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79 회: 2부 카자흐 부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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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가 막 불러들인 세 여단장과 카춤칸 그리고 야율성률을 일별하고 입을 떼려고 할 때였다. 부관이 급히 장막 안으로 들어와 고했다.
“황궁에서 두 명의 손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그래? 누구인고?”
“원숭환과 최담령이랍니다.”
“그래?”
곽재우의 눈이 커졌다. 원숭환은 황제의 비서로 근무하는 인물이고, 최담령은 일찍이 부군사(副軍師)로 군왕의 측근에서 지모를 겨루던 인물 아닌가? 내심 반가우면서도 무슨 일인가하여 걱정도 되는 곽재우였다.
“일단 안으로 모셔라!”
“네, 대원수님!”
곧 물러간 부관이 바로 두 사람을 데리고 장막 안으로 들어왔다.
“하하하........! 격조했습니다. 장군님!”
비록 체모(體貌)는 작지만 간담만은 누구보다 큰 최담령이 가가대소하며 장막을 찾아들자 곽재우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았다.
“어서 오시오! 부 군사!”
“아! 내 옛 벼슬을 아는 이 장군 뿐인가 하오.”
최담령의 말대로 곽재우가 내금위장 시절 최담령은 부군사였으니 둘은 잘 알 수밖에 없는 사이였다.
“어떻게 지내셨소?”
“그보다 황상의 측근 비서를 두고 시생을 이렇게 환대하다가는 결코 이롭지 못할 텐데 말이오.”
“하하하........! 하긴, 실례가 많았소이다.”
곽재우가 한편에 덤덤하게 서있는 원숭환을 안으로 청하며 하는 말이었다. 여전히 표정 변화 없이 원숭환이 말했다.
“황명을 받았소이다.”
“무슨........?”
곽재우가 눈썹을 치켜 올리자 원숭환이 곧 답했다.
“실제 전쟁에 임해 공부를 하라 명하십디다.”
“하하하........! 그렇습니까? 하긴 산교육이 제일 중요한 것이죠. 자, 다들 자리에 앉으십시다.”
이에 앉은뱅이 의자에 앉으며 최담령이 말했다.
“누구는 황명을 받았다지만 이 몸은 오히려 황상께 청했소이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곽재우의 말에 성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최담령이 말했다.
“송익필 부장은 말할 것도 없고, 한필, 지함두까지 비서다 뭐다 해서 제다 감투하나씩 씌어주셨는데, 아, 이 몸은 그냥 잊혀 질 것 같아, 공이라도 세워보자고 이렇게 자청해 나섰소이다.”
“설마요?”
곽재우의 못 믿겠다는 눈빛에 바로 답을 한 사람은 의뢰로 원숭환이었다.
“황상의 표현을 빌리자면 빈둥빈둥 허송세월하지 말고 카자흐 부대나 두드리는데 일조하라 하시며........”
“내 쫓으셨소이다.”
뒷말은 최담령이 냉큼 받았다.
“하하하.......! 두 분 모두 잘 오셨소이다.”
여기서 황제 이진이 말했다는 ‘카자흐’란, ‘자유로운 모험자’라는 뜻과 함께, 러시아의 변경에 살던 기마전사 집단을 일컫는 말이었다. 그러나 15세기 중엽부터 지주와 관리의 압제에 못 이겨 많은 농민들이 변경지방으로 달아나 집단을 이루어 살게 되면서, 이들 러시아 도망 농민도 카자흐로 불리게 되었다. 이들의 생계수단은 주로 수렵, 어로, 약탈행위였다.
곽재우가 마저 말을 이었다.
“마침 적을 칠 계책을 논의하려던 참이었소이다.”
“계책도 계책 나름이지요. 황상께서 원 비서에게 산 공부가 중요하다 가르치시듯, 책상머리의 계책이라는 것은 허황되기 짝이 없어서, 빗나가기 십상이외다. 현장을 보고 논하는 것이 확실하지요.”
“역시 지모에는 못 당하겠습니다. 하면 부군사의 말을 받들어 적을 칠 계책은 적정을 살핀 후에 논하기로 하고, 기왕지사 모였으니 시금털털한 마유주라도 한 잔 합시다.”
이때 원숭환이 나섰다.
“병암(屛巖:최담령의 호) 선생을 이제는 군사님이라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황상께서 친히 임명하셨거든요.”
“종전에는 그 소리 못하게 하려고 냉큼 나서신 게요?”
“아무려면 어떻소? 폐일언하고 대원수님의 말씀마나따나 마유주나 한 잔 합시다.”
“하하하........! 그럽시다. 군사님!”
이렇게 적을 칠 계책을 논하려던 자리는 서로의 상견례 자리로 바뀌었다.
* * *
곽재우 군단이 얼마를 진군했을까. 이들은 대강(大江) 이르티슈 강을 만났다. 이역의 도시 토볼스크 즉 전의 시비르한국의 도읍이 멀지 않았다. 이런 생각으로 모두 새삼 긴장을 유지한 채 숙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곽재우 또한 밤이 깊었지만 이 생각 저 생각으로, 잠 못 들고 있을 때였다. 군막 밖에 갑자기 어지러운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이상을 직감한 곽재우가 소리쳐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접니다. 대원수님! 방금 전령 하나가 도착했습니다.”
부관의 목소리에 일단 안심을 한 곽재우가 둘을 장막 안으로 불러들였다.
“들여라!”
“네! 대원수님!”
대답과 함께 두 사람이 안에 나타났다.
대원수를 보자마자 급히 군례를 올린 전령이 다급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보급품을 수송하던 보군이 적의 습격을 당했습니다. 대원수님!”
“뭣이라고? 어느 부대냐?”
“이곳에서 제일 가까운 보급부대입니다.”
“적은 발견했느냐?”
“밤중에 기습을 받아 기마부대라는 것만 알뿐........”
머리를 젓는 전령이었다.
“저런 멍텅구리 같은 것들.........! 그래서, 피해는?”
“수송해오던 군량의 삼분의 일을 털렸습니다. 대원수님!”
“인명 피해는?”
“그것은 미처.........”
“알았다. 일단 밖에 대기하라! 부관은 전령에게 식사를 제공하도록!”
“네! 대원수님!”
“잠깐!”
“네, 대원수님!”
나가려는 부관을 보고 곽재우가 추가 명령을 내렸다.
“여단장들과 군사를 모셔라!”
“네, 대원수님!”
비로소 부관과 전령이 물러가자 곽재우는 군막 안을 거닐며 중얼거렸다.
“적이 예사롭지 않은데......... 나라도 우선 전투부대보다는 보급부대를 노려 자진철수를 유도하겠다. 흐흠........!”
자신도 모르게 침음성을 발하며 수심이 깊어지는 곽재우였다.
여전히 곽재우가 군막 안을 서성이고 있을 때였다. 세 여단장을 비롯해 네 사람이 들이닥쳤다. 곧 카춤칸과 야율성률 그리고 최담령과 원숭환이었다.
“밤중에 미안하오!”
“밤중이라도 급한 일이 있으면 불러야지요.”
최담령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대답했다.
“일단은 자리에들 앉읍시다.”
“그러시죠.”
모두 자리를 잡자 곽재우가 심각한 안색으로 입을 열었다.
“최일선 보급부대가 기습을 받았다하오. 피해는 보급품 중의 삼분의 일.”
“보급품부터 털다니 보통 내기들이 아니군.”
평소 너무 가볍게 보일정도로 말이 많고 웃기 잘하던 최담령도 침중한 안색으로 받았다.
“그렇소! 적진에 분명 지모 있는 자가 있는 것 같소.”
“동감이오. 헌데 적은 파악했소?”
“그게 확실치 않소. 기마부대라는 것 밖에는. 부근의 부족민들인지, 아니면 우리가 상다하려는 토볼스크 기마대인지는 확인을 못했다 하오.”
“저런, 저런....... 적을 먼저 알아야 되거늘........”
종내는 혀까지 차던 최담령이 물었다.
“군량 사정은 어떻소?”
“5일치가 다요. 그 안에 보급을 못 받으면........”
더 이상 말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 곽재우였다.
“흐흠........!”
역시 침중한 안색으로 신음성을 토하는 최담령이었다.
이때 조용히 경청만 하고 있던 재사(才士) 야율성률이 말했다.
“제가 볼 때는 토볼스크의 적들이 인근 부족을 협박 내지는 선동한 것 같습니다. 우리의 최일선 부대라도 그들이 보급품을 털기에는, 토볼스크의 적들로는 너무 먼 거리입니다. 게다가 우리 또한 이제 그들의 근거지가 멀지 않았으니, 함부로 병력을 나누기는 좀 곤란했을 겁니다.”
“가장 타당한 생각이오.”
침묵을 고수하던 원숭환이 동조발언을 했다.
“하면 그들부터 쓸어버릴까요?”
“주적을 두고, 조무래기들과 투덕거리다가는 언제 기습을 받을지도 모르죠.”
최담령의 발언에 생각이 많아지는 곽재우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결단한 곽재우가 소리쳤다.
“좋소!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진군하여 주적부터 두드립시다.”
“옳게 보셨소이다.”
곽재우는 최담령의 지원사격에도 좀체 표정을 풀지 않은 채 예하 장령들에게 영을 내렸다.
“최대한 진군은 서두르데, 군량 또한 최대한 아낄 것!”
“네, 대원수님!”
명이 떨어지자마자 세 여단장이 일제히 궁신하며 명을 받들었다.
“이제 가서 주무셔도 좋소이다. 단 세 여단장은 더욱 경계를 철저히 하도록!”
“네, 대원수님!”
모였던 사람들이 썰물 빠지듯 사라지자 곽재우는 혼자 장막 안을 거닐며 투덜거렸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르쓰라도 준비해오는 건데........”
그러나 곧 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중얼거렸다.
“군사가 하나 둘이어야지.”
서성이던 곽재우가 침상으로 향했다.
그렇게 초원의 별은 빛나고 밤은 깊어만 갔다.
* * *
진군을 서두르고 서두른 보람이 있어 마침내 곽재우 기병군단은 적의 성채를 눈앞에 두게 되었다. 그것이 적의 기습을 받았다는 밤으로부터 나흘만이었다. 지난번 이 거리를 아군은 오일 만에 온 적이 있었다.
적진은 곽재우가 예상한 대로 아니 우려한 대로였다. 성문을 꽁꽁 닫아 건 채 수성에 전념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이를 보고 곽재우는 혼자 중얼거렸다.
“나 같아도 적의 군량이 달리는 것을 알면 농성을 하겠다.”
이로 보면 이들이 주범이 되었든, 종범이 되었든 보급부대의 기습에 관여한 것은 맞는 듯했다.
지난번에는 아군을 맞아 거침없이 성을 박차고 나오던 자들이 웅크리고 있는 모양새가 무언으로 이를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그때보다는 여섯 배나 많은 아군의 전력 또한 수성의 한 요인이겠지만, 그것 보다는 아군의 군량이 떨어지길 바라는 농성 같아 괜히 기분이 나빠지는 곽재우였다.
‘이럴 때가 아니지.’
내심 중얼거린 곽재우는 곧 모여든 장령과 군사들과 함께 적정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길 얼마. 곽재우가 돌연 옆의 최담령을 보고 물었다.
“어떻소? 최 군사!”
전쟁이 임박해지자 말투부터 달라지는 곽재우였다.
“흐흠........! 좀 더 살펴봅시다.”
이때부터 이들은 망원경만으로 원거리를 관찰하는 것이 아니라, 성 주변을 멀리서 한 바퀴 돌며 성 전체를 세세히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러는데 한 시진 반이 소요되어 어느덧 해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밤새 작전을 구상하고 내일 일찍부터 공격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러지요.”
곽재우의 말에 의견 일치를 본 이들은 곧 군사들에게 저녁을 지어 먹도록 했다.
다음 날 새벽.
모두가 식사를 하느라 어수선한 가운데 점점 더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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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좋은 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