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46 회: 부족한 재정을 벌충하기 위한 묘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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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의 명이 떨어진 즉시 백일문부터 호종을 자처해 측근에 머물게 했다. 이진 또한 송한필을 통해 그들을 호위로 임명하는 첩지를 내리고 그들의 수직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그러나 애초 이진의 의도는 이들을 내금위보다도 군무사(軍務司)에 전원 기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었다. 군무사라는 곳은 군사에 관한 직무와 이웃나라의 동정(動靜)을 살피는 일을 맡아본 관청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한두 사람도 아니고 수백 명을 이곳에 임명한다는 것은 번거로움을 자초하는 일이라, 일단 음지에서 움직이게 했다가 정이나 꼭 필요하다면 훗날 얼마든지 양지로 드러낼 생각이었다.
물론 그때는 지금에 비해 왕권도 많이 강화되어 있을 때일 것이다. 아무튼 이들의 일을 처리하고 나니 홀가분해진 이진은 다시 외조부가 기다리는 강녕전으로 들어갔다. 다시 보료 위에 자리를 잡은 이진이 말했다.
“급히 처리할 일이 있어서 늦었습니다. 자, 한 잔씩 드시지요.”
어느새 따라진 술잔을 들며 이진이 말하자 함께 잔을 치켜드는 외가 식구들이었다. 잔을 비운 이진이 안주를 집으며 외조부에게 말했다.
“사염감의 조직과 인원 선발 건에 대해서는 외조부님께 전적으로 권한을 드릴 테니 알아서 하십시오. 단 너무 과한 것은 아무래도 좋지 않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자, 자, 이제 공적인 이야기는 그만 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합시다.”
그러자 외조부가 입을 떼었다.
“그나저나 생모의 추존 건에 대해서는.........”
“조회에서 그 안건도 분명 존호를 추존하자고 올라왔었습니다. 하지만 세 번 사양은 기본이라, 이제 두 번 물리쳤을 뿐입니다.”
“허허허.........!”
모처럼 소리 내어 크게 웃는 외조부 김희철이었다. 자신의 딸이 왕후로 추존 받는 것이 기분 좋은 것인지, 아니면 이진의 말이 우스웠던지는 알 수 없었다. 이처럼 이진은 이날 오후를 모처럼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한가롭게 보냈다.
* * *
다음날 아침.
아침에 눈을 떠보니 요즈음 안 보이던 인물이 새롭게 눈에 들어왔다.
“전하.........! 흑흑흑........!”
눈이 마주치자 부복해 꺽꺽 울음부터 토하는 이 있어 자세히 살피니, 그간 부모의 병간으로 정직 상태에 있었던 김 상선이었다.
“그래 부모님은 쾌차하셨는가?”
“성상께서 어의를 보내 돌봐주시는 바람에 일찍 쾌차할 수 있었나이다. 신 이 은혜 뼈에 새겨 평생토록 두고두고 갚겠나이다.”
“별일 아닌 것을 무에 그리 감격할 일이 있나? 쾌차했다니 다행이지. 하고 앞으로는 정상으로 입궐할 수 있는 것이지?”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래, 충실히 보필토록 하고, 과인은 소세부터 해야겠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김 상선이 다시 한 번 절하고 물러나는데 그를 보니 또 퍼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어의 허준이었다. 그동안 너무 무관심, 아니 방치한 것 같아 이진은 소세를 하러 가면서 지나가는 말로 한마디 툭 뱉었다.
“어의 허준을 출근하는 대로 들라하도록.”
“네이, 전하.........!”
대전내관의 대답을 들으며 이진은 소세를 하러 갔다.
진시 말(辰時 末).
허준이 이진의 명을 받고 등대해 있었다. 오늘은 조강이 늦어져 9시가 다 된 시간이었다.
“그동안 잘 지냈는가?”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전하!”
“김 상선의 부든가 모든가를 잘 치료해줬다니 고맙네.”
“큰 병이 아니었기에 다행이었습니다. 전하!”
“종두법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전하께서 밝히신 대로 5년 내에 조선의 전 백성들을 두창의 마수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해, 전 어의는 물론 내의원 전체가 달려들고 있는 실정이옵니다. 전하!”
“잘 하고 있군.”
“교동도로 유배를 갔던 전 어의들은 모두 업무에 복귀했지?”
“그렇사옵니다. 전하! 모두 성상의 은혜에 감복하여 저 죽을 줄 모르는 불나방 같사옵니다. 전하!”
“하하하.........! 그래? 거 고마운 일이군. 헌데 말이야..........”
“말씀 하시옵소서, 전하!”
“명국은 물론 조선, 왜 할 것 없이 있는 의학 서적이란 서적은 다 끌어 모아, 우리 실정에 맞는 제대로 된 의학서적을 편찬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나?”
“소직도 그럴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는 요즈음이었습니다. 전하!”
“잘 됐군. 하면 허 어의가 이를 주관해서 명실 공히 후대에까지 길이 전해질 명 의서를 하나 만들어 보시게.”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뭐든 말하고.”
“네, 전하!”
“만약에 말인데.........”
“네, 전하!”
“내의원에서의 작업에 번거로우면 과인의 옛 사저를 이용해도 좋네. 조용한 곳에서 의서의 편찬에만 몰두 하는 것이지. 물론 필요한 인원과 서책은 모두 구비해줄 테니 말이야.”
이진의 말에 순간적으로 눈을 번뜩였던 허준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순식간에 표정을 갈무리 하고 말했다. 순간적으로 이진의 어심을 간파한 것이다. 왕의 생사와 관련된 자 치고 뒤끝이 좋을 게 없는 게 고금의 이치였다.
이진의 결정적 비밀을 하고 있는 자신을 해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고맙게 생각한 허준이 급히 부복해 아뢰었다.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과인의 의사에 따를 의향이 있다는 말인가?”
“네, 전하!”
아직도 엎어져 있는 허준 몰래 가늘게 한숨을 내쉬는 이진이었다.
이로써 자신의 비밀을 알고 있는 자에 대한 연금에 성공한 것이다. 그렇다고 파렴치하게 자신의 등극에 결정적 도움을 준 그를 제거할 마음은 이진에게는 없었다. 물론 허준이 조금이라도 허튼 마음을 먹는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지리라.
모든 것이 자신의 마음먹은 대로 처리되자 이진은 기분이 좋아졌다. 원 역사보다 허준에 의한 동의보감 저술이 보다 빨리 실현에 옮겨졌고, 그를 새장에 갇힌 새로 만든 것에 흡족했던 것이다.
그러나 좀 미흡한 것이 있어 허준에게 말했다.
“아예 가족도 과인의 사저로 옮기시게. 그게 편하지 않겠나?”
“성은이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모처럼 만이니, 술 한 잔 하세.”
또 부복하려 하기에 손을 저어 만류한 이진은 곧 금란을 불러 술상을 봐오도록 했다.
둘은 이런 저런 이야기로 근 반 시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이후 허준이 물러가자, 이진은 교대하여 자신을 호종하고 있는 검계 두령의 하나인 김득신에게 지시를 하였다.
"과인의 사저로 허준이라는 허의가 이사를 올 걸세. 거기서 저술도 하고 할 것이네만, 자네가 지시하여 그 자를 열두 시진 철저히 감시하도록. 그렇다고 대놓고 하면 안 돼. 눈에 안 띄게 하고, 상궁 중에는 김개시라는 인물이 있거든. 그녀를 궁녀를 통하든 어찌 하든 12시진 철저히 밀착 감시하도록 해."
“네, 전하!”
지시를 하고 나니 씁쓸한 마음에 이진 스스로 쓴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의심이 많은 사람인가? 아니야 이런 경우 모두 죽였어!’
스스로를 위로하며 이진은 쓸쓸히 발걸음을 강녕전으로 돌렸다. 이제야 조참을 좀 들기 위해서였다.
* * *
조참을 들고 이진은 사정전으로 가면서 무언가 빠트린 것이 없나 생각을 하다가, 화폐의 유통을 위해서는 상인들의 적극적인 협조를 얻어야겠다는 생각에, 뒤따르던 송익필에게 지시를 내렸다.
“각 상단의 대방들을 보름 후에 모두 도성으로 집결하도록 파발을 띄우시게.”
“아무래도 너무 촉박하지 않사옵니까? 전하!”
“그럼, 스무날로 해.”
“네, 전하!”
이들과는 항상 속도감의 차이가 나서 매사 이런 일이 가끔 있었다. 나름 늦춘다고 늦추는데도 이들에게는 그것이 빠르게 느껴지는 모양이었다. 아무튼 오늘 승정원의 보고로는 특별 안건이 없었다.
강상죄를 범한 평양의 정상국 건도, 평양을 한 단계 격하시키는 것 말하고는 모두 ‘그리하라’ 하는 것으로 윤허를 하고 말았다. 이치들이 자신들의 뜻에 맞지 않게 비답을 내리면, 계속해서 그 건을 가지고 수없이 주청을 하는 바람에 사람 귀찮아 못살 지경이었다.
그래서 조회 상정이고 뭐고 사헌부에 전교를 내려 윤허했지만, 나중에라도 평양의 지위 격하 문제를 가지고 또 한 번 시끄럽게 굴 것이 예상되었다. 그렇다고 범죄 하나 발생했다고 군을 현으로 강등시키다보면 종래는 온전한 군이 없다 싶어, 끝내 그 문제는 응할 생각이 없는 이진이었다.
사정전에 임어한 이진은 곧 대신들의 문안 인사를 받는 것으로 조회를 끝내려다가, 자신 스스로가 안건 하나를 상정했다. 담당판서만 남겨 상의하려다 나중에라도 딴죽을 걸 것 같아서였다.
“과거가 내일 모레지요?”
“그렇사옵니다. 전하!”
예조판서 정철의 대답에 고개를 주억거린 이진이 말했다.
“지금 과거를 보면 대과에 임하는 자들은 명년 봄이나 돼야 다시 복시를 보는 것인가?”
“그렇사옵니다. 전하!”
“그렇다면 말이오. 그 기간을 좀 당깁시다. 올 농번기가 어느 정도 끝나는 팔월 말에 시행하는 것으로 합시다.”
“그것은.........”
“전란이 임박했다 하지 않았소? 북방의 소요도 심상치 않고. 하니 아예 이번에는 기간을 당기고, 아예 합격자도 배로 냅시다. 두 배로 합격시키자는 말이오.”
“그런 예는 없사옵니다.”
예판 정철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노성을 지르는 이진이었다.
“답답한........! 그깟 33명 더 뽑는다고 나라가 어디 거덜 나기라도 하오? 무과는 그나마 그 인원도 안 되잖소?”
“28명이옵니다. 전하!”
“과인의 생각으로 무과는 한꺼번에 1만 명씩 뽑았으면 속이 시원하겠고 만.”
“네.........?”
이진의 배포에 모두 위로 치켜뜬 눈들이 한동안 내려오지 않았다.
“권위가 떨어집니다. 전하!”
“좋소. 그럼, 이렇게 합시다. 예년대로 합격을 시키되, 아니 9월 초 하루에 복시, 문무 양과의 별시를 실시하고, 또 선무군관(選武軍官)이라는 것을 뽑아 하급 지휘관을 충원하도록 합시다.”
“전하! 선무군관이라뇨?”
“과인이 자세히 설명할 테니, 잘 들어 보도록 하오.”
이렇게 운을 뗀 이진은 한동안 선무군관 제도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해야 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선무군관(選武軍官)은 지방의 부유한 평민으로 조직되어 평상시에는 집에서 무예를 익히다가, 유사시에는 소집되어 군졸을 지휘할 군관으로, 전란이 임박한 것에 대비해 하급 지휘관을 양성할 목적으로, 전국의 토호, 부민(富民)을 대상으로 조직할 예정이었다.
왜냐하면 현 시점에서 토호, 부민의 피역(避役)이 광범위하게 전개되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이들을 군역체계에 포섭하기 위해 선무군관을 설치하고, 일단 여기에 들어오면 그 자손까지도 군역에 충정(充定)되지 않도록 하는 특혜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한편, 국가에서는 이들에게 무예를 단련시키기 위해, 1년에 한 번씩 농한기에 한 달 간 집중 군사훈련을 받게 하고, 또 1년에 한 번씩 수령의 관장 하에 시재(試才)하고, 여기서 우수한 자는 도(道)에 모아 감사가 다시 시재하여 7명을 선발하도록 했다.
또 여기서 1등은 전시(殿試)에 곧장 나아가게 하며, 2등은 회시(會試)에 나아가게 하고, 그 아래 5명 또한 군의 고급 지휘관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을 열어주도록 했다. 또 부모의 상을 당했을 경우에는 2년간 훈련을 면제하도록 했다.
정원은 각 지역에 할당키로 하고, 경기 5,000명, 강원 3,000명, 황해도 3,500, 호서 4,000, 호남 7,000, 영남 7,000, 평안 1500, 함경 1,000 합계 3만 2천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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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에 감사드립니다!^^