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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자임해-60화 (60/210)

< -- 60 회: 전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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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계속된 웃음 뒤에는 몇 가지 이유가 또 있었다. 검 계원과  군무사(軍務司) 소속 요원들이 명에서만 활약했던 것이 아니었다. 왜에서도 기술 하나를 훔쳤으니 곧 염초자취(焰硝煮取)법 이었다.

염초, 초석, 질산칼륨(KNO3)은 다 같은 말로 화약(흑색화약)을 만드는데 있어서, 황, 숯과 함께 주성분이었다. 이것을 조선은 두엄과 같이 질소성분이 있는 거름이나 아궁이, 담장 가 등에서 채취하여 썼다.

이것을 가지고서도 화약의 재료인 초석을 만들기까지는 복잡한 공정을 거치는데, 이 공정을 줄인 것이 가마솥에 넣고 끓이는 방법인 염초자취(焰硝煮取)법 이었다. 이것을 훗날 이진의 명에 의해 이서(李曙)라는 인물이 ‘신전자취염초방언해(新傳煮取焰硝方諺解)’라는 저술로 정리를 하는데, 그 방법을 살펴보면 조선 전래의 것과 오십보백보일 정도로 복잡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취토(取土), 화합(和合), 증백(蒸白), 재토(滓土), 본수(本水), 작회(作灰), 안부(安釜), 열조(列槽), 재토(載土), 재수(載水), 기화(起火), 초련(初煉), 재련(再煉), 삼련(三煉), 총식(摠式), 비물(備物) 등의 방식을 거치니 초석을 만들기 위한 공정이 얼마나 복잡한 것인가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니 많은 양의 화약을 만들기 원하는 이진의 요구에는 아무리 열심히 만든다고 해도 턱없이 부족했다. 이를 위해 이진이 대궐까지 염초 채취를 허락했지만 말이다. 그래도 다행히 이진이 내상들을 통해 미리미리 확보한 염초가 있었고, 왜에서도 일정량 이상 계속해서 유황과 함께 수입을 했다.

이렇게 수입이 계속되자 왜의 경계도 경계였지만, 왜에도 염초 부족을 초래해 이진을 당황케 했다. 그래서 이진이 특명을 내리니 직접 양이들과 교섭하라는 것이었다. 이 당시 양이들이야말로 신대륙에서 엄청난 양의 초석을 들여오고 있음을 알고 있던, 이진의 최후의 패였다.

지금도 남미의 아타카마 사막 지대에 가면 초석을 캐기 위해 여기저기 파헤쳐 놓은 흔적이 보인다. 멀리서도 하얗게 쌓여 있는 초석이 보일 정도다.

분필처럼 하얀 초석은 세계적으로 이 지역에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긴 지질 시대를 거치면서 이곳 특유의 바다와 바람과 지형과 햇빛이 만들어 낸 것이다. 공기의 80퍼센트를 차지하고 있는 질소는 태평양의 조류(藻類)와 박테리아에 의해 고정되고, 그 질소를 포함하고 있는 조류가 죽어 분해된다.

분해된 물질은 파도가 높이 솟구칠 때마다 남서풍을 타고 해발 고도 2,000m의 해안 산맥까지 멀리 날아간다. 이 물질을 안데스 산지의 강렬한 햇빛이 초석으로 바꾸며, 이것은 다시 분지로 내려가 쌓여 초석이 형성되는 것이다.

이것이 16c말의 삼각 무역의 형태로 해서, 이진의 특명에 의해 정여립은 물론 내상들의 활약으로 조선까지 들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지금 유럽인들은 럼주, 화약, 옷감을 들고 아프리카로 가서 노예들을 얻어(사서), 이들은 다시 이들을 신대륙으로 싣고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탕수수, 목화를 재배하고 초석 광산에 투입하거나 채취한다.

그리고 이들은 다시 사탕수수, 목화, 초석을 들고 와서, 설탕(럼주), 옷감, 화약을 만들어 다시 아프리카로 가는 거대한 삼각무역이 지금 유럽은 한창 시행 중에 있었다.

이런 구조로 인해 유럽에는 자본이 쌓이고 신대륙에는 지금 노예들이 쌓이고 있었다. 결국 16-18세기 300년 동안 1,200만의 흑인 노예가 신대륙에 공급되었으나, 이들의 평균 수명은 불행하게도 3년이 채 지나지 않았다. 얼마나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으며, 얼마나 처우가 열악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예인 것이다.

각설하고 전쟁 중에 가장 중요한 화약의 원료들을 이진은 이렇게 해서 공급했으니 웃음이 끊이지 않을 만 했던 것이다.

아무튼 의도한 대로 군비확충을 이루어 계속해서 흐뭇한 웃음을 짓던 이진의 웃음이 어느 순간 싹 가셨다. 이번 호랑이 사냥을 계기로 그동안 문신들의 마찰 때문에 미루어졌던 각 지방에 단병사(單兵使) 파견을 마무리 지을 생각을 하니, 또 한 번 문신들과 싸워야 된다는 생각으로 웃음이 싹 가셨던 것이다.

여기서 단병사란 별도의 병마절도사(兵馬節度使)가 파견되어 지방의 군권을 단독으로 오로지 하는 것이고, 반대말이라 할 수 있는 겸병사(兼兵使)란 각도의 관찰사가 병권까지 움켜쥐고 있는 것이다. 문신들의 말로는 이를 점잖게 예겸(例兼)한다고 표현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문신 중심의 통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1472년(성종 3)에, 각도관찰사가 모두 병사를 예겸(例兼)하게 한 것을 이진의 즉위 후 부분적으로 단병사를 파견하였다.

즉 이진 등극 후 충청도, 전라도, 평안도와 경상좌도, 경상우도, 함경남도, 함경북도에 단병사를 각 1인씩 두도록 함으로써, 경기, 강원도, 황해도에만 겸병사가 두어지게 되었다. 그러던 것을 지방군을 확대 개편하는 과정에서, 이진의 뜻대로 정군을 조직하되, 문신들에게 이를 양보하여, 지금 현재는 또 다시 모두 겸병사 체제로 되어 있는 것을, 금번에 또 바꾸려는 것이다.

그러자니 또 한 번 문신들과 마찰이 일 것은 불 보듯 뻔한 노릇이었다. 아무튼 결심을 확고하게 굳힌 이진의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빨라졌다. 허덕이는 병판 정탁 및 상궁나인들을 모른 체하며, 이진은 그길로 사정전으로 들어가, 이에 대한 제반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다음 날 아침. 비변사 조회시간.

이진은 무엇보다도 이 안건을 먼저 거론하였다.

“과인은 전시에 대비하여 실전을 겸한 훈련인 금번 호랑이 소탕작전에, 실제 전시에서 이들을 지휘할 지휘관들에게 병권을 돌려주고자 하오.”

“전하! 무슨 말씀이시 온지.........?”

나이가 들면 머리 회전도 둔해지는 것인지 짓무른 눈으로 이진에게 묻는 병조판서 정탁의 물음에 이진은 만면에 미소를 띠고 답하였다.

“과인은 인간에게는 한계가 있어서 모든 것을 다 잘 할 수는 없다고 보오. 해서 과인 즉위 후, 줄기차게 주창한 전문가집단에 병권도 맡기자는 것이오. 과인이 누차 강조하듯 병화(兵禍)가 머지않았은즉, 각도의 관찰사들이 예겸하고 있던 병권을, 금번에 각도에 파견하려는 병마절도사들에게 이를 돌려주잔 말이외다.”

“이는 성종 연간에 문신들이 예겸케 한 성종대왕의 취지에 반하는 것으로 사료되는 바,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전하!”

예판 우성전이 부복하여 아뢰자 대부분의 문신들이 이에 동조하여 재고해 줄 것을 청했다. 그러나 이진은 여전히 입가에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하였다.

“성종 연간에 완비되어 반포된 경국대전에는 종전 과인이 임명했던 것과 같이 경기, 강원, 황해도 외에는 모두 단병사를 파견하는 것으로 되어 있소. 하니 누란의 위기를 맞아 더 이상 이 문제를 재론치 않기 바라오.”

말이 끝나자마자 반론 기회도 주지 않고 의사봉을 세 번 두드리는 것으로, 각 도에 병마절도사를 파견하는 안은 조선의 법이 되어, 이진은 주저 않고 각도의 병마사를 호명하기 시작했다.

“경상 병마절도사에 김시민, 전라 단병사에 김천일, 충청 단병사에 고경명, 경기 단병사에 김여물, 황해 단병사에 고언백, 강원 단병사에 최경회, 평안 단병사에 박광옥, 함경 병마절도사에 정문부를 각각 보임한다. 즉각 시행토록 하시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즉각 보임을 받은 이 자리에 있던 유사당상 및 낭청들이 부복하니, 닭 쫓던 개처럼 멍하니

천정만 바라보는 것으로 소임을 다하는 제 문신들이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 북병사로 재직하고 있는 김여물 외에는 모두 이 자리에 있는 비변사 당상 삼인과, 낭청들이 각도의 병마절도사로 부임하게 된 까닭이었다. 이래서 문고리 권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이다.

전부 왕의 곁에 있는 측근들이 군권을 오로지 하게 된 것이니, 한 번 중앙 권력에서 멀어지면 다시 중앙에 진입하는 것이 언제일지 모르는 게, 정치 세계의 냉혹한 현실이고 속성이었다.

그 예로 이진 주변에서만도 정인홍과 정철이 그런 예라 하겠다. 두 사람 각각 정인홍은 명국으로부터 이진의 왕위 책봉을 받아온 공로가 있고, 정철은 선조실록을 무난히 편찬한 공로가 있음에도, 작금 그들은 각각 경상관찰사와 강원도 관찰사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 그 단적인 예라 하겠다.

아무튼 이로써 각각, 경상, 전라, 충청, 경기, 황해의 병마절도사가 된 이들은 각각 이 지방에 주둔하고 있는 3개 사단의 정군의 지휘권을 움켜쥐게 된 것이다. 나머지는 2개 사단을 지휘하게 될 것이다.

이는 그 지방에 거주하는 인구와 관련이 있으니, 경상, 전라, 충청도에 조선 인구의 절반이 현재 몰려 살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렇게 따지면 경상, 전라, 충청도에 더 많은 사단이 배속되는 것이 상리에 부합하나, 이는 이 지방에서 전부 수군에 충원된 관계로 그렇게 된 것이다.

수군은 고려 말 이후 노 젓기에 익숙한 연해민(沿海民)으로 충당시킨다는 원칙이 강조되었다. 이는 조선 전기에도 마찬가지였으나, 점차 그 군액을 충당하기 위해 산군인(山郡人)도 수군으로 충원하였던 것을, 이진은 이순신에게 삼도수군통제사 지위를 내리면서, 이 원칙을 다시 한 번 강조하여 그렇게 된 것이다.

아무튼 현재 정군 352,000을 사단 편제인 16,688명씩 나누니, 21개 사단으로 지방군은 편제되었다. 상기 언급한 대로 인구가 분포되어 있는 관계로, 강원, 평안, 함경도를 제외한 각 도의 병마절절도사들이 3개 사단씩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문신들이 멍하고 있는 사이 이진의 명은 계속해서 내려졌다.

“상기 보임을 받은 자들은 즉시 짐을 꾸려 각자의 임지로 가되, 하루라도 빨리 군권을 인수하여, 금번 호랑이 소탕작전에 충실을 기할 지어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다시 한 번 각도의 병마절도사가 된 이들이 감격해 부복하는 가운데, 이진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전각 밖으로 나갔다.

아무리 전쟁을 대비하기 위한 것이라지만 이진이라도 문신들에게는 조금 미안한 감정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을 계속 마주보고 있기가 껄끄러워진 이진이었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이진은 수라상궁에게 명하여 특별히 거한 주안상을 봐오도록 했다. 여기에 진상 물목으로 올라온, 사 년 근 인삼도 각 대신의 수에 맞게 가져올 것을 명했다.

그리고 대전 내관을 다시 전각 안으로 들여보내 문신들은 그 자리에서 대기할 것을 특별히 명했다. 병 주고 약 주는 겪이지만, 이렇게라도 달래야 또 국정이 원만하게 돌아가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무튼 임금의 지엄한 명에 빠른 시간 내에 주안상이 차려지고, 이는 사정전으로 계속해서 들어왔다. 이로써 모처럼 편전은 주향이 진동하는 풍류의 장이 되었다. 비로소 자리에 임해 있던 이진이 영의정서부터 차례로 어주를 하사하니, 종전의 서운한 감정이 어느덧 희석되며 감격스러워 하는 제 대신들이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이들을 흡족한 마음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입을 열었다.

“과인이 무신들만을 우대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오. 과인이 즉위 후 누차 강조해온 변란이 머지않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취한 조처임을 여기 앉아 계신 공경대부들이 더 잘 알리 것이라 믿소. 그래도 서운한 것은 서운한 것. 그런 감정이 있다면 이 자리를 빌어 모두 푸시고, 과인이 공경들의 몸을 생가해서 내리는 것이니, 금번 재배에 성공한 인삼 몇 뿌리씩을, 연회가 파하는 대로 가져가기 바라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이들이 더욱 깊숙이 고개를 조아리는 데는 임금의 은혜에 감격한 면도 있지만, 현실적인 계산도 무시할 수 없는 까닭이었다.

즉 현재 인삼 1근 가격이 자그마치 그 질에 따라 조금 다르지만 20냥에서 25냥에 거래되고 있었다. 즉 쌀 20~25가마를 하사받는 것이니, 결코 적지 않은 선물이었던 까닭이었다.

아무튼 이들의 인사를 받으며 이진이 잔을 치켜들고 말했다.

“군신 상하간의 원만한 조화를 위해 건배 한 번 합시다! 자, 건배!”

“천세, 천세, 천 천세!”

갑자기 궐내가 시끄러워지자, 호위에 임했던 자들이 전각 안을 기웃거리고는, 부러운 눈으로 침을 꼴깍 꼴깍 삼키느라, 업무에 집중이 안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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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후기 ============================

오늘도 즐겁고 유쾌한 날 되세요!^^

후의에 감사드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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