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7 회: 직할 통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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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들에게 공식적으로 다른 성으로의 진출을 허용해주시고, 저들이 추진하려는 면향(免餉)을 묵인하는 것입니다. 황상!”
“뭐라고? 타 성으로의 진출은 인정해준다고 쳐, 헌데 세금 안 거두겠다는 정책을 묵인해주라고?”
“네, 황상!”
“그 사조가 유입되면 안 된다고 했잖은가?”
광해의 말에 역정을 내는 이진이었다.
그래도 광해는 흔들림 없이 자신의 의사를 피력했다.
“지금도 아군의 해군으로 장강을 틀어막고 있지만, 더욱 장강 일대의 봉쇄를 강화해 백성들의 이동과 물자를 차단하옵시고.......”
“장강이 무슨 어디 냇물 수준인 줄 알아! 그 넓고 긴 강을 어떻게 다 틀어막아!”
“소신의 말을 끝까지 들어 보시옵소서, 황상!”
오늘은 확신이 있는지 여느 날과는 다른 광해의 태도였다.
“저들이 저런 정책을 취하면 가장 피해를 많이 보는 것은 토호, 부호, 관리, 대상, 향신(鄕紳:퇴직 관리)등 지도층이 분명할 것이므로, 이들로 하여금 면세가 궁극은 나라를 멸망시킨다는 것을 설득케 하는 것이옵니다. 황상!”
“흐흠........!”
이진이 깊은 생각에 잠기는 가운데에서도 광해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지금까지 저들의 정책은 ‘추장조향(追贓助餉:더러운 돈을 추징하여 군자금에 보탠다)’ ‘살부제빈(殺富濟貧:부자를 죽여 가난한 백성을 구제한다)’는 구호에 ‘균전(均田)’ 즉 빼앗은 땅을 골고루 나누어 준다는 것에서, 이제 면향(免餉) 즉 세금을 안 거두겠다는 정책으로까지 한 발 더 나아가려 합니다. 이는 그 끝이 훤합니다. 뿌리 없는 나무와 같아서 일시적으로는 크게 흥기할 것이나, 종당에는 외부의 조그만 충격에도 스스로 자멸하고 말 것이옵니다. 황상!”
“흐흠.........!”
여전히 침음하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척하나 광해의 통찰력에 이진은 내심 ‘많이 컸구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 이들이 취하고 있는 정책이 명나라의 패망을 결정적으로 몰고 간 2대 틈왕 이자성의 정책과 아주 똑같았기 때문에 이진은 그 끝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끝내 북경 성까지 함락한 이자성이 반달 만에 약탈한 돈이 무려 7천만 냥이었다. 이는 당시 명나라 세입의 5배가 넘는 액수였다. 그런데 이것이 공식적으로 잡힌 통계라는 점이었다. 이들이 북경의 고관, 태감, 지주, 대부호 등을 털 때, 턴대로 모두 받쳤다고 누가 장담하겠는가?
농민 반란군들의 기강이 서 있으면 얼마나 서 있었겠는가? 말단 병사도 터는 과정에서 수 백 냥은 챙겼고 그 윗선은 수 천 냥, 더 위로 올라가면 말할 것도 없는 것이다. 이제 약탈을 자행해 배가 부른 병사들의 생각은 무엇이겠는가?
전투도 싫고 오직 그간 모은 돈으로 고향에 가서 떵떵거리며 잘 살고 싶은 충동뿐인 군대가 된 그들이었다. 여기에 오삼계를 앞세운 청의 군대가 산해관을 돌파해 물밀듯이 밀려오니 이자성 군대는 대패해 부랴부랴 서안으로 피신하나, 끝내는 스스로 대순(大順) 황제에서 내려와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이자성이었다.
그러니 일단 먹기는 곶감이 달다고 저들의 방략을 허용하면, 내환은 최소 길게 끌고 가거나 어쩌면 북경을 집어 삼킬지도 모른다. 그때 조선군이 저들을 때려잡자는 전략이 광해가 계획하는 전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세금을 내지 않으려는 풍조가 강남에도 유입되는 것이 이진으로서는 두려운 것이다. 그것을 광해는 지금보다도 더 장강에 해군을 늘려 오가는 물자를 통제하고, 저들의 사조가 유입되면 가장 피해를 많이 볼 지도층을 통해 백성들을 설득하자는 복안이었던 것이다.
여기에 저들의 삼향(三餉) 즉 각종 군자금 명목으로 징수하던 세금 정책을 타파하고, 본래의 세제로 환원, 아니 여기에 조선 백성들과 같이 세금을 대폭 줄여주면, 큰 혼란 없이 장강 이북도 먹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이진이었다.
숙고를 끝낸 이진이 결단을 내렸다.
“좋아! 자네 말대로 하세. 하면 후속조치를 취해야겠지?”
“네, 황상!”
이렇게 되어 틈왕 이여송에게 이진의 칙사가 비밀리에 다녀갔다. 다른 성의 진출을 공식 허용하겠다는 황제의 칙명을 전한 것이다. 이로써 이여송의 군대는 자신들의 깃발에 ‘균전(均田)’ 외에 ‘면향(免餉)’ 이라는 글귀 하나를 추가하게 되니, 그 반향은 상상 이상의 결과를 가져왔다.
이에 따라 시중에는 다음과 같은 동요가 아이들의 입을 통해 멀리 멀리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소와 말을 잡고 술을 준비해서, 성문을 열고 틈왕의 군사를 맞이하세. 틈왕의 군사가 오면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되고 땅도 얻을 수 있다네.”
무거운 세금에 허리가 휘던 백성들은 이 소식에 환화작약하고, 밤중에 몰래 부중을 탈주해온 농민들이 대거 이여송의 군문에 머리를 조아리게 되니, 그 군세가 하루가 다르게 불어나기 시작했다.
이렇게 북방의 정책이 대전환을 맞고 있는 시점에서 이진은 구 명나라 인재들의 초청에 부심하고 있었다. 꼴에 지조가 있다고 황제의 명까지도 거부하니 골치가 아픈 이진이었다. 이에 강제로 궁궐로 잡아들이게 하니 곧 여기저기서 유명 인사들이 끌려오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잡혀온 것은 황제 이진이 관심을 갖고 있는 역사 속의 명장 원숭환이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은 예상과 다르게 포승에 묶이어 오는 것이 아니라 교자에 태워져 오고 있었다.
이는 그를 잡으러 갔던 군대가 아니라 측근에서 오랫동안 이진을 경호해오다보니 그의 마음을 잘 알게 된 내금위복장 정기룡이 행한 일이었다. 포승에 엮이어 온 그를 궁 안으로 들일 때, 궁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의 보고를 받은 정기룡이 비로소 그를 포승에서 풀고 교자 위에 태워 황제 이진 앞에 들였던 것이다.
활짝 열린 정전에 앉아 실눈을 뜨고 원숭환이 잡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는 이진이었다.
이를 호송해온 정기룡이 원숭환에게 말했다. 그는 어느새 명나라 말까지 익혀 아주 유창하게 떠들고 있었다.
“대 조선제국의 황제 폐하시니라. 예를 올려라!”
그러나 25세의 청년 원숭환은 두 눈을 멀뚱멀뚱, 아주 감정 없는 얼굴로 그냥 그대로 앉아, 황제 이진을 바라보기만 할 뿐이었다. 이에 화가 난 정기룡이 소리쳤다.
“이 놈이 오냐 오냐 하니까........!”
화가 난 정기룡이 가마꾼에게 지시해 그를 바닥에 그냥 던져버리게 했다. 당연히 원숭환은 가마에서 떨어져 털썩 맨바닥에 떨어지게 되었다.
“어서 고개를 조아리지 못할까?”
정기룡의 호령에도 여전히 고개를 빠짝 치켜들고 말이 없는 원숭환이었다. 이를 지켜보던 이판 이이첨이 보다 못해 소매를 걷어붙이고 달려 나왔다.
그리고 다짜고짜 그의 머리를 일방적으로 강제로 눌러 고개를 조아리게 했다.
“하하하.......! 그만!”
이 모양을 지켜보던 이진이 대소하며 그를 그만 핍박하도록 했다.
“그를 전 안으로 들여라!”
“네, 황상!”
비로소 뜰에서 전각 안으로 들어가게 된 원숭환이었다. 그것도 자주적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이 번쩍 들어 옮기는 형태였다.
서 있는 그를 침음하며 이모저모 뜯어보는 이진이었다.
“흐흠........!”
한참을 그렇게 인물 감상하듯 원숭환을 살피던 이진이 그에게 물었다.
“군략(軍略)에 관심이 많다고?”
“.........”
아무런 답이 없는 원승환이었다.
“이 놈이, 보자보자 하니.........!”
화가 난 이이첨이 그의 다리를 걸어 넘어뜨리려 했다.
“그만.........!”
제지한 이진이 다시 명을 내렸다.
“가까이 오너라!”
그래도 여전히 미동도 않는 원승환이었다. 이에 이이첨이 내관들을 시켜 옮기려 하자 손으로 제지한 이진이 말했다.
“조국을 집어 삼킨 괴수가 보자 하니 못마땅할 것이나, 그것도 어느 정도 경우가 있는 것이다. 너무 뻣뻣하면 부러지기 쉬운 법. 하긴 그런 고집도 좀 있어야 사내지.”
혼잣말인 듯 중얼거리던 이진이 돌연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너 때문에 짐의 기분이 과히 좋지 않다. 너 같은 위인만 이 강남에 있다면 짐이 애쓸 필요가 없을 것 같다. 힘들여 삼향을 폐지하고 더욱 세금과 부역을 경감하려 했더니, 이런 쓸모없는 백성들에게는 그것도 과분한 것 같다. 모두 3등 국민으로 취급해 노예로나 부려야겠다. 기름진 땅은 모두 초지로 조성해 말이나 기르고.”
“그건 안 됩니다. 어찌 저 하나 때문에 그런 모진 정책을 시행한 단 말입니까?”
“너 같이 고집불통에 쓸모없는 인간들만 모였다면 무슨 좋은 정책이 필요하겠느냐? 몽고족의 원나라와 같이 차등을 두어 부리고, 조선인이나 배불리 먹게, 하루 종일 말 달려 달린 거리만큼 조선인의 땅으로 인정해주어, 그 안의 명나라 놈들이나 죄다 노예로 부리면 그 뿐인 것을. 왜 짐이 고심해야 하지?”
“제발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황상!”
비로소 제대로 말문이 트여 애원조로 나오는 원숭환이었다. 내심 희심의 미소를 지은 이진은 오히려 더 어깃장을 놓았다.
“너로 인해 짐의 마음이 틀어졌으니 말릴 것 없다. 은혜도 모르는 백성들은 죄다 개 소 부리듯 해야지 별 수 있겠느냐?”
“황상이 제게 원하는 것이 무엇이옵니까?”
“하하하........! 진즉 그렇게 나왔어야지, 웬 고집을 그렇게 부리느냐?”
다시 눈을 가늘게 뜬 이진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너 같은 애송이에게 짐이 바랄 것이 무엇 있겠느냐? 그저 짐의 행사나 한동안 옆에서 지켜 보거라.”
“저로서는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것이 있사옵니다.”
“무엇이든지 말하라!”
“약관을 갓 지난 미거한 소생을 칙명까지 내려 불러들이는 저의를 모르겠사옵니다.”
“짐은 인재를 아주 아낀다. 너는 모르겠지만 짐은 혜안이 있어 너의 미래까지 볼 수 있다. 믿기지 않겠지만 나를 측근에서 지켜본 사람들은 다 아는 일이니, 굳이 너에게 자세히 설명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백번 양보하여 황상과 소인에게 그런 재능이 있다 치면, 기용하시면 되지 머물러 지켜보게 의도는 또 무엇이옵니까?”
“인제가 하루아침에 된다더냐? 짐의 옆에서 많은 것을 지켜보고 배워야지.”
“그야 옳으신 말씀입니다만......... 기왕 저를 쓰시려거든 제 소원도 하나 들어주십시오. 황상!”
“말하라!”
“소인의 친구 중 생사를 같이 하기로 한 두 친구가 있사옵니다. 그들 또한 측근에 머물게 해주시옵소서.”
“좋다. 그들이 누구인지 이름만 대라. 당장 궁 안으로 불러들일 것이니라.”
“네, 황상! 향리에서 같이 자란 사상정(謝尙政)과 홍안란(洪安蘭) 등이 그들이옵니다. 황상!”
“좋다. 허한다. 이판은 즉각 그곳으로 사람을 파견해 이 둘 또한 불러들이도록.”
“네이, 황상!”
이렇게 해서 원숭환은 친구 둘과 함께 황제 이진의 측근에 머물며 그의 행사를 지켜보게 되었다. 그와 그의 친구들에게는 협판대학사(協辦大學士)라는 벼슬이 내려졌다. 내각대학사( 內閣大學士)보다는 아래 직위로 아무 실권이 없고 자문에 응하는 직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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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시고 좋은 날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