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33화 (133/210)

< -- 133 회: 몽골과 요서 정벌 -- >

6

영원성(寧遠城)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성이었다. 그러던 것이 주익균이 북경의 치욕을 당하고 난 후 요서의 방위를 위해 새로 축조한 것이다. 그런 이 신성(新城)에도 전운이 감돌고 있었다.

신립의 명을 받은 4개 기병여단이 이곳에 출현했기 때문이었다. 곧 전 기마영장 이빈(李薲), 야류장 부족장 나하추(納哈出), 항왜적장 김충선(金忠善), 전 요동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 등이 거느리는 4만 기병이 그들이 이 신성에 나타난 것이다.

영원성(寧遠城) 총병 왕선(王宣)은 1만 병력을 가지고 부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을 어떻게 막아낼 것인가? 중과부적인 병력을 가지고, 그것도 기병에 대항해 나가 싸운다는 것은 애초에 그른 일이고, 수성(守城)을 하되,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로 고심하고 있었다.

수성에 특별난 대책이 있을 수 없었다. 성민 3만까지 최대한 동원하여 화살이 떨어지면 몸으로라도 막아내는 수밖에는. 이에 따라 부중에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모두 동원되었다. 남녀와 노소를 따질 게재가 아니었다.

어리고 늙고를 가리지 않고 모두 동원되어 돌을 나르고, 물이라도 끓여 기어오르는 적에게 퍼부어야 했다. 이렇게 결전 준비를 마치고 적의 거동에만 신경을 쓰는데 웬일인지 적은 성 전체를 포위한 채 큰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원군을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여유 만만하게 임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 이들에게는 전장에서 제일 금기시해야 할 내분이 한창 진행 중에 있었다. 이빈과 김충선은 성을 포위한 채 기다리다, 아군의 화기나 아군 부대가 더 합류하거든 공격을 하자는 주장이었고, 이에 반해 나하추와 조승훈은 피해를 감수하더라도 일제히 공격하여 성을 떨어트리자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었다.

서열상으로 보면 이빈이 가장 선임이지만 누구라고 주장(主將)이 지명된 것도 아니니, 서로의 의견만 내새운 채 팽팽한 줄달기만 하다가 세월만 허비하고 있었으니, 무릇 이렇게 나가면 이빈과 김충선의 뜻대로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나하추와 조승훈 역시 자신들의 군사만 움직여 단독으로 공격을 하다가는 큰 피해만 입을 것 같아 주저하고 망설이다보니 세월만 가고 있는 작금이었다. 그런 이들에게 곧 파발이 당도하니 신립에게서였다.

곧 이쪽으로 오겠다는 전갈이었다. 이어 권율에게서도 전령이 당도하니 금주성을 깨트렸으니, 곧 이곳으로 진군해 오겠다는 소식이었지만, 공에 목마른 나하추와 조승훈으로서는 이마가 찡그려지는 소식이었다.

그렇다고 단독으로 움직여 많은 병사를 잃는다면 이 또한 책벌을 면치 못할 일이라 이제는 다 포기하고 그들만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오일이 지나자 짜기라도 한 듯 양진영에서 대군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곧 신립 군과 권율의 군단 병력이었다. 장성의 혈투를 치러낸 신립 군 6만에, 적의 포로 3만 여타 노획한 1만 필과 예비 전마에는 노획한 물품을 자랑이라도 하듯, 한 짐씩 실린 상태로 의기양양한 얼굴로 나타나고, 동에서는 권율 군단이 금주성을 지킬 보군 1만과 포로를 관리할 보군 1만 도합 2만을 남겨두고, 제 기병여단 5만이 또 출현하니, 영원성 주변은 아예 인간시장이 열린 듯했다. 아니 돛대기 시장을 방불케 했다.

반갑게 회동한 신립과 권율은 제장들을 불러들여 서로의 공을 치하하고 안부를 묻느라 또 한 번 돛대기 시장을 연출했다. 모든 궁금증이 풀려서야 서로 웃음 띤 얼굴로 마주보는데, 선임인 신립이 회의를 주관했다.

“다시 한 번 제장들의 공을 치하하는 바이오. 이제 우리 손에 쥐어진 마지막 남은 이 성마저 떨어트리고 곧 귀환하는 것으로 합시다.”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소리에 장수들도 인간인지라 입에 귀에 걸리는데 권율이 궁금한 듯이 새삼스럽게 물었다.

“산해관 쪽은 괜찮겠습니까? 혹시 그들이 장성을 넘어 우리의 뒤를 치는 것은 아닌지요?”

“하하하........! 그 겁쟁이들이 무슨........!”

여기서 말을 끊고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신립이 갈색 수염을 쓰다듬는데, 항복한 경력이 있는 특히 명군의 군사들이 그의 말에 새삼스럽게 얼굴을 붉혔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런 것에 개의할 신립이 아닌지라 신립이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제발 좋은 일 하느라고 장성에서 기어 나왔으면 좋겠소. 하면 아예 초전에 박살을 내버릴 테니까.”

그러나 신중한 권율은 전혀 웃음기 없는 얼굴로 이를 받았다.

“아무래 그렇더라도 방비는 있어야 할 터. 일부의 군사를 후방으로 돌려 그에 대한 대비는 철저히 하는 게 좋겠습니다.”

“그야 이를 말이오.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말하는 것은 천생 거친 무부이나 신립 또한 용의주도한 면이 있는 사람이라, 권율의 말에 두 번 생각할 것도 없다는 듯이 찬성을 하고 다음 안건을 이어나갔다.

“장성에 남은 적세 4만 보군(步軍). 3개 여단을 후방에 배치하면 충분할 터. 이들로 혹시 모를 적의 기습에 대비하는 것으로 하고, 그 문제는 일단락 지읍시다. 이제 눈앞의 성을 어떻게 깨트릴 것인가에 대한 문제를 집중 논의하기로 합시다.”

이를 받아 적장 이여정을 쏘아죽인 공으로 한껏 자부심에 들뜬 홀가적이 자신만만한 어투로 입을 열었다.

“아군의 군세 총 15만. 무작정 성에 달라붙어도 반나절이면 성을 깨트리리다. 무엇을 근심하오리까? 하하하.........!”

홀가적의 말에 눈살을 찌푸리며 권율이 근엄한 얼굴로 나무라듯 말했다.

“장난이라도 그런 말 마오. 전투는 항상 아군의 피해를 최소화 하고 적의 피해를 극대화해야 하는 것. 우리의 전술대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화기영 군사를 일제히 투입하여 성문을 깨트리면, 성을 취하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기보다 쉬운 일. 그렇게 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 말은 권 군단장의 말이 옳소. 그렇게 하는 것으로 작전을 세우고, 아직 성도 한 바퀴 돌아보지 않았은즉, 성을 한 바퀴 돌아보아 적의 취약점이 어디 인지 파악하고, 이 개 문을 동시에 화기영으로 공격하는 것으로 합시다.”

“찬성합니다.”

권율의 말에 웃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신립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며 말했다.

“자리 배치는 적정을 한 번 살핀 후에 하는 것으로 하고 일단 적의 성이나 한 바퀴 돌아봅시다.”

“네, 장군님!”

제장들이 일제히 같이 일어나며 대답하는 가운데, 권율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구유크를 찾아가 말했다.

“전하께서 큰 공을 세웠다 들었소이다.”

“공은 무슨 공? 의리 하나로 죽고 사는 과인으로서는 뒤처지지 않았다는 것에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소. 장군이야 말로 큰 피해 없이 금주 성을 떨어뜨렸다니, 이야말로 큰 공이 아닐 수 없소이다.”

“별 말씀을.”

겸양한 권율이 여전히 웃음 띤 얼굴로 말했다.

“외람된 말씀이지만 전하께옵서는 큰 공도 세우셨고, 혹시라도 이제 와서 전마 한 필이라도 잃는 것은, 황제 폐하께서도 바라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니 후방을 맡아 혹시 모를 적의 기습이나 대비해주는 것이 어떠 하온지요?”

“하하하..........! 과인보고 더 이상의 공을 세우지 말라는 말로 들리는 군.”

“그럴 리가요. 지금까지 세운 공만으로도 차고 넘치니 더 이상의 피해를........”

“하하하........! 농담이었으니, 너무 정색할 필요는 없소이다. 하하하........!”

“제 뜻대로 해주시는 것입니까? 전하!”

“장군이 과인을 아껴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소. 고마운 뜻에 따라야 도리지요. 그러니 너무 걱정 마세요.”

“감사합니다. 전하!”

“오히려 내가 고마워해야지요.”

“그럼 우리는 먼저 군사를 거두어 후방에 가 있으리다.”

“그렇게 해주시면 더욱 감사하겠습니다.”

군례를 올리고 사라지는 권율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던 구유크가 미소 띤 얼굴로 그와 작별을 고하고 중군 천막을 물러나왔다.

* * *

신립과 권율이 성을 한 바퀴 돌아보았으나 새로 지은 성이라 그런지 영원성은 어디 한 군데 허술한 데가 없었다. 이에 따라 신립은 ‘쥐를 몰아도 어느 한 군데 도망갈 곳은 남겨두어야 쫓는 사람을 물지 않는다.’는 권율의 지론에 따라, 서문만은 비운 채 제 병사들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권율의 권고에 후방으로 군사를 물린 구유크의 군사를 제외하고, 이번 출진에서 큰 공을 세운 홀가적과 권율의 1개 기병 여단을 후방에 배치했다. 즉 이들을 적이 오거나 도망갈 방향인 서쪽에 배치하여, 적의 침입이 있으면 막고 아니면 도망병을 잡도록 하는 임무를 주었다.

그리고 이번 전투에 전혀 공을 세우지 못한 제일 먼저 이곳에 당도한 네 개 여단을 선봉에 세우기로 약속하고, 각각 삼문에 병력을 배치하니 아래와 같았다.

동문은 권율이 지휘하되, 그의 예하 1개 여단 기병과 전 기마영장 이빈(李薲), 야류장 부족장 나하추(納哈出)와 주셔리부의 부족장 추쿵거(楚孔格)를 배치했다. 그리고 북문에는 신립 자산이 지휘하기로 하고 항왜적장 김충선(金忠善)을 필두로 와르카부의 부족장 낭패아한(浪孛兒罕), 전 요동총병(遼東摠兵) 송응창(宋應唱), 여기에 여단장을 잃은 엄일괴의 기병여단을 자신이 직접 지휘하기로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남문에는 전 화기영장 이천(李薦)을 주장(主將)으로 세워, 선봉으로는 전 요동 부총병(副摠兵) 조승훈(祖承訓), 이어 너연 부족장 타이추(台楚)와 왜의 항장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가 뒤를 받치도록 하니, 제 배치가 완료되었다.

각자의 자리 배치에 이어 신속히 제 병들이 움직여 자리를 잡자, 아군은 일찍 저녁밥 지어 먹고 이날은 충분히 휴식을 취했다. 당연히 내일의 결전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다음날 아침.

날이 새는 대로 일찍 식사를 마친 제 병사들이 제 위치에 자리를 잡자 신립이 총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따라서 공격의 첨병이 된 화기영 병사들이 저들의 홍이포 사거리와 아군의 사거리를 감안해 4마장 밖에 자리를 잡고 제일 먼저 전단을 열었다. 각각 동문과 북문 2개 영(營)씩 이었다.

펑, 펑, 펑..........!

쿵, 쿵, 쿵..........!

쾅, 쾅, 콰쾅.........!

적들도 이에 대항해 산발적으로 홍이포를 가동하고, 아군은 더욱 맹렬한 포격전을 전개하는 것으로 이에 보답했다.

2각 여의 포격전 끝에 그 결과가 나타나기 시작했으니, 먼저 금주성 일전에서 요령을 터득한 권율 휘하의 화기영 병사들이 정확한 타점을 잡아, 성문을 집중 포격한 결과 동문 전체가 끝내는 걸레쪽이 되어 훤히 드러났다.

그곳에는 아직 적이 떨어트린 통나무며 보강한 판재들이 한길이나 쌓여 있었지만 계속되는 포격에 인간은 접근치 못하고 있었다. 이를 천리경으로 자세히 살피고 있던 권율이 곧 명을 내렸다.

“이빈 장군과 나하추 장군이 선봉을 서시오. 아직 장애물이 없진 않으나, 신속히 제거하고 성문을 통과하는 즉시 제일 먼저 성문에 입성하는 장군은 계속 아군을 투입할 수 있도록 동문을 장악하고, 두 번째 입성하는 장군은 모든 걸 돌아볼 필요 없이, 남문을 열어 그쪽 군사가 입성할 수 있도록 해주오. 그러고도 북문이 깨지지 않았으면 그곳도 열어주는 것으로 합시다.”

“네, 장군님!”

두 여단장이 이구동성으로 복명하고 신속히 자신의 부대를 찾아 떠났다.

두두두두..........!

두두두두..........!

어느 순간 지축음과 함께 동문에서는 아군의 포격이 그쳤다.

이어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일제히 동문으로 달려간 아군 기병들이 적의 공격을 무릅쓰고 장애물을 걷어내기 시작했다. 선봉에 선 자들의 일부 피해가 있었지만 동문의 장애물이 제거되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와아.........!

다시 한 번 천지를 진동하는 함성과 함께 이제는 성루 위에도 아군의 병사들이 보이는 것은 물론 명군과 치열한 접전을 벌이기 시작했다.

이렇게 치열한 격전의 순간이 지나자 어느 순간 이제는 남문 밖에서도 함성이 들리고, 이어 남문 밖에 대기 중이던 기병들이 물밀듯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이어 동문에 포격이 그치고 그곳 또한 아군의 함성으로 뒤덮였다.

순식간에 세 방향의 성문이 뚫리자 그 다음부터는 전투(戰鬪)라는 이름이 부끄러울 정도로 아군의 우세 속에 전투가 행해졌다. 연일 전투에 단련된 군사들 앞에, 명군은 살길 찾아 이리저리 숨기 바빴고, 때로 용감한 군사가 있어 저항하나, 어느 놈 총에 맞아주는 줄도 모르고 황천 행 특급열차(?)를 탔다.

아무튼 이런 아군의 활약에 성이 점령되는 것은 채 한 시진이 걸리지 않았다. 곧 저항하다 붙잡힌 총병 왕선을 필두로 여기저기 명군들이 꿇어앉혀지기 시작했다. 곧 신립과 권율에 의해 전장정리가 명해지고 아군은 또 다시 전과를 헤아리기 바빴다.

-----------------------------------------

============================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운과 건강, 행복이 함께 하시기를........!

고맙습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