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3 회: 개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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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왜는 3월 초, 히데요시의 명으로 조선 침략이 본격화 됐다.
“제 군대의 항해는 규율에 따르도록 하고 질서를 어지럽혀서는 안 된다. 날씨가 나쁠 때는 서로 의논하여 출범 시기를 늦추고 사람 한 명, 말 한 필이라도 헛되이 잃은 자는 처벌할 것이다. 이미 저 땅에 도착한 자는 배를 쓰시마로 돌려보내어 후군을 수송할 수 있도록 하라. 조선의 관리 백성이 우리의 진군을 가로막거든 곧장 토벌하여 쫓아버리고 나아가라. 이럴 때는 진의 앞뒤 배열에 상관하지 마라. 뒤따라 진군하는 제군도 곧바로 상륙하라.”
왜의 태합 수길의 이 명을 쫓아 조선 침략의 선봉장 고시니 유키나가는 3월 12일에 벌써 소 요시토시, 오무라 스미타다 등을 이끌고 쓰시마의 우키우라(浮浦)에 도착해 있었다. 이어 4월 4일이 되어 마쓰라 시게노부마저 병선을 이끌고 합류하고, 7일에는 와키사카 야스하루가 본영의 명대로 행하고 있는지 검열을 나왔다.
또 이들은 이제 지척인 조선의 동태를 살피기 위해 이 전후로 해서 수시로 부산포에 탐망선(探望船)을 띄웠다. 그러나 이들은 미리 집결해 일부 먼 바다까지 나와 있던 조선수군에 의해 속속 나포가 되었다. 이에 쓰시마의 유키나가는 조바심을 내며 동풍이 불기를 간절히 바랬다.
일부 역풍이 불어도 출발하자는 자가 없는 것은 아니나 병선 700여 척에 20만 대병이 움직이는 작금, 대장으로서 유키나가는 조심하여 몸을 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괜히 폭풍우라도 만나는 날에는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바다에 수장될 것을 염려한 까닭이었다.
한편 이순신은 지금 고심하고 있었다.
주상 이진의 최후 밀계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과인이 천기를 살피 건데 4월13일 신시 말(申時 末:오후 5시)이면 왜구 20만이 부산포로 상륙할 것인즉 그 전에라도 대마도로 가서 그놈들의 배를 수장시키도록 하라. 이것만이 조선이 병화를 입지 않는 첩경인즉 명대로 행할 지어다.”
이순신으로서는 지금까지 이진의 명을 어김없이 쫓아온 결과 하나 그릇됨이 없어 절대 의심하는 바는 아니었지만, 작전의 성공 여부에 고심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순신은 누구보다도 적아의 장단점을 잘 알고 있었다.
조선의 판옥선은 왜의 세키부네에 비해 수면이 낮고 조류가 급변하는 근해에 뛰어난 강점을 가진 반면에, 적의 세키부네는 조선의 판옥선보다도 속도가 빨라 먼 바다에서 격돌시 아군의 배가 추월당할 위험성이 현저히 높았다.
그래서 먼 바다 항해의 가능성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데 또 하나 관건은, 병선의 수는 얼마인지 몰라도 분명 적의 숫자까지 명기되어 있는 바, 적의 숫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었다. 아무튼 너무나 많은 적의 수와 원거리 항해로 인한 불리한 점으로 고심을 하던 이순신은, 나포한 적의 탐망선으로부터 적의 병선 수까지 알아내고는 더욱 고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적선 700여척.
신중한 성격의 이순신은 좀 더 확실히 적의 실태를 파악하기 위해 아군의 탐망선을 대마도로 띄웠다. 아군의 탐망선 총 12척. 배 밑이 U자 형으로 되어 있는 속도가 빠른 침저선이었다. 저들의 주력 전선인 세키부네가 침저와 평저선의 중간선인데 비해 완전 침저선으로 저들보다도 빠른 배였다.
확인결과 대규모 적이 쓰시마에 상륙해 있는 것은 확실했고, 병선 수도 적의 진술과 거의 일치하는 것을 알아냈다. 그러나 원양에서 싸우는 것은 모험이라고 판단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던 이순신이 단안을 내렸는지 곧 제 수사들을 모아 자원자를 모집했다.
“지원자는 무조건 노비가 되었든 양인이 되었든 양반으로 신분의 승격을 약속한다. 또한 부상으로 은전 100냥씩을 별도 지급한다. 이만하면 양반으로서 굶주리고 살지는 않을 터, 죽음을 불사할 자들을 모집하라!”
“네, 장군!”
제장들이 물러갔지만 고뇌하는 이순신의 주름살은 끝내 펴지지 않았다.
다음 날 아침.
자그마치 지원자가 100여명이 몰렸다.
자신의 한 목숨 희생하여 가족을 한 맺힌 노예의 굴레에서 벗겨내고픈 절절한 사연을 담은 자들이 집결한 것이다.
이들을 침통한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순신이 침중한 음성으로 물었다.
“죽어도 좋은가?”
“네, 장군! 노예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사옵니다. 장군!”
“사랑하는 가족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희생도 치를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장군님!”
“좋다! 여기 연판장에 각자 수결하라! 이는 곧 주상에게 보고될 터, 제군들의 뜻이 곧바로 이루어질 것이다. 삼군통제사의 직위를 걸고 약속 하마!”
“네, 장군!”
그들이 곧 수결에 착수하고 그들의 신상은 별도로 기록되어 첨부되었다.
* * *
바람은 여전히 은근한 북서 풍.
바람의 방향은 좋았다. 며칠째 이 바람이 지속되고 있었다.
판옥선 두 척이 선두에 섰다.
뒤를 왜에서 나포한 12척의 세키부네와 아의 각 수영에서 차출한 6척의 탐망선이 따르고 있었다.
두 개의 돛이 펼쳐져 펄럭이고 있는 가운데 배들은 꾸준히 항해를 거듭하고 있었다. 이날 초경 무렵. 밤하늘에 별들이 하나둘 고개를 내밀기 시작할 때 대마도 북방에는 소리 없이 전함 20척이 나타났다.
이날은 하늘도 조선을 보우하사, 오늘 따라 음습한 바람이 불며 초아흐레 반달도 구름 속에 숨었다. 왜의 선상에서 경계 근무를 하던 자들이 이들을 발견한 것은 그 물체가 시야에 크게 들어올 무렵이었다.
“아! 조선 놈들의 배다!”
“준비! 준비!”
“발사, 발사!”
왜적들이 놀라 허둥거리며 일부는 이에 대응하여 화포와 조총을 난사하기 시작했다.
펑, 펑!
탕, 탕, 탕!
왜의 일부 대응 사격이 시작되는 순간.
“전 속력으로 돌진!”
“돌진!”
제일 선두 판옥선에 탑승한 돌석의 명에 따라 이들은 각자 최고의 격군이 되어 열심히 노를 저어갔다.
“신기전 발사!”
이미 사정거리 안에 들었음을 간파한 돌석의 연이은 명에 두 대의 판옥선에서는 불화살이 밤하늘에 장엄하게 수를 놓기 시작했다. 연이어 보다 빠르게 근접한 아군 탐망선과 왜의 탐망선이 일제히 불을 뿜으며 흩어지기 시작했다.
쾅! 쾅! 쾅!
일부 아군의 배에 적의 포탄이 작렬하고 이는 적의 재앙을 불러오기 시작했다. 일부 배는 스스로 불을 질렀다. 배안에 잔뜩 실려 있던 염초가 섶과 함께 폭발하며, 거대한 불기둥을 피워 올리고, 배들은 순식간에 산산조각이 나며, 부산물들이 불꽃이 되어 밤하늘로 비산했다.
“와! 우리 배에 불이 붙었다. 빨리, 빨리 꺼!”
“물 가져와 물!”
콰쾅!
그러나 조선의 배들이 연이어 폭발하며 사방으로 불꽃을 피워 올리자, 여기저기 왜선으로 불이 옮겨 붙기 시작했다.
이때서야 육상에서 잠을 자던 간부들 이하 대다수의 왜병들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각자의 배로 승선하며, 일부는 불을 끄고 일부는 대항에 나섰으나, 이때 이미 적의 배는 그림자도 없고 아직 불에 타고 있거나, 아직도 불꽃을 피워 올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때는 때가 너무 늦어 왜병들을 급급히 피난을 시켜야 하는 다급한 사태가 초래되고 있었다. 화약이 조선의 배에만 실려 있는 것이 아니라 왜의 전함에도 실려 있었기 때문에 연쇄폭발을 일으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모두 물러서라! 어서 모두 물러서 육지로 후퇴하라!”
“후퇴하라! 후퇴해!”
고니시 유키나가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는 것을 따라, 예하 부대장들이 자신 부대원들에게 연속해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물론 자신들도 내륙 깊숙이 달려가며 내리는 명령이었다.
쾅, 쾅, 쾅!
연이어 천지번복의 굉음이 터지며 화광이 충전했다.
이에 따라 주변이 아비규환의 생지옥이 되었다.
이렇게 한 시진동안 계속된 때 아닌 불꽃 축제(?)로 왜놈들은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완파 반파된 전함이 약 200척에 다다랐으나, 그나마 규모에 비하면 병사들의 희생은 적었다. 수천 명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근 한 달 가까이 장기화된 주둔 생활로 병사들을 계속 선상에 묶어 둘 수 없어, 육지로 이거시켜 숙영시킨 탓이었다. 또 하나의 천만다행한 일은 그나마 전함들을 한군데 몰아넣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곳저곳 분산시켜 놓은 것이 전함을 다 잃을 수 있는 위험천만한 상황을 면케 했던 것이다. 어찌됐든 이 모든 상황을 먼 바다에서 모두 지켜본 조선의 탐망선 하나가 눈물을 머금고 재빨리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이와 반대로 밤새 모든 피해에 대한 현황을 보고 받은 고니시 유키나가는 충혈 된 눈으로 이빨을 갈고 있었다.
“상륙하기도 전 이런 피해를 입다니........ 내 조선에 상륙하기만 하면 조선 놈들의 씨를 말릴 테다!”
“장군! 속히 출전 명령을 내려주십시오!”
같이 이를 갈며 재촉하는 장수가 있는가 하면 만류하는 장수도 있었다.
“이럴 때일수록 더욱 침착하셔야만 합니다. 애초의 의도대로 동풍이 불 때 진군하셔야 합니다. 장군!”
“하하하.........! 동풍만 불어라! 그 날이 조선 놈들의 씨를 말리는 날이다! 아, 핫핫핫.........!”
고니시 유키나가는 웃는 게 웃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에서는 시퍼런 귀화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한편 아군의 탐망선으로부터 그들의 활약을 보고 받았으나, 이순신의 표정은 기쁜 빛 하나 없이 비통하기만 했다.
* * *
그렇게 나흘이 흐른 4월 13일 오후 5시.
마침내 조선 침략의 선봉군이 부산 앞 바다에 그 위용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비록 200척을 잃었다지만 500여 척의 전함이 온통 바다를 새까맣게 메운 가운데 유유히 떠오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바라보는 조선 수군의 진영 또한 한결 바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대장선에서 봉화가 피어오른 것을 기점으로 각 수사의 지휘아래 승선을 완료한 전함들이 일제히 진용을 갖추며 모여들기 시작했다.
한편 봉화가 피어오르는 것을 본 경상도 병마절도사 김시민에 의해 급히 장계가 작성되어 한양으로 파발이 띄워졌다. 물론 봉화도 피워 올렸다. 임란 3년 전부터 크게 확장되기 시작한 동래성에는 이미 경상도 병마절도사 김시민이 지방군 3개 사단을 이끌고 온 것은 물론, 전라도 병마절도사 김천일마저 3개 사단을 이끌고 진주해와 있었다.
이들이 동래성에 입성을 마친 것은 오늘 정오 무렵이었다. 호랑이 사냥이 끝나던 날 이진으로부터 받은 밀계에 의한 것임은 물론이었다. 뿐만 아니라 중앙군 3개 사단마저 이미 이진의 특명을 받고 부산진에 입성해 만반의 전투 준비를 끝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의 전 단병사들이 아래로 하향 배치되어 움직였으니, 충청 병마절도사 고경명은 상주에, 경기 단병사 김여물은 한양 성내로, 황해 단병사 고언백 역시 한양 성으로, 강원 단병사 최경회는 문경새재인 조령에, 다만 평안 단병사 박광옥과 함경 병마절도사 정문부만이 혹시 모를 야인들이 준동에 대비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아무튼 이진이 궐내에 앉아 왜적 침입사실을 안 것은 반나절 만에 남한산성의 봉수대로부터였다. 장계를 받아본 것은 그보다 세 시간이 늦은 그 이튿날 진시 정(辰時 正:오전 8시)이었다.
그러니까 그간 역참을 제대로 정비한 보람이 있어, 왜군이 부산 앞 바다에 나타난 시각으로부터 딱 15시간 만에 장계를 받았던 것이다. 아무튼 급보를 받은 이진은 곧바로 비상 비변사 회의를 소집하였다. 이에 따라 신하들이 급급히 사정전으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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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후의에 감사드립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