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01 회: 황제의 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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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의 세 부족장이 돌아가는 것과 부딪치듯이 요동을 출발한 요동도사 엄일괴가 압록 강변에 도착했다. 이를 광해로부터 보고받은 이진이었지만 이진은 접반사고 지랄이고 이번에는 전혀 파견하지 않았다.
그런 줄도 모르고 엄일괴는 압록강 건너편 봉황성에 도착하여 꿈에 부풀어 있었다. 지난번 태감 유용이 10만 냥의 은자를 뜯어갔다는데, 자신은 더 많은 은자를 갈취해갈 꿈에 부풀어 잠도 못 이루고 있었다.
그러나 그 꿈은 압록강을 건너 의주 땅에 도착하는 순간 박살이 나고 말았다. 접반사는커녕 의주부윤조차 얼굴을 내밀지 않으니, 그야말로 얼굴이 욹그락 붉으락 칠면조 빛깔이 되었다가, 종내는 썩은 돼지 간 빛깔이 되어 검게 탔다.
이와 달리 또 조선 조정은 조정대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번연히 엄일괴가 요동을 출발해 지금쯤 의주 땅에 발을 들여놓고 있음을 알면서도 이제야 조회시간에 이를 이야기하니, 모두 누렇게 뜨기는 조선 중신이나 엄일괴나 마찬가지였다.
“전하! 항차 어찌 하시려고 상국에 대한 예의를 저버리시나이까?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예조판서 우성전의 말에 이진은 그저 싱긋이 웃기만 했다.
그러자 얼굴이 붉게 상기된 우성전이 다시 간했다.
“전하께옵서는 항차 열성조들이 피땀 흘려 이룩하신 사직을 아예 저버리려 하시는 것이옵니까?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제 대신 또한 심각한 안색이 되어 모두 부복해 재고를 청원했다.
“그만, 그만들 하오!”
짜증스럽게 외친 이진이 안색을 푸느라 풀며 말했다.
“저들의 주장이 뻔한데 과인이 영접할 일이 뭐 있소. 들어보나 마나 우리가 정벌한 야인들의 경계를 원위치 시키란 말 아니겠소. 언제까지 우리 조선이 그들의 고삐에 매어 질질 끌려 다녀야 하오. 과인은 더 이상 그렇게 못하니 그런 줄 아오.”
“하오시면 전하께옵서는 무슨 특단의 대책이라도 있는 것이옵니까?”
이조판서 김우옹의 물음에 이진이 비로소 빙긋이 웃으며 답했다.
“과인이 좀 무모한 구석이 없진 않아도 아무 대책도 일을 저지르는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여러 대신들이 과인보다 더 잘 알고 있을 것이오. 해서 드리는 말 이오만 달포 전에 여진 세 부족장과 긴급 회동한 것도 그 일환이고, 몽골에 파견한 경차관이라든가, 왜와 고산도에 띄운 전령 또한 이에 대한 대책들이니, 공경대부들은 너무 근심 마오.”
“그래도 어찌 명의 사신을 홀대하고 편히 발 뻗고 잠이 오리오. 지금이라도 영접사를 파견하는 것이 옳은 줄 아옵나이다. 전하!”
이판의 말에 이진의 눈썹이 성큼 치켜 올라가며 버럭 화를 낼 듯하다가, 한숨을 쉬며 말하는 이진이었다.
“휴우........! 접반사를 파견할 것 같았으면 처음부터 파견했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에.........”
“길을 잃어 다른 데로 갈 수도 있음입니다. 전하!”
“그가 얘요?”
굽히지 않고 주장하는 이판 때문에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톡 쏘는 이진이었다.
“하오시면 전하! 최소한 개성이라도 나가 맞아들이는 것이 설령 약소국이라도 예의일 것이옵니다. 전하!”
김우옹의 말에 ‘끙.........!’ 소리가 나도록 불편한 심기를 노정한 이진이 성가시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 그렇다면 예판 주관 하에 알아서 접대하시오. 그렇다고 과인보고 모화관이니, 태평관에 가서 맞으라는 말은 아예 마오. 제 발로 궁 안으로 들어오면 그때는 과인이 맞을 용의도 있소.”
“어허..........! 사직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되었는지........ 너무 오래 재직했음이야.........!”
지금까지 별로 의견을 피력치 않던 영의정 이발마저 긴 탄식과 함께 이진을 외면하니, 이것이 발단이 되어 또 다시 전부 고개를 처박는 제 대신들이었다.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과인은 궁에서 꼼짝도 안 할 테니 예판이 주관이 되어 그 자를 궁 안으로 끌고 들어오오. 안 들어오겠다면 멱살이라도 잡아서 끌고 오오.”
“망조가 들라니...........!”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막말을 뱉는 영의정 이발이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호판 이덕형이 아뢰었다.
“전하께옵서 금명간 사대교린(事大交隣) 정책을 깨실지라도, 이건 예가 아닌 것 같사옵니다. 우리 보다 훨씬 못한 어느 부족장이 와도 이런 대우는 하지 않을 것이옵니다. 그에 대한 공경은 아니더라도 적당한 예의는 지키시고, 당당히 주장하실 것은 주장하시는 게 합당한 도리가 아닌가 합니다. 전하!”
“끙.........!”
일리 있는 말에 신음하던 이진이 퉁명스럽게 내뱉었다.
“알겠소. 일단 도성 안으로 들이고 봅시다. 다음은 그때 이야기 하는 것으로 하고. 오늘은 이만 파합시다.”
말이 끝나자마자 먼저 용포를 떨치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이진이었다.
* * *
구린 돈 한 푼 만지지 못한 엄일괴가 한양 도성에 나타난 것은 그로부터 근 보름 만이었다. 도착하자마자 엄일괴는 입에 거품을 물었다.
“조선국왕은 어서 나와 상국의 천자를 대리하는 본 칙사를 맞지 못할까?”
“조금만 참으시옵소서. 아직 미처 끝나지 못한 일이 있사와.........”
예판 우성전이 연속 허리를 굽히며 달래기에 급급했다.
“아니 본 칙사를 맞는 일보다 조선에서 중한 일이 도대체 뭐요?”
“그야 그렇습니다만, 원체 다망하신지라 우선 차라도 한 잔 드시며 기다리시면.........”
“지금 상국의 천자를 기망하자는 거요, 뭐요?”
“절대, 절대 그럴 리가 없사옵니다. 대인!”
이진 때문에 안절부절 애를 태우는 예판 우성전이었다.
그 시간 이진은 예판만 태평관으로 가 맞으라 하고 제 중신들을 붙잡아 놓은 채, 대소하며 군기시 도제조 한효순이 올린 문면을 손에 쥐고 흔들며 말하고 있었다.
“하하하..........! 제 경들은 귀가 있으면 들으시오. 여러분들이 천것들이라고 천시하는 자들이 발명한 발명품에 대한 상주문이오. 과인이 읽어 내려갈 테니 듣고 느끼는 것이 있어야 할 것이오.”
이렇게 운을 뗀 이진이 한효순이 올린 보고서를 큰 소리로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금년 겨울에 ‘조천종(曺天宗)'이 군기시에서 ‘파진포(破陣砲)’를 만들은 바, 이 일을 품신하나이다. 지난달 초 신들이 마침 겨울철 화포를 쏘는 일 때문에 모화관에 모였다가 천종에게 시험 삼아 파진포를 쏘아 보도록 하니, 아륜철(牙輪鐵)이 돌과 서로 마찰하면서 금새 저절로 불이 일어나 철포가 조각이 나고 연기와 화염이 공중에 가득하였으며, 불덩이가 땅 위에 닿으면서 절반쯤 산을 불태웠습니다.
만일 적이 오는 길에 다수를 묻어 둔다면 승패의 변수에 크게 유익하겠사옵니다. 그리고 만들어 놓은 철포를 보니, 크기가 작은 솥만 하였으며 수철(水鐵)이 들어가는 용량도 많아야 1백여 근에 불과하고, 윤철이 든 덩치도 그리 무겁고 크지 않아, 합쳐서 한 마리의 말에 싣고도 멀리까지 가져갈 수 있사옵니다.
만드는 공역도 크지 않고 싸고 멀리 가기에도 매우 간편하므로, 적이 오는 길에 묻어 두었다가 스스로 부딪쳐 불이 나도록 하고, 우리 군대는 다만 요해처에 싸움을 대비해 묻어 두기만 하면 되옵니다. 가령 적들이 이 길을 경유하지 않으면 어찌할 수 없겠지만 만일 이 길로 경유한다면, 비록 수천 명의 군사일지라도 한 발의 포탄이면 소탕할 수 있으니, 싸움터의 무기로는 이보다 교묘한 것이 없사옵니다.
요즘 여러 가지 화포들은 각기 이로운 점과 해로운 점이 있는데, 이 포는 이로운 점만 있고 해로운 점이 없으니, 서둘러 만들어야 하겠사옵니다. 거기에 소요되는 잡다한 물품은 훈련도감에서 일일이 갖추어 주도록 하고, 사환(使喚)과 군인은 병조가 정하여 주도록 해야 하겠사옵니다.
그리고 화포의 장인(匠人) 가운데 영리한 한두 사람을 뽑아 장수(匠手) 조천종에게 소속시켜 제조하는 묘법을 배우도록 하고, 천종은 선발 된지 얼마 안 된 외방 사람으로, 식량을 싸가지고 한양에 머무는 것이 극히 어려우니, 요포(料布)를 우선 제급(題給)해야 하겠사옵니다.
화포를 만든 뒤에는 두세 번 시험적으로 쏘아 보아 자세히 그 묘법을 살핀 뒤, 철이 나는 외방으로 나누어 보내어 많은 수량을 만들게 하여, 싸움터의 무기로 준비해 두는 것이 마땅하겠사옵니다. 삼가 아뢰옵나이다. 하하하.........! 어떻소?”
옛날 말이라 이해하기 번잡하나, 그 주된 내용은 톱니바퀴와 부싯돌을 이용해 만든 지뢰인 파진포(破陣砲)가 그 성능이 뛰어나니 많이 만들어 비치하는 것이 좋겠다는 건의서였던 것이다.
현대전에나 볼 수 있는 지뢰를 만들어 내다니 이진으로서도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한 일에, 그 즐거움은 말 할 수 없었다. 해서 이진은 여전히 웃음이 가시지 않은 용안으로 명했다.
“모든 것을 여기 올린 내용대로 조처하되, 과인은 조천중을 군기시 종3품 첨정(僉正)에 봉해 그 공을 기린다. 하고 상급 일천 냥을 하사한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전하, 일을 모두 마치셨으면 태평관으로 납시어 명국 칙사를 맞아들이심이..........”
이판 김우옹의 눈치를 보며 하는 말에 이진이 버럭 화를 내었다.
“전할 내용이 있으면 제 발로 걸어 들어와, 전하고 가라고 해!”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또 일제히 부복하여 아뢰는 자들 가운데에는 금방 나라가 망하기라도 하는 듯 울음을 터트리는 자들까지 있었다.
“쯧쯧쯧.........!”
혀를 찬 이진이 마지못해 무거운 엉덩이를 들었다. 그리고 제 중신들을 이끌고 태평관으로 향했다.
“저기, 저기 연이 보이질 않사옵니까?”
이진은 여간해서 평소 타지 않던 연을 타고 사신을 맞으러 나갔다. 말이나 타고 올 줄 알았는데, 이 모양이 또 엄일괴의 속을 뒤집어 놓았다.
“어서 내리지 못할까? 감히 상국의 칙사를 맞는 자리에...........”
‘꼴값 좀 그만 떨어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뱉자면 이 말이 튀어나가야 하나, 이진은 어느 동네 개가 짖느냐고 태연히 그 앞까지 가서 연에서 내렸다.
이 행동에 엄일괴가 분노를 못 이겨 마치 풍 맞은 놈 마냥 와들와들 떨었다. 그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던 이진이 한 마디 툭 던졌다.
“어디 아프오?”
“감히..........!”
감이 어느 안전이라고 자신의 콧구멍 쑤실까 겁날 정도로 삿대질을 해대자, 참고 참았던 이진도 화가 벌컥 났다.
“지랄 그만 떨고 따라와!”
이 말에 대부분의 대신들이 얼굴이 노랗게 변해 다리가 풀려 다 제자리에 주저앉고, 예판 우성전은 아예 실신하여 들 것에 실려 나갔다.
그러나 엄일괴의 표정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었다. 정말 온 몸을 와들와들 떨며 주저앉는데 금방이라도 쇼크사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어의 게 있는 가?”
“네, 양예수(楊禮壽) 등대이옵나이다. 전하!”
“치료하여 사정전으로 데리고 오시오.”
“네, 전하!”
그리고 휭 하니 다시 연에 올라 궁성으로 향하니 제 대신 모두 경악하여, 그 자리에서 차마 일어나지를 못했다. 명을 치기로 작정한 이상 이번 기회에 당한 것을 철저히 복수하는 이진이었다.
* * *
양예수의 의술이 고명했던지 엄일괴가 한풀 꺾인 기세로 근정전도 아닌 사정전에 나타났다.
“읽을 것 있으면 읽도록 해라!”
이진의 너무 황당한 처사에 엄일괴는 아예 입이 얼어붙었고, 따라 들어온 제 대신들은 여기 저기서 실신해 실려 나가는 자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오배에 삼 고두를 하고 맞아도 시원치 않을 판에 자신은 버젓이 옥좌에 앉아, 명의 칙사를 그대로 세워둔 채 칙서를 읽으라니, 모두 이진이 미쳤나 하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못해 기절한 것이다.
여기서 그치기 않고 한 술 더 뜨는 이진이었다.
“네, 이놈 어서 읽지 못할까! 어느 안전이라고 눈을 부라리고..........”
이에 짤끔한 엄일괴가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칙서를 펼쳐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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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많은 분들의 축하와 후원에 감사드립니다!^^
늘 좋은 일만 가득 하시길........!^^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