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5 회: 황제의 꿈 -- >
6
이야기를 끝낸 홍순언(洪純彦)이 돌아섰다.
그리고 다시 오문(午門) 앞으로 갔다.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시오. 석 대인?”
“군사를 물리고 협상 좀 합시다.”
이 이야기를 들은 홍순언이 돌아서 이일에게 고했다.
“군사를 물리고 협상하자는 데요?”
“할 이야기 있으면 이 상태에서 그냥 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장군님!”
다시 오문 가까이 다가간 홍순언이 석성에게 이일의 이야기를 전했다.
“좋소!”
승낙하고 잠시 궁리를 하던 석성이 말했다.
“상국으로서 섭섭하게 대하지 않은 것으로 아는데, 이 무슨 변괴인지 여쭈어봐 주시오.”
“오만불손한 너희들을 징치하라는 주상전하의 명이 계셨다.”
통역을 통한 이일의 대답이었다.
“그런 점이 있으면 시정할 것이고, 다른 요구 사항이 있으면 말하시오.”
“쓸데없이 너와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다. 천자의 목을 틀어쥐고 이야기 할 테니 꺼져라.”
“쉽지 않을 거요. 한 시진 안에 도성안의 군사가 몰려올 것이고, 두 시진 안에는 경기 일대의 군사가, 하루 이내면 천지사방에서 천조의 군사가 몰려들어 당신들을 그냥 두지 않을 테니, 너무 오만무례한 말은 삼가는 게 좋겠소.”
“흥! 한 시진이면 우리는 천자의 목을 틀어쥘 수 있다. 그 밖의 일은 나는 모른다.”
이일의 무 대포 막말에 잠시 할 말을 잊은 석성이었다.
“그러지 말고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해보시오.”
“결코 너희들이 들어 줄 수 없을 것이다.”
“일단 들어봐야 가부(可否)를 판단할 수 있지 않겠소?”
석성의 말을 들은 이일이 새삼스럽게 홍순언을 불렀다.
“홍 역관!”
“네, 장군님!”
“여기 주상 전하께서 미리 내리신 교지(敎旨)가 있소. 전해주오.”
“네, 장군님!”
이일이 품에서 꺼낸 비단 두루마리를 받아 쥔 홍순언이 석성에게 말했다.
“조선 국왕 전하의 교지가 있소. 전해드릴 테니 방법을 말하시오.”
“밧줄을 내릴 테니 묶어 올려 보내 주시오.”
“그럴 수는 없다. 백기를 든 사자 하나를 내보내라. 그 순간만은 여하한 일이 있어도 공격하지 않겠다.”
“그럴 수는 없소. 우리도 만의 하나를 가정하지 않을 수 없소.”
“그럼, 할 수 없다. 우리는 지금부터 재공격을 하겠다.”
난처한 듯 망설이던 석성이 홍순언을 보고 사담을 했다.
“여보시게. 홍 역관. 조선 장군의 말이 진실로 하는 말 같은가?”
“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는 성품이십니다.”
“알겠네. 내 사자를 내보내겠네.”
이렇게 되어 백기를 들고 나온 사자에게 이진이 미리 작성한 요구서가 명 측에 전달되었다.
그리고 반 시진.
기다려도 대답이 없자 이일은 다시 맹폭을 명해, 문을 부수기 위해 오문에 대고 포격을 시작했다. 깜짝 놀란 명 측에서 다시 석성이 오문의 문루 위에 얼굴을 내밀었다.
“조선 국왕의 요구는 너무 무리한 요구가 많아 그대로 들어 줄 수가 없소. 협상을 합시다.”
“좋다. 누가 협상 상대자로 나오겠느냐?”
“본인이오.”
“좋다. 우리 측에서는 내가 나간다.”
“장소는?”
“네가 이 광장 앞으로 나와라. 협상 사자를 해할 정도로 염치없지는 않다.”
“믿겠소.”
오늘은 완전히 석성의 수난시대였다. 그가 잠시 후 밧줄에 달린 큰 대바구니를 타고 문루 위에서 지상으로 내려왔다. 둘이 탁자도 없는 광장에서 이야기하기가 뭣하여, 통자하(筒子河) 변의 여린 새싹 위에 앉았다.
그리고 팽팽한 긴장감 속에 서로의 주장을 관철하기 위한 피 말리는 신경전이 전개되었다. 그 시각이 장장 불을 밝히고도 두 시진 동안 전개되어서야 최종 문안이 타결되었다.
처음 이진이 명나라 측에 요구한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산해관 이동의 땅 전체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라. 따라서 더 이상 야인에 대한 간섭할 권한이 명국에는 없다.
둘째: 명국은 해금정책(海禁政策)을 포기하고 오포(五浦)를 조선에 개방하라. 즉 천진(天津), 청도(靑島), 항주(杭州), 복주(福州), 광주(廣州) 등 다섯 곳이다.
셋째: 명국의 세자와 공주를 조선에 인질로 보내라.
위의 요구사항에 대해 명국이 거절하는 바람에 협상이 시작되어 결국 다음과 같이 타결되었다.
첫째: 조선이 현재 점령하고 있는 모든 점유지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한다. 단 차후 명국은 야인에 대한 일체의 권한을 일체 행사하지 않겠다. 또한 부가하여 해남도(海南島)를 조선에 할양한다.
둘째: 명국은 해금정책을 포기하고 3포(三浦)를 개항한다. 즉 청도(靑島), 항주(杭州), 광주(廣州) 등이다.
셋째: 5자 주상호(朱常浩)를 조선에 보내고, 장녀 영창공주(榮昌公主) 주헌영朱軒媖)을 조선국왕의 배필로 주어 양국의 우의를 돈독케 한다.
최종 위의 조건으로 타결이 되었지만, 타결 과정에서는 양측의 의견이 팽팽히 맞서 한동안은 결렬 위기에 봉착하기도 했다.
우선 첫 번째 영토 조항부터 격렬하게 부딪쳤다. 이일은 무조건 산해관 이동은 조선의 영토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다가, 결국 양보하여 요동 전체를, 그것마저 명 측이 완강히 거절하자, 현 점령지를 조선의 영토로 인정하는 대신, 이진의 사전 안대로 해남도를 할양받게 되었다.
결과론이지만 이 조항으로 인해 요동의 조선군과 여진 군이 점령한 세 성 외에, 수군이 점령한 천진과 영안까지 조선의 영토에 편입되었다. 명으로서는 장기 내부에 큰 종기 하나를 안은 듯한(心腹之患) 압박감에 시달리게 되었다.
그리고 명국은 야인들에 대한 관할권은 처음에만 협상의 패로 쓰다가, 바로 포기해서 별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두 번째 해금정책과 개항(開港) 수는 저들도 왜구의 발호 때문에 해금을 검토했는지, 이 문제는 바로 순순히 동의했고, 결국 몇 개의 항구를 조선에 개방할 것이냐로 입씨름을 하다가, 최종 위와 같이 세 군데로 타결이 되었다.
그리고 세 번째 인질 조항 문제였다. 조선 측에서는 처음부터 신종 주익균의의 아킬레스건을 건드렸다. 주익균이 황태자로 밀고 있는 삼남 정 귀비 소생의 복충왕 주상순(福忠王 朱常洵)을 내달라니 명 측에서는 펄쩍 뛸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결국 최종 타결되기를 장녀인 영창공주(榮昌公主) 주헌영朱軒媖)을 조선국왕의 배필로 내주고, 왕자로는 5남 주상호(朱常浩)를 내주기로 타결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부왕으로서의 안타까운 마음인지, 익균은 여덟 살 난 아들 주상호에게 서왕(瑞王)이라는 작위를 내려주며 조선으로 보내게 되었다.
모든 협상이 타결되어 신종 주익균의 옥새가 찍힌 문서와 함께 인질들을 인계받은 이일은, 바람처럼 북경을 빠져나와 도중 어리대는 것들은 그냥 깔아뭉개고, 영안 항으로 돌아왔다.
이일이 영안 항에 도착하니 한창 해전이 진행 중에 있었다.
* * *
이순신은 눈이 아프도록 천리경으로 남쪽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길 오늘 아침 동이 트는 것과 함께 멀리서 명의 전함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소위 ‘호선(唬船)’과 ‘사선(沙船)’으로 아군의 전함에 비하니, 하품이 나올 정도로 초라하기 짝이 없는 작품들이었다.
1층으로 된 세곡선 모양의 배에 격군은 모두 노출이 되었고, 게다가 채선(彩船)마냥 왜 그렇게 요란하게 치장은 했는지 한심한 수준이었다. 그 알록달록 요란한 색깔에 겁먹고 도망가라는 것인지, 배를 보니 절로 기울어가는 명국을 보는 것 같아 우습기도 한 이순신이었다.
아무튼 거룻배 수준을 조금 벗어난 사선(沙船) 즉 길이 3장 남짓(10m)에 20~30명이 승선할 수 있는 배 40여 척에, 5장 내지 7장(15~20m) 정도의 호선(唬船)에는 대략 60~80명이 승선할 수 있을 듯 보였는데, 그런 배 40여 척, 도합 80여 척이 삐거덕거리며 점점 커지고 있었다.
또한 그들의 무장 상태를 세밀히 살피니, 모두 도(刀)는 소지했지만, 총포류는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있어도 배의 상태로 보니 제대로 작동할 듯싶지도 않았다. 저런 배에 설치할 수 있는 포가 있다면 그것은 분명 신호용일 것이다.
아무튼 그들도 조선 수군을 발견했는지 방포 소리가 났다. 예측대로 신호용으로 가지고 다니는 한 두 문의 포에서 나는 소리였다.
“전투준비!”
이순신의 명이 아니더라도 각 전함에 배치된 천리경을 보고 부하들도 모두 적의 접근을 알고 있었던 듯 이미 전투 준비가 끝난 상황이었다.
곧 그들이 유효사거리인 100보(1,800m) 이내로 접근하자 이순신은 곧 포를 쏘도록 명했다.
“방포하라!”
“방포하라!”
이를 받아 판관 이영남이 소리 치고, 예하 전함에서 이를 받아 또 복창을 했다. 그런 부하들을 이순신이 예리한 눈으로 살피니, 모두 적의 모습 때문인지, 긴장감이라고는 털끝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곧 전고 소리 사납게 날뛰는 가운데 거대한 물기둥이 곳곳에서 솟구치고 적들은 가랑잎이 되어 이리저리 흔들리다, 몇 척은 그대로 포탄에 피격되어 선체가 두 동강이 나던지, 아니면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렇게 채 1각도 포격을 하지 않아서 적의 대장선에 백기가 내걸렸다. 이에 이순신은 곧 함포 사격을 중지시키고 적들을 맞으러 나갔다. 이순신의 대장선만이 아닌 전 전함이 명군의 배로 일시에 전진하고 있는 것이다.
곧 두 명의 명나라 장수가 조선 수군에 의해 나포되어 대장선으로 끌려왔다. 50대 중반의 중늙은이 하나와 70 고령에 가까운 백발의 늙은이 하나였다.
“조선 8도 수군통제사이신 이순신 장군님이시다. 꿇어라!”
이영남의 말에 두 사람 모두 전혀 그런 의사가 없는지 무릎을 꿇기는커녕, 그렇게 말하는 이영남을 매섭게 노려보았다.
“이 자들이 정말.........!”
화가 난 이영남이 강제로 둘을 무릎 꿇리려 덤벼들었다. 이에 이순신이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만류했다.
“그대로 두어라. 혹여 이름을 알 수 있겠소?”
과하지도 비굴하지도 않은 물음에 50대 중늙은이가 대답했다.
“명의 수군 도독(都督) 진린(陳璘)이다.”
말없이 이순신이 백발노인에게 시선을 건네자, 그가 노인답지 않게 우렁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부도독(副都督) 등자룡(鄧子龍)이라 하오.”
“흐흠........! 서로 총칼을 겨누게 되어 유감이나 이리 되었으니 어쩌겠소. 두 분 이하 모두 포로의 신분이 되었으니 모두 조선으로 가주셔야 되겠습니다.”
“차라리 여기서 죽여라.”
진린의 반발에 빙그레 웃은 이순신이 조선 속담을 인용해 말했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고 너무 성급하게 마음먹지 마오. 사노라면 때로 기회 한 번 안 찾아오겠소? 그러니 너무 성마르게 굴지 마오.”
이순신의 회유에 조금 마음이 움직였는지 이제 아무런 말이 없는 진린이었다. 이런 이들을 한 번 살핀 이순신이 말했다.
“이 판관!”
“네, 장군님!”
“이들에게 식사와 함께 술도 한 잔 내주어라. 마음이 심란할 테니 쓸데없이 피곤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고.”
“네, 장군님!”
곧 이들은 이영남에게 이끌려 다른 전함으로 옮겨졌다. 또한 명나라 포로들도 모두 아군에 인수되어 다른 전함에 옮겨지고, 저들의 배에는 아군의 일부가 승선했다. 비로소 한갓진 마음에 육지를 돌아보니 벌써 1사단이 그곳에 와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먼 거리임에도 소리쳐 묻는 이순신이었다.
“어떻게 되었소?”
“하하하.........! 전하의 명대로 다 이루었소.”
“감축 드립니다. 고생 많았고요.”
“무슨 말씀을, 다 이게 장군님의 덕이 아닌가 하오.”
“하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듣기에 아주 좋구료.”
이순신답지 않게 농담까지 한 그가 다시 제우쳐 물었다.
“점령한 천진성과 영안성은 어찌 되는 것이오?”
“우리 땅이 되었으니 아군을 진주시켜야지요.”
“당연히 중앙군이 남아야겠지요?”
“글쎄요. 그러긴 해야겠는데 이거.........!”
별로 내키지 않는지 우물쭈물하는 이일이었다.
“일단은 성을 접수하시고 승전보고와 함께 전하의 명에 따르도록 합시다.”
“좋은 방안이오.”
이렇게 둘의 협의가 끝나자 곧 후속조치가 이루어졌다.
일단은 1사단이 두 성에 나누어 진주하고, 일부의 수군도 모를 이들의 퇴로를 확보하기 위해 남았다.
그리고 익균의 5남 주상호(朱常浩)와 16세 난 영창공주는, 이순신의 배에 실려 조선으로 향하게 되었다. 물론 주익균이 날인한 문서도 함께 이순신 편에 보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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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한 날 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