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49화 (149/210)

< -- 149 회: 직할 통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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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상! 우린 언제까지 조선을 위해 싸워야 합니까?”

‘언제까지 화살바지가 되어야 합니까?’

그렇게 격하게 묻고 싶은 것을 애써 억누르고 순화시켜 물었으리라는 것은 그의 떨리는 눈 꼬리에서도 알 수 있었다.

“흐흠.........!”

침음하며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침중한 음성으로 말했다.

“칸이 범용한 자였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것 이오만........ 원체 영용하다보니........”

말끝을 흐렸던 이진이 곧장 덧붙였다.

“명나라 전토를 삼키는 일도 머지않았으니, 그 후에나 생각해봅시다.”

“그 후에는 요?”

“왜가 있지요.”

“끝내 우리는 화살바지로 부족이 다 사라져야하는 것입니까?”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격하게 묻는 누루하치였다.

그에 반해 이진은 덤덤한 음성으로 뱉었다.

“꼭 그렇지만은 않을 겁니다. 다른 방법도 있지요.”

“우리의 존재가 부담스럽다는 것이군요. 그렇다면 끝내 우리는 계속 전투만하다가 소멸되는 것 아닙니까?”

참담한 표정으로 체념한 듯 뱉는 누루하치의 말을 금방 받는 이진이었다.

“고향을 떠나 타국에 나라를 세우는 방법도 있지요.”

표정이 확연히 밝아진 누루하치가 받았다.

“이곳에 와서 보니 세상에는 살기 좋은 지역도 많다는 것을 알기는 했습니다만....... 혹여 황상의 의중에 둔 곳이라도 있사옵니까?”

“없다고는 할 수 없으나, 앞으로의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그 문제는 우리 조선이 명과 왜를 점령한 후에 심도 있게 논의하는 것으로 합시다.”

“우리를 아예 몰살시키려는 정책만 아니라면 언제든 환영합니다. 황상!”

자신의 세력이 약하여 어쩔 수 없음을 안 누루하치가 이제는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평정심을 회복했는지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그나마 어느 지역이 되었든 종족을 이어갈 수 있는 것을 한 가닥 위안으로 삼는 듯했다.

“황상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헌데 언제 쯤 명국이 무너질 것이라고 보시는지요?”

“이여송이 선전하고 있질 않습니까?”

“제가 알기로는 이제 사천, 섬서를 지나 하남(河南)까지 손을 뻗친 것으로 압니다. 이제 북경이 턱밑이니 북경으로의 입성도 그렇게 어렵지만은 않아 보입니다만.........?”

“꼭 그렇지만도 않을 것입니다. 저들도 이제는 더 물러날 곳이 없으니 총력전으로 응전할 거예요.”

“지금도 총력 대응하고 있지만 밀리고 있는 것 아닙니까?”

“요는 민심 이예요. 아직까지는 그의 ‘균전면향(均田免餉)’ 이라는 선동 정책이 잘 먹히고 있으나,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언제 그 한계를 드러낼지 모르지요. 그들이 한계를 드러내는 순간이 우리가 개입할 시점이기는 합니다만.”

“아무튼 잘 알겠습니다. 모든 것이 황상의 뜻대로 곧 이루어질 것이옵니다.”

“고맙소.”

“외손자, 손녀라도 있으면 안아 보고 싶은데 없다니, 딸이나 한 번 만나보고 물러가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상!”

“좋도록 하세요.”

이를 허한 이진이 곧 자리를 물리고, 그를 딸 고륜동과공주가 기거하는 곳으로 안내하도록 했다.

누루하치가 한 궁녀의 안내를 받아 한 처소에 이르니, 고륜동과공주는 어느새 주안상 하나를 보아놓고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심각한 대화를 나누자 술자리에 물러나와 그때부터 준비한 모양이었다.

“아바마마.........!”

달려들어 품에 안기는 딸을 누루하치는 꼭 안아주며, 그녀의 등을 한동안 다정스럽게 쓰다듬어 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네가 산 설고 물 선 객지에서 고생이 많다.”

“아닙니다. 아바마마! 황상께서 잘 해주시니 오히려 행복합니다.”

“그렇다면 다행이다.”

이 말을 끝으로 딸을 품에서 떼어낸 누루하치가 그녀의 얼굴을 새삼 한 번 살피고는 말했다.

“술이 좀 부족한 듯 했는데, 네 성의를 보아서라도 한 잔 하고 가야겠구나!”

“네, 아바마마!”

즉시 무릎 꿇고 앉은 고륜동과공주가 한 잔 가득 술을 쳐 올렸다.

“드시옵소서. 아바마마!”

“오냐! 너도 한 잔 하련?”

“아, 아니옵니다. 아바마마!”

“괜찮다. 벌써 너도 아이가 둘 아니냐?”

“그럼, 조금만 주시옵소서.”

“그래.”

손수 술병을 들어 딸의 잔에 말과 달리 한 잔 가득 따르는 누루하치였다.

“자, 같이 한 잔 쭉 들자.”

“네, 아바마마!”

누루하치의 권유에 고개를 돌려 찔끔찔끔 몇 모금을 마시더니, 바로 술잔을 내려놓고는 안주를 집어 드는 고륜동과공주였다.

“그렇게 안 해도 된다. 너의 지체도 있거늘.........”

“그래봐야, 아바마마 앞에서는 한갓 딸이옵니다.”

“꼭 그렇게만 생각할 게 아니니라. 네가 황상 곁에 있음으로 해서 양국의 가교(架橋) 역할을 함은 물론, 이 애비에게도 적잖은 도움이 되고 있음이야.”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아이들은 잘 크고 있는 것이겠지?”

“너무나 보고 싶사옵니다. 아바마마!”

“내 생각이다 만 머지않아 명의 북경을 점령하는 날, 모든 식구들이 한 곳에서 만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단다.”

“그런 날이 하루라도 빨리 왔으면 좋겠사옵니다. 아바마마!”

“그 날이 머지않았으니 너무 마음 쓸 것 없다.”

“네, 아바마마!”

다시 누루하치의 잔에 술을 치고 잠시 고개 숙여 무엇인가 생각하던 고륜동과공주가 누루하치에게 물었다.

“아버님과 우리 종족은 언제까지나 조선의 앞잡이가 되어 희생을 강요당해만 합니까?”

“갈! 꿈에서라도 그런 소리 입 밖에 내지마라. 그건 사내들의 세계야. 네가 입에 담을 소리가 아니야. 하고 너는 황상에게 시집간 순간 우리 종족도 아니야. 조선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지.”

“소녀 또한 그렇게 말하고 생각하려 해도, 마음 한 구석에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것을 금할 수는 없사옵니다. 아바마마!”

“물론 네 피에 우리의 종족의 피가 흘러 그렇다 만은, 아무리 그래도 그 말은 네가 입 밖에 낼 성질의 말이 아니야.”

“알겠사옵니다. 아바마마!”

“아니래도 그 문제 때문에 오늘 황상을 뵌 것이다. 그래도 우리 종족을 아예 지우실 생각은 아니신 것 같아,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있단다.

“황상께서 오늘 그런 언질을 주셨사옵니까?”

“그렇다.”

“정말 다행이 아닐 수 없네요. 아바마마!”

“나도 그 말씀에 큰 위안을 얻었다. 말과 행동이 일치하시는 분이니 크게 마음이 놓였느니라.”

“그 말은 아버님 말씀이 옳사옵니다. 한 번 입 밖에 내신 말은 거의 틀림없이 실천하시는 분이기도 하옵니다.‘

“인걸은 인걸이니라. 과인이 좀 더 지금의 황상에 대해 자세히 알고 대처했더라면 지금보다는 훨씬 좋은 결과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할 때도 있다 만은, 어찌 생가하면 이만한 것도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제 생각에는 일찍 아셨더라도 큰 변화는 없었을 것이옵니다. 그 만큼 천기를 잘 헤아리시고 미리 미리 앞날을 대비하시니, 옆에서 지켜보는 저희들이 다 두려울 정도입니다. 아바마마!”

“하긴 네 말이 맞는 것 같다. 자, 이제 밤도 깊어가니 너나 나나 한 잔씩 하고 다음을 또 기약하기로 하자. 네가 여기 머무는 순간만은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더냐?”

“그렇사옵니다. 아바마마! 하지만 소녀 서운하니 딱 다섯 잔만 잡숫고 가시옵소서.”

“알았다.”

이렇게 부녀가 권 커니 자 커니 하며, 모처럼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 * *

다음 날.

이진은 누루하치의 안내로 곤명의 관광에 나섰다. 실로 오래간만에 정사를 잊고 한가한 시간을 갖는 이진이었다.

이 관광에는 문무 대신들은 물론 금군 1만이 동원되어 철저한 경호를 하는 속에 누루하치가 단신으로 안내를 자처하고 나섰다. 아무튼 대 일행이 처음 향한 곳은 원통사(圓通寺)였다.

원통산((圓通山) 남쪽 기슭에 지어져 있는 사찰로 1264년에 지어지기 시작해 1368년에야 완공된 사찰로, 작은 호수도 있어 이곳의 팔각정이 아름다웠고, 원통보전(圓通寶殿)과 곡랑(曲廊) 등이 들어서 있었는데, 특히 원통보전의 기둥에 새겨진 황룡과 청룡의 문양이 정교하여 볼만했다.

이어 사찰 뒤로 해서 원통산을 오르니, 곤명 시내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크지 않은 도심이 올망졸망 정겨웠다. 이곳을 내려오다 보니 누가 조성했는지 몰라도 물소와 판다 곰을 사육하는 곳도 있어, 잠시 이 동물들을 구경하기도 한 이진이었다.

이어 이진은 취호(翠湖)를 구경했다. 원통사에서 남서쪽으로 내려가니 조성되어 있는 이 호수에는 한창 푸르름을 자랑하는 연꽃들이 수없이 자생해 그 아름다움에 잠시 이진은 취하기도 했다.

호수 안에는 여러 개의 섬이 있어 이를 목교로 연결해 놓았는데, 이것마저 구경할 것을 누루하치는 권했으나 이진은 사양하고 곧 귀로에 올랐다. 모처럼만에 많이 움직이니 쉽게 배가 고파 무엇이라도 먹고 싶었던 까닭이었다.

그렇다고 황제 체면에 배고파서 이제 구경 그만 할란다 하기도 뭣해 그냥 싫다하고 오자마자 수라상을 보아오게 해 맛있게 점심을 든 이진이었다. 이렇게 이진이 모처럼 피서다운 피서를 하고 있는 순간에도 북방의 정국은 여전히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장강 이남을 조선에 내어주고 절치부심하던 신종 주익균은 자신의 내탕금마저 내놓고, 일차로 이여송이 점거한 사천과 섬서의 탈환에 온 국력을 집결해 맞서 싸웠다. 그러나 그들의 균전면향 정책이 효과를 보아 이웃한 하남성마저 저들의 수중에 들어가자 낙담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주익균은 한동안 끊었던 아편에 취해 살았다. 그리고 전쟁에 대한 전권을 병부상서 장학명에게 맡기고 그나마 내주던 내탕금마저 요즈음은 청하면 마지못해 찔끔찔끔 내주고 있는 판이었다.

어찌 됐든 황제 주익균이 아편에 파묻혀 살아도 그 밑의 국방장관 격인 병부상서 장학명이나 전군을 총지휘하는 유정으로서는 최선을 다 할 수밖에 없었다. 총사령관 유정(劉綎)은 힘이 장사라서 관우의 청룡언월도보다도 더 무거운 대도를 휘두르며 최 일선에서 분투하나 전세는 여간해서 호전되지 않고 있었다.

이렇게 양국이 교착상태에 빠져 치열한 여름을 보내고 있는 이 순간에도 이진만은 곤명에 행궁(行宮)을 차려놓고는, 이제 점차 안정을 찾아가는 장감 이남을 여유 있게 다스리고 있었다.

이렇게 시간이 흘러 더위도 수그러들자 금릉으로의 귀성을 결심한 이진이 돌연한 명령을 하달했다. 그간 모집해 열심히 조련한 한인 병사들에 점고를 금릉 성에서 실시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이진이 금릉을 향하는 것과 때를 같이하여 분산되어 훈련에 임하던 한인 병사 20만이 금릉 성을 향해 모여들기 시작했다.

* * *

금릉 성 중화문(中華門) 밖 대 광장에는 그간 훈련을 받아온 한인 병사 20만이 총집결해 있었다. 20만 한인 병사 모두가 긴장된 눈빛으로 중화문의 문루를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고루(鼓樓)와 종루(鐘樓)에서 연속해서 우렁찬 북소리와 종소리가 타종되기 시작했다.

이 고루(鼓樓)는 금릉성에 존재하는 13개 성문과 같은 똑 같은 거리에 있어, 시내 어느 곳에서나 그 북소리를 똑똑히 들을 수 있었다. 또 고루 광장 동북쪽으로 대종정(大鐘亭)이 있는데, 주원장 치세에 주조된 동종(銅鐘)으로, 그 무게만도 23톤이나 되어 사방 1마장 이상 의 거리에서도 똑똑히 잘 들을 수 있을 정도로 그 음이 컸다.

아무튼 제 한인 병사들이 폭이 118.5m, 그 깊이가 무려 128m인 사중의 성문으로 된 중화문의 문루 위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북소리 종소리에 이어 등장하는 일단의 인물들이 있었다. 제 조선 한인 문무 대신을 거느린 대 조선제국의 황제 이진이었다.

그 옆에 특별히 눈에 띄는 자가 있으니, 붉은 전포를 차려 입은 곽재우였다. 그는 신립이 조선으로 물러나자 기존 자신이 거느리던 4만 군사에, 신립이 남겨준 6개 여단 6만 명, 총 10만을 거느리는 조선군의 총수가 되어, 이들 한 인 병사 중 10만을 길러낸 사람이기도 했다.

아무튼 황제 이진은 한동안 도열한 한인 병사를 바라보다가 옆에 선 곽재우에게 말했다.

“제법 훈련이 잘 된 것 같군. 눈빛이 살아 있어.”

“훈련만은 지독하게 시켰습니다. 그래야 유사시에 써먹을 수 있음은 물론, 한 사람이라도 희생을 줄일 수 있으니까요.”

“잘 했어!”

칭찬을 한 이진이 곧 말했다.

“그럼, 밑으로 내려가 사열을 받아 볼까?”

“네, 황상!”

곧 이진이 문루 위에서 내려가는 것과 같이 하여 밑에는 두 필의 말이 대령되어 있었다. 곧 말 위에 오른 두 사람은 밑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림군 백인과 함께 정기룡의 호위를 받으며 한인 병사들을 사열하기 시작했다.

“충성!”

제일 첫 열에 질서정연하게 서있는 병사를 대신해 군례를 올리는 이 있으니, 바로 한인 병사 1만을 지휘하게 된 웅정필이었다.

“애썼어!”

“아닙니다. 다만 열심히 했을 뿐입니다.”

“좋아!”

“충성!”

다음 열은 백면서생에서 벼락출세를 한 여단장 원숭환이었다.

“하하하.........! 보기 좋고만!”

“네, 황상!”

이렇게 차례로 사열을 하다 보니 그간 이진이 한인 부대 여단장으로 임명한 여섯 사람을 모두 만나 볼 수 있었다. 곧 웅정필, 원숭환에 이어 손승정, 만계(滿桂), 조대수(祖大壽), 하정괴 등이 그들이었다.

흡족한 미소를 지은 이진이 이어 기존의 조선 여단장들을 사열하고 만족한 표정으로 뒤 따르던 곽재우에게 말했다.

“이봐, 남방 총사령관!”

“네, 폐하!”

“그간 애 많이 썼으니 오늘 밤은 군 간부 모두를 데리고 현무호(玄武湖) 누각(樓閣)으로 오시게.”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아무튼 애 많이 썼어!”

“송구하옵니다. 폐하!

다시 한 번 위로를 보낸 이진이 곧 사열을 끝내고 중화문 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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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모처럼만에 비가 오네요!^^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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