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95 회: 선제공격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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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축연은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진의 말도 이어지고 있었다.
“이제 조선이 명은 물론 세계 제1의 해상강국이 되어 해로를 장악하고 있는 작금, 과인은 유구국과 섬라에도 통신사를 파견하려 하오. 이는 과거와 같이 왜구들의 준동으로 바닷길이 끊길 염려가 없을 것인즉, 예와 같이 그들이 우리에게 조공도 받치고 우리 또한 이들을 통해 물소 뿔이라든가 필요로 하는 자원을 서로 교역하며, 사이좋게 지내고자 함이오. 허나 우리의 말을 듣지 않으면........ 흥........! 과인은 더 이상 생각하기도 싫소. 그런 지들 아시고 두 나라에 파견할 통신사에 대해서는 논의하여 주청하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부복하여 아뢰는 제 대신들을 흐뭇한 낯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돌연 큰 소리로 명했다.
“자, 이제 풍악을 크게 울리고 무희와 무동들은 나가 춤을 추어라, 하고 제 대신들은 각자 잔을 높이 치켜들라. 하하하........! 기분 좋다!”
그 말이 끝나고도 한동안 기분 좋은 웃음을 흘리던 이진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옥병을 들었다. 그리고 손수 잔까지 챙겨 왕대비 박 씨에게 말했다.
“어마마마께서도 한 잔 드시옵소서. 오늘 같이 즐거운 날 마시지 않으면 언제 즐겨보리오. 그렇지 않사옵니까? 어마마마!”
“호호호.......! 주상이 이 어미께 올리는 잔 기꺼이 받으리다. 주상의 말대로 오늘 같은 날 아니면 언제 이렇게 경사스러운 잔을 받아보겠소. 고맙소. 주상!”
“하하하.........! 소자도 크게 기쁘옵니다. 어마마마!”
말과 함께 옥배에 한 잔 가득 홍주를 따라 올리는 이진이었다. 이어 이진은 중전과 빈들을 바라보며 말했다.
“중전과 빈들도 각자의 잔에 술을 치오. 과인이 따라주길 바라는 것은 아니겠지? 하하하.........!”
대소를 터트리던 이진이 쥐고 있던 옥병을 흔들어보더니 술이 남은 것을 확인하고는 옆에 있는 이순신에게 말했다.
“잔을 드오. 그리고 과인의 잔을 한 잔 받으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얼른 부복하고 일어나더니 재빨리 돌아서서 술잔을 비우는 이순신이었다. 그러다가 체하지나 않을까 두려울 정도로 빠른 동작이었다.
이순신이 넓은 소매를 단속하여 손을 내밀고는 내밀히 말했다.
“전하께 드릴 말씀이 있사옵니다. 전하!”
“무슨 말이오?”
“여기서보다는 연회가 파하고 난 다음 말씀 드리고 싶사옵니다. 전하!”
“그럼 그렇게 하오.”
“이일 장군도 남겼으면 좋겠사옵니다. 전하!”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합시다.”
허락한 이진이 손수 잔을 쳐 치켜들자 제 대신들도 잔을 들어올렸다.
“대 조선의 무궁한 발전과 영광을 위하여!”
“천세, 천세, 천 천세!”
“하하하.........!”
정말 기쁜지 오늘 따라 웃음이 많은 이진이었다.
* * *
연회가 파하고 물러간 자리.
편전에서는 조촐한 주안상을 앞에다 두고 이순신과 이일이 부복해 있었다.
“가까이 오오.”
둘을 가까이 부른 이진은 각자의 잔에 술을 한 잔씩 쳐주고 스스로의 잔에도 한 잔을 따랐다.
“드시오.”
“황공하옵니다. 전하!”
둘이 술잔을 드는 것을 보며 이진도 자신의 잔을 들어 마셨다.
잔을 내려놓은 이진이 그윽한 눈으로 이순신을 보고 말했다.
“할 말이 있다더니 해보오.”
“네, 전하! 다름이 아니오라 북해도 정벌 건 말입니다.”
“계속해 보오.”
“저희 수군이 아닌 이일 장군의 1사단이 정복을 했으면 하고 청하는 바이옵니다. 전하!”
“무슨 뜻이오?”
“아무래도 하선하면 그들이 우리에게 순순히 복속된다고 하기는 힘들 터. 하면 육상의 전투가 필히 벌어질 터인데, 당연히 저의 수군보다는 중앙군이 지상의 전투는 강하지 않겠사옵니까? 전하!”
“그야 그렇지요.”
이진의 순순한 동의에 힘을 얻은 듯 이순신의 말소리에도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면 저희 수군이 주축이 되어 이 장군의 부대를 훈련시키는 것이옵니다. 이렇게 되면 하시라도 스스로 바다를 왕래하며 전하의 명을 받들 수 있을 터. 이것이 더 좋은 방안이 아닌가 하여 삼가 고하옵니다. 전하!”
“흐흠.........! 좋은 방안이긴 방안인데.........”
이진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이일을 바라보자 이일이 급히 부복해 아뢰었다.
“소직 또한 저희 1사단을 바다 육지 가릴 것 없는 전천후 군대로 만들고 싶사옵니다. 전하! 그렇게 되어야만 전하의 뜻에 부응할 터. 그것이 더 좋은 방법이 아닌 가 아뢰옵니다. 전하!”
“좋소! 하면 이 장군께서 이일 장군의 중앙군을 해전에 익숙해질 수 있도록 책임지고 가르치시오. 하고 훈련이 끝나는 대로 북해도로 출병하여 그곳을 아국의 영토로 복속시키도록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부복한 둘을 인자한 눈으로 내려다보던 이진이 조용히 입을 떼었다.
“점령 시의 주의 사항에 대해 이 장군께 드릴 말이 있소.”
“세이 경청하겠나이다. 전하!”
“과인이 경축연에서도 말하길 북해도를 아국 백성으로 편입한다고 했소. 이는 그들을 따뜻이 대해야만 가능한 일이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지요?”
“네, 전하!”
“그러기 위해서는 출항할 때부터 우리 군의 군량은 미리미리 챙겨가야 하오. 현지 조달을 한다는 것은 바로 민폐와 직결되는 것인즉, 즉각 순종하던 자들까지 저항을 불러오게 될 것이오. 하니 틀림없이 이를 명심하고 행해야 할 것이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하고 그들이 완전 복속하기 전까지는 가급적 그들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되오. 필요하면 교역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말이오. 물론 완전 복속이 되면 그들도 조세와 군역의 의무를 져야지만, 그 전까지는 저항을 불러오지 않도록 부하 장졸들을 엄히 다루도록 하오.”
“명심하겠사옵니다. 전하!”
“자, 과인의 할 말은 다 했고, 더 할 말이 있으면 하시오. 없으면 술이나 더 마시고 가도록 하고.”
이진의 말이 끝나자 서로 얼굴을 마주보나 특별한 할 말은 없는 듯 고개를 끄덕인 둘이 스스로의 잔에 술을 따랐다.
원 역사에서 임진왜란 당시 처음 왜군이 조선을 점령할 당시 점령 전을 위한 전투 중 아군을 살상한 외에는, 크게 민간인을 학살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달래고 잘 해주려 했다. 이는 저들이 조선을 영구히 저들의 영토로 편입시키기 위한, 인심을 얻기 위한 술책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사전에 철저히 계획된 행동이었다.
그러나 저들이 철수할 무렵에는 이와 반대의 행동을 했다. 거슬리면 양민이고 뭐고 무차별 학살을 했던 것이다. 종전까지만 해도 제대로 군량이 공급되지 않자, 자신들의 군량 공급을 위한 조세 저항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잘 해주던 자들이 완전히 180도로 변해 행동하게 되니, 그때 학살된 민간인들이 무척 많았었다.
이와 같이 정복민을 제대로 흡수하려면 처음부터 반감을 사는 행동을 해서는 제대로 통치도 안 되고, 끊임없는 그들의 저항에 부딪쳐 아주 피곤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잘 기억하고 있던 이진이 이일에게 특별히 당부를 해, 북해도 원주민들에게는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었던 것이다.
아무튼 모두 할 이야기가 끝났으므로 이각 정도 술을 더 마시던 그들도 물러갔다.
* * *
서서히 더위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하는 오월의 끝자락.
신립이 거느린 중앙군 2사단 1만은 지금 이진이 해삼진(海蔘鎭)이라 명명한 블라디보스토크에 도착해 있었다.
멀리 동해 바다의 푸른 물을 끼고 군데군데 수백 호의 촌락이 조성되어 있었다. 이를 바라보는 신립의 입가에 헛웃음이 맺혔다. 마치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휘두르러 온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수백 호의 어촌부락에 대항할 장정이 있으면 얼마나 있겠는가? 이런 곳에 1만 대군을 끌고 왔으니 전투의지가 사라지는 느낌을 받는 신립이었다. 하지만 이를 부하 장졸들 앞에서 나타내서는 안 될 일. 호랑이는 토끼를 잡는데도 최선을 다하지 않는다 하지 않는가.
곧 표정을 수습한 신립이 제 장들에게 명했다.
“끝까지 반항하는 자들은 사살해도 좋다. 그러나 어명이 계셨다. 이들도 우리 백성으로 편입할 터. 저항하지 않는 자들을 함부로 살상하지 말 것이며, 더 더군다나 이들의 재산에 손을 대어서는 절대 안 된다. 닭 한 마리, 개새끼 한 마리라도 함부로 손을 대는 자는 군법에 회부하여 엄벌에 처할 것인즉, 이를 명심하고 각자 위치로 가서 작전 개시하라!”
“네, 장군님!”
제장들이 명을 받고 흩어지자 신립은 뒷짐을 쥐고 느긋하게 푸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잠시 후.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조선 중앙군 8,500명(화기 및 군량운송부대 제외)이 일제히 점점 흩어진 농가로 달려들었다. 그러나 촌락은 지금 개새끼 한 마리 얼씬 하지 않는 그 자체였다. 모두 집안으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꽁꽁 숨었기 때문이었다.
하다못해 이곳에서 많이 난다는 해삼을 잡기 위해 바닷가에서 물질을 하던 해녀들도 놀라 이 순간만은 다시 물속으로 잠수해 들어갔다. 그러나 항상 예외는 있는 법. 수십 명의 말을 탄 야인 기병들이 조선군을 향해 돌진해왔다.
참으로 용감한 자들이라 아니할 수 없었다. 최소 몇 백대 일은 될 텐데, 도저히 당적이 안 되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덤벼드는 그 용기가 가상할 정도였다. 아무튼 이를 맞아 훈련받은 대로 거마 창병들이 일제히 제일 선두로 나서서 빽빽이 창끝을 세우는데, 후미에는 포수들이 일제히 오열로 서서 조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탕 탕 탕!
일렬이 사격을 하고 주저앉자 이열이 일어서서 사격을 하고 앉고, 차례로 오열이 순차적으로 사격을 하는 동안, 일렬은 다시 장전을 하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오열까지의 일제 사격에서 채 열 명도 살아남지 못했지만, 그들 또한 고슴도치처럼 세운 거마창 밀집지역을 뚫지 못하고 일제히 그 숲에 갇혀 허둥거렸다. 이때 궁수들이 나타나 말을 향해 일제 사격을 가하니 창 숲으로 곤두박질 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만........!”
이를 유심히 살피고 있던 신립의 명에 일시 전선(?)에 평화가 깃들고 아직도 흩어지지 않은 매캐한 화약연기만이 맴도는 속에서, 신립은 손짓으로 그들을 생포해오도록 했다.
이에 도를 든 살수(殺手)들이 일제히 기동하여 그들을 포박해 오는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단 생존자 일곱 명. 포승줄에 묶이어 신립 앞에 무릎 꿇려진 그들이었다.
“너무 무모하지 않느냐?”
오랜 북방 생활로 만주어에도 능한 신립의 물음에 젊은 장정 하나가 침을 퉤 뱉으며 말했다.
“우리의 생활 터전을 위협하는 자들은 누구도 용서할 수 없다!”
“하하하......! 그 기개가 장하다. 허나 이제 이곳은 아국의 영토가 되었고, 너희들은 조선의 백성이 되었다. 조선의 보호를 받으며 생업에 종사하면 된다.”
“우리는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고 지금과 같이 살고 싶다. 다들 물러가라.”
다른 자의 외침에 신립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렇게는 안 된다. 아니래도 여진 내부에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작금이다. 이제는 어디에 소속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 그러니 잘 생각해서 판단해라. 만약 조선에 귀의한다면 조선 백성과 똑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며, 아니면 죽일 수밖에 없다. 또한 군문에 들기를 원하면 공에 따라 장군까지 승진이 가능하다.”
신립의 말에 서로를 바라보며 의중을 묻는 그들이었다. 당장 이들에게 굽히고 살 것인지, 아니면 저항하다가 초개(草芥)와 같이 사라질 것인지를 결정해야 하는 숨 막히는 순간이 온 것이다.
신립은 이들이 편하게 논의할 수 있도록 제장들과 함께 자리를 비켜주었다. 그리고 향 반 자루 탈시간이 흐르자 제장들을 거느리고 그곳으로 갔다. 신립이 엄한 표정으로 말했다.
“결정하라!”
“정말 큰 공을 세우면 장군까지 승진이 가능하오?”
“당금 주상전하의 철칙이시다. 논공행상에 있어서 만은 하등 신분의 차별을 두지 않을 뿐더러 철저한 논공해상으로 우리 군을 부리고 계시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좋소! 귀의하여 군에 들고 싶소!”
“환영한다! 하하하........!”
신립은 대소하며 손짓으로 그들의 결박을 풀어주도록 했다.
그리고 천천히 그 자리를 떠났다.
해가 저물고 있었다. 장엄한 노을이 구릉과 드넓은 바다에 내려앉고 물새들도 보금자리를 찾아들고 있는 시간이었다.
곧 야영준비를 하는 군을 바라보며 신립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북방의 촌락을 거닐었다. 조선의 미래를 생각하면서. 너무나 가슴 뛰는 일이었다. 젊은 국왕의 즉위 후 살맛이 나는 신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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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