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9 회: 비빈간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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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빈간택은 지루하게 진행되고 있었다.
동방예의지국답게 무척 절차가 복잡해서 언제 비빈이 책정될지 하 세월이었다. 왕비 책봉도 아니고 해서, 세자 비를 뽑는 사례에 준해 간소화하라 지시를 했건만, 언제 이일이 끝날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 이 일은 간택(揀擇:후보 선택), 납채(納采:청혼), 납징(納徵:예물 보내기), 고기(告期:길일 선택), 책비(冊妃:비빈책봉), 친영(親迎:신부를 맞아들이는 의식), 동뢰연(同牢宴:혼인 후 잔치), 조현례(朝見禮:가례 후 처음으로 부왕이나 모후를 뵙는 예식) 등의 절차 중, 아직 첫 절차인 간택도 안 끝나 있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이런 속에서 이진이 비빈간택에 있어서 딱 하나 관여한 것이 있었다. 간신 이이첨을 비빈도감의 실무자인 낭청(郎廳)으로 발탁한 일이었다. 이런 자들이 대개 머리는 명석해서 이진의 의중을 헤아리라 믿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다.
이진이 모처럼 한가한 시간이 나서 사정전에서 책을 읽고 있는데, 김 내관이 이이첨의 등대 사실을 알리며, 들일지 말지 여부를 물어왔다.
낭청 이이첨이 등대를 했다니 이진은 절로 웃음이 나오는 것을 금치 못하여 바로 등대시킬 것을 명했다.
“바로 들여라!”
“네, 전하!”
김 내관이 총총히 물러가더니 바로 이이첨을 대전 안으로 들였다.
“신 이이첨 주상전하의 존안을 뵈옵나이다. 전하!”
“그래. 무슨 일인고?”
“아홉 명까지 압축되었으나 실로 경국지색의 미모를 지닌 한 여인이 너무 음기가 진하다는 왕대비 전하의 판단에 따라 탈락의 위기에 놓였는지라......... 실로 소신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어 전하를 찾아뵙게 되었나이다. 전하!”
“하하하.........! 그러냐? 그대가 보기에 정말 아름답더냐?”
“소신 발로 뛰어 구한 귀물(貴物)인지라 탈락한다면 너무 애석한 일이 아닌가 합니다. 전하!”
“연산군 시절의 채홍사(採紅使)가 된 듯 날뛴 것이 아니더냐?”
“그 정도는 아니더라도 기록을 더듬어 보면 제주도에는 말뿐만 아니라 미녀도 많다는 기록을 접한 일이 있는지라, 소신 제주도까지 후보를 올릴 것을 종용하였나이다. 전하! 그 결과..........”
“하하하.........! 정말 수고가 많았구나! 헌데 지금 탈락 위기에 놓인 여인이 제주도 산이렸다?”
“그렇사옵니다. 전하!”
“거 참, 수고가 많았는데 탈락되면 안 되지. 과인이 직접 가서 보고 택일을 하겠노라.”
“그런 예는 폭군 연산 외에는 없었던 줄로 아뢰오.”
“아니, 자신이 데리고 살 비빈도 마음대로 간택을 못한단 말이냐?”
“왕실의 어른이 안 계시면 몰라도 엄연히 왕대비 전하께서 계시옵고.........”
“알았다, 알았어. 과인이 그대에게 하대를 하는 것은 그만치 친밀하게 여기고 있다는 증좌. 과인의 마음을 알겠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만약 그 여인이 탈락한다면 어찌 하겠느냐?”
“일단은 소신의 집에 데려다 놓겠사옵니다. 전하!”
“옳거니! 그대로 행할 지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그가 떠났지만 이진은 한동안 책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이첨이 그런 말을 하는지 정말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그로부터 이틀 후.
모든 업무가 끝나 이진이 강녕전 침소에서 앞으로의 일을 구상하고 있는데, 이이첨이 이곳까지 찾아들었다. 그의 등대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짐작한 이진이 그가 채 인사도 다 하기 전에 다짜고짜 물었다.
“그 여인이 탈락한 모양이로구나.”
“그렇사옵니다. 전하! 소신의 집에 모셔놨습니다. 전하!”
“흐흠..........!”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입을 떼었다.
“이렇게 하도록 하자. 과인이 지금 제조상궁을 직접 내보낼 테니 가만 편으로 들여라. 일단 과인이 그 용모를 한 번 보고 판단을 해야겠다. 하여 과인의 마음에 든다면 다시 그대의 집에 보내 함께 맞아들이는 것으로 하겠다. 무슨 말인지 알겠느냐?”
“네, 전하!”
“좋다! 제조상궁 게 있느냐?”
“네, 전하!”
제조상궁 정옥빈이 대답과 함께 나타나 고개를 조아리고 있는 것을 보고 이진이 말했다.
“과인의 명을 하나 이행해야겠다.”
“말씀하옵소서. 전하!”
“여기 있는 이 낭청을 따라가 한 여인을 가마에 태워 과인 앞으로 데려오너라. 머지않아 해가 떨어질 것이니 금군 몇 명을 데리고 나갔다 오도록 해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녀가 명을 받고 나자가 이진은 이이첨도 손짓을 해 함께 내ㅤㅉㅗㅈ았다.
그로부터 한 시진이 지난 유시 무렵.
제조상궁과 함께 한 채의 가마가 강녕전 뜰 앞에 내려앉았다. 그 행렬에는 제조상궁을 호위했던 금군은 물론 이이첨도 다시 동행을 하고 있었다. 곧 가마의 문이 열리고 한 여인이 가마에서 내리는데, 그 자태가 필설로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삼삼하였다.
자태는 물 찬 제비가 하늘을 나는 듯 했고, 생김은 과히 월궁항아가 지상에 하강한 듯 아니 작약목단이 일시에 피어난 듯 사람을 매혹시키는 바가 있었다. 마침내 그 여인이 제조상궁 정옥빈의 안내로 강녕전에 들게 되었는데, 무심코 그녀에 눈길이 갔던 이진의 시선이 도대체가 헤어날 줄을 모르고 한동안 멍청히 머물러 있었다.
“전하.........!”
기어코 한상궁의 부름에서야 깨어난 이진이 무안한 마음에 괜히 헛기침만 연발했다.
“험, 험.........!”
“더 볼 것도 없다. 정 상궁이 당장 어디 침소를 마련해 주거라.”
“전하.........! 왕대비 마마의 허락을 득하는 것이.........”
“허허.........! 그것 참.........!”
제조상궁의 깨우침에 어쩔 수 없이 돌려보내야 함을 자각한 이진이 쩝쩝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밤이 늦어지기 전에 데리고 나갔다가, 과인이 대비전의 허락을 득하거든 입궁시키도록 하라!”
“네, 전하!”
제조상궁이 답하고 그녀를 데리고 나가자, 무언가 잃어버린 듯 허전한 마음의 이진이 공연히 가마솥 안에 든 개미처럼 자분한심을 못했다.
그 이튿날 저녁.
아니라도 이진이 왕대비전을 찾아가려는데 그곳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잠시 들렸으면 좋겠다는 전언이었다. 이에 이진은 급히 의관을 수습해 통명전으로 향했다.
“주상전하, 납시오!”
곧 전각문이 활짝 열리며 왕대비 박 씨가 웃는 낯으로 이진을 맞았다.
“어서 오세요. 주상!”
“아니라도 문후 여쭈러 올 참이었습니다. 어마마마!”
“간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해서가 아니고요?”
“하하하..........!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습니다. 어마마마!”
“호호호........! 언제나 주상은 솔직해서 좋아요. 호불호가 분명해서 아주 좋아요.”
하긴 왕대비가 주로 상대하는 사람들이 내숭덩어리들인 전의 비빈들일 것이니 그런 말이 나올 만도 했다.
곧 다과가 나왔으나 이진이 전혀 손을 대지 않고 왕대비 박 씨만 바라보고 있자, 왕대비도 더 이상은 시침을 떼고만 있을 수가 없어 곧장 본론으로 들어갔다.
“주상 들어보시겠소?”
“네, 어마마마! 소자 궁금하옵니다.”
“호호호.........! 결론부터 말하면 아주 예쁘고 심성마저 아름다운 여식들을 간택하게 되어, 이 어미의 마음이 아주 흡족하답니다.”
이렇게 운을 뗀 왕대비 박 씨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이진에게 물었다.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인지 주상은 아시겠어요?”
“글쎄요.........? 화중지왕 이라는 모란? 작약?”
“본 비의 말을 한 번 들어보세요, 주상. 그 속에 답이 저절로 나올 거예요.”
그렇게 운을 뗀 왕대비의 말이 이어졌다.
“‘꽃 중에 가장 아름다운 꽃이 무엇이더냐?’ 이 물음에 한 여식이 답하기를 무엇이라 한지 주상께서는 아시겠소?”
재차 물어보는 왕대비의 물음에 이진은 답을 재촉했다.
“궁금하니 바로 답해주시죠. 어마마마!”
“호호호.........! 참으로 한 여식이 국모감으로 손색이 없는 답변을 했어요. 목화라고.”
“그것이 어째서.........?”
“그 연유를 물으니........ 구사맹의 여식이 이렇게 답을 하더군요. 백성들의 삶을 따뜻하게 하는 꽃이라서 그렇답니다.”
“허허, 그런 일이..........! 정말 맞긴 한데..........”
“허허, 그것 참.........!”
이진 역시도 거듭 감탄을 하는데 왕대비의 말이 이어졌다.
“호호호.........! 이런 어진 심성이니 이 어미가 간택을 할 밖에요. 또 신립 장군의 딸은 효심이 무척 깊습디다.”
“무슨 말씀이오신지.........?”
“들어보세요. 주상. 간택하는 장소에는 여인들이 들어오면 방석에 앉게 되어 있었어요. 그런데 그 방석 위에는 부친의 함자가 쓰여 있었어요. 누가 누구의 여식인지 모르니, 우리가 금방 알아 볼 수 있도록 한 거죠. 그런데 신 장군의 딸이 기행을 일삼더군요.”
“무슨 일인데요? 어마마마!”
“호호호........! 그녀만이 방석을 비켜서서 맨바닥에 앉더군요.”
“그래서요?”
이진의 추임새에 신이 난 왕대비가 바로 말을 이었다.
“그래서 본 비가 연유를 물었더니, 어찌 불경스럽게 부모의 함자를 깔고 앉을 수가 있느냐는 것이죠. 이 얼마나 효심이 깊은 아이입니까?”
“허허, 그것 참..........!”
“그래서 두 아이를 간택한 것이랍니다.”
“어마마마! 다 좋은데........”
“왜 그러오? 어찌 표정이 어릴 때 무엇을 달라고 떼쓰던 시절의 모습 같군요.”
“하하하.........! 확실히 어마마마의 눈은 속일 수가 없군요.”
그렇게 말한 이진이 자신의 마음을 고백하고자 목청을 가다듬었다.
“간택자 아홉 명 중에 미모가 아주 출중한 여인이 있다 들었습니다. 어마마마!”
“어허, 기어코 그 일이 주상의 입에 오르는 군요.”
어떻게든 간택에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으리라 생각했는지, 바로 시인한 왕대비의 모습은 상당히 침중했다.
“무슨 근심이라도 있사옵니까? 어마마마!”
“허허........! 그것이 글쎄.........”
말을 잇지 못하고 잠시 천정을 노려보듯 바라보던 왕대비가 그 표정 그대로 말을 이었다.
“한 나라가 기울 정도의 미모(傾國之色)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는 것을 이 어미는 이 나이가 되어서야 처음으로 보았고, 알았어요. 너무 자색이 뛰어나 이 어미가 일부러 탈락시킨 여인이 있기는 있었지요. 주상은 이 어미의 마음을 아시겠습니까?”
“소자가 한 여인에 빠져 정사에는 신경 쓰지 않고, 오로지 그 여인의 치마폭에 싸여 나랏일을 그르칠까 근심한 것이 아니옵니까? 어마마마!”
“옳게 보셨어요. 그 정도의 미모였으니 아깝지만 이 어미는 과감히 탈락시켰어요.”
“소자, 그 정도 우매하지도 않고, 또 그럴 나이는 지났다고 생각하옵니다. 어마마마!”
“호호호........! 무슨 소리예요? 이 어미 눈에는 아직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같은데.”
“소자 그래도 명색이 한 나라의 군주이옵니다. 해서 가장 외로운 사람이기도 합니다. 때로 그런 꽃에 취해 잠시 시름을 잊는 것도 정신 건강을 위해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옵니다. 물론 그 꽃에 취해 헤어나지 못한다면 큰일이로되, 소자가 단언컨대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것이옵니다. 이 소자 늘 이 나라 민초들의 살림과 사직 보위에 노심초사 하거늘, 때로 그런 근심 잠시 내려놓는 것도, 정신을 명징(明澄)하게 하는데 좋을 것이옵니다. 어마마마!”
“주상의 말솜씨 참으로 청산유수라 이 어미 마음 흔들리거니와, 지금까지 매사 처리하는 일을 보고 있노라면, 영특하고 결단력 또한 매서워서 믿어지지 않는 것은 아니나, 어미 마음으로는 위험한 장난감은 아예 들이지 않는 것이, 더욱 좋다고 생각한 답니다. 주상!”
“어마마마께옵서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면 더는 청하지 않는 것이 예의인줄 아오나, 사람의 마음이라는 것이 때로 소유하지 못한 갈증으로 인한 분노가 엉뚱한 곳에서 폭발할 수도 있으려니와, 그 여식을 들이는 것이 꼭 폐해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사료되어집니다. 어마마마!”
“혹시 주상, 그 여식을 본 것 아니 예요? 지금까지 행적을 볼라치면, 궁에 수많은 궁녀들이 있건만 전혀 눈길도 주지 않던 사람이, 이번에는 심한 집착을 보이니 이상해서 묻는 말이오.”
“보았습니다. 어마마마!”
“어허! 그런 일이..........!”
탄식하며 미간을 모으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는 왕대비 박 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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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즐겁고 행복한 날들 되세요!^^
후의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