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76화 (176/210)

< -- 176 회: 2부 카자흐 부대 -- >

3

곽재우 군단이 주시하는 속에서 가까이 온 다섯 명 중 한 노인이 큰 소리로 외쳤다.

“드릴 말씀이 있어 찾아온 사자이옵니다.”

분명한 몽고말이었다.

역관을 통해 이 말을 전해들은 곽재우가 이들을 더 가까이 부르도록 했다. 곽재우의 명에 10보 떨어진 거리에 도착한 이들은 누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한쪽 무릎만 땅에 대는 군례를 올렸다.

그리고 한 삼십대 젊은이가 소리쳤다.

“우리가 할하부족을 약탈한 범인들입니다. 죽여주십시오!”

“뭐라고?”

곽재우의 반응이었다.

곽재우가 그 젊은이의 말을 바로 알아들은 것은 아니었다. 처음 말을 했던 두 눈에 현기가 가득한 노인이 통역을 하고, 그 말을 또 몽고역관이 통역을 해서 알아들었던 것이다. 젊은이의 말이 근본적으로 몽고어이긴 하나 너무 변질되어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던 까닭이었다.

처음에는 생각지도 못한 상대의 방문에 깜짝 놀란 곽재우였지만 곧 표정을 수습하고 근엄하게 말했다.

“어떻게 된 연유인지 소상히 그 전말을 고하라!”

자신들을 그렇게 애먹이고 이렇게 찾아와 말을 건넬 때는 무언가 곡절이 있다싶어 곽재우는 일단 그들의 말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러자 노인의 입을 통해 쏟아져 나온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다음과 같았다.

카자크족의 우두머리 예르마크는 1580년 부유한 상인 세묜 스트로가노프의 재정적, 군사적 지원을 받아 시베리아로 진출했다. 예르마크는 1,600명을 데리고 타길 강과 투라 강을 따라 나아갔다.

이때가 서기 1582년으로 이들은 곧 시베리아 칸국의 수도 이스케르를 포위하고 도시를 약탈하는데 성공했다. 이에 러시 황제 이반 뇌제(雷帝)는 넓은 영지를 하사해 스트로가노프 가문이 거둔 성공에 보상을 내렸다.

예르마크 일당이 벌인 공격의 근본적인 목적은 칸 쿠춤이 다스리던 시베리아 칸 국을 정벌해, 러시아가 동쪽으로 확장해나갈 수 있게 하려는 것이었다. 또한 부분적으로는 방어적인 성격의 공격이기도 했는데, 타타르족인 시비르 한국이 때때로 우랄 산맥 주변의 스트로가노프 가문 영지를 공격하곤 했기 때문이었다.

시베리아 영토를 침략하면 종종 값비싼 모피를 많이 가져올 수 있었으므로 무역도 하나의 이유였다. 그러나 시비르 칸 국의 쿠춤 칸은 다시 한 번 세력을 규합했다. 1584년, 그는 예르마크를 강물에 익사시키고 폐허가 된 자신의 수도를 다시 차지했다.

그러나 라이벌 귀족 간의 파벌 다툼으로 다시 통치권을 잡을 수는 없었다. 따라서 쿠춤은 칸 국을 남쪽, 러시아 대초원 지대로 옮겼다. 쿠춤이 영역을 옮기자 러시아 총독들과 분쟁이 발생했다.

1586년 그는 예전의 영토로 돌아가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1598년, 끝내 그는 우르민 전투에서 패배하며 시비리아 칸 국은 지구상의 역사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러시아가 그 자리 즉 이스케르에 새로운 도시 토볼스크를 세웠으므로 돌아갔다고 해도 그 도시는 다시 볼 수는 없었을 테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런 역사적인 배경 속에서 쿠춤의 아들 카춤은 여러 부족을 떠돌며 세력을 만회하려 무진장 애를 썼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러시아 측에서 부족민들에게 러시아 정교를 믿으면, 러시아 백성으로 받아들여 그들을 보호해 주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갈수록 그들의 세력은 오히려 위축되어 갔다.

이때 한 지자(智者)가 카춤에게 꾀를 내었다. 자신의 원래 부족을 청해 이들을 정벌해 땅을 되찾자는 계책이었다. 이에 그럴듯하다고 생각한 카춤은 몽고 영역으로 스며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실망을 금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생각했던 몽고족은 간데없고 조선의 지배를 받는 몽고족만이 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 이 지자가 또 하나의 계책을 진언하니, 그냥 대국 조선에게 군사를 빌려 달라 하면 빌려주지 않을 것이니, 몽고족에게 피해를 입혀 유인하자는 계책이었다.

그렇게 해서 러시아와 조선이 싸우면 그때 가서 조선의 편에 서서, 힘껏 싸워 일부의 영지를 할양받자는 계책이었다. 이런 꾀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의 세력이 원래는 징기스칸 후손의 한 갈래가 세운 킵자크 한국(汗國)에서 떨어져 나온 지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니까 이들의 민족적 구성도 할하부족과 같은 몽고족이라는 말이었다.

아무튼 이들의 말을 다들은 곽재우는 대략 난감했다. 그간의 고생을 생각하면 당장 이 자리에서 쳐죽이고 싶지만, 이는 못난 자의 행동이었다. 이럴 때는 큰 틀에서 생각해야 했다. 그 큰 틀이라는 것은 필경 러시아와의 전쟁까지 각오해야 하는 일이었기에 자신이 결단할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곽재우는 그 일은 황제에게 일임하기로 하고 자신은 우선 궁금한 사항부터 물었다.

“약탈해간 할하부족 처자들은 어떻게 했느냐?”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우리 부족이 잘 보호하고 있습니다. 지금이라도 신호만 하면 데리고 나타날 것입니다.”

삼십대 젊은이의 말이었다. 그가 이들의 우두머리인 카춤 칸이었다.

“좋다! 하면 약탈해간 가축은?”

“중간에 대국의 군사를 유인하기 위해 일부 허실되긴 했으나 부족분은 저희들이 변상하도록 하겠습니다.”

“좋다! 만약의 경우를 상정해 묻겠다. 만약 대 조선과 러시아 간에 전쟁을 벌인다면 지금도 아군 편에 서서 싸울 의향이 있느냐?”

“네, 충성을 맹세하겠습니다. 그 대신 전투가 끝난 후 우리 부족이 살 수 있는 넉넉한 터전을 마련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알겠다. 헌데 전쟁은 본 장으로서도 함부로 판단할 일이 아니다. 하니 너희들 모두가 잠시 황제폐하의 결정이 있을 때까지 할하부족의 터전에 가서 머물 수 있겠느냐?”

“따르겠습니다. 장군! 하지만 어린아이와 노약자등은 갈 수 없으므로 일족을 보호할 수 있는 군사는 남겨주셨으면 합니다. 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제가 데리고 온 군사 오백 명만 함께 가면 안 되겠습니까?”

“좋다! 그렇게 하도록 하고, 그 대신 즉시 약탈해간 할하족 처자들을 데리고 오너라!”

“네! 장군님!”

대답을 마친 카춤 칸이 명을 내리자 곧 하늘에 향전 하나가 긴 꼬리를 그으며 그 울음을 토해냈다. 그러자 이들이 이끌고 왔던 오백 명 외에도 지평선 저 너머에서 일단의 기마부대가 또 하나 출현했다.

그리고 두 세력이 빠른 속도로 접근해 왔다. 채 반 시진이 되지 않아 모두 곽재우의 군단 앞에 도착했다. 모두 합해 일천 명쯤 되는 군사들의 말안장 위에는 한 이백쯤 되어 보이는 할하부족 처자들도 함께 태워져 있었다.

곧 이들을 인수한 곽재우는 긴급히 장계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는 일부의 병사들을 차출해 긴급 파발마를 띄웠다. 모든 것이 정리가 되자 곽재우는 약속대로 카춤 칸 일행 오백 명과 함께 귀국길을 서둘렀다. 물론 할하부족의 처자들은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 * *

한편 곽재우의 장계를 접한 황제 이진은 혼자 깊은 생각 속으로 빠져들고 있었다.

‘장계에 씌어져 있는 대로 러시아의 동진(東進)이 아마 이때부터 시작되었지? 그러니까 이를 뒤집어 생각하면 우랄 산맥 이동의 북방은 지금 아무 큰 세력이 없고 원주민만 살고 있으렸다. 자원의 보고인 이 땅을 점령할 적기야. 그래, 아무렴 지금이 적기지. 하하하........’

대소를 터트리며 결심을 굳힌 황제 이진은 곧 정보부장 송익필을 불러들이도록 했다. 채 일각이 지나지 않아 송익필이 이진이 머물고 있는 침전으로 들어왔다.

“불러계시옵니까? 황상!”

“그래, 몇 가지 물어볼 말이 있어 불렀소?”

“말씀하시죠. 황상!”

꾀주머니로 통하는 송익필이 황제 이진의 말에 눈을 빛내며 응대했다.

“러시아 정세에 대해 아는 것이 있소?”

“정확한 정정은 몰라도 대충은 파악되었습니다. 들어오는 보고로는 아주 혼란스럽다고 합니다. 황상!”

“더 자세한 사항은 모르고?”

“송구하옵니다. 황상!”

“흐흠........! 세계적인 정보망을 구축하라고 했는데, 아직 미진하군.”

“황상의 하명이 있은 후 근간에 좀 더 많은 세작들을 세계 각국에 파견했사오나, 아직은 구축 단계라.........”

“알겠소. 헌데 말이오.”

“말씀 하시죠. 황상!”

“러시아와 본격적인 전쟁을 해야 될지도 모르겠소. 하면 보다 자세한 정보가 필요한데, 파견할 요원은 있는 것이오?”

“그것이........!”

잠시 우물쭈물하던 송익필이 곧 결심을 한 듯 정확한 사실을 보고하기 시작했다.

“말과 풍습이 원체 다른지라 그런 요원들이 현재로서는 없사옵니다. 황상!”

“흐흠.........!”

잠시 무엇인가 생각하던 황제 이진이 곽재우가 보고한 장계를 송익필에게 툭 던져주며 말했다.

“읽어보오.”

“네, 황상!”

곧 송익필은 곽재우가 올린 장계를 빠른 속도로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송익필이 입을 떼었다.

“이들 카춤 칸의 부족들을 세작으로 이용하자는 말씀이십니까? 황상!”

“아무래도 러시아와 오랜 세월 다투어 왔다니 그들의 언어와 생활양식에도 익숙하지 않겠소?”

“그들의 군대 기천명이 우리의 백만 대군에게 무슨 큰 도움이 되겠습니까? 향도로나 좀 쓰일까, 그런 인원 외에는 첩자로 활용하는 것이 낫다는 황상의 판단이시죠?”

“하하하........! 그러니 남들이 일러, 짐의 복심(腹心)이라 하는 게지.”

소리 내어 따라 웃지는 않았지만 빙긋 웃는 것으로 수긍을 하는 송익필이었다.

“좋소! 나가거든 곧장 각료회의를 소집해놓도록 하오.”

“네, 황상!”

칙령이 떨어지자마자 자리를 떨치고 일어난 송익필이 빠른 걸음으로 침전을 빠져나갔다.

그로부터 반 시진 후.

사정전에서 긴급 각료회의가 개최되고 있었다.

“해서 짐은 금번에 아예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친정(親征)을 하려 하오.”

“황상, 만금의 지체께서 어찌 그런 하찮은 전쟁에 친히 임하신다 하오십니까? 전쟁은 예하 장령들에게 맡기시고 국정이나 친람(親覽)하시는 것이 지당한 줄 아뢰옵나이다.”

내각 수보 유성룡의 말에 황제 이진은 여전히 웃음을 잃지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

“짐이 누누이 말했듯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동토라 해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오. 현 우리의 북방 영토 위의 시베리아에는 무한한 자원이 잠들어 있소. 하니 국력이 강성한 짐의 시절에 이 땅을 수중에 넣어, 대대손손 후손에게 물려준다면, 이는 우리 민족이 영원히 흥할 수 있는 쾌거요. 하니 이 절호의 기회를 놓칠 수 없을뿐더러, 짐 또한 권좌만 지키는 것이 따분한 일인지라, 나들이 삼아 출정하려는 것이니 너무 걱정들 마오.”

“그렇다고 해서 짐이 전장의 한복판에 서서 러시아와의 전쟁을 지휘하려는 것은 아니오. 짐은 저 바이칼 호수까지만 진군하여 여름날의 더위를 피하고 싶소. 하니 당장 인원을 수배하여 바이칼호수 부근의 경치 좋은 곳에 여름철 한 철 정무를 볼 수 있는 이궁을 건설하도록 하오. 하고 전쟁은 내년 봄부터 시작할 것이니 충분한 전쟁준비도 하고.”

“그 정도라면 소신 또한 찬성이옵니다.”

국방대신 강홍립에 이어 많은 대신들이 찬성 발언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하고 짐 또한 이제는 자금성으로 돌아갈 것인즉 서둘러 준비를 마치도록 하오.”

“네, 황상!”

이렇게 각료회의는 파했다.

황제 이진이 지금이 칠월 달임에도 불구하고 내년 봄에 전쟁을 하겠다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2차 대전에서 승승장구하던 히틀러가 러시아 군에게 패한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지만, 러시아의 청야전술(淸野戰術) 외에도 러시아의 혹독한 추위 또한 일조를 한바, 황제 이진은 이를 피하기 위해 내년 봄을 기약한 것이다.

전쟁을 하다보면 의외로 장기전이 되는 수가 있다. 지금이 칠월이라지만 금방 북방의 겨울이 시작되는 9월이 될 것이다. 이 외에도 전쟁을 하자면 상대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는데, 송익필이 보고한 대로 조선은 아직 러시아에 대한 정보가 미흡했다. 그래서 더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해서라도 시간은 필요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렇게 되어 황제 이진의 북경 귀환이 귀정사실화 되자 모두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런 속에서 황제 이진은 카춤 칸의 군대를 세작으로 러시아에 파견할 것을 제안하는 명과 함께 전쟁은 명년에 할 것이니 일단은 귀환하라는 명을 곽재우에게 내렸다.

그리고 그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황태후 박 씨에게로 향했다. 여전히 비워져 있던 통명전을 사용하는 황태후 박 씨였다. 황제 이진의 움직임에 수많은 내관과 궁녀들이 따라 움직이기 시작했다.

통명전 앞.

“황상폐하 납시오!”

대전내관이 가녀린 목소리로 목청을 길게 뽑자 황급히 대전 문이 열리며, 황태후를 모시는 상궁나인들이 쏟아져 나와 신속히 기단 위에 열을 지었다. 그 뒤로 머리를 매만진 황태후 박 씨가 웃으며 나왔다.

“어인 행차시오? 황상!”

“곧 자금성으로 환궁해야 하기에 이를 귀띔하려 들렸사옵니다. 어마마마!”

“그래요?”

반문하는 황태후 박 씨의 얼굴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돌아가기 싫으신 겁니까? 어마마마!”

“글쎄, 그것이.........!”

황제 이진의 내심을 짐작한 물음에 우물거리며 확실한 답변을 못하는 황태후 박 씨였다. 그러나 곧 황태후 박 씨는 결심이 선 표정으로 황제 이진에게 물었다.

“이곳에서 조용히 살다가 죽으면 안 될까요? 황상!”

“그것은 아니 될 말입니다. 황상! 소자가 조석으로 문안을 드려도 부족하시다면 낮이라도 짬을 내어 한 번 더 찾아뵙겠나이다. 어마마마!”

“그것은 아니지요. 황상 같은 효자가 이 광명 천지에 어디 또 있단 말입니까? 황상의 효성이 부족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제 나이가 나이인 만큼 젊어 시집와 살던 이 궁궐이 편하게 느껴져서 하는 말이니 황상은 오해 마오.”

“하오나 어마마마! 소자로써는 어찌 어마마마를 이역만리에 두고 마음이 편안할 것이며 조석으로 뵙지 못하는 불효는 또 어찌 하옵니까?”

“황상의 효심을 이 어미가 모르리까? 내 소원대로 해주었으면 좋겠소이다. 황상!”

“아니 되옵니다. 어마마마! 소자의 효심이 부족하다면 꾸짖어주시고 소자 곁에서 천수를 누리시옵소서!”

의외로 완강하게 나오는 아들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표정을 짓던 황태후 박 씨가 가늘게 한숨을 지으며 탄식했다.

“이를 어찌하면 좋누........?”

“소자가 더 편안히 모시도록 하겠사옵니다. 내년에는 더위도 피할 수 있도록 저 북쪽에 이궁도 짓도록 했사옵고, 또 겨울철의 추위를 피하기 위해 저 남쪽나라에도 별궁을 짓도록 하겠사옵니다. 하고 어마마마께옵서 원하신다면 보다 자주 조선으로도 모시도록 하겠사옵니다. 어마마마!”

황제 이진이 이렇게까지 나오니 황태후 박 씨로서는 따르지 않을 수 없어 고개를 끄떡이면서도 나오는 한숨은 금할 수 없어 가늘게 한숨을 뱉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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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고맙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한 날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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