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55 회: 간신들을 모셔라 -- >
7
김우옹을 내보낸 이진은 이어 연달아 신임 예조판서 우성전과 동부승지 이수광을 연달아 접견했다. 그들을 물리고 나니 병부를 분장하는 좌부승지 이호민과, 신임 병조판서 정탁, 또 유사당상 세 명까지 다섯 명이 우르르 몰려왔다.
“무슨 일이오?”
이진의 물음에 부복하자마자 이호민이 자세를 바로하고 곧 바로 아뢰었다.
“북변의 장계이옵니다. 전하!”
이호민이 넘겨주는 장계를 받으며 이진이 물었다.
“내용이 뭐요?”
“훈융진 첨사 신상절의 수성하자는 제의를 북병사 원균이 무시하고 공격하다가 참패를 당했다하옵니다. 그러나 함경감사 권징과 남병사 박선의 지원으로 간신히 적을 물리쳤다는 보고이옵니다. 전하!”
“오만함이 빚은 참패인가?”
“그보다는 곡절이 있었사옵니다. 전하!”
“곡절이라니?”
“우을지의 공격을 물리친 원균이 그들의 뒤를 쫓는 과정에서 적의 복병을 만나 대패했다는 보고이나, 적의 복병이라는 것이 니탕개의 난 때 큰 공을 세운 효정(孝汀)이라는데 문제가 있사옵니다. 전하!”
“효정이라니?”
“귀화한 야인으로 니탕개의 난 때 그의 본거지를 습격하여 결국 니탕개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공을 세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룬 공에도 조정에서 아무런 보답이 없자, 앙심을 품은 그가 결국은 일을 저지른 모양입니다. 전하!”
“그런 큰 공을 세운 사람에게 조정은 왜 아무 포상도 안 한 것이오?”
“그것이......... 그 포상 내용을 다투다가 지금까지 아무 조치도 시행하지 않은 것으로 아옵니다.”
“허허........! 그 난이 일어 난지 벌써 4,5년이 지났지 않소?”
“그렇사옵니다. 전하!”
“참으로 한심한 작태로군. 아니 기구절창할 일이오.”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천정을 노려보던 이진이 물었다.
“그래, 결과적으로 북변의 난은 진압 된 것이오?”
“네, 전하!”
“과인은 다섯씩이나 우르르 몰려다니기에 무슨 큰 일이 난 줄 알았소. 병판 대감!”
“네, 전하!”
이진의 부름에 정탁이 급히 부복했다.
“원균을 패전의 책임을 물어 그 자리에서 파출시키고, 공을 세운 두 사람에게는 각각 은전을 내려 공을 기리도록 하오.”
“네, 전하!”
“하고 북병사의 자리에는 김여물(金汝物)을 보임할 것인즉 도착하는 대로 등대하도록 하오.”
“네, 전하!”
모두 이의 없이 명을 받고 물러가자 한숨 돌리는데 이번에는 생각지도 못한 김덕삼이 나타났다.
그를 편전으로 들인 이진이 물었다.
“무슨 일이냐?”
“정여립이 모든 준비가 되어 떠나기 전 주상전하를 뵙고 가고 싶다고 기별을 해달라고 해서 찾아뵈었습니다. 전하!”
“흐흠........!”
“만나야 특별히 할 말도 없으니, 네가 과인의 재산에서 장사 밑천을 챙겨주도록 해라.”
“알겠사옵니다. 전하!”
“집안에 별일은 없고?”
“네, 전하!”
“허준은”
“식구들까지 완전히 이사해 기거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알았다. 네가 고생이 많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이만 가보거라!”
“네, 전하!”
그가 물러가자 이진은 잠시 한가한 시간을 가졌다.
* * *
그날 저녁이었다.
이진은 성균관 유생들의 권당으로 인해 열지 못했던 병법 강의를 모두를 모아놓고 재개했다.
“과인이 유생들에게 한 이야기에서 결론을 들었겠지만, 탄금대 전투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소. 패전에서 교훈을 얻듯이 과인은 이 전투를 빌어 몇 가지 지적을 하고자 하오.”
여기서 일단 말을 중지한 이진이 장내를 한 번 둘러보고는 재차 입을 열었다.
“그 패인의 첫째 원인은 그 무엇보다도 준비 부족이요. 유비무환이라는 말이 있듯이, 훈련 한 번 제대로 받지 못한 자들 10만이 있으면 다 무얼 할 게요. 총성 한 방이면 우르르 도망치다가 저희들끼리 자빠지고 포개져서 떼죽음 할 것을.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철저히 교육시키고 군수물자도 준비해야 하오. 아시겠소?”
“네, 전하!”
“두 번째로 과인은 정보부족을 들겠소. 적이 어디쯤 왔는지? 어디로 오는지, 몇 갈래로 오는지? 그 하나 파악치 못하고 있다가, 1차 저지선으로 택한 단월 역에서 삼면매복을 당해 완전히 무너졌소. 게다가 이미 배후까지 차단된 상태인지도 모르고 전투를 했으니, 이미 패전은 따 놓은 당상이고, 결국 패주 끝에 쥐가 궁지로 몰리듯 쫓겨 간 곳이 탄금대요. 등 뒤로는 푸른 물이 넘실대는 강물뿐인 곳으로.”
“세 번째로 과인은 패인의 원인으로 전술의 부재를 들겠소. 도망병 관리하기 바쁜 아군으로서는 사지에 몰아넣는 것이 좋은 방법이긴 하나, 아군의 장점인 기병 전력을 제대로 사용치 못할 질퍽한 논밭뿐인 곳을 선택했으니, 이 어찌 통탄스러운 일이 아니오.”
“하고 이런 배수진을 쳐도 한신 같은 명장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하여, 적 가까이 꼭 매복을 두고 시작하오. 해서 적군이 우르르 아군 깊숙이 들어오면 역으로 그 매복 군이 이들의 배후를 치는 것으로 승기를 잡았소. 이 또한 전혀 시행할 인원도 시간도 없었으니, 벌써 첫 번째부터 힘든 싸움이 되었소.”
“네 번째로 과인이 패전의 이유로 꼽고 싶은 것은 아군의 또 하나 장기라 할 수 있는 원거리 무기를 전혀 이용치 못한 것이오. 이 무기로 원거리 포격을 가해놓고, 기병 운용을 했으면 조금 더 나았을 것을........”
“다섯 번째로는 적장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요. 이 또한 정보 수집에 속하겠으나, 기병 돌격 시 적이 깃발을 누이고 소수인양 가장하여 접근하니, 얕잡아 보다가 적이 일시에 깃발을 치켜세우자, 적의 숫자가 배로 늘어나 보이는 등 아군의 사기 면에서 큰 차질을 빚었소. 손자병법에서 적을 알면 백 번을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고, 적을 알아야 하고, 적을 얕잡아 보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될 것이요.”
“네, 전하!”
여기서 패전을 분석을 끝낸 이진은 이후 현대식 훈련기법을 이들이 참조하도록 하나씩 전수했다. 훈련의 기본이 되는 제식훈련부터, 사격술, 지형지물 이용법, 각개전투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무언가 느끼고 배우도록 열심히 이들에게 가르쳤다.
* * *
저녁마다 그런 강의가 되풀이 되는 속에서 며칠이 지나자 드디어 김여물이 어전을 찾아들었다.
“성은이 하해 같사옵니다. 전하!”
“고개를 들라!”
“네, 전하!”
기록을 보니 올해 42살.
큰 키에 우람한 등치. 게다가 아직도 풍채가 녹슬지 않아 준수한 면모가 있는 장년인 이었다.
보탑에서 천천히 일어난 이진이 그에게 다가가며 물었다.
“담양부사로 재직하고 있었다고?”
“그렇사옵니다. 전하!”
“외방에서 고생이 많았소. 과인이 요즈음 좀처럼 찾아보기 드문 문무겸전의 장재라 곁에 두고 중히 쓰려했으나, 북변이 소란스러워 안 되겠소. 해서 과인은 공을 북병사로 보임하려 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다시 부복하여 감사를 표하는 그를 잡아 일으킨 이진이 말했다.
“듣자하니 석년에 애통한 일이 있었다고?”
“모친상을 당하여 3년간 여막에 머무른 일이 있사옵니다. 전하!”
“그랬었군.”
이진의 관심에 김여물은 가슴이 뜨거워짐을 느끼고 말했다.
“신이 경성(鏡城)의 북병영에 당도하는 즉시 조련에 힘써, 북방의 근심을 거두게 하겠나이다. 전하!”
병마절도사(북병사)로 무관직으로는 이제 종2품 최고의 품계에 오른 김여물이 감격하여 하는 말에, 이진 또한 기분이 좋아져 그의 손을 맞잡고 말했다.
“북방의 일은 공만 믿소!”
“심려치 마옵소서. 전하!”
그의 장담에 더욱 기분이 좋아진 이진은 곧 주안상을 들이라 해, 그와 대작을 하였다.
“그래, 피구자(披裘子)! 어떻게 강군으로 육성시킬 생각이오?”
“소직은 가는 곳마다 아주 훈련을 혹독하게 시킵니다. 그래야만 전시에도 제대로 썩 먹을 수 있사옵니다. 부하들의 원성이 듣기 싫어 훈련을 등한히 하는 것은 곧, 유사시 그들을 죽음의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것과 진배없다고, 평소 소신은 생각하고 있사옵니다. 전하!”
“옳은 이야기요. 알면서도 행하는 이가 많지 않지요. 과인에게는 공과 같은 사람이 꼭 필요하오. 이제 과인은 북방의 일만은 그대를 믿고, 두 발 뻗고 편히 자려하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그로부터 둘 사이에는 2병의 술이 없어질 때까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김여물은 1577년에 알성 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였고, 문무를 겸비했으나 성품이 호탕하고 법도에 얽매이는 것을 싫어해, 지금까지 높은 벼슬자리에는 등용되지 못한 것을 이진이 발탁한 것이다.
원 역사에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도체찰사 유성룡(柳成龍)이 무략에 뛰어남을 알고 옥에서 풀어 자기 막중(幕中)에 두려고 하였다. 그런데 도순변사로 임명된 신립(申砬)이 그의 재능과 용기가 뛰어나고 충의로운 선비임을 알고, 자기의 종사관으로 임명해줄 것을 간청해 신립과 함께 출전하였다.
신립이 단월역(丹月驛 : 현재의 충주 단월역)에 이르러 몇 명의 군졸을 이끌고 왜적의 북상로인 조령(鳥嶺)의 형세를 정찰할 때, 상주(尙州)에서 패주해 온 순변사 이일(李鎰)을 만나 조령 방어의 어려움을 알고 충주로 가 배수의 진을 치기로 결정하였다.
그는 이것을 반대하고, 적은 수의 군사로 많은 적을 물리치기 위해서는 먼저 조령을 점령해 지키며, 그렇지 못하면 평지보다는 높은 언덕을 이용해 왜적을 역습하는 것이 좋겠다고 강력히 주장했으나 채택되지 않았다. 결국, 충주의 달천(川)에서 배수의 진을 치고 신립을 따라 탄금대(彈琴臺) 아래에서 용전분투했으나 왜적을 당하지 못해 강에 투신, 순국하였다.
그는 충주 싸움의 패배를 예견하고 아들 유(瑬)에게 다음과 같은 언을 남겼다
“삼도(三道)의 근왕병(勤王兵)을 요청했으나 한 사람도 응하는 자가 없다. 우리들이 힘을 다해 싸우나 아무런 도움이 없으니 안타깝다. 남아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은 본시 바라는 바이지만 나라의 수치를 씻지 못하고, 또 장한 뜻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하고 한갓 재가 되어버리니 하늘을 우러러 한숨만 지을 뿐이다.”
또, 가족에게는 “내가 이곳에서 죽더라도 우리 일가는 모두 임금님의 행재소(行在所)로 가서 돕되 결코 난을 피해 다른 곳으로 도망치지 말라.”고 경계하였다.
* * *
그가 떠나고 며칠 되지 않아 이번에는 곽재우가 등대했다.
--------------------
============================ 작품 후기 ============================
조금 짧지만 양해하세요!^^
하루에 세 편 올린다고 잠을 설쳤더니, 피곤해서 영 글이 안 써지네요!^^
늘 즐겁고 유쾌한 날들 되시고,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보내주신 성원에 감사드리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