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71 회: 대마도도 우리 땅, 독도는 더 더욱 우리 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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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전으로 불러들인 자들은 왜의 대표 무장 9명과,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의 휘하에서 참모의 신분으로 종군한 승려 겐소(玄蘇)였다. 그는 왜 측 통역으로 참석한 것이다. 겐소는 지난번 왜의 사절단에도 포함되어 온 역관으로, 조선말에 능해 통역이기도 하지만 왜의 첩보원이기도 한 자였다.
그 외에 공이 많은 사야가(沙也加)와 마고 토키로 등도 불려와 있었다. 아무튼 이진이 이들만을 불러들인 이유는 항복하여 포로가 된 자들 중 1,000명 이상을 지휘하는 장수들만 불러들여도, 거짓말을 좀 보탠다면 편전이 꽉 찰 것 같아 행해진 조치였다.
여하간 이진은 이들이 들어오기 전 보아놓은 주안상에 이들 모두를 한꺼번에 둘러앉게 하고, 자신은 위엄을 지키기 위해 용상에 앉아 이들을 노려보며, 한동안 그들의 하는 거동만을 지켜보고 있었다.
두 개의 교자상을 겹쳐놓은 주안상에는 산해진미가 가득했으나 불안 때문인지, 이진의 명이 없어서인지 아무도 수저를 들지 않고 침묵만을 유지하고 있었다. 이런 이들을 한동안 더 바라보던 이진이 마침내 입을 떼었다.
“그대들은 위해 마련된 주안상이니 들며 이야기 하자.”
이진의 말에도 어느 누구 하나 움직이지 않았다.
“허허........! 그것 참..........!”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용상에서 벌떡 일어난 이진이 곧 그들의 자리로 향했다.
“전하! 위험하옵니다.”
김 내관이 종종 걸음으로 쫓으며 말했다.
그의 말에 이진의 발걸음이 주춤했다. 생각해보니 지금은 이들이 비록 포로 신세지만 왜에서는 내노라하는 무장들이다. 이를 상기하자 솔직히 겁이 나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저들에게 용렬한 군주로 보이고 싶지는 않아, 내친걸음을 그대로 옮겨 그들의 상 앞까지 가는 이진이었다.
“전하.........!”
다시 한 번 부르며 애원할 생각이나 이진이 돌아보지도 않자, 다급해진 김 내관이 대전내관을 지휘해 몇 명을 달음박질(?)하게 만들었다. 이런 일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척하며 그들 앞에선 이진이 말했다.
“현소(玄蘇)! 그대가 통역 좀 하라!”
“네, 전하!”
자신이 이곳에 불려 질 때부터 자신의 쓰임새를 자각하고 있던 겐소가 곧 대답했다.
“과인은 비록 제장들이 지금은 포로의 신분이지만 왜에서의 신분을 고려해 조선에서도 대우를 해주려 한다. 지금은 비록 어쩔 수 없어서 목멱산 아래 천막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곧 좋은 집을 지어 그대들에게 하사해주겠다. 이는 솔직히 그대들의 무용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조선은 근 이백년의 태평한 세월로 무의 기풍을 잃은 지 오래다.”
이때 등 뒤에서 헛기침 소리가 나 돌아보니 김체건과 백일문이 등대해 자신들의 위치를 알리는 것이었다. 바로 전각 밖에 있었으니 신속히 들어온 모양이었다. 그들을 일별한 이진이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하던 말을 계속 했다.
“무관이 없지는 않으나 죄다 활이며 장 병기 연마에만 주력해, 그대들과 같이 몸으로 부딪치는 싸움에는 조선 무관들이 취약하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해서 제장들을 중용하려니와, 만약 귀순한다면 조선장수와 똑 같은 대우를 해줄 것이다. 또한 공이 있으면 반드시 포상하고 승진도 시켜줄 것이다.”
이제는 곽재우까지 등 뒤에 와서 큰 기침 소리를 내었으므로 이진은 잠시 끊었던 말을 계속해 나갔다.
“뿐만 아니다. 이중에나 부하 중에 상재가 있어 멀리 이역까지 배를 부릴 수가 있는 자가 있다면, 그런 자도 중히 쓰겠다. 잘 생각해서 이 자리에서나 훗날 개별적으로 과인에게 통보를 해주어도 좋다. 자 이쯤 해두고 한 잔씩들 하자. 우선 금번 전쟁에서 아군이 승리를 하는데 크게 기여한 사야가부터 한 잔 받거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그가 곧 부복해 아뢰었으나 왜어였다. 현소가 통역을 한 것이다.
궁녀를 통해 사야가에게 어주 한 잔을 내린 이진이 계속해서 말했다.
“그래, 그대가 한 짓을 보면 물론 세도 불리하였겠지만, 듣기에 다른 자들과는 다른 면모가 있었다. 어떻게 제일 먼저 항복을 결심하게 되었느냐? 아니지. 고니시 유키나가까지 겁박할 용기까지 내었느냐?”
“신 왜에서 거주할 때부터 탄식하기를 그치지 않았사옵니다. 전하! 넓디넓은 천하에서 어찌하여 오랑캐의 문화를 가진 왜에 태어났는가에 대해, 조석으로 탄식을 금치 못했으며, 가토 기요마사가 조선을 정벌하러 가게 됨에 따라, 그 선봉장으로 자원하여, 조선의 아름다운 문물을 보길 원했나이다. 전하! 또한 이는 요순삼대(堯舜三代)의 유풍을 사모하여 동방 성인(聖人)의 백성이 되고자 함이며, 또 한 이유는 자손을 예의의 나라의 사람으로 번승(繁承)시키기 위함이었사옵니다. 전하!”
“하하하........! 옳거니, 장하도다! 과인이 그대에게 김충선(金忠善)이라는 조선 명을 하사하거니와, 그 연유에 대헤서는 직첩에 자세히 기록하여 내릴 것인즉, 참조하도록 하라!”
“성은이 하해와 같사옵나이다. 전하!”
감루를 뚝뚝 떨어트리는 김충선을 보고 참다못한 고니시 유키나가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사야가, 이 미친놈아! 역겹다. 그만해라!”
“하하하.........! 그대에게 역겨울지 모르나 과인은 참으로 듣기 좋고만. 하하하........!”
약 올리듯 한마디 한 이진이 분위가 상 김충선을 데리고 나가도록 했다. 다음에 부르겠다는 언질을 주고. 이어 이진은 마고 토키로에게도 그의 공을 치하하며 손시로(孫時老)라는 조선 명을 하사하고 그 역시 내보냈다.
“과인의 말을 잘들 생각해 보았는가?”
“..........!”
아무런 말이 없는 왜장들이었다.
“전혀 의향이 없단 말이지? 그렇다면 음식이나 들고 나가거라.”
기분이 상한 이진이 버럭 소리를 지르고는 돌아서서 용상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어좌에 임하여 그들을 내려다보니 여전히 손 하나 까닭 않고 묵묵부답 제 자리만 지키고 있는 꼬라지들이었다. 이에 더욱 화가 난 이진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안상을 모두 치우고 저들을 내쳐라!”
“네, 전하!”
김 내관이 명을 받고 움직이기 시작하자, 이를 현소를 통해 들은 제장들이 스스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데, 꼼짝을 않고 자리를 지키고 있는 한 인물이 있었다. 이에 뭔가 있다 싶었지만 이진은 여전히 볼멘 음성으로 퉁명스럽게 물었다.
“너는 뭐냐?”
“드릴 말이 있사옵니다. 전하!”
“그래?”
고개를 갸우뚱한 이진이 나머지는 손을 저어 내쫓고 명했다.
“주안상을 그대로 두어라.”
“네, 전하!”
그의 이상한 움직임에, 현소는 엉덩이는 털고 일어났으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어정쩡한 자세로 이진의 눈치만 살피고 있었다.
“그대는 남아 계속 통역해.”
“네, 전하!”
조선이라고 왜 역관이 없겠는가? 하지만 이들에게는 조선 역관이 불리하게 통역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을 지우기 위해서라도, 현소에게 통역을 맡기는 것이다.
“할 말이 있으면 하라!”
호기심에 다시 그의 곁으로 간 이진이 한결 누그러진 음성으로 말했다.
“소인 오무라 스미타다(大村純忠)라 하옵니다. 히젠(肥前) 히노에성(日野江城)의 성주로 금번 수군 대장의 한 사람으로 참전했사온데, 소인 크리스천으로 세례도 받은 몸이옵니다. 받아주신다면 조선의 상업 발전에 이바지 하고 싶사옵니다. 전하!”
여기서 잠시 말을 끊고 그가 잠시 이진을 살피는데, 이진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이는 것을 보자, 한층 사기가 오른 그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며, 얼굴도 화색이 돌기 시작했다.
“소인은 원래 성주의 자격이 없는 몸이었으나 전대성주이셨던 외삼촌이, 자신의 친아들이 서자로 신분이 낮다는 이유로, 누이동생의 아들이었던 저를 양자로 삼아 가독을 잇게 하였사옵니다. 그러나 양부의 사후, 서자를 지지하는 가신들에 의해 영지는 두 동강이 났고, 저는 이를 장사로 만회하기 위해 포르투갈 신부들을 접촉하게 되었사옵니다. 전하!”
잠시 갈증이 나는지 침을 삼킨 그의 말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소인은 세례도 받았고, 그들의 신임을 얻어 서양의 무기 및 그들의 물건으로 많은 재미를 본 바가 있사옵니다. 전하! 그래서 만약 저에게 기회를 주신다면 그들과 통상을 할 수 있도록 주선할 것이며, 또한 저의 가문에 연락하여 재물 일부를 조선으로 옮겨와 장사를 하며 생을 마감하고 싶사옵니다. 전하! 물론 소인은 인질이 되어 조선에 머물되, 장사는 가신이나 아들이 원한다면 참여시키고 싶사옵니다. 전하!”
“흐흠.........!”
장사를 해서 그런지 아주 조리 있게 상대를 설득하는 언변이 있는 지라, 이진은 정말 그의 말이 솔깃하였다. 그래서 물었다.
“정말 네 말대로 행할 수 있겠느냐?”
“믿어주시옵소서, 전하!”
엎드려 부복하며 눈물마저 글썽이는 그를 보니 왠지 측은지심이 동하며, 그렇게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드는 이진이었다.
그래서 잠시 생각에 잠겼던 이진이 말했다.
“과인이 만약 교역장소를 대마도로 한정한다면 어떻게 생각하느냐?”
이진이 대마도를 조선의 영토인 양 말해도 이들은 결코 놀라지 않았다. 왜냐하면 이들이 부산에서 올라온 시점이 대마도 정벌 이후였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그동안 중앙군에 의해 신상이 낱낱이 파악되어, 장수들은 특별히 한양으로 압송되었고, 나머지 일반 왜적들은 애초 이진의 계획대로 조선수군의 각 수영이나 평안, 함경도로 모두 분산 배치된 일이 있었던 까닭이었다.
아무튼 자산의 말에 잠시 그가 생각에 잠기자 이진은 그의 이해를 돕기 위해 첨언했다.
“조선은 크리스트교를 수입할 수 없음이야!”
이진의 말에 실망한 빛이 역력한 오무라 스미타다였으나, 곧 고개를 주억거리며 말했다.
“전하 나름대로의 고충이 계실 것이온즉 승낙하겠나이다. 전하!”
그의 말에 크게 기쁜 빛을 띠는 이진이었다. 그런 이진에게 현소가 말했다.
“참고로 오무라 영주도 장재가 있는 인물이옵니다. 그의 형세 어려울 때, 분란이 있던 전임 영주의 아들이 빈 성을 쳐들어왔던 바, 7명의 무장과 70명의 여자들만으로도, 적 1,500명을 상대로 성을 사수한 일은, ‘산죠우 칠기농성(三城 七騎籠城)’으로 회자되는 아주 유명한 이야기입니다. 전하!”
“그래?”
새삼스럽게 그를 다시 훑어보는 이진이었다. 그러나 무장으로서보다 상인이 더 어울릴 것 같은 여린 생김의 그였다.
“또 그의 영지인 나가사키(長崎)와 모기(茂木)의 땅을 예수회에 기증한바, 지금은 한창 그곳이 왜국의 관문으로 거듭나고 있는 중이기도 하옵니다. 전하!”
“흐흠.........! 그런 일이 있었군. 아무튼 그대가 조선의 상업 발전을 위해 공헌해준다니 고마운 일이로다. 소원이 있으면 말하라. 가능하면 들어주겠다.
“소인에게는 정실 오엔과 4명의 측실이 있사온데, 이들을 조선으로 불러들여 함께 살고 싶사옵고, 아들 요시아키(善前) 또한 그가 원한다면 함께 조선에서 살고 싶사옵니다. 전하!”
“흐흠.........! 좋다! 현소는 오무라가 구술하는 대로 서신을 작성하여 그의 영지에 보낼 수 있도록 하여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또........”
이진이 새삼 자신을 자세히 바라보며 말을 이으려하자 의안한 눈으로 감히 이진을 바라보는 현소였다.
“과인이 보기에 그대는 국사(國士)의 풍모가 있다. 과인에게 충성을 받칠 생각은 없느냐?”
“관백께옵서는 부족한 소승을 많이 아껴주셨사옵니다. 정리 상으로 차마 힘드옵니다. 전하!”
“지금은 마음이 닫혀있을 터, 언젠가 마음이 열리거든 말하라!”
“네, 전하!”
“그리고 왜장들이 조선의 역관에게는 의구심이 있을 터, 앞으로 그들을 대리하여 지금과 같이 통역은 할 수 있겠지?”
“그 정도야 얼마든지 봉사하겠사옵니다. 전하!”
“됐다. 과인도 지금은 그 정도로만으로도 만족한다.”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제 과인의 볼일은 끝났다. 남은 음식을 함께 들며, 오무라가 구술하는 내용이나 적에 내관에게 주어라.”
“네, 전하!”
현소의 대답을 듣는 것을 끝으로 이진은 사정전을 물러나왔다.
* * *
사정전을 물러나와 천천히 옥보를 옮기는 이진의 마음은 무겁기만 했다. 비록 왜와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그들의 재침이 언제 또 있을지 모르고, 한 고비 넘겼다 생각하고 새삼 북방의 일에 관심을 기울여 보니, 벌써 야인의 누루하치는 자신의 부족인 건주여진을 일통한 상태였다.
그 또한 나중에는 큰 후환거리이니 이래저래 근심만 느는 이진이었다. 조선의 국력도 키워야 하고, 이제 야인에 대한 대비도 더는 늦출 수가 없고, 왜의 재침은 또 어찌 대처할 것인가? 나오느니 한숨뿐이었지만 일국의 군주로써 나약한 모습을 보이기 싫어 이를 속으로 삭이려니 더욱 가슴만 답답해지는 이진이었다.
그렇지만 장래의 일을 손금 보듯 훤히 아는 자신의 장기를 장 활용한다면, 못 헤쳐 나갈 것도 없을 것이고, 더 나아가 애초부터 은근히 가슴에 품고 있는 명의 정벌도, 야망만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하는 이진이었다.
그런 그의 발걸음은 한결 빨라졌다. 그러나 벌써 여름이 코앞에 다가온 듯 더운 날씨에 이진은 곧 걸음을 늦추었다. 그리고 무엇인가가 갑자기 생각난 듯, 신통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툭툭 두들기며, 아주 즐거워하는 이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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