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9 회: 전야 -- >
4
이진이 중전 허 씨의 옷을 하나하나 벗겨 가는데 이것은 ....... 노 팬티였던 것이다. 즉 고의를 입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평소의 행실과 많이 다른지라 이진이 깜짝 놀라 물었다.
“중전! 이게 어찌 된 일이오?”
급 얼굴을 붉힌 중전 허 씨가 답했다.
“요즈음 며칠 궂은 날씨로 빨아 널은 속곳이 미처 안 말랐기에 잠시 안 입었더니, 사르륵 사르륵 스치는 촉감이 좋아........ 그만 저도 모르게, 전하 생각만 간절했나이다. 전하의 손길이 스치기만 해도 움찔움찔 너무 기분이 좋사옵니다.”
“허허.......! 이젠 별짓을 다하는 구료. 그보다도 다음 달거리가 언제요?”
“음........! 그건 잘. 대충 헤아려 보면.........”
“그러지 말고 정확히 달거리 날짜를 기록하여, 그 주기가 30일만인지, 아니면 28일만인지 확실히 알고 있도록 하오.”
“그게 회임과 관계가 있사옵니까? 전하!”
“당연히 있지요. 달거리 2주, 험험 14일 전후로 7일이 회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요. 즉 여자의 몸에서도 아기씨가 방출된단 말씀이지. 해서 그 즈음으로 하여 과인이 열심히 중전을 찾을 테니까, 그런지 아오.”
“오호.......! 그런 일이.........! 그보다도 전하! 소첩 몸이 달아올라 죽을 지경이옵나이다. 어서 소첩의 몸 위로 오르소서!”“더 달아올라야 하오. 그래야 회임 가능성도 그만큼 높으니까.”
“아고, 전하! 그냥........!”
그러나 이진은 중전 허 씨의 애원을 뿌리치고 한동안 그녀의 애만 태웠다.
* * *
다음 날.
이진은 조회가 끝나자 비변사의 실무자들은 물론 병판 등 관계자들을 데리고 군기시(軍器寺) 시찰에 나섰다. 이진에 의해 비변사 당연직이 된, 군기시 정(正:정3품)에서 제조((提調:종2품)로 승차된 한효순 역시 수행하고 있었다.
이진이 군기시에 가까이 이르자 수많은 건물이 일행을 맞고 있었다. 처음 이진의 명에 의해 10배로 커졌던 건물 군들이 채 2년도 지나지 않아, 이제 두 배로 커져 현재는 이곳에 종사하는 인원만도 13,000여 명에 이르고 있었다.
그 뿐만 아니었다. 이곳 말고도 두 개의 분원이 더 설치되어 운용 중에 있었다. 철광이 개발된 강원도 양양과 황해도 은율에도 군기시 분원이 설치되어, 그곳에서는 주로 지방군의 무장용인 환도와 창 등에 제작되어 보급하는데 크게 기여를 하고 있었다.
이는 생산된 철을 멀리 운송하지 않고 가까운 곳에 분원을 설치하여, 운송시간과 인력을 줄이려는 이진의 고심이 담긴 결정이었다. 아무튼 이로 인해 지방군의 무기 수급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었다.
이진의 출연에 종3품 부정(副正)부터 종9품 공작(工作)에 이르기까지 급급히 부복하는 제 군기시 관리들이었다. 이 모습을 넉넉한 웃음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돌연 큰 소리로 말했다.
“연구실로 가보자!”
“네, 전하!”
이진의 명에 부정이 안내를 위하여 수행원으로 끼어드는 가운데, 일행은 별전(別殿)에 도착했다. 이곳은 이진이 특별히 명해 지어진 곳으로 각종 병기를 개량하기 위한 연구소의 일종이었다.
이곳에는 연구개발에 재주 있는 자 수백 명이 모여 오늘도 각종 병기 개량에 애를 쓰고 있었다. 이 연구소에서 도착한 이진은 먼저 전시실을 한 바퀴 둘러보았다. 이곳이야말로 조선 병기를 한 눈에 다 볼 수 있는 곳으로, 최고의 보안 등급이 매겨져 있어 아무나 들어올 수 없음은 물론, 엄격한 경비가 펼쳐지는 곳이기도 했다.
이진이 내부를 한 바퀴 둘러보니 각종의 도검류, 창 당파류, 명과 왜의 3국무기 중 조선의 가장 우수한 무기로 평가받는 편전(片箭)을 비롯한 신기전, 장군전, 연노, 기계식노 등 각종 궁시류가 전시되어 있었다.
또 조금 더 나아가니 승자총통을 비롯한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총통류는 물론, 대완구, 소완구 외에 조총, 호준포(虎蹲砲), 삼안총(三眼銃), 불랑기포(佛狼機砲) 등의 각종 총통류 또한 전시되어 있었다.
노량해전에서 이순신이 사용하여 큰 재미를 본 호준포나 후장식인 불랑기포, 마상용으로 개발된 총신이 3개인 삼안총 등의 제작에는, 검계원과 이웃나라의 동정을 탐지하는 군무사(軍務司) 소속 요원들의 활약이 컸다.
이들이 명에 잠입하여 이 무기들을 입수해와 조선에서도 많은 양을 만들게 되었던 것이다. 실제 원 역사에서는 임란 때 진주한 명군에 의해 조선에 전래된 무기를 더욱 빠르게 입수한 것이다.
아무튼 이진이 좀 더 나아가니 이번에는 좁은 길에서도 각종 화기와 병기를 싣고 이동이 용이하게 제작된 화차(火車)가 보였다. 이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유심히 살펴본 이진은 기분이 좋은지 너털웃음을 터트리며 명했다.
“직장은 물론 연구원들을 한 자리에 불러 모으오!”
“네, 전하!”
이진의 명에 부정이 빠릿빠릿 움직이는 가운데, 이진은 잠시 후 중앙의 전각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이미 수백 명이 질서정연하게 부복해 있었다.
그 중 제일 앞줄에는 네 명의 직장(直長:종7품)들이 부복해 있었다. 이들이야 말로 무기개량에 큰 공을 세운 사람들로 아래와 같았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명하여 화포공(火砲工)에서 화포장(火砲長)을 거쳐 일약 직장(直長:종7품)까지 승차한 이장손(李長孫)과, 화차를 발명하여 신기전의 발사에 공헌한 문신 변이중(邊以中).
승자총통을 발명하여 니탕개의 난에 공을 세워 병조판서에까지 추증된 김지(金墀)의 아들 이지(李志). 처음 광산기술자로 왔다가 이진에 의해 조총을 만들고 개량하는데 큰 공을 세워 이진으로부터 이충선(李忠善)이라는 조선식 이름까지 하사받은 왜인 등이 부복해 있었던 것이다.
이장손이야 말로 현대식 수류탄이라 할 수 있는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를 발명한 사람으로 원래는 이 군기시에 소속된 화포 공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를 발명하자, 이진은 곧바로 화포장에 이어 몇 차례의 승급을 거쳐, 천인(賤人)이 일약 종7품 직장(直長)까지 오른 것이다.
비격진천뢰에는 화약과 철 조각, 오늘날 폭탄의 신관과 비슷한 죽통이 들어있다. 죽통 속에는 나선형의 홈이 파져 있는 목곡이 들어 있으며, 목곡에는 도화선인 약선이 감겨져 있었다.
목곡에 감겨져 있는 도화선의 숫자에 따라 폭발시간이 좌우되어, 빨리 폭발하게 하려면 열 번 감았고, 더디게 하고자 하면 열다섯 번을 감게 되어 있었다. 즉 시간 까지 조절할 수 있는 폭탄이었던 것이다.
유성룡이 임란 후 쓴‘징비록(懲毖錄)’에 이 무기의 활약이 잘 나타나 있어 옮겨 보면 이러 했다.
‘임진년에 왜적이 경주성에 웅거하고 있을 때 병사 박진이 군사를 거느리고서 적을 공격하였으나 패배당하고 귀환했는데, 다음날 밤에 진천뢰를 성 밖 2리쯤에서 쏘았다. 남아 있던 적이 처음으로 포성을 듣고 깜짝 놀라 일어나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홀연히 큰 솥 같은 물건이 날아와 적장이 있는 객사의 뜰 가운데 떨어졌다. 이에 적이 모여 불을 켜 들고 서로 밀치고 굴렸다. 조금 있자 포성이 천지를 뒤흔들듯 발하여, 적이 맞아 죽은 자가 3십여 명이고, 맞지 않은 자도 모두 놀라서 자빠지고 정신을 잃게 되어…. 라고 기록하고 있음을 볼 때 진천뢰의 위력이 어떠했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당시에 쓰여지던 화기들이 목표물에 충격을 주는 무기였음에 반해, 진천뢰는 목표물에 날아가서 폭발하는 금속제 폭탄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 무기는 육전뿐만 아니라 해전에서도 유용하게 쓰이게 될 것이다. 이 비격진천뢰가 수군에도 이미 상당량 보급되었기 때문이었다.
기존 총통을 좀 더 발전시킨 승자총통을 발명하여 니탕개의 난에 큰 공을 세워 병조판서까지 추증된 김지(金墀)의 아들 이지(李志)는 원래 이름이 김득지(金得志)였다. 그런 이 자가 아바의 공을 기려 추증 신청을 하는 상소를 올리는 바람에, 이 자에 대해 알아본바, 아비와 같이 손재주가 있는지라, 군기시에 들게 되었다.
이 자 또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각종 총통류의 발사거리는 물론 성능을 크게 개량하는지라 결국 직장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처음 광산기술자로 왔다가 이진에 의해 조총을 만들고 개량하는데 큰 공을 세워 이진으로부터 왕족의 성씨인 이(李) 씨 성에다가 충선(忠善)이라는 조선식 이름까지 하사받은 왜인 또한 기존 조총을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은 물론, 삼안총과 불랑기포 다수를 제작하는데 큰 공을 세운 바 직장 벼슬까지 받게 된 것이다.
마지막으로 변이중(邊以中)은 원래 1568년 사마시를 거쳐 1573년 식년문과에 급제한 문신이었다. 그런 이 사람이 갑자기 생각난 것은 이진이 권율을 3사단장으로 보임시킨 1년 전이었다.
권율 하면 본인은 모르겠지만 이진이 그를 보면 항상 행주산성 전투가 떠올랐다. 이 날도 권율을 보자마자 그에 대한 생각이 떠오르며, 갑자기 또 한 사람 떠오른 사람이 있으니, 곧 변이중이었다.
이 사람이 만든 화차 수백 대중 몇 십대를 공급하는 바람에 행주산성 전투를 승리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을 잘 알고 있던 이진은, 돌연 변이중을 수배시켜 군기시에 배속시켜 화차를 만들게 했던 것이다.
어릴 때부터 수리에 밝았던 변이중은 곧 이진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얼마 안가 화차를 발명하게 되니, 이는 곧 각 사단은 물론 수군에도 배치가 되게끔 하였다. 각 사단에는 기존 편제 외에 군량 수송 보급은 물론 별도의 화기부대가 있어 각종 화기를 전문으로 취급하게끔 편제가 되어 있었다. 아무튼 이 사람 또한 그 공으로 곧 종7품 직장으로 승급하게 되었다.
이들을 기꺼운 표정으로 바라보던 이진이 돌연 수행하고 있던 이제 부제조상궁이 되어, 왕실의 내정을 관리하게 된 김개시에게 말했다.
“앞의 네 직장에게 그간의 공로를 감안하여 각각 은 100냥씩을 내리도록 하여라! 하고 제조 한효순은 이들을 각각 종5품 별좌(別坐)로 승차 시키도록 하고, 또 그간 각종 병기를 개발하거나 제작하는데 큰 공을 세운 20명을 선발하여, 새로 직장에 임명토록 하라! 이는 세종 연간에는 20명이었던 것을 근간에 1명으로 줄였던 바, 이는 그만큼 우리가 병기의 제작과 개량을 등한시 했다는 것을 방증하는바, 과인은 다시 한 번 그때로 회귀하며 이들의 공을 기리고 싶노라!”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이진의 명에 이제 별좌가 된 네 명은 물론 기존 관료와 연구원들까지 모두 부복하여 이진의 포상에 감격을 표시하였다.
이에 기꺼이 홍소(哄笑)를 터트리며 한효순 이하, 기존의 관리는 물론 새로 별좌가 된 네 인물, 그리고 수백의 연구원들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그들의 손을 잡아주며 직접 노고를 치하해주는 이진이었다.
이에 감격한 자들의 흐느낌 소리가 얼마나 큰지, 외부에서 볼 때는 이진이 가장 끔찍하게 생각하는 왕실의 초상이라도 났는지 알 정도였다.
이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은 스무 냥을 별도로 하사하여, 상하 모두 한 자리에 회식을 할 수 있게끔 하였다. 이에 이들 모두 더욱 감겨하여 부복하는 것을 보고 이진은 군기시를 등졌다.
이진이 확실히 통이 크긴 크다. 은상으로 네 명에게 내린 은자 100냥은 각각 쌀 100가마에 해당하니, 이들이 크게 놀라는 것은 당연했고 이를 바라보는 연구원들 또한 이를 보고 얼마나 앞으로 발분하겠는가.
이를 바라고 내리는 노림수지만, 다른 관원들이 보기에는 배포가 커도 보통 큰 것이 아니라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은 당연지사라 하겠다. 돌아가면서도 가장 돈을 많이 쏟아 부은 곳 중의 하나가, 자신의 기대만큼 따라주어 흡족한 이진이었다.
이에 이진은 연신 넉넉한 웃음을 짓는 것은 물론 때로 크게 소리 내어 웃으니, 따르는 관리들 또한 흐뭇하여, 연신 웃음을 입가에 달고 있었다.
-------------------------------------------------------
============================ 작품 후기 ============================
갑자기 일이 생겨 어디 좀 다녀오느라 늦었습니다. 오늘도 즐겁고 행운이 가득한 하루가 되시길 기원하며, 보내주신 후의에 거듭 감사를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