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80 회: 시비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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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진을 마친 채 적정을 바라보는 곽재우 이하 제장들의 안색은 결코 밝지 못했다. 성벽이 의외로 높고 견고한 데다, 전 성채를 둘러보아도 어느 한군데 허술한 데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먼 거리 원정이다 보니 화기 또한 충분히 준비하지 못했다.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물러설 수는 없지 않은가? 결심을 굳힌 곽재우가 제장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어제의 작전 계획대로 포 공격부터 시작한다!”
“네, 대원수님!”
복명한 세 여단장들이 각자의 위치로 흩어졌다.
이를 지켜보던 곽재우가 침음하며 말했다.
“흐흠........! 생각보다 쉽지 않은 전쟁이 될 것 같소.”
“동감입니다.”
원숭환의 말에 최담령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수뇌들부터 이렇게 풀이 죽어서야, 원.”
“어렵겠다는 말이지, 사기가 꺾인 것은 아니오.”
“껄껄껄........!”
곽재우의 반론에 최담령은 그저 웃기만 했다. 그러더니 곧 정색을 하고 말했다.
“만약 성공치 못하면 대안이 마련되어 있으니 너무 걱정 마오.”
“정말이십니까?”
반색을 하며 달려들 듯 묻는 곽재우였다.
“허허........! 아무렴, 명색이 군사인데, 밥값은 해야죠.”
“좋습니다. 가서 준비되었으면 방포하도록!”
“네, 대원수님!”
부관이 곽재우의 명을 받고 말을 달려 나갔다.
그리고 차 한 잔 마실 시간이 지난 시각.
선두 열에 포진한 화기영 병사들의 일제 포격이 시작되었다.
펑 펑 펑.......!
쾅 쾅 쾅.......!
우르릉 쾅 쾅.......!
뇌성벽력 치는 소리와 함께 적의 견고한 성벽에 아군의 포탄들이 작렬하기 시작했다. 천지현황, 승자총통은 물론 곡사무기인 대완구에서 발사되는 비격진천뢰에 이르기까지 온갖 종류의 포들의 향연에, 적의 성벽이 움찔움찔 몸살을 앓고 일부는 성벽이 터져나가기도 했다.
그러나 완전히 터져나가지는 않아 대기하고 있는 전마들이 애꿎은 바닥만 긁게 하고 있었다. 축성 양식도 동양과는 조금 달라 성문마저도 석문(石門)으로 되어 있으니, 집중 포격에도 견디고 있었다.
적 또한 놀고 있지만은 않아서, 아군은 적의 대포 공격에 일정 거리 이상 후퇴를 해 대기를 해야 했다. 그러나 적의 대포라는 것이 아군과 같은 청동제도 아니고 주물 포로써 성벽 거치형인 데다, 포탄도 작열식이 아닌 일반 쇠구슬을 다져 넣은 것이라 살상력은 그렇게 크지 않았다.
그래도 무시 못 할 위협인바 아군은 사거리 밖으로 피해 적진을 노려보고 있었다. 보군 같아야 일제히 기어오르던지 달려들던지 할 텐데, 기병 전력을 이런데 소모한다는 것은 너무 아까워 1차로 포 공격에만 의존하다보니, 너무 시간이 더디게 흐르고 있었다.
그래도 아군은 아군의 화력을 믿고 성문 일대를 주요 목표로 삼아 꾸준히 포격을 전개했다. 마침내 중첩된 포격에 성벽 일부가 반파되었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아군 전체가 안타까운 음성을 토해내는데 성문이 정통으로 피격되었다. 순간 성문이 누적된 피로 때문인지 터져나갔다.
와아.........!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과 함께 비호처럼 쇄도하는 아군 기마대였다. 그러나 적의 방어 또한 신속했다. 굵은 통나무와 돌들이 쏟아져 순식간에 성문을 틀어막고 그 뒤에는 장창병들이 밀집대형을 이루어 창의 숲을 이루었다.
잘 조련된 군대였다. 그러나 물실호기 기회를 노리던 제1여단부터 떼를 지어 짓쳐들었다.
쿵, 쿵, 쿵........!
쿵쿵쿵쿵쿵쿵......!
달려드는 탄력을 이용해 통나무와 돌무더기 속을 연신 충격하고 기마전사의 몸은 하늘로 붕 떠올랐다. 그래도 용감한 아군의 공격이 계속되자 통나무와 돌로 된 장벽이 터져나갔다. 이제 아군 기마대가 창 숲으로 돌진하는 순간, 적진에서 콩 볶는 소리와 함께 화승총들이 아군 기마대를 향해 불을 뿜었다.
아군 전사들 역시 마상에서 그들을 향해 대응사격을 하고 후위에서 이를 지켜보는 아군 또한 지원사격을 했다. 순식간에 피아의 총성 가득해 지켜보는 자들은 귀를 틀어막아야 했다. 아군의 무모하리만치 계속되는 돌격 앞에 적의 창 진은 위태위태하면서도 결코 뚫리지는 않고 있었다.
이제 죽은 아군의 전마와 시체가 오히려 장애물이 되어 아군의 돌격을 가로막기 시작하고, 적의 결사적인 방어는 더욱 거세졌다. 이를 보고 있던 최담령이 곽재우에게 물었다.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큰 것 아니오?”
“이 정도 피해는 감수해야지 어쩌겠소?”
“그러지 말고 내 꾀를 한 번 빌려보지 않겠소?”
“말씀해 보오.”
“잠시 귀 좀 빌립시다.”
“누가 듣는 다고........”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지 않는다지 않소?”
상을 찡그리며 곽재우가 말했다.
“말씀해 보오.”
허락을 득한 최담령이 곽재우의 귀에다 대고 뭐라 속삭이는데 고약한 구취(口臭) 때문인지 시종 곽재우의 인상이 일그러졌다.
그러나 그 꾀가 쓸 만 했던지 듣고 난 곽재우의 얼굴이 활짝 펴졌다.
“하하하........! 좋소, 좋아!”
크게 대소한 곽재우는 곧 언제 그랬냐는 듯 신중한 안색이 되어 적진을 살피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가 최담령을 보고 말했다.
“아무래도 군사의 꾀를 시험해 보아야겠소. 아군의 피해가 너무 크오.”
“좋을 대로 하시오.”
뒷짐을 쥔 최담령은 금방 방관자가 되어 이국의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곽재우는 곧 마음먹은 대로 군령을 내렸다.
“철수하라!”
“철수하라!”
부관의 복창과 함께 기마전령들이 각 여단장을 향해 달려 나갔다.
* * *
그로부터 나흘이 흘렀다. 아직도 아군 보급대가 도착하지 않아 이틀 치의 군량밖에 남지 않았다. 그것도 평소보다 아껴먹어 하루를 더 번 량이었다. 그동안 아군은 연일 공성전을 전개했다. 그러나 첫날과 같이 치열하지는 않았다.
이 날 새벽.
아군은 자욱한 안개를 뚫고 서서히 퇴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정 거리 이상을 벗어나도 적의 추격이 없자 빠른 속도로 온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반나절을 더 달린 아군은 곧 넓게 퍼져나갔다. 3여단과 군 수뇌부를 제외한 2개 여단이었다. 남은 3여단이 숙영 준비를 하는 동안 2개 여단은 영 단위로 흩어져 인근 부족들에게 달려들었다.
이들은 곧 저항하는 인근 부족민들을 제압해 그들의 가축을 징발하는 것은 물론 조금이라도 힘을 쓸 수 있는 자들은 모두 쓸어 모아 숙영지로 귀환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이날만이 아니라 점점 범위를 넓혀가며 부근의 부족들을 전부 제압해 나갔다.
이렇게 되자 부근에 제압할 부족민들이 없어졌다. 그러자 곽재우 군단은 이틀거리를 더 후퇴해 이런 일을 반복했다. 그러자 끌어 모은 남녀노소를 합하여 3만 명이 훌쩍 넘었고, 양을 비롯한 가축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았다.
그러는 동안에 아군 1차 보급대도 도착했다. 2만 명이었다. 이들은 곧 전열을 정비해 다시 토볼스크 성을 향해 진군하기 시작했다. 한편 토볼스크 성의 엘 마크 후작도 놀지만은 않고 있었다.
그는 부친 T.예르마크가 이 성을 점령한 공으로 이반 뇌제에 의해 후작으로 임명된 동시에 이 성의 성주가 된 사람이었다. 그 동안 그는 부서진 성을 수리하는 동시에 파괴된 성문도 복원하였다.
적이 다시 몰려온다는 정보에 의해 그는 다시 전열을 정비하여, 2만 군사는 물론 성민마저도 전부 이 전투에 동원하였다. 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적의 모습이 마침내 그들 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적의 하는 짓이 이상했다. 공격 준비를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 서쪽으로 몰려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8만의 대군이 된 이들은 전 군사가 되어 통나무를 자르고 땅을 파 부대에 담는 것이었다.
‘아뿔사! 수공(水攻)이로구나!’
서에서 북으로 성을 반 바퀴 휘돌아나가는 토볼 강을 막으려는 의도를 짐작한 엘 마크는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곧 대책을 강구해야 했다. 손 놓고 있다가는 적에 의해 수장당하기 딱 맞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대책이라는 것이 한정되어 있었다. 달려 나가 적을 쫓기 전에는 수장을 당할 판이라 일단은 적을 쫓아내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를 악 문 그는 이날 초저녁부터 2만 군사를 배불리 먹인 후, 일찍 잠을 재웠다.
하지만 용의주도한 곽재우는 이 모든 것을 곳곳에 세워 놓은 망원경을 든 관측병들에 의해 신속히 보고받고 있었다. 적의 야습을 예측한 곽재우는 여기에 한 술 더 뜬 계책을 베풀어 놓았다.
이날 밤, 삼경 무렵.
이날따라 하늘도 이들을 돕는지 무 월광에 별빛 한 점 없었다. 잔뜩 흐린 날씨 때문에 그나마 별빛마저 모습을 감춘 밤이었다.
5천 기마에 재갈을 물리고 헝겊으로 말발굽까지 싸맨 이들은 조심조심 가까운 서문을 열고 길을 나섰다. 모두 말을 끈 상태로. 대신 말 잔등에는 섶을 잔뜩 지운 채였다. 이들이 얼마쯤 그렇게 길을 갔을까. 이들은 머지않아 수로를 변경하기 위해 파놓은 큰 물길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숙영지의 천막들이 줄지어 서 있었다. 뿐만 아니라 기름을 아끼려는지 내걸린 횃불마저 얼마 없없다. 이들은 더욱 안도하며 계속 기도비닉을 유지한 채 아군 막사로 접근했다.
그런 상태로 군영이 가까워져도 적진은 전혀 눈치를 채지 못했는지 괴괴하기만 했다. 이에 후미에서 이를 지켜보는 대장 튜볼카는 내심 득의양양한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음 하하하........! 이놈들 오늘밤 너희들을 내 통돼지 바비큐로 만들어주마! 음 하하하......!”
그가 내심 음침한 기소를 흘리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일성포향과 함께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펑!
쾅, 쾅, 쾅.........!
그것이 시작이었다.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부하들 앞에서 연쇄 폭발이 일어나며 사람이고 짐승이고 간에 대폭발 속에 모든 것을 삼키고 하늘로 비산시키기 시작했다. 파진포 즉 지뢰가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한 것이다.
콰르릉 쾅쾅........!
콰르릉 쾅쾅........!
“이런, 잘못됐다. 후퇴하라! 후퇴해!”
한마디 급하게 쏟아놓곤 튜볼카는 뒤로 안 돌아보고 자신부터 말 잔등에 올라탔다. 섶이 있어 어정쩡한 자세였지만 그것이 문제가 아니었다. 이를 따라 살아남은 3분의1쯤 되는 부하들이 천지사방 모르고 줄행랑을 놓았다.
놓아두어도 집을 찾아가는 말의 습성 때문에 그래도 옳게 서문으로 쫓겨 왔다. 뒤에는 적의 추격 급박한 가운데 튜볼카는 성문에 다 대고 악을 썼다.
“어서 문을 열어라! 문 열어!”
“튜볼카님 입니까?”
“그래 이 자식아! 빨리 문 열어!”
“네, 대장님!”
그런데 이 자식들의 동작은 왜 이렇게 굼뜬지 겨우 성문이 열려 다급하게 성문 안으로 들어가는 이들이었다. 이때였다. 성의 측면에서 일단의 군사들이 소리 없이 접근하더니 후미를 충살해 나가기 시작했다.
“뭐야 이거........?”
채 그가 어떻게 된 상황인지 제대로 파악되기도 전에 선두 기마는 벌써 자신을 바싹 쫓고 있었다. 비로소 상황을 인식하고 악을 쓰는 튜볼카였다.
“빨리 문 닫아! 적이다, 적!”
“빨리 문 못 닫아!”
그놈의 한 가닥 책임감 때문에 악을 쓰던 그도 결국 적의 총격에 말안장에서 떨어지고 말았다.
와아.........!
와아.........!
타다당 타당타당.........!
따다다당 탕탕........!
함성과 함께 무차별 총격을 가하는 적들이었다.
비로소 상황을 인식한 성문 위에 있던 자들이었으나 벌써 때가 늦었다. 성문을 빠져나온 군사들이 일제히 자신들을 향해 총격을 가했다. 모두 요란한 비명과 함께 생을 달리할 수밖에 없었다.
성문이 뚫리자 이제는 걷잡을 수가 없었다. 난입하는 적 기마대의 말발굽 소리 일제히 성내를 두들기기 시작하는 가운데, 그 진동이 얼마나 큰지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듯했다. 걸어놓은 액자가 떨어지는 것은 물론 높이 올려놓은 물건들이 자던 사람들을 사정없이 두들기기 시작했다.
이 소란에 가슴 졸이며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던 엘 마크 역시 탈색된 얼굴로 소리 질렀다.
“적이다. 적! 모두 나가 대항하라!”
이제 남은 것은 기껏 보군들 뿐. 쪽수는 모두 1만5천 명이나 되었지만, 당황하여 모두 허둥거리기만 할 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를 따라라!”
아버지가 전사였듯이 그 또한 피 끓는 전사였다. 엘 마크는 채 말안장도 놓이지도 않은 전마 위에 성큼 올라타며 소리를 질렀다. 성주의 발분에 비로소 어느 정도 정신이 든 부하들이 하나 둘 그를 따라 열 지어 관사를 빠져나갔다.
그러나 천지를 떨어 울리는 진동음에 대부분의 전사들이 오금이 저려 황망한 낯 색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도망갈 궁리부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그들 앞으로 말발굽 소리 더욱 가까워지고 수많은 횃불이 보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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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늘 행복한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