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61 회: 전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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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조정 중신들과 주연을 끝내고 나니, 낮게 깔렸던 하늘에서는 어느덧 거위 털 같은 함박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요즈음 날씨는 어떻게 된 것이 잊어버릴만하면 눈이 한 번씩 내리곤 해, 아랫것들을 피곤하게 했다.
예나 지금이나 눈이 많이 오면 치우기가 쉽지 않은 일이라, 이들을 기진맥진하게 하는 게 눈 치우는 일이었다. 아랫사람들이 이렇게 몸으로 때운다면 이진은 고급 정신노동자로 늘 정신이 피곤한 사람 중의 하나였다.
신하들을 모두 보내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며, 일찍 온돌과 장작 난로를 갖춘 천추전에 든 이진은, 곧 승은을 입은 세 여인을 불러 술자리를 더 연장했다. 이렇게 눈 내리는 날의 서정을 만끽하는 이진이었지만 시간이 흐르자, 세 여인이 모두 취하여 물러갈 것을 청하니 재미가 덜했다.
임해의 육체를 빌어 술이 강한 이진이었지만, 이쯤 되자 그도 어느 정도 취기가 올라오는 게 사실이었다. 그녀들을 보내고 전각문을 여니 눈은 그쳐 있었고, 넓은 뜰은 깨끗이 치워져 있었다.
정취를 모르는 것들이라고 내심 욕설을 퍼부었지만, 그들의 의무인지라 이진은 군데군데 타고 있는 관솔불을 바라보면서 다시 전각문을 닫았다. 이때였다. 사방이 왁자지껄 소란스러워지며 징 두드리는 소리와 딱딱이 소리, 난잡한 고함소리로 온통 궐내가 시끄러웠다.
이에 무슨 일인가 싶어 이진이 전각문을 벌컥 열며 고함을 질렀다.
“무슨 일인데, 이렇게 소란스러운 것이냐?”
“알아보고 오겠사옵니다. 전하!”
측근에 있던 대전내관과 상궁 하나가 전각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채 일다경도 지나지 않아 내관과 상궁이 창백한 안색으로 돌아와 고했다.
“호랑이가 출몰했답니다. 전하!”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이으려다 억지로 이 말을 삼키는 이진이었다.
호환을 당했다는 장계가 수시로 올라와, 사실 이진으로서도 어쩔 수 없이 그 대책의 일환으로, 한 해에 호랑이 10마리 이상을 사냥한 고을 원에게는 일 계급 특진도 약속하고 있었지만, 현대인의 사고를 지닌 그로서는 절대 실감나는 보고서가 아니었던 것이다.
호랑이라는 동물이 한반도에서는 씨가 마른지 오래라, 다른 나라에서 희사 받는 처지에서 살다온 사람으로서는, 도통 이해가 안 되는 일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그런데 호랑이라는 놈이 궐까지 범했다니 뭔가 이것이 실제 상황이로구나 하며 피부에 와 닿는 것이었다.
그래도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은 이 시대 사람들에 비하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이진이 몸을 일으켜 밖으로 나가려하자, 최측근 호위인 김체건과 백일문은 물론 내관과 상궁에 이르기까지 아연실색하여, 측근 호위들은 우선 자신의 몸으로 막고 말을 시작했다.
“전하! 아니 되옵니다. 위험하오니, 이곳에서 옥체를 보전하옵소서!”
‘젠장.........!“
“과인은 너희들의 무예를 믿거늘.........”
이때였다. 여가저기서 산발적으로 조총 쏘는 소리가 들리고 병행하여 고함소리도 사방에서 난무하였다. 궐내에 수직하던 호위들이 출동해 호랑이 사냥에 나선 모양이었다. 그렇게 잠시 소란이 일더니 어느 한 순간 와아 하는 함성과 함께 총소리가 뚝 멎었다.
“아마 잡은 모양입니다. 전하!”
“그럼, 나가보자.”
“아직은..........”
망설이는 두 사람을 제치고 나가려는 순간 곽재우를 비롯한 몇몇이 전각 쪽으로 빠르게 접근하는 게 보였다.
“전하! 호랑이가 궐을 범하였기에 사살하였사옵니다. 전하!”
“수고했소!”
“곧 이곳으로 끌고 올 것이니 관례대로 이를 잡은 자에게는 이 계급 특진을 시키는 것이 가한 줄 아뢰옵니다. 전하!”
“허허.........! 그럽시다.”
“하옵고, 호랑이 가죽은 진상될 것이오니, 군왕으로서 이에 대한 포상이라도 하시는 것이........?”
이진의 용안을 살피며 더 이상 말을 않는 곽재우였다. 모호한 표정이었기 때문이었다.
“흐흠........! 얼마의 은전을 내려야 할까?”
“요즘 시중에서 거래되길 호피 한 장에 60냥 하는 것으로 알고 있사옵니다.”
이 말 후 또 입을 다무는 곽재우였다. 시세는 이러하니 알아서 포상하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를 듣는 이진은 내심 크게 놀라고 있었다. 그까짓 호랑이 가죽이 뭐하는데 쌀 60가마니 값이라니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진의 표정을 살피던 김체건이 군주의 의중을 어느 정도 짚었는지 아뢰었다.
“명국의 사신에게도 호랑이 가죽은 으뜸의 예물이옵니다. 전하!”
“그래?”
“그런데 이것 정말 심각한 일 아니오? 과인은 평안도에서인가 한 해에 300명이 호환을 당했다기에 설마 설마 했더니, 참으로 이제 대궐까지 범할 정도면 큰일이 아닌가?”
이진의 말을 받아 김체건이 말했다.
“전하도 아실 것이옵니다만 소작이 한때 무예를 익힌답시고 명과 왜를 떠돌 때인데, 떼 놈들의 속담에는 이런 말도 전해옵니다. 전하!”
여기까지 말하고 무슨 중대한 말이라도 하는 것처럼 목청을 틔운 김체건이 말을 이었다.
“조선 사람들은 1년의 반을 호랑이한테 물려 죽은 사람들의 문상을 다니고, 1년의 반은 호랑이 사냥을 다닌다. 또 다른 말로는 조선에서는 1년의 반은 사람이 호랑이 사냥을 다니고, 나머지 1년의 반은 호랑이가 사람 사냥을 다닌다고 할 정도로, 그들도 우리 조선에 호랑이가 많음을 잘 알고 있사옵니다. 전하!”
“허허.........! 그런 일이........”
이때 어림군들이 호랑이를 마치 멧돼지 엮듯 장대에 묶어 들고 오는 것이 보였다. 뿐만 아니라 선두에 선 자의 행색을 보아하니, 그 자가 잡았음을 금방 알 정도로 의기양양한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보고 이진이 웃으며 물었다.
“그대가 호랑이를 잡았는고?”
“네, 전하!”
여전히 의기양양한 모습으로 답하는 그 자였다.
“장하다! 호랑이를 잡다니 무엇으로 잡았는고?”
“편전이었습니다. 전하!”
“그래? 조총이 아니고.”
“살상력이 편전에 미칠 바가 아닌 줄로 아뢰오.”
“그렇군. 아무튼 장하다. 관례대로 과인은 그대에게 이 계급 특진을 시키고 70냥의 은전을 하사할 테니, 유용하게 쓰도록 하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이로써 한밤중의 희극이 끝났다. 그러나 19C 이방인의 희극은 끝나지 않았다. 한 외국인 조선을 여행하다가 하루는 주막에 잠을 청했다.
아무리 겨울철이라지만 얼마나 불을 쳐댔는지 방이 절절 끓었다. 40도는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가 잠시 문을 열어놓았다. 이때 주모가 뛰쳐나와 소리를 질렀다.
“빨리 문 닫아요.”
“Why?"
“호랑이 온다니까!”
“어매, 뜨거라!”
이 외국인은 문을 닫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숨을 쉬었다. 훗날 이 사람이 본국으로 귀국해 적은 기록의 일부다. 이때까지만 해도 조선에는 호랑이가 많았다는 이야기였다.
* * *
모두 호랑이 사냥을 떠난 며칠 후.
한반도 남쪽 전라좌수영이 있는 여수에서는 수백 척의 전함이 부산포를 향하여 항진하고 있었다. 곧 삼도수군통제사 이순신 휘하의 전라, 충청 수군에 속한 배들이었다.
이진의 명에 실전 장소가 될 부산포 앞바다에서 연합훈련 즉 합조(合操)를 하기 위함이었다.
연합훈련이라 할 수조(水操)에는 각도 수사(水使)가 주관하는 도수조(道水操)와, 통제사, 통어사가 주관하는 합조(合操)로 구분되었다.
도수조는 각도 수사에 소속된 각 진, 포 수군과 군선을 징발하여, 그 도의 앞바다에서 수조 규정에 따라 훈련을 실시하는 것을 말하고, 합조는 통제사가 충청, 경상, 전라도의 수군을, 통어사는 경기, 황해도의 수군을 규정에 따라 훈련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봄과 가을 2회 실시하였지만, 이례적으로 이진의 명에 의해 올해는 더욱 빨리, 그것도 부산 앞바다에서 실시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벌써 이순신이 합수를 위해 전라우수영은 물론 충청 좌우수영에 집결을 명한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이 당시의 통신수단과 배의 항해속도를 감안하면 결코, 각 수사들이 태만했던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아무튼 조선의 전라 충청 수영들은 물론 중간에 합류한 경상우수영 그리고 최종 경상좌수영이 위치한 부산포 동쪽 수영만(지금의 요트경기장이 있는 곳)에 집결하니, 그 위용이 동아시아 최대의 해군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아니 조선의 연안에서 붙는다면 세계 최강일 것이다. 배의 척수보다 당시 보다 200년이 앞선 함포전력이 상대를 압도할 것이니까.
만약 이를 초량에 있던 왜관(倭館) 놈들이 보았다면 진즉에 꼬리를 말고 왜로 도망갔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지금 왜관은 텅텅 빈 채였다. 작년에 이미 누구의 지시를 받았는지 모르지만 모두 철수한 뒤였기 때문이었다.
이 철수 장계에 의해 비로소 조선의 중신들도 왜의 침략을 확실히 믿고, 이진의 행사에 덜 반대를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이 대규모 선박의 무리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철갑을 두른 거북선 20척이었다. 조선의 전함이 다 모인 것은 아니지만 그 위용은 참으로 대단했다.
아마 조선의 전함을 다 모아 놓으면 경국대전(經國大典)에 기록된 수치와 일치할 것이다. 즉 ‘경국대전’에는 수군은 진관(鎭管)체제에 따라, 각 도마다 주진(主鎭), 거진(巨鎭), 제진(諸鎭)으로 편제되어, 주진에는 수군절도사, 거진에는 수군첨절제사, 제진에는 만호가 배속되게 되어 있었다.
또 갖추어야 병선 수도 기록되어 있는 바, 대맹선(大猛船) 81척, 중맹선 195척, 소맹선 461척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또 대, 중, 소맹선마다 승선 인원의 규정도 있어, 대맹선 80명, 중맹선 60명, 소맹선 30명이 승선하게 되어 있었다.
이러한 승선 인원과 그 배의 수를 곱하면 총 24,400명으로 수군 총수의 반이 되며, 그것은 수군의 2번 교대와 부합되었다. 여기에 이진의 특명에 의해 대함포병이 보강되어 현재 조선 수군의 총 수는 6만 명이 되었던 것이다.
또 조선의 수군은 현재 육군이 정군과 다르게 2교대에 6개월 근무를 하고 있었다. 정군에 비하면 무척 피곤한 일이라 앞으로 중앙군 충원 시, 수군 거관(去官:제대)자들에게 우선적으로 혜택을 줄 생각을 갖고 있는 이진이었다. 이렇게 되면 이들은 자동적으로 지금의 해병대가 되는 것이다. 해전, 육전 모두에 두루 능하게 되니까.
아무튼 이순신을 이진의 명을 충실히 이행하여 경국대전의 규정대로 함선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이 규정 외에 거북선 20척을 더 확보하여 목하의 결전에 임전태세를 갖추고 있는 것이다.
이는 임란당시 경상좌우수사에게 100여척, 이순신에게 거북선 3척 포함하여 26척, 전라우수사 이억기의 25척, 여타 충청 경기에 얼마가 있었는지 불확실하지만, 전라 좌우수영으로 유추해보면 전부 합쳐 200 척 전후였을 당시의 전함 수에 비하면, 놀라운 전함의 건조 실적이 아닐 수 없었다.
현 거북선 포함하여 총 757척. 이것이 과연 이순신만의 힘으로 가능했겠는가? 절대 아니었다. 이진이 화폐를 제조해 제일 우선적으로 군기시와 수군에 쏟아 부은 결과였다. 수군만이 배를 건조한 것이 아니라, 민간에게도 이를 건조시켜 사서 이양시킨 결과였고, 이진 또한 이를 위해 고기 한 첨 제대로 먹어보지 못했다.
물론 상중이라 소선을 행한 것도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진이 이 장면을 보면 신하들의 앞이고 나발이고 울었을 지도 몰랐다. 신하들 또한 이진의 숨은 노고를 알고 모두 감격해 울 것이다.
그것도 격하게 어깨를 들썩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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