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43 회: 명의 반쪽 땅을 차지하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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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두 달이 흘러 어느덧 섣달이 되었다.
금왕 누루하치는 지금 운남성(雲南省) 곤명(昆明) 성(城) 외곽에 와 있었다.
얼마 전 누루하치는 호남 성을 평정하고 그곳을 천진에 있던 곽재우 군단에게 인계를 했다. 곽재우에게 듣기로 그곳은 조선 본토에 있던 홍계남 군단에게 인계했다 들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제 부하들을 이끌고 이 운남성을 점령하려 달려온 것이다.
이곳에 와 보니 자신의 고향에 비하면 이곳은 천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고향 만주는 지금쯤 한겨울 추위로 만물이 꽁꽁 얼어붙어 있겠지만 이곳은 그곳에 비하면 완전 봄날이었다.
섣달인 지금도 곳곳에 꽃이 피어있고 기후는 온화했다. 잡은 현지 백성에 의하면 여름에도 서늘할 정도라 큰 더위를 못 느끼는 살기 좋은 고장이라 했다. 이런 곳에 비하면 자신의 고향은 얼마나 척박한가.
겨울이면 방목도 할 수 없고 그저 추위를 피해 가축이나 사람이나 동사를 면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한 철을 보내는데, 이곳은 꽃이 피고 긴 소매만 입으면 다닐 정도로 온난하지 않은가.
정말 살기 좋은 고장이라는 생각을 하며 누루하치는 시선을 들어 성루를 바라보았다. 이들도 소식을 들었는지 수많은 기치가 내걸리고, 전 군사력을 동원했는지 성루에는 많은 병사들이 올라 이쪽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하루 시한을 두고 최후통첩을 했지만 영 께름칙한 누루하치였다. 아무래도 적장이 항복할 것 같지 않은 예감이 든 까닭이었다. 자신이 무슨 도부수도 아니고 무혈입성을 하면 부하들도 안 다치고 얼마나 좋은가.
하지만 적이 저항을 한다면 자신도 어쩔 수 없이 수많은 피를 흘려야 하리라. 약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누루하치는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청명한 하늘에는 인간사야 관심 없다는 듯이 뭉게구름 한 조각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었다.
이래서는 안 되었다. 적이 저항할 경우를 생각해 대비책을 세워야 했다. 누루하치는 그 길로 말에 박차를 가해 달려 나갔다. 각 기(旗)의 버일러들이 바싹 그의 뒤를 쫓았다. 크고 낮은 산세에 지어진 성이 연이어 주마등처럼 지나쳐갔다.
그러나 누루하치의 눈은 사냥에 나선 매의 눈처럼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 적의 약점을 쫓는 그의 눈은 영활했고 적의 허점을 하나도 놓치지 않겠다는 결의에 빛나고 있었다. 그러나 적의 약점은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조선의 침공 소식에 그동안 성을 새로 단단히 보수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조선군 마냥 포로 성을 공격할 수 있으면 걱정이 없겠으나, 군량미를 살 돈은 지원해주면서도 포를 공급해달라는 청에는 마냥 인색한 조선 조정이었다.
그래서 자체에서 조선과 명의 포를 본 떠 포를 만든다고 만들어 보았으나 조악할 수밖에 없었고, 가장 큰 차이는 화약의 위력 때문인지 똑 같이 포를 복사했다고 해도, 발사를 해보면 사거리가 반밖에 나오지 않았다.
그나마 포와 화약의 양도 변변치 않았으니 호남 성에서 마냥 맨몸으로 공성전에 의지하다가는 부하들의 희생이 클 것 같아 여간 걱정이 아닌 누루하치였다. 그가 걱정으로 이마의 주름살이 펴지지 않을 무렵 수행중인 장남 저영(褚英)이 말했다.
“조선군에게 화력 지원요청을 하는 것은 어떻습니까? 아버님!”
“너는 눈을 어디 두고 다니는 거냐? 적이 청야전술(淸野戰術)로 밖에는 먹을 것 하나 없이 없애 놓고, 백성들을 모두 성안으로 불러들인 것이 보이지 않느냐? 우리의 식량이라야 단 오일 치뿐인데, 그들이 지원을 바라다가는 전마부터 태반이 줄고 말 것이다.”
“그래도 들판에 말먹이라도 풍부하니 다행입니다.”
“장점을 보는 것은 좋지만 장수가 되면 적아의 단점부터 파악할 줄 알아야 전술에 능해지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아버님! 우리의 열악한 포라지만 그것에 의지해 이번에도 천생 공성전을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버님!”
“그래서 허름한 성벽이라도 있나 찾아보지만 새로 단단히 보수를 해 그마저도 쉽지 않구나.”
“제가 선봉에 서겠습니다. 아버님!”
“용기는 가상하다만 장수가 되어서 무모한 용기보다는 자꾸 머리를 쓸 줄 알아야 한다.”
“네, 아버님!”
여느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자식 걱정에 잔소리부터 앞서는 누루하치였다.
“아버님! 저기.........! 아무래도 저곳이 조금은 허술해 보입니다.”
차남 대선(代善)의 손가락 끝을 따라가 보니 새로 보수한다고 하긴 했으나 다른 곳과는 달리 뭔가 엉성해 보이는 구석이 있는 성벽이었다. 그러나 누루하치의 눈에는 크게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큰 도움이 안 되겠다. 정공법으로 나가는 수밖에 없어. 지금부터 기간은 단 사흘이다. 최대한 운제나 충차를 만들어 성을 공략하도록 하자.”
“네, 칸!”
모두 큰 소리로 복명하지만 여전히 누루하치의 인상은 펴지지 않았다. 또 얼마나 희생이 날지 걱정이 앞선 탓이다. 그동안 벌써 아끼는 부하들이 근 1만이나 죽어나갔기 때문이었다. 벌판에서의 대회전이라면 큰 걱정을 하지 않는 그였지만 농경민족인 이들은 성에 의지해 싸우니 여간 곤란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게 그가 내심 한숨을 들이 쉬고 내쉬어도 시간은 흘러 만 하루가 지났건만 적에게서는 일언반구의 대꾸도 없었다. 자신들의 최후통첩을 아예 무시해 버린 것이다.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는 순간 제 군사를 숲으로 몰아 공성 장비를 하나라도 더 만들라 다그칠 수밖에 없는 누루하치였다.
그렇게 사흘이 흐르자 조악하나마 운제와 충차 등이 몇 십 개 그리고 성벽에 걸칠 사다리가 수백 개 만들어졌다. 이를 동문 성에 집중 배치한 누루하치는 결전의 날이 밝아오기만을 기다렸다.
* * *
마침내 결전의 날이 밝아왔다.
새벽부터 곤명호(昆明湖)에서 올라오는 물안개로 가시거리가 짧았다.
차라리 잘 되었다 판단한 누루하치는 전군에 총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총 공격하라!”
“공격하라!”
채 해도 떠오르지 않은 새벽부터 누루하치의 명에 따라 4만 군사의 총 공격이 시작되었다.
몇 십 문밖에 안 되는 포는 물론 그동안 애써 만든 운제와 충차, 사다리까지 모두 동문 한곳으로 몰아 주 공격점을 선택한 이들의 공격에, 적들도 채 깨지 않은 눈 비비며 안개 속에서 응사를 하나 눈 먼 화살에 맞는 병사 백에 하나도 드물었다.
펑, 펑, 펑........!
쾅, 쾅, 쾅........!
탕, 탕, 탕........!
소리만 요란한 포의 공격을 시작으로 영차, 영차, 수십 명이 운제를 밀고 앞으로 전진하고, 충차는 포의 공격이 끝나길 기다려 대기하고 있었다. 다른 한 편에서는 사다리를 든 병사들이 일제히 성벽을 향해 뜀박질을 하고, 마삭의 달인들은 끝에 비조(飛抓)를 장착해 성벽에 던졌다.
이를 엄호하기 위해 궁병과 조총병들이 뒤를 따르며 성루를 향해 일제 사격을 하고 전장 판은 곧 후끈 달아올라 새벽부터 뜨거운 열기를 내뿜기 시작했다. 피아간에 요란한 함성과 비명 메아리치는 속에서 안개 속 공방이 펼쳐지길 어언 한 시진 여.
포의 공격에도 성문이 끄떡없자 이제는 충차부대가 죽음을 무릅쓰고 성문을 파과하려 달려들고, 운제 또한 죽음을 무릅쓴 공방 끝에 성벽에 붙는데 성공했다. 이제 안개마저 걷혀 서로 육안으로 적을 보며 공방이 오가는데, 운제에 탑승한 조총병들의 사격이 한 곳에 집중되었다.
사다리를 성벽에 건 자들이 사다리를 타고 일제히 성을 기어오르는 곳이었다. 이들이라도 성벽에 기어올라 교두보만 확보된다면, 그다음부터의 전투는 한결 수월해질 터였다. 이 사실 적 또한 알고 있어, 피아의 화력이 집중 될 수밖에 없었다.
“으악........!”
기어코 성벽을 기어오르다 적의 화살에 맞은 여진 병사가 지상으로 추락하며 생의 애착서린 비명을 토하고, 그래도 양군은 교두보 확보와 이를 내주지 않기 위한 치열한 공방전이 한 치도 밀리지 않고 진행되었다.
이렇게 일각 동안 치열한 공방이 진행되는 동안 엉뚱한 곳에서 사달이 나기 시작했다. 비조를 든 병사들이 있는 곳이었다. 비조를 든 병사 수백 명이 일제히 성벽에 비조를 걸로 마치 등벽을 하듯 성을 타고 오르지 미처 이를 막아내지 못한 때문에, 성루에 몇 십 명의 여진 병사가 교두보를 확보해 이제 난전을 펼치기 시작한 것이다.
동문에서 한 마장쯤 떨어진 곳에서였다.
와아.........!
와아.........!
혼란을 야기하듯 곳곳에서 여진 병사들의 함성이 터져 나오는 속에서 계속해서 비조를 성벽에 건 병사들이 성루에 발을 딛고 명군은 병력을 이쪽으로 모나 채 응전을 못하고 있었다.
이에 문루에서 제 병을 지휘하던 도지휘사사 마웅주(馬雄株)의 목이 쉬어갔다.
“막아라, 막아! 집중해 막아! 어느 한 놈도 발을 붙이지 못하게 하라!”
그러나 그의 악에 받친 고함도 속절없이 점점 성루에서 숫자가 줄어드는 명군이었다.
마침내 여진 병사의 숫자가 압도하는 순간 이들은 성벽을 타고 내려와 일제히 동문을 향해 치달렸다.
“막아라, 막아! 문이 열리는 순간 지는 거야!”
마웅주의 외침에 전 병사들이 이들을 향해 일제히 달려들고 그만큼 성루는 허술해질 수밖에 없었다.
“때는 이때다! 나를 따르라!”
누루하치의 장남 저영이 자신의 수하들 중 엄선된 병사 수백 명을 이끌고 선봉에 섰다.
“던져!”
저영의 명에 수백의 갈퀴가 하늘을 날아 성벽에 걸렸다.
그다음은 저영이 명하지 않아도 걸린 줄을 확인해보고는 일제히 성벽을 기어오르기 시작하는 용감한 여진병사들이었다.
“으악!”
걸린 마삭을 끊기 위해 이빨 빠진 도로 난도질을 하던 한족 병사 하나를 올라오자마자 단칼에 베어버린 저영이 아래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빨리, 빨리..........!”
그가 말하지 않아도 젖 먹은 힘을 다해 기어오른 용맹한 병사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내는 것으로 성루는 일대 결전장으로 화했다.
“막아, 막아! 발도 붙이지 못하게 해!”
“끊어버려!”
지휘관의 명도 있지만 서로 격려하는 한족 병사들 사이로 여진 병사들이 뛰어들어 칼부림을 하고, 일부는 벌써 성벽을 타고 내려가 동문의 싸움에 가세하는 자도 있었다.
이렇게 치열한 공방이 벌어지길 일각 여.
마침내 저영의 부대에 의해 동문이 열리며 여진의 기마대가 일제히 쇄도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이를 지켜보던 마웅주의 입에서 장탄식이 터져 나왔다.
“끝났다!”
그의 말 그대로였다.
성안으로 들어온 여진 기병에게는 이제 거칠 것이 없었다. 닥치는 대로 살업을 자행하니 온 성안이 비명과 통곡 소리로 휩싸이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저항하던 마웅주마저 저영에 의해 생포되는 순간 마침내 전쟁은 그 끝을 향해 치달리고 있었다.
“항복하라. 항복하는 자는 살려준다!”
곧 누루하치의 명이 여진족 병사들에 의해 전 성안에 퍼지고, 명군 병사들은 기다렸다는 듯 숨은 곳에서 나와 양팔을 번쩍 치켜들었다.
아무리 조선의 황제 이진이 항복을 않는 성은, 성이 떨어지는 날 일제 도륙을 감행해도 좋다고 윤허를 했지만, 그러자면 자신의 부하가 하나라도 더 희생되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누루하치였다.
조기에 항복을 권해 아군의 희생을 막고 저들도 괜한 피를 흘리지 않게 하니, 누루하치는 주저 없이 적병에게 항복을 권했던 것이다. 그의 저변에는 괜한 남의 나라 싸움에 하나라도 희생을 덜자는 생각이 깔려있다 하겠다.
아무튼 운남성의 성도인 곤명을 낙성시킨 누루하치는 곧 부하들을 위로하고 특히 용맹하게 싸운 전사들에게는 기꺼이 은상을 내렸다. 곧 조선 황제에게 장계를 띄운 누루하치는 전장이 정리되는 대로 하루를 푹 쉴 것을 제 장졸들에게 명했다.
이것을 끝으로 사실상 조선의 장강이남 정벌은 완성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여진의 충렬, 충정왕이 호남을 일부 신립의 부대에게 인계하고, 귀주성(貴州省)으로 뛰어들어 귀양(貴陽)을 낙성시킨 데다, 바닷가 근처의 성인 복건, 광동, 광서도 모두 조선군에 의해 점령된 이 시점에서는, 이제 작은 성읍들만 제압해나가면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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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벌써 오늘이 칠월의 마지막 날이군요.
더위도 이제 길게 보아야 스무날만 지나면 한풀 꺾일 터.
그간 더위에 몸조심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기원합니다!^^
다시 한 번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늘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