니, 날씨가 다소 따뜻해질 때까지 원행을 잠시 보류하심이 합당한 줄로 아뢰오.”

내각수보 유성룡마저 이 큰 역사적 의미를 모르고 딴 소리를 하자 이진은 어이없는 웃음을 흘리고는, 증기선 출현이 앞으로 아국은 물론 세계의 역사를 어떻게 바꾸어 놓을 지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 이진이 몇 잔의 차를 비워가며 장황하게 설명했지만 이들은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고 여전히 이진의 원행을 탐탁지 않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진은 결국 일방적으로 명령을 내려 천진 행 순행 준비를 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는 동안 이진은 새해를 맞아 멀고 가까운 이국 및 아국사절은 물론 제 신하들로부터 하례(賀禮)를 받는 것을 필두로, 본인 자신도 황태후를 비롯한 웃어른들에게 새해 인사를 올렸다. 또 모처럼 윗어르신들을 모신 가운데 황후 이하 귀비 및 비빈과 거기서 낳은 자식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불러들여 조촐한 연회를 베풀었다.

이 자리에는 누루하치의 딸 고륜동과공주는 물론 만력제의 딸 영창공주와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만력제의 5자 주상호와 천태공주 주현미 그리고 영창공주의 딸 장평공주, 이외에도 이국인 후궁 중에서는 가장 먼저 들인 찰합이의 딸 차칸노르와 엽혁부 칭기야누의 딸 칭가인, 합달부 양기누의 딸 양길련에 이르기까지 많은 비빈과 그 자식들이 참석해, 솔직히 1년 만에 보는 아들과 딸도 있을 정도였다.

여기에 황태자 이흔을 비롯해 네 조선후비에서 난 자식들까지 모두 참석했으니 아들과 딸 모두를 합쳐놓으니 벌써 30명이 훨씬 넘었다. 이를 보고 제일 흡족해 하는 이는 황태자 이진이 아닌 그의 모후 황태후 박 씨였다.

후손이 번창함에 자신도 모르게 연신 입이 귀밑에 걸려 이들 모두에게 몇 단위로 나누어 세배를 받고는, 복주머니를 푸는데 가득 들었던 은자가 한 냥씩만 지급해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이에 난처한 표정을 짓는 모후를 보고 껄껄 웃던 이진이 부제조상궁 금란에게 명해 은화를 들이라 하니, 세배 돈의 하사가 계속 이어질 수 있었다. 황태후 박 씨의 손자손녀들에 대한 하사가 끝나자 이진이 웃으며 모후를 보고 말했다.

“하하하........! 어마마마, 손자들에게 덕담 한 말씀 하시지요.”

“황상이 퍼트린 씨가 많긴 많네요. 한 주머니 가득 준비한 은화가 모자라니 도대체 몇 명이오?”

“그건, 소자도 잘.........”

이진이 곤혹스러운 표정으로 얼버무리자 좌중에는 한바탕 폭소가 터지는 가운데, 모후로부터 넘겨받아 내명부를 관리하는 황후 허 씨가 조용히 이진의 귓가에 속삭였다.

“정확히 36명이옵니다. 황상!”

“정말 많긴 많군.”

“이를 말씀입니까? 격구를 한다 해도 결코 부족한 숫자가 아닐 것이옵니다. 황상!”

“하하하........! 자손이 번창하는 것은 좋은 일이나 엄격한 위계질서를 확립해 혹시라도 다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오.”

“명심하겠사옵니다. 황상!”

이 모든 것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여인이 하나 있으니 얼마 전에 시집온 러시아의 황녀 루사였다. 그녀만이 자식이 없어 부러움이 지나쳐 조금은 쓸쓸한 얼굴로 이를 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좌중의 분위기에 돌출 분위기가 연출되니 이는 차칸노르의 아들 이욱(李旭)으로부터였다. 그에게는 몽고식 이름도 하나 있으니 훌라구(旭烈?)라는 이름이 그것이었다. 어미의 거구를 닮아 벌써 장대한 체구가 된 이욱이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발언을 쏟아 낸 것이다.

“부황 폐하! 소자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어언 정남(丁男)이 되었습니다. 이제 어엿한 성인이 되었으니 부황폐하의 해외정복 사업에 소자도 동참할 수 있도록 허락하시어 주시옵소서. 매일 좁은 궁내에 머물고 있자니 답답해 미칠 지경이옵니다. 부황폐하!”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나서는 게냐? 네가 낄 자리가 아니니라.”

어미 차칸노르가 정색을 하고 꾸짖어도 그에게는 마이동풍이었다.

“부황 앞에서 할 말도 못합니까?”

오히려 제 어미에게 대드는 그였다.

“허허........! 그것 참.......!”

그간 이들에게 소홀했던 것은 사실이기에 난처한 표정을 짓던 이진이 정색을 하고 물었다.

“무예는 좀 익혔더냐?”

“궁마(弓馬)는 물론 창검 등 단병접전은 물론 신식무기까지 모두 익혔사옵니다. 부황폐하!”

“병서는?”

“그것은 좀........”

비로소 머리를 긁적이는 기골이 장대한 아들이었다.

“장수(將帥)된 자 모름지기 일신의 무예보다는 전군을 통솔하려면 지략에 밝아야 하거늘, 제 일신 하나 지킬 수 있다 해서 그런 막중한 소임을 자청하다니 아직 멀었다. 하니 제 병서는 물론 현대전의 교리까지 모두 통달하고 나서 그런 청을 하도록 해라!”

“네, 부황폐하! 소자 육 개월 내에 부황폐하 앞에서 시험을 치르겠나이다.”

“뭐든지 열심히 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열심히 배우고 익히고 나서, 추후에 한 번 더 이야기 하도록 하자!”

“네, 부황폐하!”

씩씩하게 답하고 앉는 자식을 보노라니 그는 물론 칭가인과 양기누의 자식까지 전혀 신경을 못 써준데 대한 미안함이 갑자기 엄습했다. 하지만 이를 속으로 삭인 이진이 모든 자식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사람의 재주라는 것이 모두 다르다. 하니 자신이 가장 흥미가 있고, 잘 할 수 있는 분야를 택해 모두 정진하도록 하라. 하지만 기본을 잊어서는 안 됨이니, 기초적인 소양은 물론, 여러 나라 말을 익히는 것도 게을리 하지 않도록 하라!”

“네, 황상 폐하!”

황태자 이하 일제히 엎드려 절을 하는 자식들을 보노라니 뿌듯하면서도 알 수 없는 감회가 새록새록 했다.

------------------------

============================ 작품 후기 ============================

별일이 다 생기네요. 바이러스가 먹어 접속을 할 수 없었습니다. 해량하시고 즐감하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한 날 되세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