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37 회: 대전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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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로부터 10여일이 지났다.
이진의 명에 의해 전국적으로 자진해서 노비들이 바쳐지는 대로 속속 훈련원으로 입교를 하고 있는 가운데, 가마 한 채가 궁궐 깊숙이 들어왔다.
강녕전 뜰 앞이었다. 그 가마에서 내린 것은 뜻밖에도 여자가 아닌 남자였다. 그것도 제법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였다. 두말 할 것 없이 이여송이 광해의 조치에 의해 조선의 궁궐로 비밀리에 들어온 것이다.
곧 그가 궁인들의 안내를 받아 강녕전 안으로 들고 급히 부름을 받고 달려온 광해 또한 강녕전 안으로 들어왔다. 두 사람을 마주하고도 지그시 눈을 감고 있던 이진이 돌연 눈을 번쩍 뜨고 형형한 안광을 쏘아내며 입을 떼었다.
“그대가 이성량 장군의 자제 이여송인가?”
“그렇사옵니다. 황상!”
이진의 무겁게 깔리는 저음에 황급히 고개를 조아린 이여송이 즉각 답을 했다.
금년 59세로 이 시대에는 완전 노인 취급을 받는 나이가 된 이여송이 송구한 표정으로 급히 답을 하자 침음하던 이진이 말했다.
“그대의 나라를 하나 건설해보지 않겠는가?”
“네........?”
너무나 뜻밖의 말인지 이여송의 눈이 급격히 커지며 벌린 입을 다물 줄 몰랐다. 실태를 깨달은 그가 황급히 표정을 수습하나 그의 몸이 가늘게 떨리는 것이, 옆에 앉아있는 광해도 느낄 정도로 그는 극도의 놀람과 흥분상태인 모양이었다.
“짐은 그대를 금일부로 ‘틈왕(闖王)’에 봉하고자 한다. 그 왕국의 위치는 곧 사천과 섬서이니라!”
“네에........!”
또 한 번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하는 이여송이었다.
잠시 그렇게 멍청한 표정으로 잠시 생각에 잠겼던 그가 이진의 진의를 파악했는지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
“살고자 조선에 귀의했거늘 다시 명나라로 돌아가라 하심이 어인 말입니까? 이는 소문과 다른 처사가 아니옵니까?”
“그대 혼자 만 보내는 게 아니야. 그대를 따랐던 전 부하들은 물론 여러 대책이 있어. 들어보겠나?”
“네, 황상!”
이진의 말에 그의 표정이 급격히 밝아지며 답을 채근하는 표정으로 한 무릎 다가앉았다.
“그대에게 병력이 집중되지 않도록 청해는 물론 하투, 또 호북이나 하남 등의 또 다른 내륙에서도 아군이 활동을 할 것이고, 바닷가에서는 왜구가 날뛸 게야. 게다가 그 기간이 길지도 않아. 어찌하든 1년만 버텨주면 전 조선 군이 그대를 도와줄 거야. 어때 이만하면 왕 노릇 한 번 할 만하지 않은가?”
“하, 하겠습니다. 황상!”
생각할 것도 없이 이진이 내미는 조건에 덥석 낚시 바늘을 무는 이여송이었다.
“좋아! 거기에 하나의 더 좋은 조건을 부가하지. 정 토벌군에 의해 세를 유지하기 힘들면 산으로 들로 숨어 유격활동을 해도 좋아. 어떻게 하든 저들이 토벌군을 해체하지 못 하도록 하기만 하면 돼. 무슨 말인지 알겠소?”
“네, 황상!”
더욱 밝아진 이여송이 급히 부복하며 기쁜 빛을 띠었다.
“그렇지만 당분간은 이 모든 것을 비밀에 붙일 것이오. 하니 그동안 간자들을 그곳에 심어 틈왕이 그곳에 당도하는 날 함께 떨쳐 일어날 수 있는 만반의 준비를 해주오. 아시겠소?”
“네, 황상!”
“이 일은 비밀이 관건이니, 그곳 출신 병사들로 간자를 선정하되, 또한 불순분자들만을 포섭해야지 미리 들통 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짐의 이야기는 여기까지요.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지금이라도 당장 거병하면 안 되겠사옵니까? 황상!”
“단독으로 할 자신이 있으면 하시오.”
“그건.........!”
자신 없는 표정을 짓는 그를 향해 이진이 말했다.
“그대를 지원할 또 하나의 요소를 만들려면 그 정도의 시간은 필요하니 절대 기밀이 누설되는 일이 없도록 하고, 간자를 보내는 일과 개병들의 조련에 힘쓰도록 하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이 장군의 접대는 동왕이 책임지고 하도록.”
“네, 황상!”
축객령이나 마찬가지인바 곧 두 사람이 강녕전을 물러났다.
이어 이진은 이순신, 원균, 이억기에게도 비밀 지령을 하달해 제 조건을 구비하도록 했다.
* * *
그렇게 세월이 흘러 8월이 되었다.
이진은 동시에 여러 곳으로 칙명을 하달해 본격적으로 장기판의 말들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 첫 번째 움직임으로 왜의 원균이 그간 바닷가를 돌며 납치한 왜구 3만을 싣고 고토열도를 출발하고, 이여송의 직속 4만군도 북으로, 북으로 움직이다가 이내 서로 방향을 잡아 대 초원을 횡단했다.
또 이순신의 대 전함의 일부가 한양의 마포나루로 입성을 했다. 그간 훈련을 받은 노비군 즉 충의군(忠義軍)으로 명명된 그들을 싣기 위해서였다. 이억기 또한 고산도에 거주하는 왜병 2만을 제 함선을 동원해 싣기 시작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르자, 이여송의 군대가 청해에 나타나 사천(四川)으로 진군하는 것을 시작으로, 몽골의 저력토는 감숙(甘肅)으로 진주를 개시했다. 뿐만 아니라 충순왕(忠順王)으로 책봉된 소낭태길(素囊台吉)의 5만 군사 또한 하투에서 준동을 하니, 곳곳의 장계가 한겨울 눈발 날리듯 했다.
뿐만 아니라 여기에 입구를 지키던 명나라 수군을 일거에 대파한 이순신의 제 함대가 장강을 거슬러 올라 호북(湖北)에 2만 충의군을 풀어놓고, 하 삼성에서는 원균이 싣고 온 왜구 3만이, 강소 안휘에서는 이억기가 싣고 온 전 왜병 2만이 날뛰니 명의 천자 주익균은 어디부터 군사를 파견해야할지 도통 갈피를 잡을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벌판에 익은 누렇게 익은 곡식들은 이들의 식량이 되기에 안성맞춤이었고, 이들의 준동은 천하를 대혼란으로 몰아넣기에 충분했다. 이들의 준동에 주익균은 그간 모은 50만 군사를 곳곳으로 파견하기 시작했다.
애초 100만을 모집할 생각이었으나 수군 포함 50만을 모집하여 이들의 군량 및 무구를 대다보니 재정악화로 인하여 관리들의 녹봉도 지급하지 못할 처지가 되었다. 이에 할 수 없이 주익균은 자신의 내탕금에서 계속 관리들의 녹봉을 충당하다보니, 자신의 돈이 아까워서라도 더 이상 군사를 모집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판에 곳곳에서 적의 준동을 맞아, 주익균은 이를 악물고 이들의 토벌을 강력하게 주문했다. 우선 세가 가장 강성한 사천 이여송 군대의 토벌에 10만 명을 급파하고, 7만의 군세로 감숙을 휩쓰는 충장왕 저력토의 군사를 대항하기 위해 또 10만을 급파했다.
여기에 하투 일대를 휩쓸고 있는 충순왕 소낭태길의 5만 군사 퇴치를 위해 8만을 동원하고, 호북 일대를 휘젓고 있는 충의군 격퇴를 위해 또 4만 군사를 동원했다. 또 하 삼성 일대에서 날뛰는 3만 왜구를 퇴치하기 하기 위해 5만, 강소 안휘 일대의 2만 왜구를 격퇴시키기 위해 3만 군사를 동원하니 북경에는 남는 군사가 하나도 없었다.
나머지 10만은 수군인바, 조선 수군에 의해 장강 일대의 수군이 깨졌다는 급보를 잡하고는 이의 격멸을 위해 산동 및 그 주변 일대에 주둔하고 있던 전 수군력을 동원하니, 이제 북경의 안위를 걱정해야 했다.
이에 주익균은 피 같이 아끼던 자신의 내탕금을 긴급 풀어 20만의 대병을 모집하도록 했다. 장성너머 조선군이 준동할 것이 제일 두려웠고, 천진과 영하성에 상주하고 있는 조선군의 북진이 두려워 잠이 오지 않았던 탓이었다.
물론 천진에서 북경으로 오는 요로에는 그간 많은 성을 새로 축조하고 상시 많은 병력을 주둔시키고 있었지만 그들의 기병 전력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는 주익균이었다. 아무튼 주익균이 초모(招募)에 열을 올리고 있는 작금, 곳곳이 길이 막혀 기껏 모은 군사는 채 10만이 되지 않았다.
그것도 북직례 및 하북 등 일대의 병사들로 최대한 동원한 결과였다. 이미 이때부터 주익균은 전국적인 명의 통치는 불가능하지 않았는가 하는 광해의 사후 분석이었다. 아무튼 이런 속에서 이제는 대동으로 충의왕 구유크가 3만 군사를 이끌고 난입하니 이곳에도 채 조련되지 못한 군사 5만을 급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뿐만 아니었다. 장성너머 조선군도 6만 군사를 동원하여 연일 시위를 하니 이곳에 또 나머지 5만 군사를 급파하고 보니, 남은 것은 빈털터리였다. 허탈감은 잠시고 곳곳에서 올라오는 전황보고에 주익균은 더 이상 군사 수에 미련을 둘 처지가 못 되었다.
계속되는 승전보고이나 크게 몇 만을 무찔렀다는 보고는 일체 없고, 기껏 기백 아니면 많아야 기천 정도를 무찌르고서는 대승을 거둔 양하는 과장보고 일색이었다. 이런 속에서 주익균의 가슴을 제일 떨리게 하는 것은 사천 이여송의 군대였다.
그 세가 처음에는 4만이라더니 지금은 순식간에 10만으로 불어 명군을 압도하고 있다는 보고였다. 이에 주익균이 그 대책에 부심하고 있는 가운데, 이여송의 활약은 눈부신 바가 있었다.
이진이 그에게 하사한 틈왕(闖王)이라는 칭호와 같이, 마치 말이 문을 박차고 나오는 기세로, 그의 세가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틈왕이라는 칭호는 명나라가 결정적으로 망하게 되는 원인을 제공하는 반란군 고영상(高迎祥)이 스스로 지은 왕명이었다. 참고로 이자성(李自成)이 2대 틈왕이었다. 그런 것을 원 역사에 앞당겨 이진이 사용한 것뿐이었다.
아무튼 사천으로 진주한 이여송은 애초 참모들의 진언대로 절대 백성들의 재물은 일절 못 건드리게 했다. 비록 들판에 곡식이 누렇게 익어 있었지만, 이들은 나라의 군량창고나 세미를 거두어 쌓아 놓은 창고, 아니면 원성을 사는 대지주들의 집을 급습해 이를 빼앗아 자신의 군대는 물론, 사전에 거병을 약속한 일부 토민 및 이제는 몰려드는 가난한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이렇게 백성들에게 환심을 사는 정책을 쓰다 보니 굶주림에 뱃가죽이 등짝에 붙은 가난한 백성들이 환호하며 몰려들기 시작하는데, 그 숫자가 날이면 날마다 달라질 정도였다. 그간 관리들의 학정과 토호들의 욕심으로 수확철이 되어도 굶주림에 시달리던 백성들이 일제히 들고 일어난 것이다.
이런 데는 이여송의 또 하나의 선심 정책이 주효하고 있었다. 대지주나 토호들에게 빼앗은 농토를 일대의 가난한 백성들에게 균등 배분하겠다고 약속하고, 그대로 실천하니 하루가 다르게 백성들이 이여송의 군문으로 몰려들어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사기충천한 군사들을 맞아 급파된 유정의 10만 군대는 모집된 지 겨우 3개월 된 신병들로 전투 경험이 없어 우왕좌왕하는데, 무기 또한 빈약해 칼이나 창 등은 겨우 개인 무기로 소지했으나, 갑주 등은 어림도 낼 수 없는 일이었고, 활과 같은 원거리무기 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했으니, 전투마다 패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이진의 심정을 변화시키는 또 하나의 사건이 터졌으니, 그것은 이제 수군해서 해군(海軍)으로 명칭이 바뀐 이순신 함대가 일구어낸 쾌거였다. 이순신 제 함대가 충의군을 호복에 상륙시켜놓고 다시 장강 입구로 나오니, 그곳에는 산동 및 부근 일대에 머물던 명의 수군 주력함대 12만이 모두 집결되어 있었다.
산동의 주력은 물론 강소, 절강의 모든 수군 군사력을 끌어 모았는지 거룻배 수준의 배까지 전투함이라고 인정을 해준다면, 1천여 척의 군선에 12만은 될 듯한 인간으로 뒤덮인 군선이 끝도 없이 해상에 떠 있었다.
이에 반해 이순신 함대는 최소 100여명을 탑승시킬 수 있는 원양선 500척에 그 상위의 배들인 갈레온 선과 정화함대 규모의 함선이 5척, 도합 800여 척 7만 명이 승선해 있었다. 여기에 무장을 비교하면 정말 명의 함대는 하품이 나올 정도로 아군 함대에 비하면 형편없었다.
아군 함정이 개인병기는 물론 주로 원거리 포격을 위한 포 위주의 배치인데 반해, 이들은 원거리 무기는 거의 없고 상륙전에 대비했는지 개인병기의 위주의 무장이었으니, 애초부터 전력을 비교하는 것조차가 지면 낭비였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군대가 명의 상해(上海) 앞바다에서 조우한 바, 양군은 국운을 건 일전을 전개하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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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