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4 회: 시비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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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곽재우는 가장 중요한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흑과 백 반반인 풍성한 수염을 쓸며 곽재우가 입을 떼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시가전이 된다면 많은 시민들이 다치지 않겠소? 하니 적을 유인해 내는 것이 어떻겠소?”
“각하의 애민 정신에 경의를 표합니다. 헌데 적을 유인해 내라는 말씀은 거짓으로 패하여 각하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끌고 오라는 말씀이시죠?”
쿠지마 미닌의 말에 대소를 터트린 곽재우가 말했다.
“하하하.......! 그렇소!”
“각하의 기병 군단의 위력을 보았는데 쉽게 저들이 전투에 응할까요?”
포자르스키 공작의 물음에 곽재우가 웃음 띤 얼굴로 답했다.
“국민군이 끊임없이 저들을 괴롭힌다면 저들이 어쩌겠소? 웅크린 채 매번 방어만 할 수는 없는 노릇일 것이니, 철수를 하든지 아니면 무슨 방책을 강구하겠지요.”
“옳은 말씀이오.”
포자르스키 공작이 긍정을 표하자, 셋은 머리를 맞대고 보다 구체적인 작전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 * *
그로부터 보름이 흘렀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 가운데 곽재우 군단은 이를 아랑곳하지 않고 느긋하게 때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이 현재 위치하고 있는 곳은 러시아 동쪽 교외로 시내에서도 20여리나 떨어진 평원이었다.
아니 평원이라기 하기에는 어폐가 있는 것이 앞에는 낮은 구릉들이 연이어 출렁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곽재우가 이곳을 결전 장소로 택하고 기다리고 있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아무래도 시가전이 되면 기병 전력 본래의 위력을 십분 발휘할 수 없음은 물론, 아군의 피해도 현저하기 때문에 국민군 수장들에게 그런 작전을 전달하고 때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때의 폴란드 군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끊임없이 러시아 국민군이 시비를 걸어오나, 쫓다보면 조선 기병의 덧에 걸릴 것을 우려해 방어에 전념하는 한편, 사령관은 말 잘하는 참모 하나를 모스크바 북쪽 외곽에서 방관만 하고 있는 스웨덴 군 진영에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이 세객이 제법 능력 있는 자라, 밥만 먹으면 연일 이들을 찾아가 설득 작업으로 혀가 닳기 시작했다. 즉 폴란드 군이 패퇴하면 다음은 방관하고 있는 스웨덴 군 차례다. 하니 어부지리를 노릴 생각 말고 연합하여 저들을 물리치자. 그리고 양군이 사이좋게 양분하여 러시아를 지배하자는 말로 저들을 설득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웨덴 장군이 생각하기에도 폴란드 세객의 말이 맞는 말인지라, 갈등하던 스웨덴 장군이 마침내 하루는 홀연히 결심을 하고, 폴란드 군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되었다. 이렇게 되자 전투 상황이 급변했다.
폴란드 군 5만 대 러시아 국민군대 5만으로 팽팽하던 세의 균형이, 스웨덴 군 5만의 개입으로 졸지에 깨어짐은 물론, 중과부적이 되어 연일 밀리게 되었다. 밀리고 밀린 러시아 국민 군대는 결국 모스크바 동쪽 교외 10리 되는 지점까지 쫓겨 왔다.
그것도 선전한 결과였다. 다음 날 적의 총공세에 유인이 아니라 실제로 러시아 국민군은 대패하여 동쪽을 바라보고 뿔뿔이 쫓겨 오는 결과를 낳았다. 이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곽재우 앞으로, 정신없이 쫓기는 러시아 군대가 보이고, 뒤로는 끝을 알 수 없는 폴란드와 스웨덴 보병의 추격이 이어지고 있었다.
때가 왔음을 직감한 곽재우는 수기로써 출격 준비를 명하고 조금 더 적을 끌어들일 셈으로 구릉 정상에서 저들을 예의 주시하고 있었다. 마침내 적이 코앞까지 밀려들자 곽재우는 사자후를 토해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곧 구릉 9부 능선에 숨어 있던 아군 포병 전력이 일제히 구릉 정상으로 뛰어올라 포를 거치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탄약수들이 포를 장전하고 마침내 준비된 자들로부터 조선의 우수한 화력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쾅쾅쾅........!
콰르릉 쾅쾅........!
우르릉 쾅쾅쾅..........!
으악.......!
악........!
컥........!
적들의 참담한 비명 소리 속에 적들이 풍비박산 나기 시작했다.
비명을 지른 자는 그래도 나았다. 외마디 단말마 한마디 못 지르고 폭사되어 하늘을 나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직격된 자는 한마디로 걸레쪽이 되어 피분수를 지상에 뿌리는 자도 있었다.
이렇게 일각 동안의 포격이 전개되자 적의 선봉이 완전 궤멸된 속에서 세 불리를 깨달은 적들이 마침내 후퇴를 하기 시작했다. 이를 보고 곽재우가 단호하게 명했다.
“전군 출격!”
“출격!”
두두두........!
두두두두........!
두두두두두........!
구릉 너머 아군 기병들이 일제히 구릉을 뛰어넘어 적진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산천초목이 떨어 울리는 맹렬한 기세에 적들은 싸워보기도 전에 뱀을 만난 개구리가 되었고, 이들을 향해 아군 기병들은 무차별 사격을 가했다.
탕 탕 탕........!
타당 타당 탕탕........!
무수한 주검이 양산되는 속에서 종 돌파를 감행한 아군은 다시 회군하며 적진을 사분오열시키기 시작했다. 뭉쳐있는 것이 죄악인 양 좌충우돌하며 적진을 뒤흔드니 명이 설리 없었고, 양군은 뿔뿔이 흩어지며 각자 생을 도모할 수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일방적인 도살이 자행되는 속에서, 전열을 재정비한 러시아 국민군마저 전장에 뛰어드니, 전투의지를 상실한 적들이 속속 무기를 버리고 투항하기 시작했다. 아니 한 둘이 아니라 대부분이 무기를 버리고 집단 투항을 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되니 아군의 전투의지마저 차갑게 식었다. 무기를 버리고 두 손을 번쩍 치켜든 놈들에게 총격을 가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곧 시들해진 전투가 막을 내리고 전장 정리가 시작되었다.
머지않아 피아간의 사상자가 파악되었다. 적의 포로가 폴란드 스웨덴 양군 합하여 6만여 명, 사상자가 근 2만 또한 달아났거나 이전 전투에서 죽은 자가 2만 도합 십만 이었다. 이에 반하여 아군 사상자는 러시아 국민군이 1만2천여, 조선기병은 단지 기백 명만이 상처를 입거나 죽었다. 이외 노획한 총기류를 포함한 군수물자는 쌓아 놓으니 동산을 이룰 정도였다.
곧 수뇌부에서는 전후 처리 문제가 논의 되었다. 장소는 스트로가노프 모스크바 별장 내에서였다. 스트로가노프는 대부호답게 곳곳에 별장을 소유하고 있었는데 모스크바 교외 별장 역시 그 중의 하나였다.
이만 평이 넘는 대지 위에 세워진 대저택 2층에는 곽재우가 초청한 인물들이 모여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었다. 그 면면들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았다. 우선 주인인 스트로가노프 백작을 비롯하여, 준 주인인 곽재우를 필두로 최담령과 원숭환 등이 참석하고 있었다.
여기에 로마노프 공작가에서는 베일을 벗은 러시아 정교의 수사인 필라레트 로마노프 또한 그의 동생 푸가초프, 또 여기에 두 국민군 사령관인 포자르스키 공작과 쿠지마 미닌 또 러시아 정교의 총주교로 있는 게르모겐 등이 참여한 일대 성회였다.
“하하하........!”
술잔을 들고 밑도 끝도 없이 대소를 터트리던 곽재우가 갑자기 웃음을 뚝 멎고 자신의 자리인 상석에 앉았다. 그리고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뒤에는 최담령과 원숭환이 배석한 채였다.
“우선 대승을 거둔 것에 대하여 대조선제국의 황상 폐하를 대신하여 여러분께 치하를 드리는 바입니다. 정말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전후처리 문제를 논의해봅시다. 아니 대 조선제국에서는 이미 결과를 예측하고 사전에 모든 결말을 지어놓았습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끊어 다음에 뱉을 말의 권위를 더 세운 곽재우의 말이 이어졌다.
“가짜가 난무하는 어지러운 정정 속에서 러시아가 속히 안정을 되찾기 위해서는 정통성 있는 새로운 황제가 필요하오. 해서 대 조선제국에서는 전 황후의 손자뻘이 되는 미하일 표도로비치 로마노프를 러시아의 다음 대 차르로 옹립하려 하오. 이는 정통성 측면뿐만 아니라 러시아 국민 사이에도 광범위한 지지를 받고 있는 점을 고려한 것이오. 이의 없지요?”
“절대적으로 찬성하오!”
“.........!”
황제의 부친이 될 현 러시아 정교의 수사 필라레트 로마노프와 동생이 엄숙한 얼굴로 대 찬의를 표하는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은 내심 계산을 하느라고 답이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곽재우는 일방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리고 듀마(귀족회의로 상원과 마찬가지 기능) 의장에 포자르스키 공작, 젬스키 소보르(전국회의로 하원 기능) 의장에 쿠지마 미닌 그리고 러시아의 대외 교역의 일선 창구는 스트로가노프 백작 가문이 맡아주시오. 이는 대 조선의 유럽 창구 역할도 하는 막강한 자리요. 또 게르모겐 총주교께서는 끝없는 내전과 가난으로 고통 받는 러시아 국민들을 신앙적으로 어루만져 주시길 진심으로 바라겠습니다. 이에 대해 이의 있는 분은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나 쿠지마 미닌은 절대 그 자리에 생각이 없소. 내가 국민회의를 이끌고 외세에 대항한 것은 우리 조국을 외세에서 해방시키고자 함이었지, 일신의 영달을 위해서는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오.”
“좋소! 우리 속담에 평양 감사도 제 하기 싫으면 그만 이라는 말이 있소. 그와 같이 쿠지마 미닌 사령관께서 고사하시니 최소한의 예의로 출신지인 니즈니노보고르드 시장 직을 맡아주시는 것은 어떻겠소?”
“그것은.........”
이마저도 거절하기는 어려웠던지 쿠지마 미닌이 우물쭈물하자 곽재우는 아예 단단히 못을 박아버렸다.
“그럼, 수락하는 것으로 알고 공석인 젬스키 소보르 의장직은 일단 스트로가노프 백작께서 맡아 주시오. 그리고 게르모겐 총주교께서는 좀 미안한 말이지만 일찍이 대조선 제국의 황상 폐하께서 언급하시길, 종교가 정치에 관여하게 되면 이 또한 크나큰 후유증을 남기는 일이니, 러시아 정정의 안정을 위해서는 성직자의 본분에 충실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하신 바가 있소. 총주교께서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아직 러시아 정정이 불안하니 젬스키 소보르를 소집하여 황제를 옹립하는데만 돕고 이후에는 완전히 정치에서 발을 떼려하오.”
“하하하........! 역시 성직자는 무엇이 달라도 다르오.”
크게 치하한 곽재우가 확인 차 다시 한 번 좌중을 둘러보고 물었다.
“이상과 같은 결론에 의의 없지요?”
“그렇소이다.”
“.........!”
필라레트 로마노프가 큰소리로 동의를 표시하는 가운데 나머지는 침묵으로 수긍했다.
이를 지켜본 곽재우가 여전히 엄숙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갈 것이 있소. 즉 황제로 추대하려는 미하일 로마노프 공의 나이 현 15세로 어린바가 있으므로 당분간은 부친께서 섭정을 맡아주시오.”
당사자가 나설 수는 없어 필라레트마저 입을 다문 가운데 아무도 말이 없었으므로, 이 문제 또한 그렇게 가닥을 잡았다. 그러나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야망이 큰 펠라레트는 이를 기회로 나중에는 게르모겐을 배제하고 총주교 자리에 올랐을 뿐만 아니라, 죽을 때까지 공동 차르로 행세했다는 것이다.
조선이 이 문제까지 관여하기에는 너무 내정을 간섭하는 측면이 있어 내버려 둔 결과였다. 아무튼 이렇게 러시아 장래가 결정된 가운데 이제는 단 하나 포로 문제가 남았다. 그래서 곽재우는 이마저 안건으로 올려 마무리를 지었다.
“이제 폴란드와 스웨덴 포로만 남았소. 아국은 이들을 전부 우랄산맥 이동으로 보내 동토를 개척하는데 쓰려하오. 그곳의 길을 닦거나 기존 군대의 보급품을 나르는데 쓰고자 하오. 이의 없지요?”
“포로는 본국으로 귀환시키는 것이 어떻겠소?”
게르모겐 총주교의 성직자다운 발언에 곽재우가 바로 답을 했다.
“만약 코사크 기병대의 포로가 되었다면 전원 사살되었을 것을, 그래도 조선제국에서는 생명을 유지하여 동방개척에 쓰는 것이니 감사하게 생각해야 할 것이오. 또 하나 부가적으로 언급한다면 만약 러시아가 포로들을 억류한 채 다른 곳에 쓰려한다면, 이는 폴란드와 스웨덴의 재침을 각오해야 하는 바, 결코 옳은 선택은 아닐 것이오. 우리야 워낙 먼 곳에 위치한 제국이니 그들이 하나도 두렵지 않지만 말이오. 본 장의 말이 타당하지 않소?”
“맞습니다!”
이해타산이 빠른 스트로가노프 백작이 동의하고, 여기에 포자르스키 공작과 쿠지마 미닌마저 고개를 끄덕이니 모든 것은 이로써 결정이 되었다.
“자, 전후처리 문제는 이쯤 해두고, 모두 잔을 들어 대조선제국과 러시아 양 연합군의 승전을 축하함은 물론 앞으로 양국의 공동번영을 위한 축배를 듭시다! 위하여!”
“위하여.........!”
이렇게 모든 것이 결정된 자리에는 풍성한 만찬과 술자리만 길게 이어졌다. 벽난로 활활 타고 함박눈 다시 내려 쌓이는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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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