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광자임해-119화 (119/210)

< -- 119 회: 잠행(潛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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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부승지 허균(許筠)은 홍길동의 저자로 유명한 인물이지만, 사적으로는 허국의 오빠로 이진에게 손위 처남 되는 사람이었다.

당대 명문가의 후예로, 자유분방한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했던 인물이었다. 그는 굴곡 있는 삶을 살았던 정치인이자, 자기 꿈의 실현을 바라던 호민을 그리워하던 사상가였다. 허균은 분명 시대의 이단아였다.

불교 숭상, 호민론, 호쾌한 기개, 자유분방한 삶, 역모 죄 등의 낱말이 그를 대표하는 말이라 하겠다.

‘호민론(豪民論)’에서 허균은 “천하의 두려워할 바는 백성이다.”라고 했다. 어쨌거나 한 가지 재미있는 것은 간신 이이첨이 허균을 승지로 추천했다는 사실이었다. 이이첨과 허균은 같은 글방 동문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마지막으로 동부승지 김상헌(金尙憲)은 우리에게 절개와 지조의 상징으로 알려진 인물이 아닌가! 끝내 청에 굴복하지 않아 노령에 청의 심양(瀋陽)까지 압송된 사실 등, 절조가 있는 인물이었지만 당시 시대상에는 부합했다고 볼 수 없었다.

아무튼 그는 1596년 가을에 과거에 급제해 승문원 부정자로 출사했다. 이런저런 중하급 관직을 거쳐, 중앙에서는 저작, 박사, 예조, 이조좌랑, 부수찬, 지제교, 정언, 예조정랑 같은 청요직에 근무했고, 외직으로는 제주 안무어사(按撫御史) 등의 경력이 있었다.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그는 낙향해 고향 집에 있었다. 66세의 노대신은 남한산성으로 몽진(蒙塵: 난리를 피해 안전한 곳으로 피함)한 조정을 뒤따라 들어갔고, 그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도 척화와 항전을 주장했다. ‘오늘의 계책은 반드시 먼저 싸워 본 뒤에 화친을 해야 합니다. 만약 비굴한 말로 강화해 주기만을 요청한다면, 강화 역시 이룰 가망이 없습니다.’

이런 판단을 근거로 김상헌은 세자를 인질로 보내는 데 반대했고, 최명길(崔鳴吉,)이 지은 항복 국서를 찢어버렸다. 그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라는 인조의 물음에 ‘천도(天道)를 믿어야 합니다.’라고 대답했다. 인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다.

1637년 1월에 김상헌은 죽음을 결행하기도 했다. 엿새 동안 식사를 하지 않았고, 옆에 있던 사람이 풀어주어 살아나기는 했지만, 스스로 목을 매 거의 죽을 뻔한 것이다.

그달 그믐, 인조는 성을 나왔고 항복의 맹약이 체결되었다. 왕조 역사에서 처음 겪는 가장 큰 굴욕이었다. 척화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한 67세의 노대신의 마음은 그지없이 참담했을 것이다.

3년 뒤인 11월에 김상헌은 심양으로 압송되었다. 청의 장수 용골대(龍骨大)는 김상헌이라는 인물이 관작도 받지 않고 청의 연호도 쓰지 않는다는 것이 사실이냐고 물었고, 조정에서는 그를 심양으로 보낼 수밖에 없었다.

12월에 그가 도성을 지날 때 인조는 어찰(御札)을 내려 위로했다.

‘경은 선조(先朝)의 옛 신하로서 나를 따라 함께한 지 역시 여러 해가 되었다. 의리로는 군신 사이지만 정리로는 부자와 같다. 뜻밖에 화란이 터져 마침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참으로 내가 현명하지 못한 소치다. 말과 생각이 여기에 이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흐른다. 서로 만나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나 껄끄러운 사정이 있어 그렇게 못했다. 경은 모쪼록 잘 대답해 저들의 노여움을 풀어주기 바란다.’

김상헌이 답하길, ‘소신이 형편없이 못난 탓에 끝내 성상의 은혜에 우러러 보답하지 못하였으니, 죄가 만 번 죽어도 모자랍니다.’라고 화답했다. 그를 만나고 온 신하들은 행동이 평소와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보고했다.

* * *

면면을 둘러 본 이진이 물었다.

“특이 사항 있소?”

“낭보가 있사옵니다. 황상!”

도승지 송익필의 말에 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말해보오.”

“팔도수군통제사 이순신의 보고에 의하면 그간 건조되던 대전함 다섯 척 중, 우선 세 척이 건조되었다는 보고입니다. 황상!”

“하하하........! 아주 기쁜 일이로군. 이제는 루손을 점령해도 되겠어.”

“네?”

이진의 뜬금없는 말이 송익필이 반사적으로 물었다.

“루손 마닐라에서 에스파냐 놈들이 현지 중국인들과 합세하여 그간 우리가 독점하던 해상무역에 계속해서 반기를 들고 있소. 마닐라와 남미의 신대륙 개척지를 오가는 신항로를 개척해 톡톡히 재미를 보고 있단 말이오. 이제 우리가 이를 점령해 궁극적으로 우리도 이 신항로에 뛰어듦은 물론 우선 교역의 우위를 점해야겠단 말이오.”

갑작스러운 이진의 말에 제 승지들이 아무런 답변을 못했다. 정보부족과 그 사안에 대해 미처 검토를 못한 때문인 모양이었다. 그런 그들을 대표해 기껏 송익필이 묻는 것이 전부 다였다.

“승산은 있습니까? 황상!”

“짐이 언제 승산 없는 싸움을 시작하는 것을 보았소? 다 이기게끔 해놓고 전단을 여는 것이지. 그러니 이번에도 아무런 걱정할 것 없소.”

“그렇게만 되면 다행입니다만.........”

“그 문제는 됐고. 참 이번에 전함 건조에 공이 큰 나대용에 대한 포상 건의는 안 올라왔소?”

“올라왔습니다. 황상!”

송익필의 말에 이진이 웃으며 말했다.

“잘 됐군. 그도 이제 통제사의 한 사람으로 보임해야겠소. 그가 건조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전투에도 일가견이 있는 유능한 장군감이란 말이지.”

“알겠사옵니다. 황상!”

“다음 안건?”

이진의 말에 좌중을 둘러보던 우부승지 허균이 발언을 시작했다.

“하늘이 인재를 태어나게 함은 본래 한 시대의 쓰임을 위한 것. 인재를 버리는 것은 하늘을 거역하는 것이옵니다. 헌데 우리나라는 서얼이라서 인재를 버리고, 어머니가 개가했다고 해서 인재를 버리는 것은 참으로 개탄스러운 일이 아닌가 합니다. 차제에 서얼의 차별을 없애고, 여인들도 개가를 허용해야 합니다. 황상!”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요!”

이진이 무어라 답변하기도 전에 동부승지 김상헌의 반발이 먼저였다.

“흐흠........!”

침음한 이진이 잠시 생각을 가다듬고 말했다.

“그 문제는 오랫동안 다툼이 된 사안이오. 그러나 원체 사대부들의 반발이 심하니, 아직도 해결이 안 된 사안이기도 하오. 하지만 언젠가는 해결이 될 사안이기도 하오. 그러나 아직은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볼 수 없을 터. 조금 더 시일이 지난 후에 훗날 다시 한 번 거론하는 것으로 합시다.”

이진의 답에 허균은 불만으로 입이 나오고, 김상헌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음 사항?”

이진이 좌중을 둘러보자 공조를 분장하는 김상헌이 아뢰었다.

“이앙법 실태조사를 하기 위해 파견한 경차관의 상주문에 의하면, 삼남에서만은 이제 이앙법 보급률이 5할을 넘었다 합니다. 황상!”

“많은 진척이 있는 것은 사실이오만, 아직도 진척이 더디오. 황명으로 이를 채근하는 글을 닦아 제 관찰사에 하교하도록 하오.”

“네, 황상!”

“다음 사항?”

이진이 좌중을 둘러보나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래서 이진이 막 회의를 파하려는데 도승지 송익필이 발언을 했다.

“건주여진의 누루하치 말입니다. 황상!”

“왜? 정식으로 왕으로 책봉해달라는 주청사라도 또 왔단 말이오?”

“그렇사옵니다. 황상!”

“허허........! 그것 참..........!”

잠시 헛웃음을 짓던 이진이 말을 이었다.

“짐의 생각으로는 말이오. 그에게 중대한 임무를 맡길 적에, 그 임무를 부여하면서 생색을 내기 일환으로 그에게 허하려 하고 있소. 그런데 그새를 못 참아 수시로 주청사를 보내다니.........”

“아무래도 누루하치 입장에서 보면 조선에서 정식으로 책봉되는 왕과 아닌 왕은 부족을 통솔하는데 권위 면에서 다를 것 이온즉 그런 것이 아닌가 하옵니다. 황상!”

“그야 이를 말이겠소만.........?”

“미리 황상께서 은혜를 내리시고 나중에 부리시는 것이 어떠하올 런지요?”

“성가시니 말이나 좀 더 진상하라 해서 책봉례를 하도록 하는 것으로 하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다음 안건 없소?”

대답이 없자 이진이 말했다.

“짐이 얼마 전 보고 받은 바에 의하면 부산에서 의주까지 또 저 불쪽 해삼진까지, 육로를 마차 두 대가 동시에 피해갈 수 있는 넓이로 개착하도록 한바, 아무리 짐이 10년 기한을 설정했다지만, 근 8년이 경과한 이 시점에도 8할의 추진율 밖에 안 보인다는 것은 속도가 더딘 감이 있소. 각 관찰사들이 속도를 더 낼 수 있도록 채근하는 글도 같이 하교하도록 하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이의 담당인 동부승지 김상헌이 고개를 조아렸다.

“오늘은 이만 회의를 파하도록 합시다.”

“네, 황상!”

* * *

이진이 다음 조회시간까지 짬을 내어 잠시 쉬고 있는데, 황자사부 이정구(李廷龜)가 등대하였다. 이제 중전에서 태어난 장자를 비롯한 빈들의 소생이 벌써 아홉 살인 바, 이들에게 이진이 삼년 전부터 황자사부로 붙여준 인물이었다.

그는 유년 시절부터 비범한 재질을 보이기 시작하여 8세에 벌써 한유(韓愈)의 ‘남산시(南山詩)’를 차운하는 놀라운 표현이 있었고, 14세 때에는 승보시(陞補詩)에 장원하여 명성을 떨치게 되었으며, 22세에 진사, 5년 뒤인 1590년에는 증광 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이른바 한문사대가로 일컬어지는 사람으로서, 그의 문장에 대해서 명나라의 양지원(梁之垣)은 호탕, 표일하면서도 지나치게 화려하지 않아 미적인 효과를 잘 보여주고 있다고 평하였으며, 장유도 그의 재기(才氣)를 격찬함과 아울러 고문대책(高文大冊)의 신속한 창작 능력을 높이 평가한 바 있었다.

“무슨 일이 있소?”

“신 귀비마마의 소생이 재주는 빼어나나 요즈음 학문을 좀 게을리 하는 것 같아서........”

“허허........! 그런 일이.........! 알겠소! 내 단단히 주의를 주리다.”

이렇게 해서 이정구를 내보낸 이진은 바로 황후부터 네 귀비를 편전으로 불러들였다. 그녀들이 올 동안 가만히 생각해보니 어언 자신의 나이 이제 서른하나. 어느덧 학부형이 되어 이제 자식들의 공부걱정까지 할 나이가 되었음을 실감하며 세월의 빠름을 절감하고 있었다.

잠시 후 이진의 부름에 황후 허 씨는 네 귀비가 차례로 편전으로 들어와 예를 표했다.

“모두 거기 앉소!”

이진의 차가운 말에 모두 흠칫하며 경직된 얼굴로 이진을 바라보는 다섯 여인들이었다.

“안에서 어떻게 교육을 시키길래, 황자사부가 짐에게까지 찾아와 공부를 게을리 한다고 고하니 이 어찌 된 일이오?”

아예 다섯 여인을 싸잡아 공격하는 이진이었다.

“앞으로 더욱 단속하여 그릇됨이 없도록 하겠사옵니다. 황상!”

이진의 노여운 얼굴을 보고 급히 황후 허 씨가 고개를 조아리며 대표로 아뢰었다.

“좋소! 이번 한 번에 한해 짐이 모두를 용서할 테니, 교육 철저히 시키고, 조 귀비!”

“네, 황상!”

이진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조비연이 황망히 고개를 조아렸다.

“공주는 학문에 입문이나 했는가?”

“여식이 언문이나 깨우치면 되지. 글을 배워서 뭐 하게요.”

“무슨 그딴 말이 있소. 어미부터가 저러니, 짐이 같이 배우라 일렀거늘......... 당장 내일부터라도 황자들과 함께 배우도록 조처하시오. 아니지. 벌써 진도가 차이가 날 테니, 짐이 다른 사람을 하나 선정해 줄 테니 그리 알고, 우선 천자문이라도 입문토록 하오.”

“알겠사옵니다. 황상!”

누구보다도 밤에는 황상의 총애를 받는 가녀린 조 귀비였지만 이진의 불호령 앞에서는 급급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하고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있소. 그러니 학문 외에도 명국 말은 물론, 여진, 왜어까지 익히도록 아이들에게 닦달을 하오. 역관의 수배 문제는 황후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네, 황상!”

군말 없이 수용하는 황후 허 씨였다.

“그러고 신 귀비!”

“네, 황상!”

이진의 부름에 그녀 또한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조아렸다.

“어미를 닮아 황자가 활달한 것은 좋으나, 넷 중에서 공부가 가장 쳐진다고 하오. 그러니 어미부터 각별히 끼고 앉아 공부를 시키시오. 매일 후원으로 꽃구경이나 가지 말고.”

“하오나, 황상! 이 좋은 계절에 방에 가만히 앉아 있기는.........”

“저, 저런..........! 어미부터가 저런 생각을 하니, 자식이 그 모양 아니오. 아니면 짐이 직접 데리고 가르칠까?”

“아, 아니옵니다. 황상! 금일부터는 소첩이 꼭 붙들고서라도 공부를 시키겠나이다.”

“그렇게 하도록 하오. 어려서부터 학문을 등한히 하면, 황재(皇才)로써 자격이 없는 것이오. 이는 훗날 신하들에게 두고두고 시달릴 일이니, 미리미리 성장기에 배울 때 배워두는 것이 본인의 신상을 위해서라도 좋은 일이니, 그런지 아오.”

“명심하겠사옵니다. 황상!”

다섯 여인이 일제히 고개를 조아리는 것을 보고 비로소 만면에 웃을 가득 띄운 이진이 말했다.

“모처럼 아름다운 다섯 꽃송이를 대하고 보니 짐의 기분이 매우 흐뭇하오. 해서 말인데, 오늘은 모두 저녁들 들지 말고 짐의 침소로 오오. 단 하나 명심할 것은 그 중, 안에 아무 것도 안 입고 오는 부인을 오늘밤의 짝으로 정할 것인즉 그리 아오. 하하하.........!”

“황상, 다섯 명이 다 안 입고 오면 요?”

되바라진 신립의 딸 신 귀비의 물음에 이진이 공연히 놀란 눈으로 말했다.

“그런 일이 있을까마는 실제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오늘 밤은 한꺼번에 다 안을 예정이니 아무 주저할 것 없소.”

“아이고머니나........!”

황후부터가 놀라 뒤로 물러나는데 반해, 네 귀비는 시샘을 하듯 눈을 빛내며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 모양이 이진에게는 즐거운 일인지라 그만 대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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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감사합니다!^^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고요!^^

늘 행복하고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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