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2 회: 황제의 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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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朕)이 조선(朝鮮) 왕(王)에게 몇 가지 하문(下問)하고자 한다. 한 점 거짓 없이 답하도록 하라.
첫째 금번 침범하였다는 야인여진의 땅이 과연 천자국의 영토임을 고는 몰랐던 고?
둘째 고가 항복받았다는 자들이 짐의 관작을 받은 지휘사임을 몰랐던 고?
셋째 그 땅에 침범함도 모자라 양계(兩界)를 세웠다는 것이 사실인지 답하라.
하고 알았던 몰랐던 이전으로 모두 원상회복하고 고는 세자를 천자 국으로 보내 순종할 것을 다짐하도록 하라. 만약 이에 따르지 않으면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인 즉 알아서 하라!]
“다 읽었느냐?”
“그렇소.”
“하하하.......! 알았다. 가서 똑바로 고 하거라. 과인은 그곳이 야인들의 땅임은 알아도 명국의 땅인지는 모르겠다. 하고 조선국은 주인 없는 땅을 공략하던 중 그들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 즉 군량미를 탈취하러 달려들기에 징치한 것뿐이다. 또 원상회복? 원래 야인들의 땅이었던 바, 명국은 야인 전체에서 손을 떼어야 할 것이다. 그들의 땅에 와서 간섭 말라. 또한 아국도 이제는 간섭 말라. 이젠 조공도 않을 것이다. 만약 과인의 말을 허투루 듣다가는 코가 깨지는 일이 있을 것이라고 가서, 똑바로 고 하거라. 됐느냐?
“네, 이놈.......! 무엄하다. 감히! 상국의 천자에게..........”
“맞아 죽기 싫으면 꼴값 떨지 말고 꺼져! 너 같은 놈들한테는 밥 한 끼 대접하는 것도 아깝다.”
“저, 저 ..........”
손가락질을 하다가 기어코 제 분을 못 이겨 뒤로 넘어가는 엄일괴였다.
“전하.......!”
“시끄럽소! 당신들 같으면 명국이 우리의 속국이 되어도 그들에게 빌붙어 오히려 자문을 구하려고 할 자들이오. 저 고구려부터 면면이 이어 내려온 대 조선이 언제부터 남의 나라 밑이나 닦아주고 해해연년 조공에 등짝이 휘어왔소? 다 이게 자신 스스로 주인 의식을 잃어버린 썩어 빠진 정신들 때문 아니 오? 과인이 분명 종전에 말했지요. 이제 대 조선에 명국은 간섭 말라고. 이제는 조공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진공(進貢)하지 않을 것이오. 하니 이제부터라도 정신들 똑바로 차리고 정무에 임하시오. 아닌 자들은 차제에 전부 물갈이 할 테니 그런 줄 아시오. 에엣.........!”
명나라를 먹어도 이런 썩은 정신으로는 제대로 명나라를 지배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게 하는 대신들의 한심한 작태에, 용포를 떨치고 일어나는 이진의 눈빛이 노엽다 못해 살기가 흐를 지경이었다. 이진이 물러가자 서로를 바라보는 제 대신들은 놀람을 넘어, 너무 황당하고 당혹스러운 일에 어찌 대처를 해야 할지 몰라 쩔쩔 매었다.
한편 또 한 번 어의 양예수의 신세를 져 깨어난 엄일괴는 이제 당혹스러움을 넘어 자신의 목숨을 근심해야 했다. 만약 자신이 받은 대우며, 들은 말을 그대로 고한다면 이는 자신이 미친놈 취급을 받거나, 곱사등이 황제의 노여움에 단칼에 효수(梟首)되어, 조리돌려질 것이 아무리 헤아려보아도 확실했다.
이제 자신이 조선의 국왕을 붙들고 하소연이라도 해야 할 판에 직면했음을 알았다. 오늘 자신의 눈으로 똑똑히 본 바와 같이, 이제 조선은 확실히 군강약신(君强弱臣)의 나라가 되었음을 알았다.
약한 신하들 붙들고 백 날 하소연 해봐야 이도 저도 아무 것도 안 될 것을 안 것이다. 그러니 국왕을 직접 뵙고 하소연 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이에 누구에게 국왕을 다시 뵈올 수 있을 지를 청하려 하는데, 삼시청장(三施廳長) 이항복이 접근해 왔다.
“대인!”
“국왕을 다시 만나고 싶소. 이대로 돌아갔다가는 내 목이 남아나질 않소.”
엄일괴의 초조한 말에 이항복이 어설픈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집이 여간 센 분이 아니오. 한 번 안 하신다면 다시 돌아보는 법이 없고, 그러니........ 돌아가시거든 알아서 적당히 고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소.”
“허허........! 이런 변이 있나! 혹 떼러 왔다가 혹 붙이고 가는 꼴 아닌 가!”
탄식해 마지않는 엄일괴를 지그시 바라보던 이항복이 말했다.
“소직의 말대로 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오. 그러니 그만 일어나셔서, 어디 가서 식사나 하러 갑시다.”
“지금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게 생겼소?”
“조선 속담에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이 있소. 또 아무리 멋진 원족이라도 경단이 빠지면 허기가 지는 법이오.”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주섬주섬 일어난 엄일괴가 이항복의 뒤를 따랐다.
* * *
그로부터 한 달 후.
자금성의 한 대전 안.
“뭐라고? 다시 고해 보거라!”
상체 비만에 하체 부실, 여기에 허리는 굽고 심한 우울증 앓고 있는 신종(神宗) 주익균(朱翊鈞)의 물음이었다. 황태자를 세우는 일로 대신들과 틀어진 뒤로 태정(怠政)을 행해, 여간해서는 신하들 앞에 얼굴을 비치지 않는 그였다.
그러나 국가 중대사는 환관들을 통해 보고 받고 있었다. 그런 그가 지금 엄일괴의 보고에 자신의 귀를 의심하며, 다시 고하라 독촉하지만 이는 못 들어서가 아니라, 자신의 귀를 의심할 정도의 보고 내용에 너무 놀란 때문이었다.
자신이 조선에서 껌뻑 죽는 환대를 받았으며, 조선 국왕 이진은 야인여진의 땅이 명국의 영토임을 몰라 침공하는 대죄를 범한 즉 백배 사죄하였으나, 영토의 원상회복에는 다소 시일이 걸릴 듯하다는 보고와 함께, 세자는 이제 겨우 세 살로 간신히 유모의 젖을 뗀 상태라 좀 더 장성한 후에나 아국에 입국이 가능할 듯하다고 보고를 했다.
그런대로 여기까지는 좋았다. 모두를 거짓으로 고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한 말이.
“이제는 조공을 행치 않는 다고.......... ”
당장 일 년에도 최소 서너 번 이상 오가는 진공 사절인데, 몇 개월 못가서 토설 날 일까지 거짓으로 고할 수는 없어서, 그 말을 하다가 안색이 변하는 황제를 본 것이다.
“철수하는데 시일이 걸리고 조공을 이제는 안 받친다고? 그 말이 한 점 거짓 없는 진실이렸다?”
“그렇사옵니다. 폐하!”
꼴 같지 않게 삼엄한 눈빛에 주눅이 든 엄일괴가 급히 부복해 덜덜 떨며 고했다.
“하하하.........! 으 하하하..........! 그 놈이 미친 것 아니더냐? 나이도 어리다는 놈이 벌써 망령이 난 거야 뭐야? 아니면 조선을 아국에 받치고 싶어 안날이 난 놈이거나......... 하하하.........!”
언제 웃었느냐는 듯 갑자기 얼음 가루가 풀풀 날릴 정도로 냉혹하게 변한 익균이 주위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게 아무도 없느냐?”
“태감 유용 대령이옵나이다. 황상!”
“당장 병조를 들라하라! 조선을 징치하고자 함이야!”
“네, 성상!”
태감 유용이 무릎걸음으로 물러나자 익균은 엄일괴를 보고 소리를 질렀다.
“꼴도 보기 싫으니 꺼져!”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뒷걸음으로 물러나는 엄일괴를 한 번 더 째려보던 익균이 이제는 자분한심을 못하고 제자리를 맴돌며 궁리에 들어갔다.
얼마 후 병조판서 석성(石星)이 부복했다.
“불러 계시옵니까? 폐하!”
말없이 석성을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던 익균이 말했다.
“이유 불문하고 조선을 쳐라. 1년 안에 조선을 짐의 수중에 받치지 못하면, 네 목이 달아날 줄 알아라! 상방보검 가져 오너라!”
“네이~! 황상!”
환관이 상방보검을 받치자 신종은 이를 받아 석성에게 주었다.
모든 지휘권을 석성에게 준다는 의미였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폐하!”
“나가봐!”
“네, 폐하!”
이때였다. 태감 유용이 급히 다가와 아뢰었다.
“하 삼성에 난리가 났습니다. 황상!”
“무슨 소리냐?”
“절강, 복건, 광동에 3만 왜구가 침입해 소란을 피우고 있다는 장계이옵니다. 황상!”
이때 또 환관 하나가 굽은 허리로 다가와 다급히 고했다.
“황상! 북변이옵니다. 황상!”
“그건 또 무슨 소리냐?”
“몽고 오랑캐가 대동에 나타나 소란을 피우고 있다하옵니다. 황상!”
“허허........! 이런, 이런.........! 나라꼴이 이게 뭐냐? 나라를 어떻게 다스리고 있기에 이 모양 이 꼴이야? 당장 내각수보를 들라 해라!”
“네이~! 황상!”
환관 하나가 종종걸음으로 급히 사라지자, 아직도 전내에 머물고 있는 석성에게 익균이 물었다..
“들었지?”
“네, 폐하!”
“조선 출병은 어떤 일이 있어도 미룰 수 없음이야. 허나 남방의 왜구를 토멸하고 북비(北匪)를 제거하는 일도 중요한 일. 동시에 이룰 수 있도록 내각수보와 잘 상의해서 인선하고 파병해!”
“알겠사옵니다. 폐하! 신 이만 물러가옵니다. 폐하!”
“빠른 시일 내에 결과 보고 해!”
“네, 폐하!”
석성이 뒷걸음으로 물러가지 익균은 구부정한 허리로 뒤뚱뒤뚱 전내를 거닐었다.
* * *
“전하! 명국에서 조선 정벌군 40만을 일으켰다는 급보입니다. 전하!”
천추전에서 모처럼 한가한 시간을 맞아 책을 보고 있는 이진에게 급히 광해가 들어와 하는 보고였다.
“하하하........! 무슨 얼어 죽을 40만? 임란 때도 그놈들은 10만도 안 되는 8만을 조선에 파병하면서도 40만이라고 수선피던 놈들이 그놈들이야. 코딱지만 한 것 하나 떨어져도 바위 덩어리가 떨어져 발등이 깨졌다고, 예로부터 과장에는 일가견이 있는 놈들 아닌가?”
“하오나 전하........!”
“알아, 알아, 무슨 말인지.........”
광해의 말을 손을 저어 만류한 이진이 말했다.
“대비는 철저히 해야겠지. 허나 저들도 겨울동안은 파병이 힘들 테고, 저들이 봄이 되어 조선을 침략하려 들면 우리는 수군으로 하여금 천진으로 상륙해 북경을 선제 타격하는 거야. 그러면 제깟 놈들이 북경 방어에 급급해 출병을 무슨 출병! 그 뿐인 줄 알아? 요동에서도 야인과 연합한 조선군이 수선을 치우면 저들은 제 앞가림하기도 급급할 거야. 그러니 너무 조급하게 굴지 말고 착실하게 들어오는 정보나 잘 관리해.”
“전하의 말씀대로 되었으면 아무 근심이 없겠나이다. 전하!”
“과인의 말대로 될 테니, 너무 걱정 말고 나가봐.”
“네, 전하!”
광해가 물러가자 책을 덮은 이진이 방안을 서성이며 생각에 잠겼다. 비록 동생 앞에서 큰소리는 쳤지만 이런 중대사는 한 점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래서 이진은 다시 한 번 경차관 파견하고 전령을 띄워 자신의 작전 계획을 점검했다.
또 하나의 더 좋은 책략이 떠올라 급히 야인여진에 말 1만 필을 사들여, 이일의 중앙군까지 기병화 시키도록 했다. 그리고 최악의 수를 가정해 조선 지방군 상황도 불시에 점검토록 했다.
이렇게 소란스러운 가운데 기나긴 겨울이 가고 봄이 오고 있었다. 남녘에도 북녘에도.
차별 없이 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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