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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148화 (148/210)

< -- 148 회: 직할 통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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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숭환과 같이 또 한 사람 영문 모르고 고초를 겪는 인물이 있으니 웅정필(熊廷弼)이었다. 그에 대해 알아보게 하니 호북(湖北) 강하(江夏:지금의 무창)의 향리에 내려와 있다는 광해의 정보 보고였다.

이에 이진은 강하가 바로 장강 위로 지금은 조선의 영토가 아니었지만, 금군 중에서도 무예가 빼어난 자 열 명을 선정하여 밤중에 납치해오도록 했다. 이에 영문 모르고 자다가 잡혀온 웅정필이 이진을 멀뚱멀뚱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 그를 놀리듯 빙글거리는 웃음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그에게 물었다.

“네 죄가 무엇인지 아느냐?”

“모르겠소.”

무뚝뚝하게 대답하는 40세의 웅정필이었다.

“성격이 너무 강직하고 병법에 밝으며, 궁술에 능한 것이 네 죄이니라.”

이진의 말에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 번 피식 웃은 그가 물었다.

“그게 어찌 장점이면 장점이지 죄가 되는 것이옵니까?”

“그런 재주 있는 자가 주익균의 치세에 머물러 있으니, 죄가 아니냐?”

“소인의 재주 인정받지 못해 초야에 묻혀 있거늘........”

“장차 불러 쓰일 수도 있느니라. 해서 짐으로서는 미리 화를 제거하려는 것이지.”

“소인을 참하시렵니까?”

“그럼, 너 또한 오랑캐가 정권을 잡았는데, 협조하겠느냐?”

“못하죠.”

“그러니 두 말할 필요 없지 않느냐?”

“제 말은 제 가족은 버려두고 저만 납치를 해왔으니, 집에 계신 노모를 봉양할 수 없는 불효자식이 무슨 흥이 나서 황상의 치세에 협력하겠사옵니까?”

“하하하.........! 그런 이유라면 당장 내일 밤이라도 그대 가족 모두를 이곳으로 불러들이겠노라. 뿐만 아니라 그대에게 집과 전답도 내릴 테니, 살림살이에 대해서는 아무 걱정 말아라.”

“그렇게만 해주신다면 기꺼이 황상을 위해 소신의 재주를 다하겠나이다.”

“좋다! 게 아무도 없느냐?”

“네, 황상!”

이진의 부름에 김 상선이 쪼르르 달려와 허리를 굽혔다.

“가서 웅정필의 가족 모두를 데려오도록 정기룡에게 지시하도록 하라.”

“네이, 황상!”

이렇게 해서 이진은 청의 군대를 잘 막아내던 명장 또 하나를 수하에 두었다.

이런 식으로 황제 이진은 문신으로는 청렴하기로 유명한 양련(楊漣), 좌광두(左光斗), 고헌성(顧憲成), 조용현(趙用賢), 오중행(吳中行) 등을 내각대학사(內閣大學士)라는 직책 하에 내각에 묶어두었고, 무신으로는 손승정, 만계(滿桂), 조대수(祖大壽), 하정괴(何廷魁) 등을 얻었다.

또 원응태(袁應泰)라는 인물도 있었으니, 그는 인자하고 근면하였으나 전략에 대해서는 치밀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그렇지만 수리공정에는 능한 인재로 치수와 난민구제에 기용하면 적임인 사람도 내각대학사로 임명했다.

이렇게 되자 자발적으로 조선 조정에 참여하는 사람도 있었으니, 소주에 머물던 신시행(申時行), 허국(許國), 왕석작(王錫爵) 등이 그들이었다. 이들 또한 내각대학사에 임명하여 자문에 응하게 했다.

이진은 또 이들 중 연치가 높고 태평재상(太平宰相)이라는 별명과 함께 매사 느긋한 신시행을 내각 수보(首輔)로 임명해 일행을 대표하게 했다. 그렇지만 이들에게 실권은 없고 아직은 자문기구에 지나지 않는 게 내각대학사 제도였다.

이들의 참여로 지식인 사회의 반발을 더욱 누그러뜨린 이진은 제반 조세와 부역을 경감하는 한편 산업발전에도 온 힘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곡물의 자급생산을 위주로 한 농업을 상업 작물의 생산으로 전환시키려 노력했다.

특히 이 당시 목화(木花)는 전국적으로 보급되었으므로, 면직공업은 송강부(松江府)를 중심으로 발달시켜 전국적 시장을 형성하도록 하였고, 도시에는 고급품도 출하하도록 했다. 여기서 말하는 송강 부는 지금의 상해 황포 구 상류에 위치해 있었다. 명, 청대에는 15대 도시로서 이름을 올렸던 곳이기도 하다.

또 뽕나무 재배도 강소성(江蘇城) 태호(太湖) 주변과 사천(四川) 등지에서 성행하였던 바, 면직물공업도 소주(蘇州), 항주(杭州) 등을 중심으로 더욱 발전시켰다. 또 강서(江西) 경덕진을 중심으로 한 도자기, 복건(福建), 절강(浙江)의 칠기(漆器), 광동(廣東)의 철기, 호광(湖廣)의 쌀, 광동, 복건, 강서의 설탕, 복건의 쪽(藍) 등 지방의 특산물 또한 더욱 상품으로 확대 생산되도록 하는 조치를 취했다.

또 이들 상품의 중개자로는 조선 상인과 함께 기존 유명한 산서(山西)와 신안(新安) 상인들을 적극 활용하였다. 그러나 장강 이북은 물자 통제를 더욱 엄격히 실시하여, 강남에서 생산되어 경항대운하를 타고 오르던 물산 일체의 거래를 중지시켰다.

이는 강남에서 생산되던 수많은 물자의 유통을 금지시킴으로써 내부 붕괴를 유도하려는 수단으로 삼은 것이다. 이에 따라 상기 명기한 품목들이 크게 올라 당장 백성들이 아우성을 치는 것으로 그 효과가 입증되기 시작했다.

또 이 시대의 사회 불안요인을 잠재우기 위해 이진은 다각도로 노력을 기울였다. 이 시대는 벌써 이진의 개항요구로 인해 많은 항구가 개항된 데다, 남동연안인 절강의 영파(寧波), 복건의 천주(泉州) 광동의 광주(廣州) 등을 중심으로 밀무역, 공무역이 즉 조선과 왜 유구(琉球)와 교역이 성행하였으므로 벌써 여러 폐단이 나타나고 있었다.

여기에 포르투갈인(人)마저 내항하여 마카오에 무역근거지를 잡았고, 이보다 조금 늦게 조선도 마닐라를 점령하여 무역을 확대하게 되니, 명의 생사(生絲), 견직물, 면포, 자기, 철기 등이 많이 수출되고, 대신 대량의 은이 수입되었다.

이러한 상공업의 발달에 따라 도시도 새로이 일어나고 경제도시라 할 수 있는 것도 주로 강남을 중심으로 속출하였는데, 대도시 가운데에는 상공업 노동자만 수만에 이르는 곳도 벌써 생겨나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농촌에서의 부역(賦役)이 은납제(銀納制:一條鞭法)로 바뀜에 따라 부역황책(賦役黃冊)이 무용지물이 되고, 이갑제도 붕괴되어 농촌노동력이 도시로 유출되었기 때문이었다.

이갑제에 대신해서 10호를 단위로 연대책임을 지는, 부락의 자경조직(自警組織)인 십가패법(十家牌法)이 채택되었고, 이것은 다시 부락의 상호부조, 수양 등을 목적으로 하는 향약(鄕約)과 함께 보갑법(保甲法)으로 발전하였으나, 큰 효험이 없었다.

전국의 토지는 도시에 사는 상인, 관료 등 부재지주에 많이 점유되었고, 전호(佃戶:소작인)들은 생존권을 위한 항조운동(抗租運動)을 전개하고, 고공(雇工), 용공(傭工) 등 고용노무자와 결합해서 노변(奴變)을 일으키는 일도 점차 많아지고 있는 시점이었다.

또한 도시의 수공업 노동자들도 민변(民變)이라 불린 반세운동(反稅運動)을 일으키기 시작했는데, 노변, 민변은 15세기 후반 등무칠(鄧茂七) 등이 일으킨 농민반란과 함께 하층민이 농공일체가 되어, 사회적 자각을 표출한 것으로 시대의 전환을 암시하는 현상이기도 하였다.

이런 격변기를 맞아 이진은 이들 사회적 불안요인이 된 자들의 구제책으로 한인 군대를 모집하도록 하였다. 최소한의 생계를 보장함으로써 사회의 안정을 꾀하려는 취지에서였다.

이에 지원자가 구름같이 모이니 10만 명을 예상했던 것을, 대거 20만 명을 뽑아야 했다. 이들 또한 조선군과 같이 매달 녹봉으로 쌀 두 말이 지급될 예정이었지만, 이만큼 빈민이 많았다는 방증이었다.

이의 비용으로 이진은 명의 구폐를 조선의 화폐로 교환해주면서 화폐 주조로 인한 억만금의 차익을 얻은 것을 이에 쏟아 붓기로 했다. 또 상인과 수공업자들에게도 1할의 부가세를 징수해 세금에 충당토록 했다.

또 소작인 문제도 손을 대 도시인이 갖고 있는 전국 농토는 자신 신고케 해 나라에서 일단 사들였다가 다시 소작을 주되, 생산량의 3할만 납부토록 하니, 너도나도 경작지를 달라고 아우성이었다.

사들이는 비용으로는 우선 통화주조로 해결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이들에게서 거둬들이는 조세수입의 일정부분을 감가 상각케 했다. 그래도 큰 물가오름세가 없었다. 아직 조선 조정을 믿지 못한 자들이 구 명의 화폐를 가지고 교환하지 않아, 실물경제보다 돈의 부족을 초래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는 다시 한 번 철저한 부역황책이 작성되어 가가호호의 인구 구성은 물론, 이들의 재산상태, 교육 유무, 가축의 보유 수 등, 온갖 자질구레한 기초 통계가 먼저 작성되었기에 가능한 일임은 두 말할 필요가 없었다.

여기에는 아직 철수하지 않은 조선의 전 군이 동원되어 그 기간을 훨씬 단축할 수 있었다. 이렇게 세월이 흘러 명의 남부가 급격히 바뀌고 있는 가운데, 이진은 한증막 같은 금릉의 가마솥더위를 피해 잠시 운남의 곤명으로 행궁(行宮)을 옮기기로 했다.

곤명이야말로 한 여름인 지금도 평균 기온이 섭씨 18도 정도밖에 안 될 정도로 서늘했기 때문에 취한 이궁(移宮)이었다. 이 이궁에는 대소 관료들 또한 모두 움직이니 그 행렬이 거창할 수밖에 없었다.

금군 1만이 동원된 것은 물론 아직 철수하지 않은 신립 예하의 기존 3개 여단이 동원되었다. 따라서 이들 예하에서 교육을 받던 한인 병사 3만 명도 같이 움직이게 되었고, 금릉에는 3개 여단 신병 포함 6만이 남아 지키게 되었다. 나머지 또한 각 성의 조선군 밑에서 1:1로 교육을 받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튼 이 거창한 행렬에는 조선에서부터 따라온 네 귀비는 물론 명의 영창공주와 누루하치의 딸 고륜동과공주도 포함되어 있었다. 이 비빈들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고륜동과공주였다.

아직 누루하치가 운남 성에 체류하고 있는 바, 시집온 이래 두 번째 만남을 기대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 장대한 행렬이 운남성에 발을 딛자마자 누루하치가 마중을 나와 기다리고 있었다.

군사는 단 1천명만 이끌고 와 있었다. 그런 누루하치의 행태(?)를 보자 이진은 내심 부끄러움이 일었다. 자신이 이렇게 많은 군대를 이끌고 온 이유가 무엇인가? 누루하치에게 자신의 위세를 과시하려는 면도 있었지만, 내심은 그의 반란을 우려했기 때문이 아닌가.

그러나 이를 표정으로 드러낼 만큼 유치하지는 않은 이진이었다.

“어서 오시옵소서! 황상 폐하!”

“이곳이 피서를 하기에는 그만이라고 누차 조르니 짐이 예까지 오지 않았소?”

“사실이 그러하옵니다. 황상! 이러다가는 병사들 모두가 고국을 잊을까 걱정이 태산이옵니다. 황상!”

“허허.........! 그러면 안 되지요. 그러나저러나 불편한 점은 없소?”

“황상께서 주신 은자로 군량미까지 해결하는 저희들에게 불편이라 함은 사치지요.”

“그렇다니 다행이오. 그보다 이렇게 출영하셨으니, 따님을 만나보는 것은 어떻겠소?”

장인이라고 한 발 예우하는 이진이었다.

“나중에 황상을 성에 편히 머무르게 한 후에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

‘역시.......!’라는 말이 내심 쏟아져 나오는 이진이었다. 그렇지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그에 대한 찬사를 접고 여전히 별로 표정 없는 얼굴로 이진이 말했다.

“믿지만, 운남성의 치안은 어떻소?”

“황상의 제 시책이 그대로 시행되고 있는 바, 그 어느 때보다도 안정적이라 저희들의 할 일이 별로 없사옵니다. 황상!”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를 만난 이래 수없이 끄덕이는 고개를 또 한 번 끄덕이며 이진은 그와 말머리를 나란히 해, 크게 멀지 않은 곤명 성 안으로 향했다.

이튿날 밤.

이진은 조촐한 주안상을 차려놓고 특별히 누루하치를 초대했다. 이 자리에는 아직도 대면하지 못한 그의 딸 고륜동과공주가 동석을 했다.

잠시 후 문이 열리며 이제 50줄에 접어든 누루하치가 혼자 나타났다. 이에 벌떡 일어나 부친 앞으로 울음을 쏟으며 달려가는 고륜동과공주였다.

“아버님!”

“잠시 계 있거라. 황상을 뵙는 일이 먼저야.”

“네, 아바마마!”

야속한 눈빛으로 눈물을 닦으며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나는 공주였다. 그녀에게도 아들과 딸이 하나씩 있었으나, 고국에 있고 지금 여기에는 없었다.

“어서 오시오. 금왕!”

“황상과 이렇게 술자리를 갖게 되는 것이 얼마만인지 아득한 생각이 드는군요.”

“그동안 너무 격조했소이다. 우선 자리에 앉으시죠.”

“고맙습니다. 황상!”

두 사람이 주안상을 가운데 두고 좌정하자 재치있게 공주가 두 사람의 잔에다 술을 쳤다.

“드시지요.”

“네, 황상!”

두 사람은 묵묵히 술잔을 기울였다. 이렇게 술잔만 기울이기 어언 세 병. 마침내 누루하치의 얼굴이 서서히 달아오르자 이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칸께서도 짐에게 할 말이 있을 것 같소만?”

“네, 있습니다. 황상!”

“모든 것을 허심탄회하게 터놓고 이야기하도록 합시다.”

“네, 황상!”

답을 한 누루하치가 침묵을 유지했다. 무슨 말이 나올지 내심 조마조마한 이진이었다. 그의 말이 예상되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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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좋은 날 되세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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