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52 회: 명의 멸망 -- >
1
이런 저런 생각 속에 이여송이 주저하고 있는 데, 그런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다른 이가 발언을 하는데 그의 마음에 꼭 드는 바가 있었다. 모두 판만 크게 키우려하는 다른 사람과는 다른 발언이었다.
“전하! 우리의 지금 행위는 불을 보고 무조건 달려드는 부나비의 허망한 나래 짓에 불과합니다. 언제 까지 세금 없이 나라가 지탱되겠사옵니까? 하니 일단 조선 황제에게 삼 개성을 확약 받고 그 기반위에 제대로 뿌리를 내려야 합니다. 정식으로 세금도 걷되 과중하지 않게, 그렇게 착실히 기반을 다져 우리가 온전히 힘을 가졌을 때, 저 멀리 날 수 있을 것이옵니다. 전하!”
웅명우(熊明遇)의 말에 이여송이 흡족하여 고개를 끄덕이는데, 금방 반론을 제기하는 이 첫 번째로 발언했던 모사 진신갑(陣新甲)이었다.
“지금 무슨 소릴 하오. 그래봐야 삼 개 성의 힘, 어찌 조선군과 대결이 되겠소? 그나마 지금 어느 정도 세를 얻었을 때 모든 것을 이루지 않으면 절대 우리는 코뚜레에 꿰인 소가 되어 저들의 고비 흔드는 대로 움직여야 할 것이니, 온전히 나라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것이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폐하!”
그 말을 듣고 보니 또한 일리가 있었다. 이여송으로서는 자꾸 자신의 마음이 흔들리자 더욱 쉽게 결단할 수 있었다. 이럴 때는 자신의 자리만 아니라면 직접 황제 이진을 찾아 뵙고 직접 담판이라도 하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었다.
“흐흠.........!”
침음하며 고개만 갸웃거리고 있는데 웅명우가 다시 발언을 했다.
“소신이 조선국 황제를 찾아 뵙고 직접 담판을 짓고 오겠나이다. 하니 잠시 진군을 멈추고 기다리시옵소서!”
“좋다! 그 무엇보다도 그의 진의를 파악하고 삼 개 성에 대해서는 문서로써 확실히 보장을 받아야 할 것이니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이를 받아 여러 모사들이 또 반대를 했지만 이여송은 그대로 웅명우를 금릉으로 급파했다.
* * *
웅명우가 금릉을 찾아든 것은 점차 가을 색이 짙어질 무렵이었다. 그가 금릉에 찾아들어 받은 대접은 냉대도 환대도 아닌 어정쩡한 대접이었다. 마치 대접도 너희들의 하기 나름이라는 같아서, 찜찜한 마음을 안고 웅명우는 간청에 간청을 거듭해, 황제 이진과의 독대의 기회를 얻었다.
“거듭 짐을 보고자 했다고?”
“네, 폐하!”
“무슨 연유 인고?”
대국의 황제답게 여유가 넘치는 자세로 그를 대하는 이진이었다.
“아국의 전하께옵서는 문서로 3개 성을 보장 받고 싶어 하십니다. 또한 이 성만이라도 온전히 다스릴 수 있기를 진실로 바라십니다. 폐하!”
“그것은 짐이 칙사 편에 이르던 말 아니더냐?”
“하오나.........”
여기서 말을 않고 용기를 내어 감히 이진을 직시하는 웅명우였다. 왜냐하면 ‘진실로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라는 차마 뱉지 못하고, 그의 표정으로 진실 여부를 판단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하하하.........!”
돌연 대소를 터트린 이진이 말했다.
“왜? 짐의 말을 믿을 수 없단 말이냐?”
“그것이........”
우물쭈물 제대로 답변을 못하는 웅명우였다.
“짐의 솔직한 속내를 말해줄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급히 감사의 눈빛으로 부복하는 웅명우였다.
“일간 삼 개 성을 접수하라. 그리고 착근(着根)하라. 힘을 길러라. 그리고 세상은 넓다는 게 짐의 대답이니라.”
“하옵시면 그 땅에서 힘을 길러 타 지역을 점령에, 그곳에 왕조를 개창하라는 말씀이시 온지요?”
“짐이 꼭 입에 넣어 줘봐야, 그것이 똥인지 된장인지 알겠느냐?”
“무슨 뜻인지 알겠사옵니다. 폐하!”
“더 이상 할 말 없으면 이만 나가보도록!”
“네, 폐하!”
물러나는 웅명우의 입맛은 썼다. 마치 소태를 씹은 것처럼.
자신의 앞에서 그런 말까지 서슴없이 뱉는 다는 것은 정말 솔직한 면도 있었지만, 강자의 힘의 논리로 자신들을 안중에 두지 않고 있다는 듯한 업신여김도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 어디 너희들 하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하라는 듯한 태도에, 모골이 송연해지면서도 분기가 차오르는 것도 사실이었다.
정말 조선 황제의 말대로 하면 큰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당분간은 자신들이 정권을 유지하는 데는 하등 큰 문제가 없을 듯했다. 그러나 문제는 이 땅을 떠나라는데 있었다. 어디 가서 비빌 언덕을 만드는 것이 쉽지 않은 것은 차지하고서라도, 과연 남의 나라 땅에 가서 왕조를 여는 일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인지 곱씹지 않을 수 없었다.
그의 생각에 이를 곧이곧대로 보고한다면 모사들의 반대로 북경으로의 진격을 필연일 것 같았다. 그 후는 불을 보듯 결말이 훤히 보이는 웅명우였다. 그렇다고 허위 보고를 할 수도 없고. 내심 갈등에 휩싸인 웅명우였다.
그러나 끝내 이른 결론은 사실 그대로 보고하고 앞날은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고 판단한 웅명우는 그 길로 귀국길을 서둘렀다.
그리고 웅명우의 보고는 그의 예상대로의 결론이 맺어졌다. 한동안 설전이 오갔지만, 결론적으로 틈왕 이여송의 전 군사력을 휘몰아 북경으로 내닫게 한 꼴이 되었다.
* * *
웅명우가 왔다갔다하는 바람에 조선은 시간을 벌었다. 황제 이진은 그 시간에 전 군사력을 집결시킬 수 있는 시간을 번 것이다. 이진은 모은 전 군사력을 세 갈래로 투사했다. 장강 이남의 치안은 1차 모집한 한인 병사들에게 맡기고, 누루하치의 군대는 물론 귀주에 있던 충렬, 충정왕의 군대도 동원했다.
따라서 칭기야누와 누루하치 등은 황제 이진의 명을 받고 장강 이북의 안휘성으로 달려가지 않을 수 없었다. 또 바로 이웃한 해변의 강소성에는 복건, 광동, 광서에 있던 해외의 군사들이 동원되어 북진했다.
그리고 나머지 한 갈래는 호북을 점령한 군사들이 대도에 4만을 남겨놓고, 바로 위의 성인 하남으로 북진 길에 올랐다. 그러나 장성 너머 조선군은 시위만 할 뿐 뚜렷한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았다.
여유 넘치는 조선군의 움직임에 반해 틈왕 이여송의 군대는 마치 눈썹에 불이 붙은 듯 진격을 서둘렀다. 이를 맞은 명의 북경 성은 한마디로 희비가 엇갈리고 있었다. 백성들은 환호작약한 반면에 가진 자와 권력을 쥔 자들은 좌불안석 대거 북경 성을 탈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천진 성 쪽으로였다. 조선군이 백성들에 대한 우대정책을 취하지만 틈왕의 군사와 같이 그렇게 무도하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즉 강제로 재물과 목숨마저 빼앗지는 않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관과 부호들은 조선이 지배하고 있는 가장 가까운 천진 성 쪽으로 있는 재물을 바리바리 때려 싣고 탈출 러쉬를 이룬 것이다. 이러니 북경성은 한마디로 벌집을 쑤셔놓은 듯 큰 혼란을 겪고 있었고, 그나마 뜻 있는 자들 몇몇이 남아 궁궐을 지키나, 이미 명은 사실상 그 운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황제 신종 주익균은 이 비보를 접하고 비로소 재물이 그렇게 많아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채 한 냥도 손에 온전히 쥐고 갈 수 없음을 깨달았다. 아편으로 피폐해진 낯과 흐리멍덩한 눈으로 태감 유용을 따라 상황을 살피러 만수산(萬壽山) 수황정(壽皇亭)에 오르니 벌써 적은 북경 성을 이중삼중으로 포위하고 있었다.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절감하는 순간이기도 했다. 자신을 따르던 그 많던 군사와 대신들은 전부 어디 가고, 이 위급한 순간에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는지 참으로 안타까움을 넘어 비참한 순간이었다.
비로소 잠에서 깨어난 듯 정신이 확 들며 앞으로의 일을 궁구하는 주익균이었다. 생각이 미치자마자 허겁지겁 만수산을 내려오는 주익균이었다. 그래도 명색이 황제다. 적 앞에서 못난 꼴을 보일 수 없음이었다.
서둘러 황후부터 비빈들을 모으고 자녀들을 불러 모았다. 황후 효단현황후 왕씨(孝端顯皇后 王氏)를 비롯해 제 비빈들이 다 모였는데, 생전에 그렇게 총애했던 공각황귀비 정씨(恭恪皇貴妃 鄭氏)와 그의 아들만이 안 보였다.
그렇다고 이 시점에 그녀를 찾을 시간은 없었다. 새삼 인생무상을 절감하며 주익균은 쓸쓸한 눈으로 황후부터 제 비빈들을 둘러보고 말했다.
“짐의 대에 이르러 시운이 다하여 이런 비참한 날을 맞은 것 같소. 적에게 붙잡히면 어떤 희롱과 모멸을 당할지 모르니 모두 자결하여 욕봄이라도 면하기 바라오.”
“네, 황상! 흑흑흑.........!”
황후 왕 씨가 오열을 쏟아내며 간신히 답을 하고 비단 끈을 찾았다. 제 비들 역시 울음으로 작별을 고하는데 그 울음이 얼마나 구슬픈지 가히 애간장을 도려내는 듯 했다.
외면한 채 주익균은 아들과 딸을 둘러보며 말했다.
“이 못난 아비가 일찍 제 정신을 차려야 했건만 벌써 너무 늦은 감이 있다. 탈출로도 모두 봉쇄된 듯하니 말이다. 그러니 황자들에게는 알아서 처신하도록 하라. 지금이라도 탈출할 수 있으면 하도록 하라. 그러나 짐의 딸들은 어찌 박복하게도 오늘날 짐의 딸로 태어나 이런 꼴을 맞는 고?”
냉정하려 무진 애를 썼지만 여기까지 와서는 도저히 온전히 감정을 추스르기 어려운지 주익균이 한참을 흐느껴 울었다. 이때 네 살 난 막내딸 천태공주 주헌미(天台公主 朱軒媺)가 또박또박 말했다.
“아바마마! 우리 모두 자진하여 적에게 욕 뵘을 당하는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하지만 너무 무서워 스스로 자진할 수 없사오니 아바마마의 칼로........”
그녀의 말은 더 이상 이어질 수 없었다.
형제자매, 황비들의 울음소리에 묻혀 끝내 그녀의 목소리는 이들의 오열에 파묻혔기 때문이었다.
와아........!
와아........!
그러는 이 순간에도 적은 벌써 내성 가까이 다가오는지 함성 소리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폐하! 이러실 때가 아니옵니다. 변장을 하고 어서 탈출로를 찾으십시오.”
“열성조들이 물려주신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들고서 지금 와서 어디로 피신을 한단 말이냐? 또한 피한다고 피신할 곳이 어디 있다더냐? 하니 짐은 깨끗이 자결하여 이 치욕을 씻으려 함이니, 다른 사라들이나 부탁한다.”
태감 유용의 말에 또 한 번 오열이 터지는 가운데 주익균은 비척비척 다시 궁내에서는 가장 높은 만수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이때 병부상서 장봉익(張鳳翼)이 전내로 뛰어들며 외쳤다.
“폐하! 더 이상은 지탱할 수 없음입니다. 어서 피하시옵소서!”
“지금 피할 곳이 어디 있단 말이오?”
태감 유용이 노하여 외치나 다 쓸데없는 노기에 지나지 않았다. 스스로 이를 알아차린 유용이 그를 보고 말했다.
“벌써 황후께서는 자진하셨소. 나머지 무서워 자진치 못하는 사람들을 서둘러 처리해주시오. 욕을 보는 것보다는 나으리라. 나는 곧 황상을 따라가 최후를 같이 하리다.”
“알겠소!”
병부상서 장봉익의 손짓 한 번에, 따라 들어온 군사들이 손을 쓰기 시작했다. 곧 오열과 비명 속에 지옥도가 펼쳐지고 장봉익은 최후를 맞으러 달려 나갔다. 그런 속에 빗맞아 꿈틀거리는 손가락이 있었다.
--------------------------
============================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