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8 회: 정귀비와 복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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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내오라 지시한 이진은 광해도 들라했다.
광해가 들어오자 무엇이 민망한지 고개를 숙이고 시선을 마주치려 하지 않는 정 귀비였다.
“셋 다 데려 올 수 있겠느냐?”
“네, 황상!”
침소 바로 밖에 서 있었으므로 안의 상황을 대충 짐작한 광해가 서슴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바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래 것들을 시켜라!”
“네, 황상!”
곧 광해가 전각 밖으로 나가 무어라 지시를 하고 다시 들어와 자리를 잡았다.
“밖에서 들었는지 모르겠다만, 궁내에 법당을 하나 지어 줄 것이다. 정 귀비의 거처는 그곳이고, 복왕은 옛 낙양의 거처 그대로 살도록 할 것이다. 하고 유용과 공주는 아직 정한 바 없다. 그들의 태도를 보고 결정하겠다.
“알겠사옵니다. 황상!”
이때 차가 나왔으므로 잠시 대화가 중단되었다. 이진에게는 커피가 나머지 두 사람에게는 용정차가 나왔다.
“드시오.”
“감사합니다. 황상!”
살포시 고개를 들고 감사를 표하고, 찻잔을 들고는 다시 눈을 내리 까는 정 귀비였다.
눈짓으로 차를 권하자 광해도 차를 들고 이진도 잔을 들어 몇 번에 걸쳐 가볍게 커피 한 잔을 다 비웠다. 이때 같이 잔을 비운 광해가 이진을 보고 물었다.
“법당을 세우신다 하심은 정 귀비께서 출가를 하시는 것이옵니까?”
“그렇다.”
역시 감이 빠른 광해였다. 이진의 답을 듣고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단지 고개만 끄덕이는 광해였다.
“이들을 잡게 된 경위를 상세히 고하거라.”
“네, 황상!”
정 귀비도 마침 궁금했던지 살짝 눈을 빛내더니 다시 내리깔았다.
“황태자 주상순은 물론 만력제의 전 가족이 모두 죽었는데, 유독 세 사람의 시체만 보이질 않았잖습니까?”
“우리가 접수한 상황에서는 분명 그랬다.”
“해서 소신은 급히 낙왕부로 정보원들을 파견했사옵니다. 임지에 있을 것이라고 본 것이지요.”
1601년 주상순은 이미 복왕에 임명되어 낙양에 거처를 정하고 있었다. 이것을 광해는 말하고 있는 것이다.
“헌데 왕부는 텅 비어 있었고, 복왕의 행방도 오리무중이었습니다. 그래서 낙양 시내에 포고령을 하달했습니다. 숨겨주었다가 발각되는 자는 같은 죄로 엄중 처벌을 한다고. 그 이후 우리는 낙양 시내부터 샅샅이 뒤져나갔습니다. 이렇게 뒤지다 보니 마침내 우리의 손길이 이제는 민가가 아닌 절에까지 미치게 되었습니다. 백마사(白馬寺)라든가, 등 등등. 그러자 신변의 위협을 느꼈는지 영은사의 주지가 고변을 하는 바람에.........”
“무슨 말인지 알겠다. 헌데 의문은 저 여인이 어찌 자금성에 있질 않고........”
“그에 대해서는 소비가 답변을 드리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상!”
“말씀해보오.”
서운한 것이 있는 것인지 민망한 것인지, 광해로부터 등을 돌려 이진을 마주한 자세로 그녀가 말문을 열었다.
“황제의 탄신일이었어요. 그런데 아들이 오지를 못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덜렁 서신 한 장이 왔는데 몸 저 누웠다는 거예요. 황상께서는 몹시 노여워하셨지만 소비로는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밤마다 졸랐지요. 아들을 보게 해달라고. 하도 소비가 조르니 어쩔 수 없어서 허락을 하셔서 길을 나섰는데 그만, 그 길이....... 흑흑흑........”
여기서 말을 잇지 못하고 울음을 쏟아내는 정 귀비였다. 잠시 그녀가 진정하기를 기다린 이진이 그녀에게 물었다.
“복왕의 병은 거짓이었겠지요?”
“그것을 어찌 황상께서.........”
“그 때는 이여송의 군대가 한창 날뛸 때 일 테고, 우리 군도 호남에서 유정의 군사와 자웅을 겨룰 때쯤 되겠군요.”
“그렇사옵니다. 황상!”
본 듯이 말하는 이진 때문에 해연히 놀란 표정으로 답을 하는 정 귀비였다. 그 모습이 우스웠던지 이진이 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성절사(聖節使)라고 해서 조선에서 매해 사신을 보낸 것을 잊으신 것은 아니겠지요?”
“아, 그러니 우리 황상의 생일을 기억하고 계셨겠네요. 그 때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해보면 알일 일 테고요.”
“하하하.........! 그렇소!”
별로 크게 웃을 일은 아니나 기분이 좋은 것인지 연달아 대소를 터트리며 즐거워하는 황제 이진이었다. 이진의 웃음이 잦아들자 정 귀비 역시 아까보다는 확연히 밝아진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아들의 말로는 이여송의 군대가 곧 북진을 할 것이라며, 거짓으로 소비를 모셨다고 하다군요. 그놈들은 조선군보다 더 모진 놈들이라 재물은 재물대로 약탈하고 왕족은 하나도 살려주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돌아가려던 소비마저 잡고 놓아주지 않더니, 기어코 나라가 멸망하고 우리는 다급한 김에 대충 재산을 처분하여, 평소 내왕하던 영은사로 숨어들었지요. 그런데 주지가 우리를 배신하다니..........”
“세상인심이라는 게 조석지변으로 다 그런 것입니다.”
이진의 위로에 눈물이 잦아드는 정 귀비였다. 대화가 끝나는 것을 알기라도 하듯 대전내관이 삼인이 도착했음을 알려왔다.
이에 광해가 급히 일어나 그들을 전각 안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그들은 들어오자마자 급히 부복해 오체투지라 해도 좋을 만큼 과분한 인사를 황제 이진에게 올렸다.
“그만 하오. 과한 예는 비례라 했소.”
살짝 고개를 들어 웃음 띤 이진을 보고는 내심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겨우 꿇어앉는 복왕 이하 태감 유용이었다. 그런 아들을 보고 조용히 한숨을 내쉰 정 귀비가 복왕에게 말했다.
“황상의 은혜로 복왕 그대는 다시 옛날 낙양 왕부에 살게 되셨소.”
“정말이옵니까? 어마마마!”
“그렇소. 이 어미 또한 황상의 자비로 몸을 지킬 수 있었고, 흠, 흠........”
아들 앞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자니 민망한지 가볍게 헛기침을 하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이 어미는 출가하여 이 궁에 거하기로 했소.”
“네!”
거짓인지 진실인지 시무룩한 얼굴로 서운한 표정을 짓는 복왕 주상순이었다.
“표정이 그게 뭐요? 얼른 황상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지 않고?”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황상!”
“됐소! 이제 유 태감과 어린 공주의 처리만 남았는데........”
이때 얼른 품을 뒤져 척소 한 장을 꺼내며 부복해 아뢰는 유용이었다.
“황상의 유조가 있습니다. 황상!”
말이 끝나자마자 두 손으로 공손히 올려 받치는 태감 유용이었다.
“그대가 유조를 받았던가?”
“네, 황상!”
“재물을 밝히기에 못 된 사람인 줄 알았더니, 꼭 그렇지만은 않았던 모양이군.”
이진의 말에 민망한 웃음을 지은 유용이 얼른 고개를 숙였다. 그러거나 말거나 유용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고 주익균의 유서를 읽어 내려가는 이진이었다.
<짐이 재위에 오른지 어언 37개 성상. 결코 짧다할 수 없는 세월이었지만, 짐은 초기만 제외하고 혼몽(昏懜) 속에 살았다. 어느 날 문득 어리석은 꿈에서 깨어나니, 이미 짐이 죽을 때에 이르렀음을 알게 되었다. 살아생전 위로는 하늘에 죄를 짓고, 아래로는 적에게 이 땅을 침탈당하길 몇 번 이던가. 못난 군주 때문에 백성들은 질고(疾苦)에 들고 ......... >
“그래도 끝은 자신의 부덕(不德)으로 돌렸군.”
이진의 탄식 비슷한 말에 모두 유조의 내용이 궁금한지 침을 꼴깍 삼키는 복왕과 정 귀비였다. 궁금하기는 광해도 마찬가지인지 이진의 입만 바라보는 그였다.
“읽어보오.”
이진이 유조를 내어주자 얼른 이를 받아 감사를 표할 새도 없이 읽어보는 복왕이었다. 정 귀비 역시 몸을 기울여 함께 읽어나가고 있었다. 이에 이진이 유용을 바라보고 물었다.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 군주를 끝까지 지킨 충절을 기려 너의 소원을 한 가지 들어주겠다.”
이에 미리 생각해 둔 것이 있다는 듯이 서슴없이 답변하는 유용이었다.
“복왕 전하를 모시고 남은 생애를 함께 하고 싶사옵니다. 황상!”
“알았다. 그대 뜻대로 되리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황상!”
“이제 저 꼬마만 남았는데.........”
이진의 시선이 자신에게로 향해 자신의 거취를 들먹이자, 때 하나 묻지 않은 까만 동공으로 천태공주(天台公主) 주헌미(朱軒媺)가 말했다.
“저는 태감 할아버지와 같이 살고 싶사옵니다.”
“하하하.........! 누가 너보고 소원을 말하라 더냐? 짐은 절대 그렇게는 못하겠는데?”
곧 울상을 지은 네 살 난 천태공주가 말했다.
“그럼, 정 귀비마마와 함께 살게 해주세요,”
“그럼, 너도 비구니가 되겠느냐?”
“비구니?”
비구니라는 말을 모르는지 의혹어린 눈빛을 정 귀비에게 보내는 천태공주였다.
“여자 중이 되는 것이다.”
“그건 싫어요.”
“그럼, 그냥 유 할아버지랑 같이 살게 해주세요. 황상!”
“하하하........!”
까만 눈을 빛내며 또박또박 자신의 의사를 표시하는 그녀를 보자 문득 자신의 자식을 보는 것 같아 귀여움에 당장이라도 안아주고 싶은 이진이었다.
“참, 언니가 이 궁 안에 살고 있지 않느냐? 언니와 함께 사는 것은 어떠냐?”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지 울상을 짓는 주현미였다. 하긴 그녀가 태어나기도 전에 시집을 간 언니이고 보니 정이 있을 리 없었다.
어쨌거나 영창공주를 상기한 이진이 곧 상궁을 불러 영창공주를 곧장 불러오도록 했다. 이때 정 귀비의 낮은 흐느낌이 이진의 상을 찌푸리게 했다. 이를 보고 황급히 어미를 흔들어 일깨우는 복왕 주상순이었다.
어미는 흐느끼건만 그의 얼굴에는 눈물 자국 하나 구경할 수 없었다. 살아생전 아비의 사랑이 지극했거늘, 대저 사랑을 받은 자식의 행동은 이러 했다. 이를 보고 내심 혀를 끌끌 차는 이진이었다.
그를 겉으로 드러내 혼을 내기에는 자신도 선조에게 행한 일이 있어 그러지는 못했지만 그 인간됨을 다시 보게 된 이진이었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이 옳았음을 다시 한 번 확신한 이진이었다.
아들의 흔듦에 현실을 자각한 정 귀비가 울음을 그치고 소매로 눈가를 찍는데 영창공주가 웃는 얼굴로 들어와 고했다.
“부르셨사옵니까? 황상!”
“거기 앉아요.”
비로소 주상순과 정귀비가 눈에 들어오는지 흠칫하며 어깨를 가볍게 떠는 영창공주였다. 그간 그녀에게도 공주 하나가 생산되어 그 자식에게 정을 붙이고 살아가고 있는 영창공주였다.
하지만 그녀의 안색은 파리했고 영 용모도 예전 같지 않았다. 부왕은 물론 명의 멸망에 큰 충격을 받은 이후 많은 번민으로 식음을 전폐하디시피 하다가, 요즈음 겨우 정신을 수습하고 미음이라도 들어 그나마 많이 좋아진 얼굴이 그 모양이었다.
한동안 말을 잃고 멍하니 자신들을 바라보는 영창공주가 안 되었는지 정 귀비가 먼저 말을 붙였다.
“황비께서도 상심이 크셨지요? 많이 수척해지셨습니다.”
이진이 앞에 있는지라 말을 함부로 못하는 정 귀비였다.
“어마마마도 많이 야위셨습니다.”
둘의 대화에도 무엇이 껄끄러운지 외면한 채 말이 없는 복왕 주상순이었다.
“오라버니는 어떻게 지내셨어요?”
“과인이야 그럭저럭.........”
영창공주의 물음에 얼버무린 채 시선조차 주지 않는 주상순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행한 행위가 있어서 자격지심에 그러는 모양이었다.
“험, 험.........!”
이진의 헛기침에 시선이 모아지자 그가 말했다.
“이 아이를 알겠소?”
영창공주 또한 처음 보니 주현미를 알 턱이 없었다. 고개를 가로젓는 영창공주였다.
“막내 동생이오.”
“그러니, 네가.........?”
그제야 그녀를 얼싸 안고 꼭 끌어안아주는 영창공주였다. 벌써 그녀의 눈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주르르 쏟아지고 있었다.
“짐은 그 아이를 궁에서 같이 데리고 살았으면 하는데 그대의 생각은 어떻소?”
“제가 데리고 있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상! 고맙습니다. 황상!”
결정되기라도 한양 고마움을 표시하는 영창공주였다.
그러나 처음 본 언니가 낯선지 데면데면한 얼굴로 언니의 얼굴을 요조조모 뜯어보기 바쁜 천태공주였다. 그런 그녀를 보고 급히 옷소매를 눈물을 훔친 영창공주가 그녀에게 물었다.
“싫지는 않지?”
마지못해 고개를 주억거리는 천태공주 주현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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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감사드리고요!!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하루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