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13 회: 북방 평정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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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은 신립의 장계를 받자 크게 기뻐하며, 신립과 제장들에게 무거운 은상을 내리는 한편, 고니시 유키나가와 구로다 나가마사(黑田長政)를 궁(宮)으로 소환하였다. 이어 세 여진 부족이 살던 영토를 조선에 편입시키는 한편, 그들 또한 조선 백성으로 정식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북간도(北間道)라 명명한 그곳에 관찰사를 파견하니 곧 김응서(金應瑞)였다. 출신 미천하나 응변을 높이 산 것이다. 완전히 조선 영토와 백성이 되었다고 볼 수 없는 그곳에 민활하면서도 응변할 수 있는 인물을 관찰사로 기용한 것이다.
김응서는 원 역사에서 명나라 이여송(李如松)의 원군과 함께 평양성 탈환에 공을 세운 뒤, 전라도병마절도사가 되어 도원수 권율(權慄)의 지시로 남원 등지에서 날뛰는 토적을 소탕하였다.
1595년 경상우도병마절도사가 되었을 때, 선조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지 이틀 만에 동래부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송상현(宋象賢)의 관을 적진에서 찾아오라고 하자, 그 집 사람을 시켜 일을 성사시켰다.
또한, 이홍발(李弘發)을 부산에 잠입시켜 적의 정황을 살피게 하고, 일본 간첩 요시라(要時羅)를 매수해 정보를 수집하기도 하였다. 현 정주 목사를 지내고 있는 인물이었다.
또 이에 자신감을 얻은 이진은 외교에 능한 신 충일을 칙사로 다시 한 번 북방에 파견하였다. 곧 건주여진의 누루하치와 해서여진의 두 부족장에게 황제 국으로써 정식으로 칸(汗:왕)들에게 조공을 요구한 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가혹한 조건 하나가 부가(附加)되어 있었다. 즉 각 씨족의 우두머리인 암반 단위로 조공을 행하게 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명이 이들의 내부 분열을 유도하기 위해 써먹던 책략을 조선이 답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누루하치나 엽혁부의 칭기야누(淸佳努)와 합달부의 양기누(揚吉努)가 보는 견지로써는 지금까지 조선에 협조한 대가치고는 가혹한 조치가 아닐 수 없었다. 그래도 이 조치는 해서여진의 다른 두 부족에 비하면 양호한 조치였다.
즉 휘발부와 우라부에는 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으니, 이는 이들을 완전 고사(枯死)시키겠다는 의미였다. 현재 대 조선제국은 요하(遼河)를 경계로 동쪽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다.
권율이 이끄는 3군단 4만 명을 동원하여 요하(遼河)까지 진출하여, 그 동쪽으로는 조선군이 관리를 하고 있는 탓에, 육지의 섬이 된 이들은 명국이 손을 떼지 않았더라도 그들과는 교역이 불가능한 상태였다.
게다가 명국 말로 ‘정유국치(丁酉國恥)’ 사건 이후 조공이 되었든 뭐가 되었든 일체의 관계를 끊으니, 이들 여진족은 전적으로 조선 경제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이런 처지에 신하로써의 조공요구는 이들 부족의 생존과 직결되는 바, 이에 응하지 않으면 생존 자체를 걱정할 수밖에 없는 비관적인 처지의 그들이었다.
아니면 전쟁을 통해 이를 타개하던지. 그러나 조선의 군사력이 강대해진 현 시점에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이를 요구하는 게 고마운 일. 여기에서도 배제된 다는 것은 필요한 생필품의 거래도 막혀 부족 전체가 활로를 잃고, 결국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아무튼 신 충일이 떠나고 채 보름이 안 되어 도성으로 부른 왜장 고니시 유키나가와 구로다 다가마사가 황제의 부름에 응해 사정전에 등대하였다.
“고니시 유키나가 황제폐하를 뵈옵니다.”
“구로다 다가마사 폐하의 부름 받고 등대하였나이다.”
이들의 인사에 흡족한 웃음을 지은 이진이 말했다.
“북방의 전투를 본 느낌이 어떻소?”
“피가 끓는 것을 느꼈습니다. 다시 한 번 전장에 서고 싶습니다. 폐하!”
“동감입니다. 폐하!”
이진이 이들을 북방에 보낸 의도대로 답이 나왔다. 일찍이 신립의 장계를 받고 이들의 심경 변화를 눈치 챘지만 막상 이들의 입을 통해 직접 듣고 나니, 더할 나위 없이 기분이 좋은 이진이었다.
“좋소! 다 좋은데.........!”
여기까지 말을 하고는 가늘어진 눈으로 지그시 이들을 쏘아보는 이진이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짐이 그대들에게 왜국 본토를 치라하면 어찌 하겠소?”
이진의 폐부를 찌르는 날카로운 질문에 흠칫하는 둘 이었다. 잠시 눈을 감고 생각하던 구로다 다가마사가 먼저 입을 떼었다.
“소신은 할 자신이 있사옵니다. 폐하!”
이에 반해 좀처럼 입을 열지 않는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그런 그를 쏘아보던 이진이 먼저 답변을 한 구로다 다가마사에게 재차 질문을 던졌다.
“무엇으로 그 마음을 증명할 수 있는고?”
“제 마음을 꺼내 보여 줄 수는 없은즉 이 자리에서 할복을 명하시면 그대로 행하겠사옵고, 아니면 한 팔이라도 이 자리에서 내놓겠사옵니다. 폐하!”
“장수가 한 팔을 잃어서야 어디에 쓰겠는가? 그대의 충심(忠心)을 믿으니 그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다.”
구로다 다가마사라는 자의 행적을 더듬어 보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그늘에서 성장해서는 종내는 이에야스 편에 서는 이중성을 보이는 자였다.
그래서인지 이에야스의 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아들은 물론 본인 스스로가 인질이 되어, 도쿄에 남는 등 끊임없이 이에야스의 눈에 벗어나지 않기 위해 일관되게 몸부림치는 것으로 생을 마치는 사람이었다. 그런 그 이니 많은 왜장 중 애초에 유키나가와 함께 선정된 것이다.
이에 반해 한참 더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던 고니시 유키나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
“저 역시 그렇게 할 충분한 용의는 있사오나, 그렇다면 폐하께 한 가지 더 청을 넣고 싶사옵니다.”
“뭔지 말해보오.”
“제가 점령한 지역만이라도 기리시탄을 용인해 주십시오. 폐하!”
“갈! 아직 용인해 줄 수 없다.”
냉정하게 자른 이진이 용상에서 벌떡 일어나 사정전 내를 거닐며 말했다.
“그대가 양보할 마음이 없다면, 오늘의 대화는 없었던 것으로 하지.”
한 번 더 냉정하게 자르는 이진의 말에 유키나가가 읍소(泣訴)했다.
“폐하, 한 번만 더 재고하여 주십시오.”
“안 된다. 물러가도록!”
그래도 멈칫멈칫 움직이지 않자 종내는 금군에 의해 끌려 나가는 고니시 유키나가였다. 그가 나가자 이진은 현재 군기시에서 총포 개량에 앞장서고 있는 항왜 김충선을 불러들이도록 명했다.
반 시진이 지나 그가 사장 전에 등대하였다.
“불러 계시옵니까? 폐하!”
그런 그를 냉엄한 눈으로 쏘아보던 이진이 다짜고짜 물었다.
“조선을 사모하는 그 마음은 아직 변치 않았는가?”
“소신 죽을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옵니다. 폐하!”
“좋다! 너에게 일군을 맡길 테니, 모국 조선을 위해 발분하도록!”
“충심으로 보답하겠사옵니다. 폐하!”
“구로다 나가마사!”
이진의 갑작스러운 부름에 흠칫한 구로다가 얼른 발치에 엎드려 말했다.
“명만 내리십시오. 폐하!”
“그대에게도 일군을 맡길 테니, 대 조선제국을 위해 발분하라!”
“네, 폐하! 은의(恩意)에 보답 하겠나이다! 폐하!”
이로써 이들은 다음날 바로 각각 함경도와 평안도로 급파되어 포로로 잡혀 이 방면에 배치되었던 왜병 1만씩을 거느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들은 맡은 왜병들을 한동안 재 조련에 임하게 되었다.
이런 조치를 취하고 나니 이진으로서는 지금 조선 수군의 격군으로 썩고 있는 왜병들의 전투력이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일자마자 이진은 곧 원균에 명하여 격군으로 쓸 수 있는 왜인 3만을 잡아들이도록 긴급 파발을 띄웠다.
* * *
한 달이 지나자 신 충일이 북방을 순회한 결과를 가지고 돌아왔다. 신 충일의 인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이진이 다짜고짜 물었다.
“어떻게 되었느냐?”
이 물음에 신충일이 누런 이를 먼저 보이는 것으로, 그의 대답을 유추할 수 있게 했다.
“그들로써는 울며 겨자 먹기지만 어쩔 수 없었을 것입니다. 내심이야 조선에 이를 갈고 있겠지만 당장 생존과 직결되는 일이니, 각 암반 단위의 조공을 허락함은 물론, 그들 부족장들도 자체적으로 조공을 행한다 했사옵니다. 페하!”
“수고했다. 이번에는 무슨 상을 줄꼬?”
“지난번 받은 은상만으로도 차고 넘칩니다. 폐하! 더 은상을 하사하신다함은 신의 충심을 의심하는 것으로 밖에 소신 받아드릴 수밖에 없나이다. 황상!”
“하하하.........! 혀가 제법 매끄럽구나. 하긴 그 정도 되니 적들을 들었다 놨다 하겠지. 아무튼 이번에도 애 많이 썼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폐하!”
“그래, 나가 여독을 풀도록.”
“소신 이만 물러가옵니다. 황상!”
그를 내보내고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이진이 갑자기 앙천광소를 터트렸다.
“하하하.........! 패자가 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음이니라. 독하지 않으면 장부가 아니라 하고, 또 의심 병이 없으면 권자를 유지할 수 없음이니라. 왕이나 황제 자리는 수시로 권좌를 위협받고 사는 자리. 의심 병이 없다면 이는 자격이 없는 자. 태생적으로 그대들 또한 의심할 수밖에 없느니라.”
가혹한 조치에 스스로도 미안했던지 혼자 중얼거리는 이진의 눈은 결코 웃지 않고 있었다.
어쩌다 역사를 전공했던 순순한 인물은 가고, 이제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나라를 부강하기 위해서 순수한 마음은 저 멀리 버리고, 의심 병 환자가 되어 고뇌 속에 사는 자신이 미워져서 였는지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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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늦었습니다.
짧지만 해량하세요!^^
후의에 감사드리며 평안과 행복, 건강을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