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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100화 (100/210)

< -- 100 회: 황제의 꿈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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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은 북방에서의 승전 보고를 받자 곧 후속 조치를 취했다.

흥개호(興凱湖)를 중심으로 동쪽 즉 현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하바로브스크 위 아무르 강까지를 연해도(沿海道)라 칭하고 그 서쪽 동해여진족이 차지했던 영토 전체를 영흥도(永興道)라 칭하여, 조선 영토에 정식으로 편입하였다.

또 금번 군량 탈취사건의 주범 후르하부의 부족장 파아손(把兒遜) 이하 1만 전사를 이일의 1사단에 배속시켜 수군 훈련을 받도록 했다. 북해도 정벌에 대비케 함이었다. 이로써 기병이 수전은 물론 육전까지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하겠다.

워지부의 부족장 아구다(阿究爹)의 1만 전사는 권율이 거느린 3사단에 편입시켜 영흥도를 사수하되, 일부의 군사를 내어 신립의 북방 개척을 돕도록 했다. 또 영흥도의 감영(監營)  으로는 동해 여진의 부락 중에서 가장 번성했던, 영고탑(寧古塔) 즉 지금의 중국 령 영안(寧安)에 설치토록 했다.

그리고 남은 하나 와르카부의 부족장 낭패아한(浪孛兒罕)의 1만 전사는 신립 휘하에 배속시켜 함께 아무르강 유역까지 개척토록 조처했다. 그리고 신립에게는 특별히 당부하여 지금의 러시아령 하바로브스크에는 최북단 성 하나를 더 축조토록 했으며, 그곳에 연해도의 감영을 설치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도시 명은 도의 이름을 따서 연해(沿海)로 하도록 했다.

이어 두 감영의 관찰사로는 각각 황진(黃進) 한응인(韓應寅)을 임명하였다. 황진은 본디 무관 출신으로 혹시 권율이 자리를 비울 시에 대비해 영흥도를 맡겼고, 한응인은 문신이지만 원 역사에서 제도도순찰사(諸道都巡察使)로 임진강 방어에도 동원되었던 사람이기도 해 연해도를 맡겼다.

황진은 본래가 무관으로 원 역사에서 용인전투에서는 패했지만 이치(梨峙)의 전투에서 대공을 세웠고, 죽산성의 왜군과 대치중 왜군이 안산 성을 탈취하고자, 죽산 성을 나와 안성에 진군하자, 이들과 맞서 싸우며 죽산 성을 점령하였고, 퇴각하는 왜군을 상주까지 추격하여 대파시킨 공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진주성 2차 전투에 참가하여 순절했다.

한응인은 호조참의에 도승지까지 역임한 인물이었다. 명나라에도 몇 차례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렇게 두 도(道)를 만들어 조선을 11도로 만들었지만 문제는 두 도는 드넓은 면적에 비해 인구가 희박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진은 하삼도 즉 전라, 경상, 충청 이남의 감영에 명해 이곳으로 이주할 자들을 모집토록 했다. 조건은 개척한 땅을 무상으로 준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자원자는 수백가구에 지나지 않았다.

이에 이진은 각각 1만 가구씩 강제 할당하니, 이에 따라 이듬해 봄 3만 가구가 강제 차출되어, 북방에도 조선의 영농 기술을 접목시킬 수 있게 되었다.

차출된 자들의 대부분이 소작지가 없거나, 있어봐야 작은 소작 규모로 입에 풀칠하기도 힘든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신분상으로는 또 대부분이 양인들이었다. 외거노비도 응하면 기회를 주려하였으나 주인들이 허락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 * *

조선의 두만강 이북에 양 도(兩 道)를 설치한 일은 동북아 정치지형에 중대한 변수로 작용하였다. 이는 곧 조선의 명(明)에 대한 항명(抗明)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조선에 항복한 세 부족장이 명의 위소제(衛所制)에서, 지휘사(指揮使)를 차지하고 있던 인물들을 굴복시킨 것이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명 조정은 이를 명국의 영토에 대한 조선의 간접 침략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결국 명 조정은 요동도사(遼東都司) 엄일괴(嚴一魁)를 칙사(勅使) 겸 사문관(査問官)으로 파견해 사실 여부를 조사토록 했다. 이진은 이미 이런 일이 벌어질 줄 알고, 자신이 거느리고 있는 모사집단과 상의하여 사전에 여로 경로로 손을 써놓았다.

그러니까 요동도사 엄일괴가 요동을 출발하기 전, 즉 야인 땅을 조선의 영토로 편입하기 전, 이미 이진이 임명한 두 명의 경차관이 북방의 대여섯 군데를 순회하도록 했다. 뿐만 아니라 이순신은 물론 왜의 원균 또 고산도의 이억기에게도 이진의 명을 전하는 파발이 띄워졌다.

그로부터 한 달 후.

그러니까 엄일괴가 황제의 칙명을 받고 요동을 출발할 무렵 조선의 도성 한양에는 세 명의 인물이 도착해 이진의 환대를 받고 있었다.

건주여진의 누루하치와 해서여진의 두 부족장이었다. 엽혁부의 칭기야누(淸佳努)와 합달부의 양기누(揚吉努)가 그들이었다. 세 부족장들은 만주에 비하면 봄날이라지만 날씨가 추워 이진은 천추전에서 연회를 베풀고 있었다.

특별히 이 연회에는 인질의 성격으로 보내진 이들의 딸들도 배석했으니 누루하치의 딸 고륜동과공주(固倫東果公主)와 칭기야누의 딸 청가인(淸佳人), 양기누의 딸 양길련(揚吉蓮)이 그녀들이었다.

벌써 술이 몇 순배 돌아 불콰한 자리에서 이진이 또 다시 입을 열었다.

“여기 앉아 있는 따님들에게 물어보면 알겠지만 과인은 아직 이 여인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소. 이는 우리의 의(義)가 깨지는 날이 온다면, 그녀들을 다치지 않게 고이 돌려보내기 위함이었소.”

“하면 조선의 국왕께서는 항상 우리의 신의를 의심하고 있었다는 것 아니오?”

올해 39살의 누루하치가 굳은 얼굴로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소. 그대 또한 벌써 명의 용호장군(龍虎將軍)으로 임명받아 날로 성가를 드높이고 있는 작금 아니오?”

“물론 우리도 양다리를 걸쳤다는 것은 인정하오. 하지만 우리의 입장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소. 명을 등지고는 우리의 지위 자체를 유지하기가 곤란하기 때문이오.”

“과인도 십분 이해하나 이제 택일의 시점이 오지 않았나 싶소. 해서 과인은 명에서는 인정을 하지 않지만 그대들을 칸(汗)으로 인정한다고 했소.”

“그것은 고마우나 참으로 진퇴양난이 아닐 수 없소이다. 주상전하!”

누루하치가 성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금번에 우리의 무력을 보지 않았소. 야인여진이 단번에 일패도지하는 것을?”

“솔직히 말하죠. 조선이 그런 국력이 되지 않았다면, 아무리 주성전하께서 청하셨다 해도 우리는 여길 오지 않았을 것이오.”

“흐흠..........! 솔직해서 좋소만, 우리의 수군은 더욱 막강하오. 소문 들으셨겠죠? 들!”

“물론이외다.”

첩보전의 귀재 누루하치가 답변을 하고 나머지 두 인물은 고개만 끄덕였다.

“해서 말 이오만 아국의 수군이 바닷길을 열어 바로 자금성으로 달려든다면 무슨 일이 벌어지겠소?”

“하하하........! 명의 황제도 오줌을 질금질금 싸지 않을까요?”

“하하하..........! 역시 영웅은 보는 눈이 있소.”

누루하치의 말에 대소하며 추어주는 이진이었다. 그러나 하나 즐거운 빛 없이 누루하치가 말했다.

“하지만 그들의 저력 막강하니.........”

“그러니 조선과 여진이 손을 잡자는 것 아니오. 우리가 손을 맞잡으면 명국인들 못 막겠소?”

“흐흠.........!”

침음하며 생각에 잠기는 누루하치였다.

이진은 그런 그에게 생각할 시간 여유를 주지 않고 입을 열었다.

“차제에 그들이 우리에게 씌운 고삐와 코뚜레를 과감히 부셔야 하오. 아니 쇠말뚝을 뽑아 버려야하오.”

힘주어 강하게 말한 이진의 열변이 이어졌다.

“그들이 우리에게 기미(羈縻)정책을 취함으로써 그들에게는 다섯 가지 이점이 있소. 첫째 소를 고삐에 묶어 둠으로써 소가 고삐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둘째 고삐에 묶인 소는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진다. 셋째 소를 보고 나타난 범은 소를 노리지 결코 소 주인을 노리지 않는다. 즉 저들은 항상 직접적인 피해를 입지 않소. 넷째 분쟁이 발생했을 때는 최소한 소의 위치가 경계 지점이 되도록 한다. 다섯째 향후 소의 기득권을 주장할 근거를 마련해 둔다. 이것이 우리에게 적용하는 기미정책의 효과란 말이오. 더 들어보시오.”

“우리의 정보부서에서 입수한 저들의 자체 평가를 보면 이렇소. 기미하고 통어(統禦)하는 것만이 최선의 책략이다. 부족들이 분열되면 저들은 약화되어 지배하기 쉽고, 부족들이 서로 떨어져 있게 되면 서로 소원해저 복속하기 쉽다. 우리는 이들 각자를 영웅처럼 느끼게 하고 자기네끼리 싸우게 해야 한다. 만이(蠻夷)들이 내부 상쟁에 빠지는 것이 아국으로서는 기회가 된다. 어떻소?”

이진의 말에 두 부족장은 얼굴을 벌겋게 변했고 누루하치는 심각한 안색이었다.

“매일 이렇게 당하고만 살아야겠소?”

“..........”

이진의 물음에도 누루하치는 여전히 생각 속에 빠져있고 두 부족장은 말이 없었다.

“과인의 말을 계속 더 들어보오. 남의 절강 쪽에서는 왜구가 날뛰고, 장성 쪽에서는 몽골족이 소란을 피우오. 여기에 조선 수군은 천진으로 상륙해 바로 북경을 직격하오. 요동 방면에서는 세 부족은 물론 조선의 중앙군이 산해관을 향해 움직이오. 이 정도 되면 저절로 손발이 어지러워져, 하하하.........! 가히 볼만할 것이오.”

비로소 이진의 말이 실감이 나는지 누루하치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좋소! 주상전하의 명에 따르리다. 그러나 산해관까지의 진격은 무리고 우선 각각 저들의 성채 하나씩을 차지하여, 우리의 결의를 보여주도록 하죠. 이 기회가 아니면 저들의 고삐에 영원히 메어있어야 할 느낌이 들어서 말이오.”

“역시 장부는 틀리오. 우리가 제일 남쪽 요양성(遼陽城)을 맡으리다. 건주의 칸께서는 청하성(淸下城), 두 분 칸은 합동하여 무순성(撫順城)을 맡으시오.”

“명을 받드오!”

누루하치가 결연히 말하는데 반해, 두 사람은 아직도 우물쭈물 이었다.

“두 분께서는 의향이 없소?”

“그야........!”

“동참하도록 하죠. 하면 내 딸도 전하의 빈이 되는 것이옵니까?”

엽혁부 칭기야누(淸佳努)의 말에 흔연한 웃음을 띠운 이진이 대소하며 말했다.

“하하하........! 물론이오.”

이 말에 세 공주의 얼굴에 급 빨개졌다.

“송 군사!”

“네, 전하!”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송익필을 부른 이진이 말했다.

“연판장 준비하오.”

“네, 전하!”

곧 연판장이 준비되고 서로 하나가 되었음을 문서에 수결하는 것으로, 조선과 야인 간에 굳건한 동맹이 맺어졌다.

“자, 모두 피로써 맹세했으니 이제 즐기는 일만 남았구료. 과인이 한 잔씩 칠 테니, 흔쾌한 기분으로 즐겨봅시다.”

“동감입니다. 전하!”

비로소 누루하치도 낯빛을 풀며 표정이 많이 부드러워졌다.

이에 이진 또한 만면에 웃음을 띠고 세 여인을 보고 말했다.

“과인의 곁으로 가까이 오오.”

이진의 부름에 세 여인이 황급히 이진의 곁으로 몰려들었다.

“우선 고륜동과공주(固倫東果公主)가 한 잔을 치고, 다음 잔은 청가인(淸佳人) 공주, 다음 잔은 양길련(揚吉蓮) 공주가 과인의 잔에 한 잔씩 치도록 하오.”

“네, 전하!”

공손히 대답하는 세 공주의 예쁜 얼굴에 또 복사꽃이 만발하니 보기가 좋았다.

이진의 말대로 고륜동과공주가 조심스럽게 잔을 채우자 이를 치켜든 이진이 말했다.

“자, 건배!”

“대 조선의 무궁한 영광을 위하여!”

“만인 여러분들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서로 축원하며 잔을 단숨에 털어 넣는 네 사람이었다. 각자의 잔이 비자 이진은 이번에는 자신들의 부친에게 한 잔씩 따라 올리도록 명했다. 이에 세 공주가 이진의 명에 의해 바삐 움직였다. 그리고 청가인은 또 이진의 잔에도 술을 치느라 누구보다도 바빴다.

이 잔을 들고 또 다시 건배를 하는 이진이었다. 잔을 비우고, 잔을 내려놓자마자 누루하치가 물었다.

“제가 알고 있기로 전하께서 몽골을 움직이시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사오나, 과연 왜에도 세력이 미치시는지요?”

이진이 남쪽 절강의 왜구 어쩌구 떠든 것을 단단히 기억하고 있다가 묻는 모양이었다.

“이 조선과 명국의 해안은 물론 왜, 저 멀리 유구 해역까지 우리의 수군력이 미치고 있소. 하여, 왜에서 몇 만 잡아다 명에 풀어놓는 것은 일도 아니오.”

“하면 석년이나 작금 가끔씩 준동하는 남쪽의 왜구란 것들이........”

“그만......... 그 쯤 하면 됐소.”

더 위험한 말이 나올까봐 손을 들어 제지하는 이진이었다.

“하하하........!”

그러나 누루하치가 이진의 말뜻을 알아듣고 대소를 터트렸다. 그러나 이진은 웃지 않고 말했다.

“과인의 말에는 한 점 과장된 점이 없으니 그리 알고....... 신의가 없으면 설 수가 없음이니(無信不立)........ 과인의 말을 꼭 기억해야 하오.”

위엄있는 얼굴로 강조한 이진이 표정을 풀며 말했다.

“자, 이제 무거운 이야기는 그만 하고 함께 이 밤을 즐겨봅시다.”

“네, 전하!”

세 사람의 대답을 들으며 이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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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베풀어주신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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