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66 회: 전운(戰雲)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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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우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자신이 예상하기로는 저력토의 군사와 활불이 합세하여 덤빌 줄 알았다. 그런데 양자 간에 무엇이 틀어졌는지 오늘 저력토 군이 예상을 뒤엎고 항복을 해왔다.
이는 분명 활불이 이들의 원조 요청을 거절해서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활불이 도와준다는데 절박한 저력토 군이 마다할 리는 없었을 것이다. 이에 생각이 미치자 곽재우는 자세한 경위를 알기 위해 세자 아니 칸이 된 카이두를 청해 자신의 중군 군막으로 데려갔다.
그러자 이여송이 청하지도 않았는데 따라왔다. 곽재우는 이를 제지하지 않고 함께 자신의 중군 군막 안으로 들어갔다. 둘을 자리에 앉게 한 곽재우가 카이두를 보고 물었다.
“어찌 이렇게 쉽게 항복을 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를 들려줄 수 있겠소?”
“네, 장군!”
차마 칸의 지위로 ‘님’자는 붙이지 않았으나 태도와 어투는 공손하기 짝이 없는 카이두였다.
“선왕께서는 활불에게 지원을 요청하러 가셨으나 거절을 당하셨습니다. 이유인 즉은 조선제국에서 칙사를 보내 우리에게 협조하지 않으면 치지 않겠다고 한 모양입니다. 그런 연유로 혼자 번민하시다가 택한 길이 스스로 자결하시어 조선에 용서를 구하는 길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도저히 승산이 없다는 계산이 깔리셨겠죠.”
말을 하는 것을 보니 상당히 조리도 있고 정세 분석도 그럴 듯하여 범상한 인물은 아니라고 생각되어지는 카이두였다. 그런 카이두를 새삼스러운 눈으로 잠시 바라보던 곽재우가 말했다.
“본 장으로서는 라마에게 칙사가 다녀갔는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상관할 바도 아니오. 병법에서 속임수는 너무 비일비재하여 당연하다 할 것이오. 따라서 우리는 활불을 쳐야겠소. 그 전에 본 장으로서는 당신들이 너무 빨리 항복한 데 대해서 상당한 의구심을 가지고 있소. 이를 불식시키려면 이 전투의 선봉에 서 주오.”
곽재우의 말에 난감한 표정이던 카이두가 곧 결심이 섰는지 결의를 표했다.
“좋습니다. 장군! 우리가 선봉에 섬으로서 두 마음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습니다.”
“하하하.........! 잘 생각하셨소.”
“고맙소! 장군!”
이여송이 둘의 대화에 비로소 끼어들어 감사를 표했다.
그로서는 이제 오갈 데 없는데 조선군이 여기서 포기하고 돌아가면 어쩌나 하고 내심 한 걱정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곽재우 스스로 결말을 지어주니 여간 고마운 것이 아니었다.
“자, 이제 출진하는 것만 남았소. 하루하루 더 머무를수록 군량 운송에 큰 수고가 들어가는 것. 서둘러 활불을 제압하고 봅시다.”
“그 전에 장군님!”
사정이 다급하다 보니 저절로 님 자를 붙이게 되는 카이두였다.
“주저하지 말고 말하시오.”
“앞으로 우리의 운명은 어찌 되는 것입니까?”
“황상 폐하께서는 한 번 배신한 자들에 대해 절대 은전을 베푸는 분이 아니시지만, 예전에 조선제국에 베푼 공을 참작하여 한 번 더 기회를 줄 것으로 알고 있소.”
“감사합니다. 장군!”
비로소 마음이 놓이자 ‘님’자가 도망갔다.
이렇게 사람의 마음이 간사스러운 것이다.
아무튼 곽재우는 이들을 내보낸 즉시, 지금까지의 상황을 상세히 적고, 자신의 작전까지 피력해 긴급 자금성으로 유성마를 띄웠다.
그로부터 10일 후.
곽재우가 중군 천막에 앉아 세부 작전을 고심하고 있는데, 부장 하나가 천막 안으로 들어와 고했다.
“장군님, 황성에서 보내온 전령이 방금 도착했습니다.”
“그래?”
곽재우는 급히 밖으로 나가 전령을 맞았다.
“황상께서 내리신 칙서이십니다.”
“황상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급히 부복하여 자금성 방향으로 절을 세 번 한 곽재우가 전령이 내미는 문건을 받아들었다. 전령을 밖에 세워둔 채 안으로 들어간 곽재우는 곧 봉인을 뜯고 안에 든 칙서를 꺼내 읽어보았다.
“흠.........!”
서신을 다 읽어본 곽재우는 침음성부터 흘렸다.
한마디로 철군하라는 소리였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왜국을 치겠다는 것이다.
그 설명까지 자세히 언급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조정안에 무슨 긴급한 일이 벌어졌거나, 아니면 왜국 내에 특별한 변수가 생겨 왜국의 점령 시기를 앞당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의 병력 즉 이여송의 군과 저력토의 군까지, 모두 전시에 동원될 것이니, 황하 상류로 철군하라는 황제의 지엄한 명이었다. 곽재우는 곧 이여송과 저력토를 불러 황제 이진의 뜻을 전했다.
이에 저력토가 말없이 고개를 푹 숙이는데 반해 이여송은 반발했다.
“이제 우리를 왜까지 동원하는 것이오?”
“설 땅이 있소?”
“그야........!”
더 이상 답변해봐야 입만 아픈 것을 깨달은 이여송이 입을 다물었다.
고삐에 꿰인 신세가 된 지금 어쩔 수 없이 따라야 하는 것을 느낀 이여송은 어금니를 깨물고 분을 삭이려 하나, 도저히 되지 않는지 외마디 고함과 함께 급히 천막을 들치고 밖으로 나갔다.
한편 그 동안 자금성 안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져 이들에게 철군 명령이 내려진 것일까? 거슬러 올라가 그에 대한 이야기를 하겠다.
* * *
황제 이진은 감숙을 침범했던 두 세력을 무난히 격퇴시키자 그의 속내는 자연적으로 왜국으로 향했다. 이제 왜국마저 손에 넣어 동아시아 전체를 손 안에 쥐고자 함이었다. 이에 이진은 그 동안의 왜국 동향이 궁금해 광해를 조양궁으로 불러들였다.
중식도 끝난 오후 시간대였다. 머지않아 광해가 허겁지겁 달려와 황제 이진 앞에 부복하였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예는 그쯤 해두고 왜의 동향에 대해서 말해 보거라!”
“네, 황상!”
광해를 부를 때 이미 차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미처 차를 입에 댈 여가도 없이 광해가 입을 열었다. 이에 반해 이진은 뜨거운 커피를 천천히 음미하여 그의 입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간 통신사 파견했을 당시나 세작들이 도요토미 히데요리 측과 수시로 접촉을 해왔습니다. 그 결과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생전에 추진하다가 지진으로 붕괴되어 방치된, 교토(京都)의 호코지(方廣寺) 대불(大佛)을 재건하도록 이에야스가 종용하였으나, 그것이 당신 측의 재정을 고갈시키기 위한 음흉한 꼼수라고 설득한 바, 이를 인지한 히데요리 또한 이에야스의 뜻에 따르지 않았습니다. 또 이를 간파한 이에야스 측도 아국과의 국교교섭에 적극 응하지 않은 상태로 세월이 흐르고 있는 작금 중대변수가 발생했습니다.”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벌써 다 식은 차를 비로소 한 모금 마신 광해가 다시 입을 떼었다.
“얼마 전 이에야스는 히데요리에게 오사카 성 내의 낭인들을 추방하고, 해자를 매울 것을 종용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히데요리가 거절하자, 이에야스가 이번에는 히테요리에게 아예 최후통첩을 했습니다. 야마토(大和)나 이세(伊勢)로 물러날 것을 종용한 것입니다. 아니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죠.”
“흐흠.........! 이에야스가 몸이 달았군. 서두르고 있어.”
“그렇사옵니다. 황상! 아국의 국력이 점점 커지는 데다, 자신은 점점 늙어가 이제 수명이 머지않았음을 느끼고 초조해진 모양입니다. 황상!”
“그래서 히데요리 측은 어떻게 대항하고 있지?”
“수길을 따르는 옛 다이묘들을 불러 모아 일전불사의 각오를 다지고 있는 중입니다. 황상!”
“양군이 붙을 때 우리가 끼어들면 볼만 하겠군.”
“어부지리의 계를 한 번 펼칠 만합니다. 황상!”
이때였다. 김 상선이 이진에게 고했다.
“이순신 대제독이 들리셨습니다. 황상!”
“아니, 그가 왜?”
“올릴 말씀이 있는 모양입니다. 황상!”
“들이시게.”
“네, 황상!”
고개 조아려 물러나는 김 상선의 얼굴도 오늘 새삼 보니 쪼글쪼글 했다. 어느덧 그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다는 방증이었다.
“황상, 저는 이만 물러갈까요?”
“아닐세. 짐이 할 이야기도 있고 하니. 그대로 앉아 있어.”
“네, 황상!”
이러고 있는데 이순신이 김 상선의 안내를 받으며 전각 안으로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 대 제독!”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맞으러 나가는 이진이었다.
이에 깜짝 놀란 이순신이 급히 부복해 아뢰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그만 예를 거두세요!”
“망극하옵니다. 폐하!”
급히 앞으로 나가 그의 손을 맞잡은 이진이 말했다.
“안색이 많이 초췌해진 것 같습니다. 대 제독!”
“아니래도 그 일 때문에 황상을 찾아뵈었습니다. 황상!”
“어디 편찮으신 대라도........?”
“소신의 나이 벌써 예순 다섯이옵니다. 황상!”
“허허........! 벌써 그렇게 되셨군요.”
“하니 소신 이만 장군직에 물러나 한가로이 여생을 보낼까 합니다. 황상!”
“안 됩니다. 대 제독!”
이진의 고함치 듯 하는 강경한 발언에 깜짝 놀란 이순신이 용안을 흘깃 보고는 얼른 시선을 내렸다. 그리고 잠시 고개를 숙이고 숙고하던 이순신이 말했다.
“마음만은 언제나 황상의 뜻을 받들어 바다를 지키고 싶사오나, 이제는 육체가 쇠하여 예전 같지가 않사옵니다. 황상!”
“아직 기로소에 들 연세는 아니니 좀 더 바다를 지켜주세요. 아니 동서남북 사해를 제패하는 그날까지 좀 더 직위에 머물러 주세요. 대 제독!”
“허허.........! 그것 참........!"
연신 하얀 수염을 쓰다듬으며 난처해하는 이순신이었다. 그러던 그가 황제 이진에게 말했다.
“황상 앞에서 드리기 민망한 말이나 이제 기력이 달려 조석이 다른 느낌을 같사옵니다. 황상!”
“흐흠........! 그것 참.........!”
이순신의 거듭되는 용퇴 의사에 이진으로서도 난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잠시 숙고하던 그가 단안을 내리듯 말했다.
“그렇다면 왜국 점령 전까지 만이라도 지휘를 해주세요. 오늘 들어온 정세보고로는 조만간 왜에 출병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대 제독!”
사적으로는 사돈지간인 두 사람이었다. 이순신의 손녀가 황태자비가 되었으니, 그로서도 가문에 큰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이는 태자비의 자색과 품성도 뛰어났지만, 그 무엇보다도 이진이 정치적 결단을 내려 그를 배려한 바가 컸다 하겠다.
아무튼 황제가 그렇게 까지 말하니 난처한 듯 망설이던 이순신이 입을 열어 말했다.
“신 미거하나 황상의 뜻을 받들어 기필코, 저 간악한 왜국을 황상의 품에 바치겠나이다. 이후는 소신의 노년을 보장해 주십시오. 황상!”
“좋소이다. 짐이 약속하리다! 왜를 삼키는 그날, 대 제독을 과한 업무에서 해방시켜드리도록 하죠. 됐지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하하하.........! 짐이 고마운 일이지요. 하하하..........!”
다시 한 번 낭랑한 대소를 터트린 이진이 아직 웃음기 머금은 용안으로 그에게 말했다.
“일껏 궁성까지 들리셨으니 태자비도 한 번 만나보고 가시죠. 아니지 짐이 그들 내외를 들라 이르겠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다시 한 번 부복하는 이순신을 지그시 내려다보던 이진이 김 상선을 시켜 지시를 하고, 이제 시선을 광해에게 돌려 말했다.
“이래저래 왜의 정벌을 서둘러야겠다. 사람을 증파하던지 해서 더욱 왜의 동향에 신경을 쓰도록.”
“알겠사옵니다. 황상!”
다시 고개를 든 광해가 무엇인가 할 말이 있는 듯 이순신의 눈치를 보며 주저했다.
“대 제독이 어디 남이냐? 할 말이 있으면 서슴없이 하도록 해라.”
“네, 황상!”
“황태자를 비롯한 다른 태자들도 어언 정남이 되었으니, 왕에 봉해 넓은 영토 곳곳에 봉지를 하사해, 황상 폐하를 보좌하는 것이 어떻겠사옵니까? 황상!”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황제 이진이 말했다.
“그것도 괜찮은 생각이다. 아닐 말이다 만, 황태자가 있긴 해도 사람의 앞일이라는 것은 모르는 것이라서, 그들도 일찍이 제왕의 수업을 시키는 것이 좋겠다.
“하옵고 그들도 이제 가례를 올려 짝을 지어주는 것이..........”
“짐이 뭐라 했느냐 18세가 되기 전 까지는........”
“너무 늦사옵니다. 황상!”
모처럼 이진의 의견에 반대를 하는 광해였다.
“정녕 그렇게 생각하느냐?”
“네, 황상!”
두 사람의 대화를 한 옆에서 듣고 있던 이순신이 끼어들었다.
“두 분의 대화에 주제넘으나, 소신이 생각하기에도 동왕 전하의 의견이 맞는 것 같사옵니다. 황상!”
“분명 대 제독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요?”
“네, 황상!”
“좋소! 그들도 가례도감 청을 설치하여 비들을 맞아들이는 것으로 합시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황상!”
두 사람이 얼른 부복하여 황제의 은혜에 감사를 표하자 이진이 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짐의 아들들 장가보낸다는데 두 사람이 고마워할 것은 또 뭐요?”
이진의 말에 멋쩍은 표정을 짓는 두 사람이었다. 이를 보고 다시 즐거워하며 대소를 터트리는 황제 이진이었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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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지난번에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문피아에서 연재하고 있는 경제대통령이 좀 뜨는 바람에, 몇 군데에서 출판 및 여타제의가 잇따르니, 그 문제 해결하느라고 연재 주기가 불성실하네요. 하지만 이제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으니, 같이 끝을 봐 주시시죠.
중간에 떨어져나간 분들도 많지만 끝까지 해주시는 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 올리며 구구한 변명을 했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좋은 날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